# 126
더 소울(The Soul) - 수호마(守護魔) [1]
@ 천왕(天王)의 보고(寶庫).
마제(魔帝)급 혼마를 종말의 괴수라 부르는 이유는 간단했다. 마제급 혼마가 나타나면 적어도 한 대륙 정도는 박살 내버릴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50년 전 남미에 나타났던 마제급 혼마는 마제급 혼마 중에서도 가장 약한 최하급 수준의 혼마였지만 놈을 막기 위해 수많은 소울러들이 희생되었었다.
당시 희생되었던 소울러 중에는 흔히 그랜드마스터라 불리는 경지에 오른 이도 있었다.
그나마 수많은 소울러의 희생과 다른 대륙의 지원을 통해 마제급 혼마를 쓰러트리긴 했지만, 그때 남미의 소울러들이 입은 피해가 워낙 커서 여전히 남미는 전 세계에서 소울러들의 힘이 가장 약한 대륙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괜히 마제급 혼마가 종말의 괴수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물론 지금 건을 막고 있던 초대형 혼마는 진짜 마제급 혼마는 아니었다.
마왕급 혼마가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를 한계까지 흡수해 마제급 혼마가 가질 수 있는 마이너스 에너지의 양을 채운 것이었다.
그렇기에 온전히 종말의 괴수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놈이 약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마왕급 혼마만 되어도 그랜드마스터 정도는 돼야 간신히 단독으로 맞설 수 있었는데 지금 건 앞에 나타난 초대형 혼마는 마왕급을 초월한 괴물이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마왕급과 마제급의 중간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 정도라면 충분히 강력했다.
콰과과과과광!
건은 영화나 책에서나 보던 티라노사우루스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초대형 혼마가 휘두른 꼬리를 간신히 피했다.
워낙 덩치가 크다보니 가볍게 꼬리를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큰 위협이 되었다.
‘이건 커도 너무 크다.’
공룡을 닮은 그 혼마의 크기는 어림잡아 20층 높이의 건물과 비슷했다.
건과 비교하면 40배가 넘는 차이가 존재했다.
아무리 건이 굉장한 경지에 오른 상태라고 해도 지금 눈앞에 나타난 공룡 혼마는 절대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아무리 베이스가 마왕급 혼마라고 해도 지금까지 내가 상대했던 마왕급 혼마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놈이다.’
건은 요 며칠 마왕급 혼마들과도 싸웠었다.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건은 정확히 세 마리의 마왕급 혼마를 쓰러트렸는데 놈들을 쓰러트리며 건도 꽤 고생했었다.
‘그래도 진혼마(眞魂魔)가 아닌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만약 공룡 혼마가 진혼마였다면 건은 이런 고민을 할 여유조차 없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진혼마가 아니라고 해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건 절대 아니었다. 천하의 건이라고 해도 마왕급 혼마를 혼자 상대하기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꽈과과광!
건은 공룡 혼마가 휘두른 꼬리를 다시 한 번 피하며 빠르게 이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았다.
사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게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맞서 싸우거나 아니면 도망치거나!’
결국,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해야지만 하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앙!
공룡 혼마는 건이 자꾸 자신의 공격을 피하자 약이 올랐는지 갑자기 크게 울부짖으며 입안에 마이너스 에너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건은 그 순간 공룡 혼마가 브레스 종류의 공격을 하려는 걸 깨달았다.
크기가 80m가 넘는 공룡의 머리는 당연히 컸다.
그리고 공룡의 특성상 입의 크기도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그 얘긴 공룡이 브레스를 뿌리면 사실상 그걸 피하는 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건은 망설이지 않고 심안의 봉인을 풀고 대제(大帝)의 힘을 끌어올렸다.
촤르르르르륵!
그 순간 검은색 갑옷이 건의 몸을 휘감았다.
건은 그렇게 묵룡갑을 소환하는 것과 동시에 금강의(金剛衣)의 기운을 최대한 크게 만들어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감싸는 커다란 황금빛 호신강기를 만들어냈다.
건이 방어준비를 끝낸 그 순간.
공룡 혼마는 건을 향해 자신의 거대한 입을 벌렸다.
콰과과과과과!
그러자 놈의 입에서 한 줄기의 화염이 쏟아져 나왔다.
약간은 단순하고 뻔해 보이는 공격이었지만 놈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화염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건을 집어삼켰다.
예상대로 피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건은 피하는 것 대신 막는 걸 선택했다.
콰과과과과광!
폭발이 사방을 휩쓸었다.
공룡 혼마가 뿌린 화염브레스는 마치 전설 속에 나오는 레드드래곤이 뿌리는 화염브레스와 비슷해 보였다.
마제급 혼마가 무서운 점은 이처럼 아주 강력한 광역 공격을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만약 이곳에 어중간한 소울러들 100명이 있었다면 조금 전 그 한 번의 공격으로 100명 모두 사망했을 게 분명했다.
이처럼 마제급 혼마를 상대할 땐 정예 소울러가 아니라면 그냥 빠져있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후우…….”
건은 공룡 혼마의 화염브레스를 견뎌냈다.
공룡 혼마의 화염브레스가 아무리 강력해도 건이 작정하고 막으려고 하면 못 막을 이유가 없었다.
다만 문제는 이렇게 막고만 있을 순 없다는 점이었다.
‘분명 완벽한 마제급 혼마가 아니라 충분히 싸워볼 만 하다. 하지만…… 싸워서 이긴다고 해도 내가 얻을 수 있는 보상은 그리 크지 않다.’
만약 이곳이 ‘신의 흔적’이 아니고 평범한 경계의 세상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마제급 혼마가 지닌 영혼의 구슬은 최소 천억의 값어치를 지닌 엄청난 물건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건에게 천억이란 돈은 그리 매력적인 보상이 아니었다.
이미 건은 천원에서 수많은 혼마를 잡으며 영혼의 조각과 구슬을 상당히 많이 모은 상태였다.
물론 그것들을 다 합쳐야 겨우 지금 눈앞에 있는 마제급 혼마 한 마리가 뱉어낼 하나의 영혼의 구슬 정도와 비슷한 수준이겠지만 건은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지금 건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자신의 영혼을 잡아당기고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였다.
건은 그 존재 때문에 이곳까지 온 것이었지 절대 혼마 사냥을 위해 여기에 온 게 아니었다.
‘빠져나가자!’
결국, 건은 결정을 내렸다.
그는 잡아도 크게 이득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 굳이 무리하면서까지 싸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문제는 빠져나가자고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점이었다.
상대는 마제급 혼마였다.
아무리 약간 뻥튀기가 들어간 등급이라고 해도 그 등급 자체를 무시할 순 없었다.
특히 지금 상황에서 공룡 혼마를 피해 도망치려면 약간의 피해는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놈을 속여야 한다!’
단순히 도망치는 걸로 공룡 혼마를 따돌릴 순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도망치다간 추격을 당하는 도중 또 다른 혼마를 만나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공룡 혼마를 속여서 자신에게서 관심이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결정을 내린 이상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파팟!
건은 일단 공룡 혼마의 성징을 좀 더 돋우기로 마음먹었다.
허공으로 뛰어오른 건은 곧장 오른손을 공룡 혼마를 향해 뻗었다.
번쩍!
그러자 그의 손에서 한 줄기의 섬광이 튀어나와 공룡 혼마의 몸을 꿰뚫었다.
확실히 공룡 혼마는 파천벽력섬을 막지 못했다.
워낙 덩치가 컸기 때문에 사실상 건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건의 공격이 완벽하게 성공했음에도 실질적으로 공룡 혼마가 입은 충격은 굉장히 미미했다.
이것은 굳이 비교하자면 인간이 바늘에 찔린 것과 비슷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적은 데미지였다.
파천벽력섬의 관통력이 대단히 강력해 공룡 혼마의 몸을 꿰뚫었다고 해도 공룡 혼마는 그걸 크게 개의치 않았다.
파천벽력섬이 만들어낸 구멍은 놈의 재생력이라면 불과 일 분도 되지도 않아 자연스럽게 회복될 상처였다.
그렇기에 당연히 공룡 혼마는 건의 공격을 무시했다. 만약 건의 공격이 공룡 혼마의 주요 부위, 예를 들면 눈과 같은 곳을 노렸다면 어떤 식으로라도 방어했겠지만, 그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할 수 있었다.
놈은 건이 공격은 무시하며 자신의 커다란 입으로 건을 씹어 먹으려고 움직였다.
크어어엉!
콰과과과광!
건은 재빨리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그런 공룡 혼마의 공격을 피했다.
그 와중에도 건은 계속 파천벽력섬을 뿌렸다.
번쩍, 번쩍!
그리고 공룡 혼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런 파천벽력섬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건을 공격했다. 건은 충분히 공룡 혼마의 주요 부위를 노릴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놈의 몸에만 파천벽력섬을 뿌렸다.
그렇게 계속 시간이 지나자 공룡 혼마의 몸에 구멍이 하나, 둘 늘어갔다.
인간은 특별한 부위를 찔리지 않는 이상 바늘에 찔린다고 해서 큰 데미지를 입지 않는다.
만약 인간을 순수하게 바늘로 찔러서만 죽이려면 진짜 엄청난 숫자를 찔러야 했다.
지금 건이 하는 행동이 딱 그랬다.
마치 바늘 한 자루로 인간의 몸을 찔러서 죽일 것처럼 끊임없이 공룡 혼마의 몸에 파천벽력섬을 뿌렸다.
꽈과과광!
그리고 공룡 혼마는 끊임없이 건을 잡아먹기 위해 마구 공격을 시도했다.
그 공격을 교묘하게 피하며 파천벽력섬을 뿌리는 건과 파천벽력섬을 맞으며 우직하게 돌진하는 공룡 혼마.
이 만나지 않는 평행선과 같은 싸움은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번쩍! 콰드드득!
공룡 혼마의 몸에 구멍 하나가 더 생겨났다.
이로써 공룡 혼마에 생긴 구멍의 누적 숫자는 대략 400개에 가까워졌다.
공룡 혼마의 몸에 있는 구멍들은 대략 60개 정도가 유지되며 생성과 회복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쯤 되자 공룡 혼마도 만연히 무시만 할 수 있지 않게 되었다.
처음엔 그냥 무시했지만 이젠 슬슬 짜증이 나고 있었다.
공룡 혼마는 진혼마가 아니었지만 그러하고 아예 지능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놈도 충분히 생각과 판단을 할 줄 알았다.
그런 놈에게 이 상황은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었다.
크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결국, 공룡 혼마는 결정을 내렸다.
더는 이 전투를 이대로 계속 끌고 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놈은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능력을 끌어올렸다.
콰아아아아!
다시 한 번 공룡 혼마의 입가에 마이너스 에너지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이번은 최초 건을 만났을 때 사용한 화염브레스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때 사용한 화염브레스는 말 그대로 마이너스 에너지를 모아 화염으로 바꾼 공격이었다면 지금 공격은 공룡 혼마 내부에 존재하는 염(炎)의 정(情)으로부터 겁화(劫火)의 힘을 끌어올려 만들어내는 공격이었다.
공룡 혼마는 이것을 멸화(滅火)라고 불렀다.
이 멸화는 공룡 혼마도 절대 자주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일단 몸속에 있는 염의 정에 일정 수준 이상의 기운이 쌓여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었기에 한 번 멸화를 사용하면 다음 멸화를 사용하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사용하지 않고 참았던 것이었는데 이제는 참을 수가 없었다.
츠리리리리리릿!
공룡 혼마의 입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염의 정과 마이너스 에너지.
그것은 곧 하나의 커다란 화염 덩어리로 변형되었다.
크어어어어어어어어어!
공룡 혼마의 입이 벌어진 순간 놈의 입에서 온 세상을 한순간에 태워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엄청난 화염이 쏟아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