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
더 소울(The Soul) - 수호마(守護魔) [2]
이번에도 역시 이것은 피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콰과과과과과광!
화염은 공룡 혼마를 중심으로 앞쪽으로 아주 커다란 부채꼴 모양으로 퍼지며 자신이 닿는 모든 영역을 폭발시켰다.
건은 당연히 그 화염과 폭발에 휘말렸다.
공룡 혼마는 화염이 건을 집어삼키는 걸 보고는 더욱 강하게 화염을 내뿜었다.
놈의 의도는 간단했다.
이번 공격으로 건을 완전히 태워버리려는 것이었다.
놈은 건이 보통 상대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멸화라면 상대가 누구라도 완벽하게 태워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만큼 멸화는 강력한 공격이었다.
실제로 멸화가 휩쓸고 지나간 지역은 모조리 폭발이 일어나며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재도 남기지 못하고 소멸되고 있었다.
이건 태워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지워버리는 수준이었다.
공룡 혼마는 결국 끝장을 내자는 생각으로 무려 10분 동안 멸화를 내뿜었다.
10분 동안 멸화를 내뿜었다는 것은 몸속에 있는 염의 정에 쌓여 있던 모든 기운을 사용했단 뜻이었다.
그게 다시 가득 차라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을 감안하면 공룡 혼마도 이번 한 방에 꽤 많은 걸 쏟아 부었다고 할 수 있었다.
고오오오오.
10분 동안 멸화가 휘몰아쳤던 넓은 지역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땅바닥까지 상당부분 소멸되며 멸화의 열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확실히 증명해주었다.
공룡 혼마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거대한 흔적을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크르르르르.
놈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작게 으르렁 거렸다.
혹시라도 건이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놈은 세밀하게 전방에 느껴지는 기운들을 체크했다.
하지만 놈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놈은 그렇게 주변에 존재하던 모든 기운이 완벽하게 소멸했다는 걸 확인했음에도 그 뒤로 10분이 넘는 시간동안 계속 주변을 살폈다.
녀석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생각보다 굉장히 꼼꼼했다.
크르릉.
꼼꼼하게 주변을 살폈는데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놈은 그때서야 진짜 만족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천천히 다른 방향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쿵쿵쿵.
놈의 임무는 아주 간단했다.
천본에 진입하는 모든 존재를 소멸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놈이 살아 있는 이유였다.
공룡 혼마가 사라지고 2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놈이 만들어놓은 거대한 멸화의 흔적에는 여전히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멸화의 흔적에서 뭔가 이상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드득, 드드드득.
멸화의 흔적 아래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진동.
그것은 곧장 멸화의 흔적 위쪽으로 솟아올랐고 결국 멸화의 흔적이 갈라지며 하나의 틈이 만들어졌다.
콰광!
그 순간 그 흔적에서 하나의 그림자가 솟아올랐다.
“컥…… 쿨럭, 쿨럭.”
틈에서 튀어나온 그림자는 당연히 건이었다.
그는 틈을 빠져나오자마자 거친 숨을 토해냈다.
“헉…… 헉…….”
힘겨운 표정을 짓고 있는 건. 그는 진심으로 괴로운 것 같았다.
‘무식한 놈…….’
건은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지려고 노력했다.
그는 공룡 혼마에게 자신이 소멸되었다는 확신을 심어주기위해 자신의 혼력을 모두 흩어버린 후 스스로 자신을 가사(假死) 상태로 만들었다.
건은 그렇게 무려 40분 동안 땅속 깊숙한 곳에서 그 상태로 버텼다.
처음엔 대충 20분 정도면 놈을 속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건 정말 큰 착각이었다.
덕분에 예상보다 두 배나 긴 시간동안 그 가사 상태를 유지하게 되었고 그 결과 까딱했으면 그대로 진짜 죽음에 이를 뻔 했었다.
‘후우, 진짜 아슬아슬 했다. 다시는 이런 무모한 짓은 하지 말아야지.’
제혼력이 0이 되어 사실상 혼력을 자신의 의지대로 마음껏 다룰 수 있게 된 건은 자신의 몸에 존재하는 모든 혼력을 흩어버려서 자신의 기운을 완벽하게 감출 수 있었다.
물론 소울러의 생명과도 같은 혼력을 흩어버리면 그 순간 육체가 견뎌야 하는 압박은 엄청나게 커졌지만 건은 환골탈태로 얻은 자신의 완벽한 육체를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전력을 다해 펼친 금강의와 묵룡갑으로 간신히 멸화의 기운을 막아낸 후 곧장 땅속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그런 후 멸화의 기운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모든 혼력을 흩어버리며 자신을 완벽하게 감추었다.
여기까지는 모든 게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공룡 혼마가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너무 꼼꼼했다는 게 문제였다.
덕분에 건은 생각보다 더 길게 혼력을 흩어버린 상태를 유지해야 했고 그 시간동안 그의 육체가 견뎌야 했던 압박은 너무나 클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 몸을 회복 하고 움직여야겠네.’
지금 그의 육체는 상당한 데미지를 입은 상태였다. 이대로 움직이다가 또 다시 다른 마제급 혼마라도 만난다면 진짜 끝장일 수 있었기 때문에 일단 몸을 회복하는 게 가장 급한 일이었다.
파드드득!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건과 떨어질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를 유지하며 꽁꽁 숨어 있던 백이 건을 향해 날아왔다.
백은 전투가 일어나자마자 건의 명령을 받고 최대한 멀리 떨어져 숨어 있었다.
백과 건이 같이 성장하면서 백이 건에게서 떨어질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도 늘어나 거의 4km정도는 떨어질 수 있게 되었었다.
그래서 백은 4km나 멀리 떨어져 꽁꽁 숨어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백은 그 멀리까지 전해진 멸화의 기운 때문에 크게 당황했었다.
그나마 백이 주작의 힘을 흡수했기 때문에 멸화의 기운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이지 아니었으면 자칫 소멸될 뻔한 했었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백은 거칠게 호흡하며 힘겨워하는 건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다. 놈은…… 확실히 다른 곳으로 간 거지?”
가사 상태에 빠져 있던 건은 당연히 공룡 혼마의 움직임 같은 것을 스스로 체크할 수 없었다.
그가 믿은 것은 백이었다.
아주 멀리 떨어져 꽁꽁 숨은 백이라면 공룡 혼마에게 걸릴 위험도 거의 없었고 건과 백은 서로 영혼이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백이 가사 상태에 빠진 건에게 의지를 전달해 그를 깨우는 것 역시 가능했다.
건도 만약 백이 없었다면 이번 금선탈각(金蟬脫殼)의 계책을 쓸 수 없었을 게 분명했다.
“네, 계획대로 놈을 완벽하게 속였어요.”
“그나마 다행이네.”
건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가 이렇게까지 해서 전투를 피한 이유는 공룡 혼마와 싸우면 설사 이긴다고 해도 피해가 너무 커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건이 입은 부상은 몇 시간 정도만 신경 쓰면 충분히 회복될 수 있는 부상이었지만 만약 공룡 혼마와 제대로 싸웠으면 최소 며칠에서 최대 일주일이 넘게 꼬박 회복에만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쩜 졌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기에 건은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이 금선탈각의 계책을 선택한 것이었다.
“일단 조금만 몸을 회복하고 이동하자.”
“네, 전 주변을 계속 살피고 있을게요.”
한 시간 만에 몸을 거의 회복한 건은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천본 안쪽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언제 공룡혼마가 또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빨리 그 지역을 벗어나는 게 좋았다.
그는 그렇게 천본 안쪽으로 계속 들어갔다.
천원과 천본은 또 달랐다.
천원도 충분히 힘겨울 정도로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의 농도가 짙었지만 천본은 그보다 몇 배는 더 짙었다.
그 얘긴 곧 이곳에 등장하는 혼마들은 천원에 등장하는 혼마들보다 더 강할 수밖에 없단 뜻이었다.
당연히 건은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인 것일까?
천본에 들어서마자 마제급 혼마와 마주쳤던 것과는 다르게 천본에 등장하는 혼마들은 모두 마왕급 혼마였다.
물론 천본의 마왕급 혼마들은 하나 같이 진짜 마왕급 혼마였기 때문에 천원에서 상대했던 어설픈 마왕급 혼마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지만 그래도 마제급 혼마였던 공룡 혼마보단 훨씬 상대하기가 수월했다.
특히 척준경의 힘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이제 광개토대제의 힘마저 거의 전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던 건에게는 아주 큰 도움이 되는 실전(實戰) 상대들이었다.
건은 천본에 존재하는 강력한 마왕급 혼마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꺾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와 함께 말도 안 되는 농도로 쌓여 있는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를 흑룡아를 통해 받아들이며 텅 비어있던 자신의 새로운 육체에 차근차근 혼력을 쌓아나갔다.
건은 천본의 중심에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자신의 영혼에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 속삭임은 계속 건을 더욱 강하게 잡아 당겼다.
하지만 건은 그 끌림을 꾹 참으며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갔다.
천본 지역은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바로 끝장날 수 있는 곳이었다.
건은 그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영혼의 끌림을 참으며 한 발자국씩 천천히 안쪽을 향해 이동했다.
* * * *
건이 천본의 중심을 향해 아주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사이 다른 소울러들은 어느새 천본 지역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소울러들은 어느새 아주 가까워져 있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유럽과 미국의 연합.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 일본의 연합이었다.
물론 그들의 연합이라고 해봤자 좀 더 수월하고 빠르게 길을 뚫기 위해 결성된 아주 기본적인 연합이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연합한 덕분에 그들은 생각보다 적은 피해로 생각보다 빠르게 천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만약 연합을 하지 않았다면 피해가 더 커졌을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도 천본에 도착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었다.
다만 워낙 얄팍한 서로의 이득 때문에 뭉친 연합이었기 때문에 언제라도 연합이 깨진다고 해서 이상할 게 없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최초 연합은 미국과 유럽이 먼저 했지만 곧장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이 연합을 하며 미국, 유럽 연합을 따라잡았다.
결국 천본에는 두 연합이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두 연합은 거리로만 따지면 대략 10km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워낙 서로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 경쟁하듯 천본 지역에 들어섰다.
그들이 연합을 결성한 목적은 결국 최후에는 서로 경쟁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단 최대한 빠르고 확실하게 1등급 영혼보물이 있는 곳에 도착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될 수 있는 한 가장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놈을 만났다.
크어어어어어엉!
두 연합을 막아선 두 마리의 초대형 혼마.
건의 앞으로 가로막았던 공룡모습을 한 마제급 혼마가 동시에 두 마리가 나타나 두 연합을 막은 것이었다.
당연히 두 연합은 갑자기 나타난 마제급 혼마 때문에 크게 당황했다.
종말의 괴수라고도 불리는 마제급 혼마는 아무리 연합을 결성한 상태라고 해도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왜 하필 우리 앞에 이런 놈이 나타난 것이냐고 한탄했다.
워낙 급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른 쪽에 있는 연합도 똑같은 혼마와 마주쳤다는 걸 알지 못했다.
사실 이 공룡 혼마는 흔히 말하는 유적의 수호마(守護魔)였다.
다른 유적과 달리 ‘신의 흔적’의 수호마는 천본에 침입자가 있을 때마다 그 즉시 탄생하게 되어 있었다.
건은 자신이 재수가 없어서 공룡 혼마를 만났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잘못 알고 있는 것이었다.
누구라도 천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이 수호마를 쓰러트려야 했다.
물론 건은 수호마를 완벽하게 속이고 안쪽으로 들어갔지만 그것 역시 수호마를 상대하는 하나의 방법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두 마리의 수호마와 마주친 두 연합은 건이 했던 것처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무조건 눈앞에 나타난 초대형 공룡 혼마를 쓰러트려야만 했다.
당연히 이것은 그들에게 아주 큰 위기였다.
특히 공룡 혼마는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데 아주 특화가 되어 있는 혼마였기에 두 연합의 피해는 더욱 커질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