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더 소울(The Soul) - 괴멸 [2]
그들이 혼마를 상대하고 있는 사이 건은 철민까지도 무사히 구출해 S룸에 데려다 놓았다.
미국의 소울러들은 철민이 힘을 회복하는 걸 두려워해 심문할 때를 제외하곤 강력한 수면효과가 있는 약물을 사용해 그를 재워뒀었다.
건은 그런 철민을 보고 다시 한 번 분노했다.
츠츠츳!
건은 작은 청동거울을 만들어내며 치우의 보고에서 빠져나왔다.
연희와 철민을 가장 안전한 장소에 데려다 놓고 백에게 두 사람을 잘 간호하라고 명령까지 내려놓았기 때문에 이제 더는 걱정할 게 없었다.
그리고 추가로 미국과 유럽 연합이 지금까지 모은 모든 것들을 치우의 보고에 쓸어 넣었다.
진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작은 영혼의 조각 하나까지 모두 탈탈 털었다.
이제 남은 것은 오로지 하나.
바로 응징뿐이었다.
* * * *
쿠쿠쿠쿵!
또 한 마리의 마왕급 혼마가 쓰러졌다.
이제 남은 것은 유러의 소울러들이 거의 제압하기 직전인 마지막 네 번째 마왕급 혼마뿐이었다.
건은 그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상태에서 치우철면을 쓰고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네 마리의 마왕급 혼마들이 날뛸 때 미국과 유럽의 소울러들 뒤를 공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할 수 있었지만, 건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직접 성질을 벅벅 긁어 놓은 네 마리의 마왕급 혼마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자칫 뒤통수를 치려다가 자신이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다음으로는 굳이 뒤통수를 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건은 미국과 유럽의 소울러들이 네 마리의 마왕급 혼마를 모두 제압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콰과과광!
드디어 마지막 네 번째 마왕급 혼마가 쓰러졌다.
미국과 유럽의 소울러들은 생각보다는 적은 피해만 보고 네 마리의 마왕급 혼마를 쓰러트릴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동안 계속 마왕급 혼마들을 상대하면 어느 정도 요령이 쌓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매번 한 마리씩 나타나던 마왕급 혼마가 갑자기 동시에 네 마리가 나타나 놀라긴 했었지만 역시 경험이 많은 노련한 소울러들이라 아주 깔끔하게 대처를 했다.
“휴우, 혼마들이 남긴 영혼의 파편을 회수하고 부상자를 치료해라.”
아이언마스터 아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명령을 내렸다.
그는 이제 정말 천본의 중심에 가까이 접근했기 때문에 이렇게 마왕급 혼마들이 떼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론 경계를 더 철저히 해야겠군.’
이번에 나타난 네 마리의 마왕급 혼마는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너무 갑자기 나타났다.
그렇기에 더 당황했던 것이었다. 물론 이렇게 된 이유는 건이 치우의 보고를 열고 그들 앞에 직접 네 마리의 혼마를 풀어놓았기 때문이었지만 아담은 그걸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그들이 그렇게 뒷정리를 하고 있던 그 순간.
건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마리의 마왕급 혼마가 사라졌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응징을 시작해야 했다.
츠리릿!
건은 가뜩이나 치우철면 때문에 흐릿해진 자신의 몸을 ‘전능천의(全能天衣)’로 감싸며 완벽하게 자신의 모습을 감추었다.
전능천의는 묵룡갑과 금강의가 합쳐진 모든 방어능력의 최종 완성판이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호신강기였다. 마치 그 무엇도 뚫을 수 없는 방패처럼 그것은 거의 모든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오히려 어지간한 공격은 그것을 뚫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튕겨나게 되어 있었다.
“자, 가볼까?”
건은 가볍게 중얼거리며 미국과 유럽의 소울러들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파파팟!
그러자 그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곤 곧장 최소 1km는 떨어져 있던 미국과 유럽의 소울러들 사이에 나타났다.
이것은 단순한 고속이동 같은 게 아니었다.
진짜 공간에서 공간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치우가 가진 열두 가지의 특수한 힘 중 하나인 ‘전능보(全能步)’였다.
전능안이 세상에 그 무엇도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이라면 전능보는 건의 감각이 미치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라도 단번에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물론 너무 거리가 멀어지면 그 거리만큼 약간 집중을 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건의 시야에 직접 들어오는 곳이라면 생각하는 그 즉시 공간이동을 할 수 있었다.
건이 공간이동을 한 그 순간 미국과 유럽의 소울러들은 네 마리의 마왕급 혼마를 생각보다 훌륭하게 막아냈다는 생각에 약간 안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자신들이 있는 곳 한가운데에 이상한 기운을 풍기는 존재가 갑자기 나타나자 당연히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더 당황스러운 것은 그 이후에 일어났다.
미국과 유럽의 소울러들 사이로 공간이동을 한 건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미국과 유럽의 소울러들 발밑에서 뭔가가 천천히 솟아올랐다.
드드드드득!
그것들은 병사(兵士)였다.
키는 대략 2m에 가까웠고 온몸이 청동빛으로 빛나는 병사들이었다.
그들의 정확한 이름은 치우철병(蚩尤鐵兵)이었다.
지금 나타난 치우철병의 숫자는 총 200명이었지만 건이 마음만 먹으면 최대 400명의 치우철병을 소환할 수도 있었다.
이들은 과거 건이 소환했던 묵룡기마대와 비슷한 종류의 병사들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한 가지 명령만 수행한 후 금방 사라졌던 묵룡기마대와 달리 이들은 소환된 이후에는 얼마든지 건의 뜻대로 마음껏 부릴 수 있었다.
부리는 방법도 간단했다.
그저 생각만 하면 그들은 건의 뜻대로 움직여 주었다.
또한, 소환시간도 건이 계속 힘만 유지해주면 언제까지라도 계속 존재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설사 강력한 힘에 소멸당한다고 해도 아예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냥 역소환 될 뿐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불멸(不滅)의 존재들이었다.
더 결정적인 것은 건이 치우철병만 소환할 수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이었다.
건은 400의 치우철병과 100명의 치우기마병(蚩尤騎馬兵), 20명의 치우무사(蚩尤武士) 그리고 마지막으로 5명의 치우장군(蚩尤將軍)을 소환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이들을 합쳐서 ‘전능군(全能軍)’이라 불렀다.
물론 전능군을 모두 소환하면 아무리 건이라고 해도 다른 걸 제대로 못 할 정도로 많은 힘을 소모해야 했지만, 치우철병이 거의 최상급 실버 등급 수준의 헌터와 비슷한 능력을 지녔고 치우기마병이 평범한 골드 등급 수준의 헌터와 비슷한 능력을 지녔다.
그리고 치우무사는 최상급 골드 등급의 헌터와 비슷했고 5명의 치우장군은 거의 상급의 플래티넘 등급의 헌터와 비슷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정말 말 그대로 하나의 세력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이었다.
더욱이 이들은 불멸의 군대라고 할 수 있었기에 그 위력이 더욱 강력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건은 척준경과 광개토대제 그리고 치우천왕의 모든 능력이 하나로 합친 상태였기 때문에 건이 지닌 힘들은 하나하나가 이처럼 무지막지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건은 척준경과 광개토대제 그리고 치우천왕의 힘을 하나로 합쳐 만든 열두 가지의 힘을 전능신력(全能神力)이라 불렀는데 말 그대로 열두 가지 힘은 하나하나가 모두 신의 힘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더 대단한 것은 건이 이 열두 개의 전능신력 이외에도 치우의 왼팔과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풍백과 우사의 힘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건은 아직 그 두 가지 힘에 대해서는 제대로 파악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천부경이 지닌 81가지의 힘은 자연스럽게 척준경 그리고 광개토대제가 지닌 힘과 하나로 합쳐져 열두 개의 전능신력을 만들어냈지만, 풍백과 우사는 엄밀히 따져서는 치우의 힘이 아니라 치우를 따르는 힘이었기 때문에 전능신력에 포함되지 않았다.
어쨌든 이렇게 대단한 힘을 지닌 건이었지만 굳이 건은 지금 그 힘들을 전부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전력을 다하지 않아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한 이들이었다.
특히 미국과 유럽의 소울러들은 방금 네 마리의 마왕급 혼마를 상대하면서 아낌없이 힘을 사용했기 때문에 지금은 평소에 절반도 되지 않는 전력이라 할 수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적을 공격해라.’
건은 단지 생각하는 것만으로 모든 치우철병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치우철병들은 건이 생각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근처에 있는 미국과 유럽의 소울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치우철병들에겐 두려움, 고통, 망설임 같은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사 실버 등급의 헌터들과 비슷한 실력이라고 해도 실제로 상대하는 이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 유럽의 소울러들은 치우철병들이 마구 달려들자 깜짝 놀라며 다시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평소 그들의 능력이라면 치우철병을 쓰러트리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평소 컨디션에 30% 정도밖에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다 보니 그들은 치우철병을 쉽게 쓰러트리질 못했다.
물론 여기저기에서 몇몇 치우철병들이 치명적인 일격을 당해 쓰러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치우철병의 숫자는 압도적으로 많았다.
콰과과광!
“도, 도대체 이것들은 뭐야?”
아이언마스터 아담은 자신의 특별한 소울 머신인 블러디 아이언에 탑승한 상태로 또 하나의 치우철병을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벌써 그는 세 명의 치우철병을 쓰러트렸지만, 여전히 그의 주변엔 수많은 치우철병이 각각의 소울 머신에 탑승한 S-알파의 대원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새로운 종류의 혼마인가?’
아담은 아무리 생각해도 최초로 나타났던 붉은색 도깨비와 같은 이상한 존재가 이 괴물들을 만들어냈을 것만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갑자기 땅에서 이 괴물들이 솟아날 이유가 없었다.
‘이 괴물들은 그냥 허깨비일 뿐이다. 최초로 나타났던 그 괴물을 찾아서 없애야 해.’
확실히 그는 핵심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수백 마리의 괴물들(치우철병)이 바로 옆에서 나타나는 바람에 이미 전투는 너무나 혼란스러운 양상이 되어 버렸다.
이 상황에서 근본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는 붉은색 도깨비 혼마(건)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가 그토록 찾던 그 붉은색 도깨비, 아니 건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츠츠츳!
아담은 자신이 찾던 건이 다시 한 번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자 깜짝 놀랐다. 그렇지만 놀라는 것과는 별개로 그는 곧장 블러디 아이언을 움직여 건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는 눈앞에 보이는 붉은색 도깨비와 같은 혼마만 쓰러트리면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전력을 다해 블러디 아이언을 조종했다.
아이언마스터가 전력을 다래 조종하는 블러디 아이언의 힘은 같은 소울마스터라고 해도 쉽게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달려들고 있는 대상이 그냥 평범한 소울마스터가 아니란 점이었다.
스윽.
건은 오른팔을 자신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 블러디 아이언을 향해 뻗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블러디 아이언이 허공에서 멈춰 섰다.
“커억!”
아담은 블러디 아이언과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휘감아버린 너무나도 강력한 한 줄기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도, 도대체 이건…….’
아담은 그 기운에 휘감겨 허공에 멈춰선 그 순간 이미 그 기운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단 사실을 깨달았다.
드드득, 콰드득!
그 기운은 블러디 아이언의 단단한 장갑을 종이를 구겨버리듯 너무나도 쉽게 찌그러트렸다.
“크악!”
아담은 블러디 아이언과 영혼으로 묶여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블러디 아이언이 휴짓조각처럼 구겨지기 시작하자 큰 고통을 느꼈다.
지금 블러디 아이언을 휘감은 이 힘은 ‘전능강기(全能罡氣)’라 불리는 힘이었다.
이것은 다양한 형태로 사용할 수 있는 힘이었는데 건은 지금 강기를 있는 그대로 활용해 어마어마한 물리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아이언마스터 아담? 네 짓이었나?’
건은 이미 ‘전능심혼(全能心魂)’의 능력을 이용해 아담의 기억을 일부분 읽은 상태였다.
전능심혼은 일종의 특수한 정신능력이었다. 최초 철민과 연희를 먼저 찾아야겠다고 느낌 이상한 감(感)도 바로 이 전능심혼의 능력 중 일부분이었다.
그것을 이용하면 완벽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상대방의 기억을 읽는 것도 가능했다.
건은 전능강기로 블러디 아이언을 제압한 후 빠르게 전능심혼을 사용해 아담의 기억 중 일부분을 읽어냈다.
역시 소울 머신을 사용하는 소울러들 중 가장 강한 힘을 지니고 있던 아담은 미국의 소울러들을 대표하는 인물이 맞았다. 그리고 건은 그의 기억 속에서 그가 철민과 연희를 제압하고 심문하라고 명령내리는 장면을 찾아냈다.
아무리 전능심혼이라고 해도 아담의 모든 기억을 알 순 없었지만 이처럼 최근의 몇몇 기억을 읽어내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담, 아무래도 넌 쉽게 죽을 수 없을 것 같다.”
건은 작게 중얼거리며 전능강기의 힘을 살짝 줄였다.
이대로 블러디 아이언을 완전히 짓이겨서 아담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가 모든 일의 원흉이란 것을 알게 된 이상 그렇게 쉽게 죽여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