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133화 (132/175)

# 133

더 소울(The Soul) - 치우천왕 [2]

“허억!”

순간 건은 매우 놀라며 비틀거렸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황제는 뭔가 만족한 표정으로 건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그게…… 무슨 뜻이냐?”

건은 불멸천기를 이용해 빠르게 엉망이 되어 있던 몸을 회복시키며 황제를 향해 물었다.

“뭐긴, 네가 오방의 시련을 모두 통과했다는 뜻이지.”

황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하지만 대답을 듣고 있던 건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오방의 시련을 통과했다고? 널 쓰러트리지도 않았는데?”

“나? 네가 날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아? 치우의 힘을 얻었으면 모를까…… 지금의 너는 날 쓰러트리지 못한다. 애초에 오방의 시련은 통과하라고 만들어놓은 시련이 아니야. 절대 깨어지지 않는 영원불멸의 봉인(封印). 그게 바로 오방의 시련이다.”

“그런데 왜 나에겐 그걸 통과했다고 말하는 거지? 네 말대로라면 난 오방의 시련을 통과하지 못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맞아. 원래대로라면 넌 오방의 시련을 통과하지 못해야 해. 하지만…… 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오방의 시련을 통과하게 될 거야.”

“왜 그렇게 되는 건데?”

“왜냐고? 내가 지겨워졌거든. 처음엔 건방진 치우 녀석이 우리 일족(一族)을 무시하고 날뛰는 게 짜증 나서 시작한 일이었다. 영혼석과의 계약 때문에 그 빌어먹을 녀석을 영원히 소멸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놈을 봉인하는 것뿐이었지. 그런데…… 그 봉인을 완성하려면 결국 우리 일족을 대표하는 다섯 제왕(帝王)들이 모두 나서야 했어. 천하의 치우라고 해도 우리 다섯이 만든 함정과 봉인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지. 결국, 그렇게 우리는 치우를 봉인했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치우 녀석은 그 상황에서도 자신이 가진 힘의 일부분을 봉인 밖으로 내보내더군. 네가 지니고 있는 그 힘이 아마 치우로부터 전해진 힘일 거다. 생각해봐. 우리는 일족에게 우리가 가진 힘을 손톱만큼도 전해지 못했는데 녀석은 우리의 봉인을 뚫고 대놓고 자신의 힘을 세상 밖으로 내보냈단 말이야. 이게 얼마나 짜증 나는 일인지 알아? 진짜 지금도 그것만 생각하면 이가 갈려. 어쨌든 그 뒤로는 그 녀석도 더는 날뛰지 못하더군. 그렇게 지금까지 많은 시간이 지났어.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 왜 우리는 그 오랜 세월 동안 이 봉인을 유지하고 있던 걸까? 정작 치우는 전부는 아닐지라도 지닌 힘의 일부분을 세상 밖으로 빼돌렸는데…… 그 순간 난 깨달을 수 있었지. 오방의 시련이라 이름 붙인 이 완벽한 봉인은 우리가 치우를 봉인하고 있던 게 아니라 치우가 우리를 봉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건은 황제의 긴 얘기를 들으며 대충 황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포기하려는 건가?”

“포기? 아니지. 이건 포기가 아니라 해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날 묶고 있던 지긋지긋한 족쇄를 풀어버리는 것이지.”

“뭔가 홀가분한 표정이군.”

“누가 감히 이 기분을 알까? 크크크크, 너무 얘길 길게 했군. 인제 그만 헤어질 시간이다.”

스르르르르.

그 말이 끝나자마자 황제의 몸은 황금색 가루가 되며 흩날렸다.

“이걸로 오방의 시련은 모두 끝났다. 이제 너는 천왕을 만나게 될 것이다.”

스스스스.

이젠 거의 사라진 황제.

그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남기며 완전히 사라졌다.

“치우에게 전해라. 이젠 밖의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고…….”

콰과과과과.

마지막 말을 남기고 황제가 사라지자 건이 서 있던 공간 자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건은 조용히 그 공간에 서 있었다.

공간은 무너져 내렸지만 마치 건은 그 공간과는 별개의 존재인 것처럼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다.

결국, 끝없이 펼쳐져 있던 하얀 공간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그 순간.

드디어 건이 기다리던 만남이 이루어졌다.

번쩍!!

세상을 가득 메우는 빛과 함께 느껴지는 거대한 존재감.

건은 그 존재감의 주인공이 누군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치우천왕.’

건을 이곳으로 끌어당긴 장본인…… 황제의 말처럼 건이 가지고 있는 힘은 아주 오래전 치우가 세상 밖으로 내보낸 힘이었다.

그렇기에 그 힘은 당연히 치우천왕의 본체가 있는 이곳으로 건을 안내할 수밖에 없었다.

[멍청한 오방대제(五方大帝)놈들이 드디어 깨달았나 보군.]

영혼을 울리는 목소리.

건은 조용히 그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여러 개의 팔과 도깨비를 닮은 것 같은 뿔이 달린 머리 그리고 강철로 만들어진 몸을 지닌 거대한 거인이 서 있었다.

건은 그를 보는 순간 오방대제가 왜 그를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봉인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하늘의 왕. 이게 바로 진짜 하늘의 왕이구나!’

건은 치우란 이름에 붙어 있는 천왕이란 단어의 의미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오방의 시련을 뚫고 여기까지 온 연자(緣者)여…… 넌 왜 네가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인지 아느냐?]

치우천왕은 건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건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영혼의 끌림 때문에 이곳까지 오긴 했지만, 그 뒤에 어떤 인연들이 얽혀 있는 것인지는 전혀 몰랐다.

[삼족오의 인장을 지닌 네가 여기까지 온 것과 그 덕분에 오방대제들이 봉인을 풀고 다시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간 것까지 이 모든 것은 거대한 운명의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운명의 흐름이요?”

[그렇다. 이것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흐름이다. 난 그 운명의 흐름에 따라 오천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너를 기다렸다.]

“저를 기다렸다고요?”

[삼족오의 인장을 만든 것은 나다. 오방대제들이 제각각 오방의 인장을 만들고 저 멀리 바다 건너에 사는 풍신(風神)이 태풍의 인장을 만든 것처럼 나도 인장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삼족오의 인장이었다. 삼족오의 인장을 지녔던 첫 번째 주인이 바로 나다.]

건은 치우천왕의 말을 통해 드디어 삼족오의 인장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장이 그렇게 만들어졌군요.”

건은 이제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장들이 어떤 식으로 탄생한 것이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초월자들은 아주 오랜 세월…… 이 세상의 절대자로 군림했지만, 그들은 완벽한 신(神)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신(神)들의 시대 이후에 찾아왔던 초월(超越)의 시대가 막을 내리려 한다는 걸 깨달은 초월자들은 과거 신들의 시대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초월자들에게 세상을 넘겨주고 미련 없이 이 세상을 떠났던 진짜 신들과는 달리 욕심이 많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억지로라도 다음 시대에 계속 존재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들은 한 가지 중요한 선택을 했다.]

건은 지금 치우천왕이 하는 얘기가 소울러의 탄생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신들의 시대니 초월의 시대 같은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초월자들이 했다는 선택이 뭔지 예상이 되었다.

[초월자들은 이제는 이 세상을 떠난 신들이 남긴 최후의 유산인 ‘영혼석(靈魂石)’과 거래를 했다. 그들이 한 거래는 간단했다. 초월의 시대와 함께 사라져야 할 자신들의 영혼을 영원히 남겨주는 조건으로 영혼석에게 자신들의 영혼을 넘겨주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신들이 사라진 이후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던 수많은 영혼석은 당연히 그 거래에 응했다. 거래에 응하지 않으면 영혼석들 역시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신들이 남긴 마지막 유산인 영혼석과 초월자들의 거래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결국 그 거래는 초월의 시대가 끝나고 인간의 시대가 시작된 이후에도 계속 초월자들의 영혼과 영혼석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아!!!”

건은 자신의 예상대로 치우천왕이 소울러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얘기하자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네가 속해 있는 그 신비로운 세상이 바로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초월자가 남긴 인장은 그들이 영혼의 힘과는 별개로 세상에 남겨놓은 일종의 흔적이다. 초월자들은 반은 신이었지만 나머지 반은 인간이었기 때문에 이처럼 미련과 욕심이 많았다. 물론 모든 인장이 미련과 욕심 때문에 만들어진 건 아니다. 나만 해도 삼족오의 인장을 만든 이유는 단순히 미련과 욕심…… 이런 사소한 감정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 삼족오의 인장이 만들어진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가요?”

[삼족오의 인장은 내가 읽은 천기(天機) 때문에 만들어졌다. 난 천기를 읽고 나와 연결된 운명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운명의 흐름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삼족오의 인장을 만들었다. 그렇게 나에게서 시작된 인장은 고담덕을 거친 후 너에게 전해졌다. 그 결과 삼족오의 인장에 존재하는 세 가지 운명의 끈이 모두 하나로 묶일 수 있게 되었다.]

“세 가지 운명의 끈이요?”

[내가 만든 삼족오의 인장을 다른 수많은 인장과 비교하지 마라. 이것은 오천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세 가지 특별한 운명의 끈을 하나로 연결해 주는 일종의 고리다. 그리고 그렇게 세 가지 특별한 운명의 끈이 하나로 연결되어 서로 꼬아지는 순간 드디어 삼족오의 인장이 완성되는 것이다. 즉, 너의 인장은 지금 이 순간 나를 만나며 완벽한 인장이 되었다는 뜻이다.]

건은 모든 게 이해되진 않았지만 어쨌든 자신이 지닌 삼족오의 인장이 치우천왕과 광개토대제 그리고 자신이 하나로 연결되는 순간 하나의 완벽한 인장이 되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세 운명 끈을 꼬아 하나의 운명의 끈으로 만든 이 순간 인장은 누구도 바꿀 수 없다는 운명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된다. 내가 삼족오의 인장을 만든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너에게 운명을 거스를 힘을 주기 위해서다.]

“운명을 거스를 힘이요? 왜 저에게 그런 엄청난 힘을 주시는 거죠?”

[언젠간 알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넌 네가 가진 그 힘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깨닫게 될 것이다.]

치우천왕은 건에게 모든 걸 다 알려주진 않았다.

“뭔가 뜬구름을 잡는 기분이네요.”

[굳이 이 모든 사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당장은 그저 네가 얻은 것들을 완벽하게 너의 것으로 만들려고만 하면 된다. 그게 끝이다. 어차피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고 있는 이상 넌 언젠간 네가 뭘 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근데 도대체 삼족오의 인장이 완성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제가 가진 삼족오의 인장은 미완성이었던 건가요?”

건은 머리아픈 운명 쪽 얘긴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하늘(天)이 되고 대제(大帝)가 땅(地)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가 그곳에 인간(人)으로서 존재하게 되면 천지인(天地人)의 힘이 하나가 되어 삼위일체(三位一體)가 되는 순간 삼족오는 천지간에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된다. 물론 그 힘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른다. 또한, 네가 그 힘을 언제 깨닫게 될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네가 만약 그 힘을 얻게 되면 넌 확실히 운명을 거스를 수 있을 것이다.]

“이것도 결국 뜬구름을 잡는 거네요.”

[어차피 지금 이 모든 걸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해하려고 하지 마라. 그냥 받아들여라. 어차피 시간이 흐르고 운명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너도 결국 하나씩 이해가 되기 시작할 것이다.]

“저에게 선택할 기회가 있는 것이었나요?”

[당연히 있다. 애초에 삼족오의 인장은 네가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다면 완성이 될 수 없다. 만약 네가 거부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운명의 흐름인 것이다. 난 너에게 강요를 할 생각이 전혀 없다.]

“……뭐, 거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건은 이번에도 솔직하게 얘기했다.

진심으로 그는 거부할 생각이 없었다. 삼족오의 인장은 그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존재였다. 그것을 완성할 수 있다는데 그걸 거부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럼 묻겠다. 나 치우는 고대로부터 전해진 영혼석의 맹약을 통해 너와 하나가 되고 싶다. 받아들이겠는가?]

지이이이잉!

치우의 물음은 건의 영혼 속 깊은 곳으로 파고들며 하나의 거대한 파장을 만들었다.

건은 이미 두 번의 맹약을 맺은 경험이 있지만, 이토록 강렬한 느낌은 처음이었다.

“제 이름은 백건. 저도 당신과 맹약을 원합니다.”

건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백건, 이제부터 너와 나는…….”

번쩍!

빛의 폭발과 함께 들려오는 치우천왕의 마지막 한 마디.

“하나다!”

이 한 마디를 끝으로 드디어 건은 삼족오의 인장을 완벽하게 완성하는 마지막 세 번째 맹약을 맺을 수 있었다.

천지인을 대표하는 세 운명이 하나로 뭉쳐지며 완성되는 삼족오의 인장.

건은 모르고 있었지만, 건의 어깨에 존재하던 삼족오의 문양은 아주 또렷하게 바뀌며 그의 등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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