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136화 (135/175)

# 136

더 소울(The Soul) - 괴멸 [1]

@ 괴멸.

세 마리의 마왕급 혼마가 날뛰기 시작하자 삼국연합의 소울러들은 당연히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각각의 국가별로 흩어지며 세 마리의 마왕급 혼마를 막아섰다.

그들이 만약 평소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국가별로 한 마리씩 마왕급 혼마를 잡는 게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신의 흔적’에 들어와 끊임없이 전투를 치르고 또한 한시라도 빨리 천본의 중심에 먼저 도착하기 위해서 무리해서 전진하고 있었던 그들의 컨디션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 상황이 더 힘겨울 수밖에 없었다.

콰과과광!

잔뜩 흥분한 마왕급 혼마들은 눈앞에 보이는 소울러들을 모조리 씹어먹으려는 것처럼 미친 듯이 날뛰었다.

건은 그 세 마리의 마왕급 혼마를 치우의 보고를 이용해 포획할 당시 잔뜩 그들의 신경을 긁어놓았었다.

덕분에 세 마리의 마왕급 혼마는 더욱 크게 흥분해 날뛰고 있었다.

크어어어어어엉!

콰드드득!

“으아아악!”

혼마에게 오른팔을 통째로 물어뜯긴 일본의 소울러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일본은 그동안 러시아와 중국보다 약간 더 피해를 입은 상태였기 때문에 마왕급 혼마를 상대하는 게 더 힘겨웠다.

현재 일본의 소울러들을 이끌고 있는 이는 무사시의 환생이라 불리고 있는 쿠미니 아사노였다.

그는 일본의 소울러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단한 강자였다.

특히 그가 사용하는 오륜검(五輪劍)은 그 옛날 미야모토 무사시가 사용했던 그것보다 더 강력하다고 알려졌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라고 해도 지금은 정신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천황군(天皇軍)이라 불리는 일본에서 가장 큰 소울러연합에 소속된 인물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천황군 무신좌(武神座)에 올라 있었다.

무신좌라면 천황군 전체를 놓고 봐도 거의 두, 세 번째에 속하는 서열이었다.

그리고 그가 이끌고 온 월광단(月光團)은 천황군을 대표하는 네 개의 무력단체 중 하나였다.

최초 신의 흔적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의 전력이라면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경쟁자들의 전력이 절대 만만치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중국과 러시아에게 연합을 제의할 수밖에 없었다.

연합 이후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어차피 혼자서 신의 흔적을 독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이후였기에 아사노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 연합을 유지하며 최대한 이득을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연합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진형을 유지해라!”

아사노는 다시 한 번 소리를 지르며 손에 들고 있던 두 자루의 검을 더욱 꽉 잡았다.

‘이곳을 너무 만만히 봤다.’

후회하는 아사노.

그는 ‘신의 흔적’이 이 정도로 힘겨운 곳이라는 걸 미리 알았다면 아마도 월광단뿐만 아니라 풍신대(風神隊)와 신풍오좌(神風五座)의 소울마스터들을 몇 명 더 데리고 왔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들을 데리고 올 수는 없었다.

‘일단 이 위기를 넘긴 후 심각하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이득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군.’

아사노는 계산이 철저한 사람이었다.

그는 되지도 않을 걸 무리해서 도전했다고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미련한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는 따지고 또 따져서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이득이 뭔지 알아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계산이 철저한 아사노도 전혀 모르고 있는 게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자신들이 마왕급 혼마와 정신없이 싸우고 있는 그 순간 비어있는 그들의 캠프로 접근하는 하나의 그림자였다.

아주 은밀하게…… 삼국연합의 캠프로 스며든 그림자.

당연히 그는 치우철면을 뒤집어쓴 백건이었다.

삼국연합이 모아놓은 수많은 영혼보물은 모두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삼국연합은 마왕급 혼마를 상대하며 조금도 여유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캠프에 남아 있는 소울러는 한 명도 없었다.

사실 ‘신의 흔적’ 안에서 삼국연합 가까이에 접근한 이들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캠프를 비우는 게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 나라 모두 소울러를 남기지 않는 게 서로 더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덕분에 건은 일이 더 쉬워졌다.

원래는 한두 명 정도의 소울러는 힘으로 쓰러트리고 영혼보물들을 강탈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그렇게 할 필요도 없어졌다.

그냥 은밀하게 잠입해서 쌓여 있는 영혼보물들을 치우의 보고에 쓸어 넣기만 하면 끝이었다.

물론 단순히 영혼보물만 쓸어 넣진 않았다.

삼국연합의 소울러들은 영혼보물과 함께 상당히 많은 양의 영혼의 조각이나 파편들을 모아놓았었다.

당연히 건은 그것들도 모두 쓸어담았다.

상당한 양이었지만 치우의 보고가 있는 이상 이것보다 몇만 배가 많은 양이라고 해도 아무렇지 않게 챙길 수 있었다.

건이 삼국연합이 모아놓은 모든 것들을 터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냥 닥치는 대로 쓸어 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릴 일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5분 만에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의 소울러들이 몇 달에 거쳐 힘겹게 모은 모든 전리품을 쓸어담은 건은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 순간에도 삼국연합의 소울러들은 열심히 마왕급 혼마와 싸우고 있었다.

그들은…… 적어도 지금 상대하고 있는 마왕급 혼마를 쓰러트리고 다시 캠프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자신들이 어떤 피해를 보았는지 전혀 알지 못할 게 분명해 보였다.

* * * *

너무나도 간단하게 삼국연합을 털어먹은 건은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천본 바깥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번엔 무작정 바깥쪽으로 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건은 삼국연합에 이어 두 번째로 자신의 감각에 들어온 무리를 향해 움직였다.

그 무리는 바로 미국과 유럽 연합이었다.

건은 이왕 털기로 마음먹었으니 공평하게(?) 천본에 들어온 모든 소울러 연합을 탈탈 털기로 했다.

그래서 그는 삼국연합보다는 조금 뒤처져 있던 미국과 유럽 연합을 향해 움직이며 천본에 널리고 널린 마왕급 혼마들을 하나씩 수집하기 시작했다.

마왕급 혼마들은 강했지만, 건은 그보다 훨씬 더 강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건에겐 최고의 포획 도구라 할 수 있는 치우의 보고가 있었다.

마왕급 혼마들의 성질을 잔뜩 긁은 후 가볍게 치우의 보고를 열고 그 안으로 놈들을 쑤셔 넣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려운 것은 놈들의 성질을 잔뜩 긁는 것이었다.

건은 그렇게 네 마리 정도의 마왕급 혼마를 치우의 보고에 쑤셔 넣은 후 가벼운 마음으로 미국과 유럽 연합을 향해 다가갔다.

적어도 그때까지만 해도 건은 그저 미국과 유럽이 지금까지 신의 흔적에서 모은 전리품만 모두 강탈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건이 미국과 유럽 연합이 있는 곳에 도착해 그들이 어디에 전리품을 숨겨놓았는지 자세히 살피기 시작한 그 순간…… 그들의 운명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연희 누나?”

연희의 기운을 느낀 건은 곧장 ‘전능안(全能眼)’을 펼쳐서 미약하게 연희가 기운이 느껴진 곳을 꿰뚫어 보았다.

전능안은 심안의 최종 완성형태라 할 수 있었다.

당연히 연희를 숨겨놓고 있는 트레일러 정도는 너무나 우습게 투시할 수 있었다.

미국의 소울러들에게 제압당해 일주일 동안 먹을 것은 물론이고 마실 물도 제대로 못 마신 연희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그나마 미국이 이곳이 한국이라는 이유 때문에 약간 눈치를 보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런 눈치라도 보지 않았다면 연희는 아주 심각하게 망가졌을 수도 있을만한 상황이었다.

숨겨놓은 전리품을 찾다가 우연히 연희를 찾게 된 건은 너무나 황당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엄청난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이 새끼들이…….”

한순간에 일그러지는 건의 표정.

건은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건은 좀 더 자세하게 상황을 살폈다. 그 결과 그는 연희와 함께 제압된 철민도 찾을 수 있었다.

거리가 멀었을 때는 두 사람의 기운을 억제하고 있는 구속구 때문에 그들을 느낄 수 없었지만 이렇게 거리가 가까운 상태에서는 아무리 구속구가 두 사람의 혼력을 흩어버린다고 해도 건은 두 사람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의 신형 구속구의 성능은 분명 뛰어났지만, 이 정도 거리에서 건의 감각을 속일 수 있는 장치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할 수가 없었다.

“그냥 조용히 전리품을 거둬들이는 정도에서 끝내려고 했는데…… 이 새끼들이 죽여달라고 발악을 하네.”

건은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상 그는 이 ‘신의 흔적’의 계승자라 할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이곳에 들어온 다른 소울러들은 그저 자신의 것을 탐하는 도둑놈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치우의 후손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인들은 명분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치우와 전혀 상관없는 외국의 소울러들이 보물을 탐하는 것은 정말 가만두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건은 삼국연합과 미국, 유럽 연합을 제대로 탈탈 털어주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또 바뀌었다.

“너희가 그토록 원한다면 진짜 지옥이 뭔지 경험하게 해주마.”

빠득.

건은 이를 갈며 다시 한 번 치우철면을 썼다.

이번엔 단순히 혼마들을 풀고 전리품만 훔칠 생각이 없었다.

‘우선 사장님과 누나를 먼저 구하자.’

대충 마음의 결정을 내린 건은 망설이지 않고 미국과 유럽 연합 앞쪽에 커다란 청동거울을 만들어냈다.

츠츠츠츠츳!

청동거울이 만들어지기 무섭게 그 안에서는 네 마리의 마왕급 혼마가 차례대로 뛰쳐나왔다.

당연히 그 혼마들은 앞서 삼국연합에게 달려들었던 그 혼마들처럼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놈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미친 듯이 앞을 향해 달려나갔다.

당연히 그들의 앞엔 미국과 유럽의 소울러들이 있었다.

“뭐, 뭐야!”

“혼마들이다!”

미국과 유럽의 소울러들은 마왕급 혼마들이 동시에 네 마리나 등장하자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설픈 초보 소울러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황했음에도 대처만큼은 빠르고 완벽하게 했다.

“모두 전방의 혼마들을 막아라!”

파파파팟!

미국과 유럽의 소울러들은 빠르게 진형을 구성하며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네 마리의 마왕급 혼마를 막았다.

그들의 대처는 삼국연합 쪽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크어어어엉!

캬오오오오오오!

그렇지만 그들의 대처가 아무리 좋아도 네 마리의 마왕급 혼마가 동시에 미친 듯이 돌진하는 것은 절대 쉽게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콰과과과광!

격돌하는 두 무리.

기세 자체는 혼마들 쪽이 더 좋았지만, 미국과 유럽의 소울러들도 나름 괜찮게 놈들의 돌진을 막아냈다.

물론 그 사이 건은 이미 연희가 제압당해 있는 트레일러 앞에 도착해 있었다.

이번에도 트레일러를 지키는 소울러는 한 명도 없었다.

사실 건은 지키는 소울러가 있어도 전혀 상관없었다.

어차피 건은 이번엔 단순히 전리품만 털어가고 끝낼 생각이 없었다.

콰드드득!

건은 아무렇지 않게 맨손으로 트레일러의 강철 벽을 뜯어냈다.

그리곤 안쪽으로 들어가 정신을 잃고 있는 연희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콰지직.

건은 그녀를 제압하고 있는 구속구를 모조리 제거한 후 잠시 자신이 안고 있는 연희를 내려다보았다.

너무나 창백한 얼굴과 여기저기 보이는 상처들.

그걸 확인한 건의 눈빛은 한없이 차가워졌다.

“이 씹어먹을 새끼들…….”

건은 도저히 연희를 이렇게 만든 것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츠츠츳!

일단 건은 치우의 보고를 열고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는 자신의 아지트라 할 수 있는 S룸 안쪽에 연희를 눕힌 후 다시 밖으로 나왔다.

건은 철민까지 마저 구한 후 응징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다치게 한 이들에게 자비 따위를 베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너희는 오늘 살아있는 것 자체를 후회하게 될 것이다.’

건에게 연희와 철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는 오늘 이곳에 지옥도(地獄圖)를 그대로 재현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과 유럽의 소울러들은 자신들이 직접 지옥의 문(門)을 열었다는 걸 전혀 모른 체 그저 눈앞의 마왕급 혼마들을 상대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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