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더 소울(The Soul) - 황제(黃帝) [2]
그것은 정확하게 흑제의 본체를 꿰뚫었다.
지금까지는 허무하게 허공만 갈랐던 건의 공격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그리고 그 결과도 매우 달랐다.
드드드득!
단 한 번의 공격 성공일 뿐이었는데 그 결과 완벽하게 유지되던 어둠이 마구 흔들렸다.
당연히 그렇게 되자 건은 흑제의 본체를 더욱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츠리릿!
이제 흑제의 본체가 드러난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건은 곧장 흑제의 본체를 향해 달려들며 흑룡아(대도)를 꺼내 들었다.
어둠 속에 숨어 있을 때까지만 해도 무적(無敵)의 존재처럼 보이던 흑제였지만 단 한 번의 공격 성공에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흑제의 약점이었다.
어둠의 영역이라는 너무나도 사기적인 능력을 가진 흑제였지만 대신 본체의 능력 자체는 굉장히 약했다.
콰드드드득!
건의 흑룡아(대도)가 휘둘러지자 어둠이 갈라졌다.
무너지기 시작한 어둠의 영역.
이것만으로도 흑제의 패배는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 * *
건은 흑제의 시련을 통과하고 당연히 연속해서 황제의 시련이 시작될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황제의 시련은 앞선 네 시련과는 조금 달랐다.
다른 시련들은 모두 건을 자신들의 공간으로 끌어들였는데 황제의 시련은 그런 게 없었다.
건은 최초 자신이 거대한 청동거울을 통과해 들어온 그 공간에 그대로 서 있었다.
‘뭐지? 황제의 시련은 왜 시작을 안 하는 거야?’
건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혹시 달라진 게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바뀐 건 하나도 없었다.
자신을 사정없이 짓누르는 엄청난 압력과 한없이 펼쳐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
이게 전부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건의 앞쪽에 변화가 일어났다.
스르르르륵.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바닥이 황금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더니 그곳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솟아올랐다.
대략 2.5m 정도의 상당히 커 보이는 키와 태양을 닮은 이마와 용뼈를 닮은 눈썹을 가진 특이한 외모…… 건은 당연히 그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황제.’
그랬다. 그는 치우천왕을 봉인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인 황제였다.
“놀랍군. 지금까지 그 어떤 천왕의 후예도 여기까지 오진 못했었는데…… 대단해.”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황제의 시련은 다른 시련들과는 조금 다른 건가?”
건은 황제를 바라보며 물었다.
“하하하, 다르다면 다를 수도 있고 같다면 같을 수도 있지.”
“하긴 생각해보니 그런 것은 별로 상관없겠군. 어차피 널 쓰러트려야 시련이 끝나는 것은 같을 거 아냐?”
건은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청제를 시작으로 백제, 적제, 흑제까지 모두 결국 놈들의 본체를 쓰러트리고 여기까지 온 건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눈앞의 황제를 쓰러트리면 이 지긋지긋한 오방이 시련을 끝낼 수 있다고 믿었다.
“크크크, 그 오만방자한 태도만큼은 천왕과 똑같군.”
황제는 재미있단 표정으로 건을 바라보았다.
“그럼 뭐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잖아?”
츠릿!
건은 언제라도 흑룡아를 꺼낼 수 있게 준비를 끝냈다.
“일단 말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것도 딱 천왕과 같군. 그런데 어디 그런 몸 상태로 날 제대로 상대할 수 있겠나?”
황제는 한 눈에 건의 몸 상태를 알아보고 있었다.
사실 건의 몸 상태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나마 청제와 백제 그리고 적제의 시련을 거쳤을 때는 어느 정도 괜찮은 몸 상태를 유지했었지만 흑제와의 전투에서 생각보다 훨씬 큰 데미지를 입은 상태였다.
그렇다 보니 건은 현재 평소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힘을 유지하고 있었다.
“당신…… 원래 적의 몸 상태까지 친절하게 생각해주고 그러는 사람이었어? 근데 그거 알아? 우리나라 속담에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는 소리가 있거든. 그러니까 그만 나불거리고 누가 더 길지 한 번 대보자고.”
츠리리리릿!
건은 흑룡아를 한 자루의 커다란 대검(大劍)으로 변형 시켰다.
그는 어차피 황제를 꺾어야 모든 게 끝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쓸데없는 대화는 생략하고 바로 전투를 시작하려는 것이었다.
‘아직 나에겐 최후의 한 수가 남아 있다.’
건이라고 해서 대책 없이 싸워만 보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직 한 가지 수를 남겨놓은 상태였다. 앞선 네 가지 시련을 겪으면서도 이 한 수는 꾹 참고 남겨 두었었다.
오방의 시련이란 것이 결국 연속해서 다섯 가지 시련을 견뎌내는 것이라면 마지막 순간에 가장 큰 고비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그 수를 아껴두었던 것이었다.
‘광개토대제의 마지막 네 번째 힘. 그것이라면 이 고비를 이겨낼 수 있다!’
건이 믿고 있는 것은 바로 삼족오의 인장 중 머리에 해당되는 천원일문(天元一門)의 힘이었다.
건은 그동안 수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그것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삼십 분. 그 안에 저 녀석을 쓰러트릴 수 있을까?’
건이 걱정하는 것은 아직은 자신이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그리 길지 않다는 점이었다.
‘일단은 좀 더 눈치를 보다가 사용해야겠군.’
대충 결정을 내린 건은 손에 들고 있는 흑룡아(대검)을 다시 한 번 고쳐 잡으며 천천히 황제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황제는 그 상황에도 여전히 제 자리에 가만히 서서 웃고만 있었다.
“이런…… 급한 성격까지 빼 닮았군.”
그 말과 함께 그는 오른손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그러자 건의 앞쪽 바닥에서 돌기둥이 치솟았다.
꽈과광!
당연히 건은 대검을 앞쪽으로 뻗으며 치솟은 돌기둥을 박살내며 계속해서 황제를 향해 다가갔다.
“황제의 힘이 겨우 이것뿐인가?”
황제를 도발하는 건.
하지만 황제의 표정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하하하하, 이런 노골적인 도발은 워낙 오랜만이라 반갑기까지 한 걸?”
황제는 계속 웃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오른손 손가락을 몇 번 더 까닥거렸다.
콰과과과과!
그러자 건의 주변에서 동시에 수십 개의 거대한 돌기둥이 치솟으며 그것들이 모조리 건을 향해 쓰러졌다,
콰르르르르르!
마치 건을 산채로 돌무덤 속에 매장이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건은 가볍게 대도를 몇 번 휘둘러 자신에게 쏟아지는 돌무더기들을 모두 먼지로 만들어버렸다.
꽈과과과과광! 푸스스스스.
돌기둥 몇 개로 건을 묻어버릴 순 없었다.
그럼에도 황제는 계속해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건의 주변에서 또다시 돌기둥이 솟아올랐다.
마치 밀려드는 파도처럼 돌기둥들은 끊임없이 솟아나 건을 향해 쏟아졌다.
꽈과과광! 꽈과과과과광!
건은 계속해서 그 돌기둥들을 박살냈다.
그는 황제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이런 돌기둥들로 자신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은 그 역시 알고 있을 텐데 왜 이런 의미 없는 짓을 하는지 이해가 잘 안되었다.
‘간이라도 보는 건가?’
흑룡아(대검)를 휘두르며 돌기둥들을 먼지로 만들던 건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됐건 이런 장난을 계속 받아주고 있을 순 없다.’
황제의 의도가 어떻건 간에 건은 이런 의미 없는 공격을 계속 받아주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하아압!”
건은 짧고 굵게 기합을 넣으며 힘을 집중시켰다.
콰과과과과과광!
그러자 건의 몸에서 강력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주변을 가득 매우고 있던 돌기둥을 모조리 먼지로 만들어버렸다.
츠츠츠츠츳.
건의 등 뒤로 솟아 오른 검은색 날개.
무신혼-파천황이 다시 한 번 발동되며 건에게서 강력한 혼력의 기세가 흘러나왔다.
“이따위 장난은 그만하고 제대로 해보자고.”
건은 황제를 똑바로 바라보며 얘기했다.
하지만 황제는 여전히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계속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대장군(大將軍)의 기세가 느껴지는군. 아니, 보통 대장군이 아닌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인 건가? 어쨌든 나쁘지 않아. 하지만…… 설마 그 정도로 날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까도 말했지만 길고 짧은 건 직접 대봐야 알지 않겠어?”
“크크크크, 때론 굳이 직접 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있는 법이다. 네가 그토록 진정 나와 싸우고 싶다면 어디 함 번 이 녀석을 쓰러트려 보아라.”
스으으윽.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황제는 오른손을 머리위로 들어올렸다.
우르르르르릉, 콰르르릉!
그러자 건의 머리 위쪽에 높은 허공에서 기괴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며 먹구름과 비슷하게 생긴 검은색 안개가 허공을 가득 매웠다.
“네가 이 녀석을 쓰러트린다면 그땐 내가 진심으로 널 상대해주마.”
콰과과광! 크르르르르르.
허공을 가득매운 검은색 안개 속에서 한 마리의 거대한 용이 머리를 내밀며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용의 몸길이는 거의 30m는 되어 보였고 네 개의 다리에 박쥐와 같은 날개가 있었다. 그리고 발에는 세 개의 발가락이 있었다.
이것은 바로 황제가 수족처럼 부렸다는 응룡(應龍)이었다.
크어어어엉!
응룡은 건을 향해 잔뜩 위협을 주듯 크게 울부짖으며 건의 앞에 착지했다.
쿠쿠쿵!
“주, 주인님! 저건 신수(神獸)에요.”
지금까지는 종용히 건의 옆구리에 있는 작은 가방에 숨어 있던 백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건을 향해 중얼거렸다.
당연히 백은 응룡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신수는 영수들의 정점에 있는 존재였다.
신수의 힘은 대략 마왕급 혼마와 비슷했다. 하지만 지니고 있는 능력들이 워낙 특별했기 때문에 단순히 마왕급 혼마와 같다고 생각하면 안됐다.
“혹시 저 녀석의 능력이 뭔지 알 수 있어?”
건은 백을 향해 작게 속삭이듯 물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단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 굉장히 흥분한 상태인 것 같아요.”
백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응룡은 곧장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은 당장에라도 건을 통째로 씹어 먹어 버릴 것처럼 입을 크게 벌리며 건을 향해 달려들었다.
꽈과광!
건은 가볍게 응룡의 공격을 피하며 흑룡아(대검)을 몇 번 휘둘렀다.
그러자 흑룡아(대검)에서 몇 줄기의 반월 모양을 한 강기가 튀어나왔다,
‘무신혼-월영참’이었다.
쩌저정, 쩌저저정!
하지만 역시나 월영참은 응룡의 비늘을 뚫지 못했다.
응룡의 몸을 뒤덮고 있는 용린(龍鱗)은 그 자체로 아주 뛰어난 방어구였다.
‘어설픈 공격은 아예 통하지도 않는다는 뜻이군.’
건은 월영참을 통해 응룡의 방어 능력을 확실히 확인했다.
응룡은 건이 자신의 공격을 계속 요리저리 피하자 뭔가 굉장히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곧장 건을 향해 자신의 커다란 입을 벌렸다.
건은 응룡이 자신을 향해 입을 벌리자마자 뭔가 특별한 공격이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런 특별한 공격을 어설프게 피하려고 했다간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건은 곧장 그 공격을 막을 준비를 했다.
바로 그 순간 커다랗게 벌어진 응룡의 입에서 엄청난 양의 바람이 쏟아져 나왔다.
고오오오오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
그것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세상을 일순간에 쓸어버릴 것 같은 초강력 태풍(颱風)을 최대한 압축시켜놓은 것 같은 그런 것이었다.
당연히 건은 그 엄청난 태풍에 휘말렸다.
이것이 바로 응룡이 가진 특별한 힘이었다.
비와 바람의 힘을 이용해 엄청난 위력의 폭풍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응룡.
과거 응룡은 이 힘을 이용해 황제의 뜻을 거역한 이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곤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