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140화 (139/175)

# 140

더 소울(The Soul) - 일성 그룹 [1]

@ 일성 그룹.

연희의 예상대로 철민은 경매에 관련된 모든 일을 연희에게 일임하고 자신은 계속 치우의 보고에서 수련에 집중했다.

건은 철민이 소울마스터의 벽을 넘기 직전이란 걸 알고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주고 있었다.

덕분에 가장 바빠진 것은 연희였다.

건마저 철민의 수련을 돕느냐고 바빠지자 사실상 이번 경매에 관한 모든 준비를 그녀가 해야 했다.

일성그룹에서 주최한 이번 경매는 생각보다 규모가 훨씬 커져 있었다.

특히 여전히 소울러들에게 1등급 영혼보물을 가져가고 모른척한다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삼국연합은 물론이고 이번 신의 흔적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박살이 난 미국과 유럽 쪽에서도 실력자들을 보내 경매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그들까지 경매에 참여하겠다고 하자 이번 경매에 관한 관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단순히 이번 신의 흔적에서 나온 영혼보물들을 사들이기 위해 경매를 기획했던 일성그룹도 일이 이렇게 커지자 약간 방향을 바꿔 아주 큰 규모의 경매 이벤트로 변경했다.

그래서 경매날짜도 이틀이 더 밀렸다.

연희는 닷새 동안 자신의 것은 물론이고 건이 대충 꺼내놓은 수많은 영혼보물까지 모두 정리하며 경매에 내보낼 영혼보물을 골라냈다.

* * * *

일성 그룹이 이번 경매 이벤트를 위해 준비한 장소는 바로 일성 그룹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본사건물이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본사 건물을 통째로 경계의 세상으로 바꿔놓았다.

물론 경매 이벤트가 진행되는 곳은 경계의 세상일 수밖에 없었지만 이렇게 50층짜리의 본사 건물을 통째로 인공적인 경계의 세상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성 그룹의 저력이 상당하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건은 연희와 함께 일성 그룹이 만들어놓은 인공 경계로 들어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는 정말 많은 소울러들이 와 있었다.

수많은 헌터들은 물론이고 수호자, 유령 그리고 심지어 암살자 쪽에 속해 있는 것 같은 소울러들까지 경매에 참여했다.

그리고 당연히 다양한 국적의 외국 소울러들도 아주 많이 보였다.

영혼보물을 팔기 위해서 온 이들도 있었고 아니면 영혼보물을 사기 위해서 온 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순수하게 그냥 구경하러 온 소울러도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네요.”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건은 그 짧은 순간에 이곳에 있는 거의 모든 소울러들을 완벽하게 파악하며 중얼거렸다.

“생각지도 못한 참석자들이 다수 생기면서 일성 그룹이 최초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큰 이벤트가 되어 버렸어. 뭐, 팔 게 많은 우리한테는 좋은 일이지.”

“혹시 누나는 뭐 살 거 없어요?”

“적어도 여기선 없을 거 같은데. 어차피 난 네가 긁어온 엄청난 양의 영혼보물에서 원하는 걸 다 얻어서 굳이 여기서 돈을 주고 사고 싶은 게 있을 것 같진 않아.”

건이 신의 흔적에서 가져온 영혼보물들은 대단히 많았다.

아무래 미국, 유럽, 중국, 러시아, 일본이 모았던 모든 영혼보물을 모조리 강탈했기 때문에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었다.

건은 연희에게 그것들을 분류하다가 쓰고 싶은 영혼보물이 있으면 얼마든지 가져가라고 얘기했었다.

덕분에 연희는 괜찮은 영혼보물들을 몇 개 구할 수 있었다. 그것들은 확실히 연희에게 도움이 되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건은 흔쾌히 그 모든 걸 연희에게 선물해주었다.

“누나 저 잠시 사장님한테 갔다 올게요.”

지금 철민은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라 할 수 있었다. 소울마스터의 벽을 넘느냐 마느냐가 결정될 수 있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건은 계속 철민을 신경 쓰고 있었다.

물론 소울마스터의 벽을 넘는 것은 순수하게 자기 자신의 깨달음의 문제였기 때문에 건이 직접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없었지만 적어도 깨달음이 오히려 독이 되어 주화입마에 빠질 것 같으면 그건 건이 막아줄 수 있었다.

그래서 건은 계속 시간이 될 때마다 철민이 수련하고 있는 치우의 보고로 들어가 조용히 그의 상태를 지켜보곤 했었다.

“응, 갔다 와. 아. 그리고 사장님이 무리하는 것 같으면 무조건 막아야 해. 워낙 이런 부분에선 절제를 모르는 분이라 조심할 필요가 있어.”

“알고 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지금이 가장 고비여서 좀 더 신경 쓰는 중이에요.”

건은 웃으며 대답을 하고 곧장 화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치우의 보고로 들어가는 청동 거울을 만들기엔 화장실만 한 곳이 없었다.

츠츠츳!

치우의 보고에서 한동안 철민의 수련을 지켜보던 건은 아직은 철민의 상태가 안정되어 있단 걸 확인한 후 곧장 다시 일성 그룹의 본사 건물로 돌아왔다.

건은 치우의 보고로 들어가기 위해 청동 거울을 만들었던 화장실 구석의 청소도구 창고에 다시 출구 역할을 하는 청동 거울을 만들고 천천히 거울 안에서 걸어 나왔다.

‘사장님은 아무래도 며칠은 더 지켜봐야겠네.’

철민은 현재 치우의 보고 안에서 아주 깊은 명상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건이 볼 때 이 명상이 끝나려면 며칠은 더 필요할 것처럼 보였다.

만약 철민이 이 명상을 통해 소울마스터의 벽을 넘는 작은 실마리라도 깨달을 수 있다면 그걸 통해 벽을 넘을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다시 소울마스터의 경지에 주저앉는 것이었다.

이 부분만큼은 그 누구도 도울 수 없는 영역이었기 때문에 건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자, 그럼 이제 경매를 구경하러 가볼까?’

건은 조용히 화장실을 빠져나와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그가 치우의 보고에 있었던 시간은 대략 두 시간 정도였다. 하지만 그곳은 치우의 보고 중에서도 가장 시간의 흐름이 느린 S룸이었기 때문에 현실 시간으로 따지면 대략 10분이 조금 넘는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뭔가 변화가 있었다.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분명 별문제가 없던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문제의 중심에 연희가 있었다.

“그걸 왜 제가 확인해 줘야 하는 거죠? 언제부터 영혼유물 경매가 명확한 출처를 따지게 된 거죠?”

“저흰 그저 명령을 받고 이곳에 온 것일 뿐입니다. 굳이 일을 시끄럽게 만들지 말고 저희와 같이 가시죠. 가서 제출하신 영혼유물 목록과 일치하는 영혼유물들을 확인해주시고 그 자리에서 그 물건의 출처만 확인해주시면 됩니다.”

검은 양복을 맞춰 입은 서른 명 정도의 소울러들이 연희를 포위하고 위압적인 자세로 서 있었다.

“확인도 못 해주겠고 같이 가지도 못하겠다면 어떻게 할 건데?”

요즘 그나마 예전과 비교하면 성격이 많이 좋아졌다지만 기본적으로 그녀는 아이스 퀸이라 불리는 인물이었다.

연희를 둘러싸고 있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은 결국 그녀의 본성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냉기가 풀풀 풍기는 그녀의 말만 들어도 그녀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여긴 일성 그룹입니다. 아무리 카페 헤븐의 얼음 여왕이라도 여기서 이러시는 것은 본인에게 손해입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이들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 중년인이 연희에게 충고하듯 얘기했다.

하지만 그의 그 말이 연희를 더욱 자극했다.

“그래서? 얌전히 따라오라고? 일성 그룹의 유명한 개 한 마리가 있다고 하던데 그게 바로 당신이었군. 일성견(一星犬) 정원호.”

물론 정원호의 별호는 일성견이 아니라 일성호(一星虎)였다.

하지만 연희는 그를 개에 빗대어 깎아내렸다.

이미 그녀는 굉장히 화가 난 상태였기 때문에 예의 같은 걸 차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얼음여왕의 혓바닥이 매우 독하군. 정녕 벌주(罰酒)를 마시고 싶다는 게냐?”

연희가 막 나가자 정원호도 더는 연희에게 존대를 사용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성 그룹이 단독으로 이런 짓을 할 것 같진 않은데…… 뒤에 누가 있군. 누구지? 미국? 유럽? 중국? 아, 어쩌면 그 모두일 수도 있겠군.”

연희는 주변을 둘러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이들은 연희에게만 찾아온 게 아니었다. 그들은 경매에 자신이 가진 영혼보물을 올리겠다고 한 모든 소울러들에게 찾아가 똑같은 질문을 했었다.

즉, 일성 그룹에서 주초치한 이 경매 이벤트 자체가 어떠한 각본에 의해 만들어진 거짓이란 뜻이었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추측은 뭘 기반으로 한 거지?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저 간단한 확인일 뿐인데 너무 오버한다는 생각은 없나?”

정원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했지만, 연희는 구렁이를 백 마리쯤은 삶아 먹은 것 같은 정원호의 말을 절대 그대로 믿지 않았다.

“누가 사기를 치고 있는 건지는 조만간 알 수 있겠지.”

“쯧쯧, 결국 밑도 끝도 없는 추측을 믿고 험한 꼴을 당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린 건가? 아쉽군. 그래도 카페 헤븐의 얼음 여왕이라면 누구보다 냉철한 결정을 내릴 줄 알았는데.”

정원호는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연희는 그가 얼마나 쉽게 가면을 쓰는 인물인지 잘 알고 있었다.

“닥치고 덤벼.”

파팟, 철컥.

허리춤에서 다 자루의 권총을 뽑는 연희.

그녀는 이렇게 된 이상 이대로 쉽게 제압당해줄 생각이 없었다.

“제압해라.”

정원호는 옆쪽에 있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얼음여왕이 상당한 실력자인 것은 맞았지만 지금 그가 데리고 온 소울러들은 일성 그룹의 최고 정예들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금강철벽 강철민이 여기에 있었다면 모를까 얼음여왕이 혼자 있는 이 상황에서는 너무나 충분한 전력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들의 등 뒤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거기까지. 더 이상 움직이지 마라.”

너무나도 평범한 한 마디의 말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일성그룹의 모든 소울러가 움직임을 멈췄다.

정원호는 그 모습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뭣들 하는 게냐.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고 진짜 멈추면 어쩌자는 것이냐.”

정원호는 부하들에게 잔뜩 짜증을 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뒤에는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읽은 보고서에 적혀 있던 그에 대한 정보들이 떠올랐다.

[카페 헤븐에 나타난 새로운 강자. 소울러가 된 지 이제 겨우 3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알려짐. 소문엔 소울마스터일 수도 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 확인된 것은 없음. 요 주의가 필요함.]

‘왔군.’

사실 연희만 제압하는 것이었다면 부하들만 보내도 충분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직접 여기에 온 것은 건 때문이었다.

정원호는 자신이 나서면 건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사실 소문이란 것은 늘 과장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건이 진짜 소울마스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애초에 소울러가 된 지 3년 만에 소울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걸 믿지를 않았다.

‘이 녀석은 내가 상대하면 되겠고…….’

정원호는 건을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그는 지금 자신의 앞에 나타난 건에게서 아무런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건에 대한 소문이 생각보다 더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

“응? 뭣들 하는 게냐? 어서 저 녀석들을 제압해라.”

정원호는 자신이 뒤를 돌아보고 있던 그 순간에도 자신의 부하들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자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그가 소리를 쳐도 검은 양복을 잘 차려입은 그의 부하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정원호는 어이가 없단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향해 다가가려고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다시 한마디의 말이 들려왔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정말 별거 아닌 한마디의 말 뿐이었다.

그런데 정원호는 그 순간 자신의 심장을 파고드는 한 줄기의 서늘한 감각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움직이면 죽을 수도 있다!’

놀랍게도 그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소울마스터는 아니었지만 소울마스터에 가장 근접한 경지에 올라있는 실력자였다.

그런 그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순간 정원호와 그의 부하들 사이로 너무나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건은 그렇게 제자리에 멈춰서 있는 그들을 지나 연희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지금 정원호와 그의 부하들을 찍어누르고 있는 기운은 바로 ‘전능언(全能言)’의 힘이었다.

전능언은 군림언의 최종 완성 버전이었다.

말이 곧 힘이 되는 능력.

그것이 바로 전능언이었다. 실제고 건이 전능언의 힘을 실어 내뱉은 두 마디의 말은 말의 한계를 넘어 그 자체가 한 줄기의 강력한 힘이 되어 정원호와 그의 부하들을 휘감고 있었다.

움직이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

그것은 단순한 환상 같은 게 아니었다. 실제로 그들이 움직이면 그들을 휘감고 있는 전능언의 기운이 그들을 공격하게 되어 있었다.

“이, 이게 도대체…….”

이 순간에도 정원호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건을 바라보았다.

그는 평생 다양한 소울러들을 상대했었다.

하지만 단언컨대 단순히 말 한마디로 자신을 곤란에 빠지게 한 소울러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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