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더 소울(The Soul) - 치우의 보고(寶庫) [2]
* * * *
건이 지친 몸을 회복하기 위해 S룸에 들어가 있는 사이 다른 소울러들은 거침없이 천본의 중심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
신의 흔적을 지탱하고 있을 1등급 영혼보물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그 1등급 영혼보물은 이미 주인을 찾은 상태였다.
당연히 그들은 천본의 중심에 와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그걸 전혀 알지 못하는 그들은 휴식시간은 고사하고 잠자는 시간까지 대폭 줄여가며 빠르게 천본의 중심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원래는 미국과 유렵 연합은 러시아, 중국, 일본의 연합과 거의 비슷한 곳에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발목을 잡혀 이제는 중국, 러시아, 일본 연합에 상당히 뒤처져 있었다.
당연히 그들의 발목을 잡은 장본인은 철민과 연희였다.
두 사람은 무려 1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미국과 유럽 연합에게 격렬히 저항했다.
미국과 유럽 연합은 설마 그 두 사람을 제압하는데 그렇게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었다.
하지만 금강철벽 강철민과 얼음여왕 이연희의 저력은 그들의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고 그 때문에 미국과 유럽 연합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아직도 알아낸 게 없단 말이야?”
아담은 잔뜩 짜증이 난 표정으로 콜리를 향해 되물었다.
“죄송합니다. 아무리 심문을 해도 똑같은 말만 반복할 뿐입니다. 본격적으로 독하게 손을 써볼까요?”
콜리는 조심스럽게 아담을 향해 물었다.
“으음…… 그건 안 된다. 이곳이 미국이라면 상관없겠지만 결국 이곳은 한국이다. 한국의 소울러들도 바보는 아니다. 아마 그들은 이미 우리가 저 두 사람을 제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 저들을 고문이라도 한다면…… 아무리 우리가 미국과 유럽연합의 비호를 받고 있다고 해도 무사히 한국 땅을 빠져나가는 건 쉽지 않다.”
아담은 마음 같아서는 정신계열 능력을 지닌 소울러를 데려다가 두 사람의 기억을 샅샅이 뒤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에게 철민과 연희의 기억을 뒤질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정신계열 능력을 지닌 소울러는 없었다.
특히 철민은 정신계열 능력으로 소울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소울러가 오더라도 기억을 읽는 게 쉽지 않을 정도로 굉장한 정신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철민에게 금강철벽이란 별호가 붙어 있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단 고문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은 배제하고 이해가 되는 수준 안에서 최대한 거칠게 다뤄라. 어차피 그 정도는 우리도 충분히 할 말이 있으니 문제가 될 게 없다.”
아담은 철민과 연희가 자신들을 감시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는 거칠게 다뤄도 나중에 한국의 소울러 연합들이 반발해도 할 말이 있다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구속구(拘束具)는 철저히 관리해라. 특히 강철민 같은 경우는 최소 일곱 개의 구속구는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
구속구는 영혼의 조각을 이용해 만든 혼력억제장치였다.
미국은 영혼과학의 선봉장답게 가장 뛰어난 성능을 지닌 구속구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담은 강철민에게 무려 7개의 구속구를 채워놓은 상태였다.
사실 소울마스터를 구속구를 제압해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울마스터의 혼력이 워낙 크고 강력했기 때문에 구속구의 힘이 너무나 금방 소진되었다.
그래서 아담은 꾸준히 구속구의 에너지원인 영혼의 조각을 교체하며 계속 강철민을 제압해두고 있었다.
“그건 저도 가장 신경 써서 관리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강철민 쪽은 아무리 애를 써도 정보를 알아내기가 힘들 테니 얼음여왕 쪽을 집중적으로 공략해라. 한국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알아야 곧 있을 쟁탈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아담이 이렇게까지 강철민과 이연희에게 집중하는 것은 바로 천본의 중심에 도착한 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구보다 정확하게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대로 미국과 유럽 그리고 중국, 러시아, 일본이 천본의 중심에 도착하면 무조건 연합이 깨어지며 서로 1등급 영혼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게 될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 상황이 되면 오히려 가장 중요해지는 이들은 한국의 소울러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한국의 소울러들은 신의 흔적 전역에 흩어져 각자의 이득을 챙기기 바빴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그리고 러시아, 중국, 일본이 천본의 중심에 근접한 지금은 그들도 뭔가 다른 움직임을 보일 게 분명했다.
아담은 철민과 연희가 자신들을 뒤따르며 감시한 이유도 그와 일맥상통하는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한국의 의도를 읽을 수만 있다면 최후의 쟁탈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모든 예상은 아담의 착각일 뿐이었다.
애초에 철민과 연희가 그들을 뒤따른 목적 자체가 전혀 다른 것이었기 때문에 아담의 예상은 아주 크게 빗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예 틀린 것은 또 아니었다.
아담의 예상대로 분명 한국의 소울러들 중 일부는 연합을 맺고 천본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철민과 연희는 그들과 정말 아무런 연결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결국, 아담의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았지만, 전혀 엉뚱한 연결점을 만들어 버리는 바람에 모든 게 삽질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아담이 여전히 자신이 삽질하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결과 그는 어마어마한 폭탄을 품에 품고도 그걸 전혀 모르고 오히려 폭탄을 계속 자극만 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말 모르고 있었다.
그 폭탄이 터지는 순간…… 얼마나 무시무시한 폭발이 자신들을 집어삼킬지 그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 * * *
츠츠츳!
사라졌던 청동거울이 다시 나타났다.
물론 그 크기는 세로 2m에 가로 1m 정도로 별로 크지 않았다.
거울이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그 거울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스르륵.
당연히 그는 건이었다.
그는 S룸에서 꼬박 3일을 있었지만 정작 현실에선 겨우 7시간 정도만 흘러 있었다.
건은 S룸에서 3일을 지내면서 자신의 몸 상태를 완벽하게 회복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 안에서 새롭게 얻은 치우의 힘도 모조리 정리하고 나오고 싶었지만, 일단은 한시라도 빨리 연희와 철민을 찾고 싶은 생각에 다시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치우의 힘을 얻고 난 후에 건은 이상한 감(感)이 하나 생겼는데 그 감이 자꾸 빨리 연희와 철민을 찾아보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그동안 너무 내 생각만 하느냐고 날 찾고 있을 두 사람을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이건 건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동안은 그는 영혼 자체가 치우의 영향으로 모든 걸 제쳐놓고 치우를 향해 전진하는 것만 생각하도록 바뀌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두 사람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게 정리되고 원래의 건으로 돌아가자 당연히 두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우선 혹시라도 사람들이 날 알아보면 안 되니까 이걸 사용하자.’
건은 치우의 보고에서 들고 나온 한 가지 물건을 손에 들고 있었다.
붉은색 도깨비 가면과 같은 이것은 ‘치우철면(蚩尤鐵面)’이라 불리는 영혼유물이었다.
건은 그걸 얼굴에 가져갔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것이 건의 얼굴에 자연스럽게 달라붙으며 건의 얼굴과 하나가 되었다.
츠츠츠츳!
치우철면이 건의 얼굴과 하나가 되자 건의 전신이 흐릿해지며 마치 진짜 붉은색 도깨비와 비슷한 모습이 되었다.
누가 봐도 현재의 건은 반투명한 몸을 지닌 붉은색 도깨비와 같아 보였다.
치우철면의 효과는 매우 간단했다.
치우철면을 쓰면 소울러가 아니어도 경계에 들어올 수 있었다.
치우철면에 담겨 있는 강력한 기운이 그 가면을 쓴 사람을 일종의 영체(靈體)로 바꿔줬기 때문에 마치 귀신(鬼神)들처럼 경계를 출입할 수 있었다.
물론 건은 그런 용도로 치우철면을 사용한 게 아니었다. 그가 원한 것은 자신의 몸을 영체로 바꾸는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의 모습을 전혀 다른 존재처럼 보이게 바꾸는 것이었다.
그가 가면까지 쓰며 그렇게 자신의 모습을 바꾸려는 이유는 이곳이 천본이었기 때문이었다.
건은 자신이 1등급 영혼보물을 차지했단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치우철면을 이용해 자신을 소울러 백건이 아니 다른 존재처럼 위장한 것이었다,
‘아마도 새로운 종류의 혼마라고 생각하겠지?’
건은 가장 좋은 것은 자신을 혼마로 봐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혼마로 보지 않고 소울러로 본다고 해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치우철면을 통해 얻은 이 모습에서 백건의 정체를 유추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울러 정도 보는 게 전부였다.
건은 이마저 별로 가능성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다른 소울러들이 90% 이상의 확률로 자신을 혼마로 볼 것이라고 확신했다.
어쨌든 자신의 모습을 완벽하게 바꾼 건은 곧장 자신의 기감을 넓게 퍼트리며 천천히 천본 바깥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건의 퍼트린 기감은 천본을 넘어 천원 지역 전체를 살펴볼 수 있을 정도로 넓게 퍼졌다.
하지만 천원 지역에서 철민과 연희의 흔적을 찾을 순 없었다.
건이 두 사람을 찾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두 사람을 제압하고 있는 강력한 구속구가 두 사람의 혼력을 완전히 흩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자 아무리 건이라고 해도 두 사람의 기운을 느낄 수가 없었다.
건은 두 사람이 천원 지역에 없다고 생각하고 곧장 천원 바깥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동하던 건이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중국, 러시아, 일본의 소울러들이 뭉쳐서 만든 삼국연합이었다.
원래 건은 그들을 그냥 지나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득 든 한 가지 생각 때문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건은 남의 나라에 와서 당당하게 영혼보물들을 강탈해 가는 그들의 작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그들이 신의 흔적에 들어와 거둬들인 영혼보물들은 원래 모두 치우의 보고에 들어 있던 것들이었다.
비록 그 값어치가 조금 떨어져 신의 흔적을 만들고 유지하는데 사용되었다고 해도 원래는 치우의 보고 안에 있어야 하는 것들이 맞았다.
거기까지 생각한 건은 그들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어차피 삼십 분 정도면 저들을 응징하기 충분한 시간이다.’
건은 그들을 자세히 살피고 있었지만 정작 그들은 건이 자신들 근처에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치우철면은 평범한 사람이 사용하면 그 사람을 영체로 만들어줘 경계에 들어올 수 있게 해주는 효과만 기대할 수 있었지만 소울러가 사용하면 그 소울러가 지닌 존재감 자체를 매우 낮춰주는 효과도 가지고 있었다.
더욱이 건은 자신이 원하면 혼력을 완벽하게 숨길 수 있었기 때문에 삼국연합에서 치우철면을 쓰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건을 발견할 수 있는 소울러는 한 명도 없었다.
‘우선 준비를 해와야겠군.’
삼국연합을 살피던 건은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는 삼국연합에게 깜짝 선물(?)을 안겨주기 위해 잠깐 선물 준비를 하러 간 것이었다.
사라졌던 건이 다시 나타난 것은 15분 후였다.
그는 다시 나타나자마자 삼국연합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체 그들을 바라보았다.
삼국연합의 소울러들은 대충 세 무리로 나뉘어 있었다, 세 나라의 소울러들이 연합을 했다고 해도 일단 기본적으로 국가별로 소울러들의 무리가 나뉘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세 무리는 각각 서로 다른 곳에 자신들이 거둬들인 영혼보물을 모아서 보관하고 있었다.
나름 숨긴다고 숨겼지만, 건은 너무나도 쉽게 그 보물들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원래 치우의 보고에 있던 물건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쉽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좋아. 그럼 시작해볼까?’
삼국연합의 세 무리를 바라보던 건은 조용히 그들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들 앞에 거대한 청동거울이 나타났다.
그리곤 그 청동거울에서 세 마리의 괴물들이 차례대로 쏟아져 나왔다.
크어어어어엉!
카아아아아앙!
크라라라라랑!
세 마리 모두 마왕급 혼마들이었다.
건은 놈들을 제압해서 치우의 보고 중 세 군데에 강제로 넣은 후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세 마리의 혼마는 모두 굉장히 흥분한 상태였다.
삼국연합의 소울러들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드는 세 마리의 혼마.
건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슬쩍 웃었다.
이제 그가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삼국연합의 소울러들이 세 마리의 혼마와 싸우느냐고 정신이 없는 사이 은밀히 그들에게 접근해 그들이 보관하고 있는 영혼보물들을 모두 치우의 보고로 옮기기만 하면 모든 게 끝이었다.
건은 이처럼 너무나 쉽게 삼국연합을 엿 먹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