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134화 (133/175)

# 134

더 소울(The Soul) - 치우의 보고(寶庫) [1]

@ 치우의 보고(寶庫).

건이 치우의 보고 안에서 오방의 시련을 겪는 동안 다른 소울러들은 계속해서 천본의 안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종말의 괴수를 쓰러트린 이후에는 그 정도 수준의 괴물이 등장하진 않았지만, 꾸준히 등장하는 마왕급 혼마만 해도 절대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더욱이 그들은 천본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서로를 엄청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궁극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은 천본의 가장 안쪽 지역인 천원에 존재하는 1등급 영혼보물을 독점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서로 필요해서 뭉친 연합 안에서도 조금씩 불협화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편 건을 찾아 천본 지역으로 향했던 철민과 연희는 마침 종말의 괴수를 만나 싸우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소울러 연합을 발견하고 그들의 뒤를 따라 은밀히 천본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만약 그들을 따라오지 않고 따로 왔다면 그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종말의 괴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되었다면 아무리 철민과 연희라고 해도 절대 살아서 천본 지역에 들어올 수가 없었을 게 분명했다.

철민과 연희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음에도 정말 재수가 좋아 그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는데 그다음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 쪽 소울러들이 자신들이 뚫어 놓은 안전한 경로를 따라 천본 지역을 탐색하고 있는 철민과 연희를 발견한 것이었다.

당연히 미국과 유럽 연합은 철민과 연희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그들은 철민과 연희를 제압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철민과 연희에게 생각보다 대단히 큰 피해를 보았다. 그 때문에 미국과 유렵 쪽 소울러들은 더욱 두 사람을 가만 놔둘 수가 없었다.

그들은 두 사람이 다른 소울러 연합, 특히 한국의 소울러 연합 소속이라고 판단하고 두 사람을 제압한 후 배후를 캐내려고 했다.

하지만 소울러 연합 같은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두 사람에게서 캐낼 수 있는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되자 미국과 유럽 쪽 소울러들은 더욱 독이 올라 두 사람을 심하게 다루었다.

건을 찾기 위해 무리해서 천본에 들어왔던 두 사람은 졸지에 인질이 되어 버렸다.

두 사람의 능력이 평범함을 한참 뛰어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미국과 유럽의 소울러 연합을 이길 순 없었다.

철민과 연희는 엄청난 저력을 보여주며 유럽의 소울마스터 두 명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히고 소울 머신으로 무장은 미국의 S-알파의 정예요원들 중 네 명을 전투불능상태로 만들었지만 결국 머릿수에 밀려 제압당할 수밖에 없었다.

과정이 어떻건 지금 철민과 연희는 최악의 상황에 빠진 게 확실해 보였다.

* * *

“허억.”

건은 기나긴 꿈에서 깨어나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는 치우와 하나가 되면 삼족오의 인장을 완성한 그 순간 치우가 살아온 기나긴 세월은 물론이고 광개토대제의 삶에 이어 심지어 대무신 척준경의 삶까지 모조리 직접 경험했다.

시간으로 환산해도 대략 몇 천 년이 넘는 긴 세월이었다.

건은 이 긴 세월을 단 한 시간 만에 모두 경험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그가 꾼 꿈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괴리감 덕분이었다.

“……내가 지금 살아있긴 한 건가?”

너무나 생생한 꿈이었다.

꿈속에서 건은 치우가 되었고 다시 광개토대제가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척준경이 되기도 했다.

그들이 인생을 생생하게 느끼고 경험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그는 굉장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누구인가? 치우인가? 아니면 고담덕? 그것도 아니라면 척준경?’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이 생생하게 경험한 세 절대자의 삶이 마치 오래된 추억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자 그는 점점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는 나다. 치우도 고담덕도 척준경도 아닌 백건일 뿐이다.’

혼란스러움을 정리한 건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름…… 즐거운 경험이었어.”

건은 작게 중얼거리며 웃었다.

치우와 광개토대제 그리고 척준경의 삶을 고스란히 다시 살아본 경험은 그에게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까지는 막연히 맹약으로만 묶여 있던 관계였다.

하지만 이제는 맹약이라는 연결고리가 사라지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미 치우와 광개토대제 그리고 척준경은 건과 영혼단위에서 완벽하게 하나가 되어 있었다.

이 얘긴 결국 건은 통혼이라는 과정조차도 필요 없는 단계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통혼, 강림, 승천 같은 일반적인 소울러가 영혼의 힘을 사용하는 방법들은 건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건은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 해당 영혼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굳이 억지로 예를 들라고 하면 언제나 승천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면 되었다.

정확하게 따지면 승천의 상태도 훌쩍 초월한 상태였지만 어쨌든 이제 건은 완벽해진 삼족오의 인장 덕분에 치우와 광개토대제 그리고 척준경의 영혼을 자신의 영혼과 하나로 만들 수 있었고 그 결과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울러가 될 수 있었다.

영혼석의 맹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완전무결한 소울러.

이런 존재는 과거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다시 나타날 수가 없었다. 한 마디로 건은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 것이었다.

“이거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얻었더니 적응이 좀 힘드네.”

건은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특히나 이번에 새롭게 얻은 치우의 힘 같은 경우는 다른 영혼의 힘들과 달리 하나씩 각성한 게 아니라 아예 한 번에 모든 힘을 다 각성했기 때문에 한 번쯤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우선 치우의 힘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치우의 보고’인 건가?”

스윽.

건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그의 앞에 최초 그가 천원에 들어와 들어갔던 거대한 청동거울이 나타났다.

이 청동거울이 바로 치우의 보고였다.

치우의 보고는 일종의 아공간과 같은 곳이었다.

오로지 건만을 위한 공간.

건은 언제 어디에서도 이 치우의 보고를 열고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치우의 보고는 총 아홉 개 공간으로 구분되었는데 공간의 크기는 모두 달랐다.

열여섯 개의 공간을 차곡차곡 쌓으면 마치 피라미드와 같은 모양이 되었는데 그 중 가장 큰 공간이었던 제일 밑에 있는 공간의 크기는 대략 10000평에 가까운 크기였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큰 공간은 5000평. 그 뒤는 2500평으로 계속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렇게 가장 작은 아홉 번째 공간까지 오면 아홉 번째 공간은 대략 20평 정도가 되었다.

아홉 개의 공간의 넓이는 모두 달랐지만 높이는 모두 20m로 같았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넓이가 좁아질수록 현실과 공간의 시간 괴리가 크게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가장 큰 공간인 10000평의 공간은 현실과의 시간 괴리가 1:1이었기 때문에 차이가 전혀 없었다.

즉, 이 공간에서 1분이 지나면 현실에서도 1분이 지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다음 공간으로 가면 시간 괴리가 달라졌다.

5000평의 공간은 시간 괴리가 대략 1.5:1 정도였다.

이 공간에서 1분 30초를 지내면 현실에서 1분이 지났다.

15분을 지냈다면 10분을 지낸 것이 되고 두 시간을 지냈다면 대략 1시간 삼십 분이 조금 안 되는 지낸 게 되었다.

그다음으로 작은 공간에서는 시간 괴리가 2:1이 되었고 또 그다음으로 작은 공간에서는 2.5:1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0.5씩 시간 괴리가 지나다가 마지막 아홉 번째 공간이 되면 4:1이 아닌 10:1로 훌쩍 시간 괴리가 뛰어올랐다.

여덟 번째 방은 3.5:1이었지만 아홉 번째 방은 10:1이 되는 것이었다.

아홉 번째 방에서 10분을 지내도 현실에서는 1분밖에 흐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이게 별거 아닌 것으로 보여도 단위를 조금 키워서 열흘을 지냈다고 치면 현실에서는 겨우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게 되었다.

무려 9일이란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걸 100일 단위로 늘리면 무려 90일의 시간을 벌 수도 있었다.

이처럼 치우의 보고는 단순한 아공간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완전히 비튼 획기적인 공간이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온갖 진귀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치우의 보고에 실제로는 단, 33개의 영혼보물만 들어 있다는 점이었다.

건은 치우의 보고가 비어 있는 이유는 치우의 삶을 경험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치우는 자신의 보고를 가득 채우고 있던 영혼보물들을 이용해 이 특별한 신의 흔적을 만들었다.

보통은 신의 흔적이라 불리는 것들도 기본 틀 자체는 유적인지라 가장 핵심이 되는 영혼보물의 주인이 결정되면 천천히 붕괴하며 10시간 안에 완전히 사라지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치우가 만든 이 신의 흔적은 좀 달랐다.

치우는 엄청난 숫자의 영혼보물들을 신의 흔적 여기저기에 뿌려놓음으로써 설사 핵심이 되는 영혼보물이 사라지더라도 최소 한 달 이상은 버틸 수 있게 하여놓았다.

물론 치우는 가지고 있던 영혼보물 중 가장 값어치 있는 33가지의 영혼보물을 선별해 그것들은 치우의 보고에 그대로 놔두었다.

그 33가지의 영혼보물은 밖에 뿌려진 보물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기 때문에 건은 치우의 보고에서 사라진 수백, 수천 개의 영혼보물을 별로 아까워하지 않았다.

건 앞에 소환된 청동거울은 최대 가로, 세로 백 미터까지 크기를 키울 수 있었다. 그리고 최소 가로, 세로 이십 센티미터까지 크기를 줄일 수도 있었다.

한 마디로 건이 원하는 대로 청동거울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젠 고시원에서 나와도 되겠네.’

치우의 보고가 가진 힘은 무궁무진했지만 그럼에도 건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집값이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아 있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집을 사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어찌 보면 굉장히 현실적인 생각이었지만 치우의 보고의 진정한 가치는 절대 공짜 집에 있지 않았다.

‘풍백(風伯)과 우사(雨師) 그리고 천부경…… 아직 정리할 게 많이 남아 있지만, 일단은 몸을 추스르고 연희누나랑 사장님을 먼저 찾아보자.’

건은 눈앞에 있던 청동거울을 작은 문의 크기만큼 줄인 후 천천히 그 안으로 들어갔다.

건이 청동거울로 들어가자마자 거울은 곧장 사라져버렸다.

이처럼 건은 자기 뜻대로 청동거울을 만들거나 사라지게 할 수 있었다. 당연히 건이 거울 속의 공간으로 들어간 후 거울이 사라져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밖으로 나올 땐 건이 다시 청동 거울을 만들면 그만이었다.

물론 나오는 출구는 최초 들어간 입구가 생성되었던 곳에 다시 만들어지게 되어 있었다.

바로 이 입구이자 출구인 청동거울이 치우의 보고의 모든 곳과 연결되는 가장 기본적인 통로였다.

하지만 건은 이러한 기본적인 출구 말고도 아홉 개의 공간과 개별적으로 이어진 아홉 개의 출구를 원하는 곳에 만들 수 있었다. 그것들은 오로지 나가는 것만 가능한 통로였다. 대신 한 지점을 미리 지정해 놓으면 입구의 위치와는 전혀 상관없이 무조건 그 지점으로 나갈 수 있었다.

이것을 이용하면 아주 먼 거리를 단번에 이동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이처럼 치우의 보고는 정말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어쨌든 지금 그가 들어가는 공간은 아홉 개의 공간 중 가장 크기가 작은 공간이었다.

건이 ‘S룸(Room)’이라 이름 붙인 그곳은 앞으로 마치 건의 집과 같은 공간이 될 것 같았다.

아직 개별적인 출구가 만들어져 있지 않았지만 아마도 S룸의 출구는 카페 헤븐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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