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
더 소울(The Soul) - 배덕의 군주 [1]
@ 배덕의 군주.
“여긴 네놈이 낄 자리가 아니다.”
조원혁은 지금 톰이 어떤 압박을 느끼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오히려 내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건을 자극해 그를 나서게 하려는 중이었다.
그리곤 보기 좋게 건을 제압해 연희에게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줄 생각이었다.
‘잘 걸렸다 이놈.’
조원혁은 앞으로 걸어 나오며 계속 건을 노려보았다.
“지금 이 자리는 일성의 명예를 걸고 내가 직접 준비한 자리다. 난 너희가 숨기는 게 없다면 못할 얘기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쓸데없는 예의 얘기로 논점을 흐리지 말고 우선 묻는 말에 대답부터 해라.”
조원혁은 건을 자신의 상대로 보질 않았다.
그는 카페 헤븐에 또 한 명의 소울마스터가 탄생했을지 모른다는 소문을 들었었지만, 그 소문을 절대 믿지 않았다.
자신의 아버지인 진천일성 조건희 덕분에 거의 반쯤은 억지로 소울마스터가 된 조원혁이었기 때문에 소울마스터가 얼마나 오르기 힘든 경지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이제 겨우 소울러가 된 지 5년도 되지 않은 건이 소울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고는 사실을 전혀 믿지 못했다.
그는 그저 건이 쓰러트린 백련김가가 너무 약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백련김가는 너무 심각하게 몰락한 가문이었다.
그 정도라면 소울마스터가 아니라도 충분히 쓸어버릴 수 있었을 것 같았다.
특히 철민과 연희가 뒤에서 은밀히 건을 도왔다면 더욱 쉽게 쓸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여러 가지 경우를 생각하면 건은 무조건 소울마스터가 아니었다.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건이 진짜 소울마스터라고 해도 그래 봤자 이제 갓 소울마스터가 된 애송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에 반면 조원혁은 벌써 몇 년 전에 소울마스터가 된 상태였다.
이런 몇 가지 이유 때문에 그는 자신 있게 건을 가로막을 수 있었다.
“일성의 명예? 다른 나라의 개가 돼서 같은 나라의 소울러들을 팔아넘기는 게 일성의 명예였나?”
건은 조원혁을 바라보며 한껏 그를 비웃었다.
조원혁은 그런 건의 모습을 보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가뜩이나 건을 좋지 않게 보고 있었던 그였기 때문에 화는 더욱 빠르고 강렬하게 그의 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네놈이 미쳤구나?”
“나라를 팔아먹은 네가 미쳤겠지.”
“이노오옴!”
계속된 건의 도발에 결국 조원혁은 폭발했다.
그는 폭발과 동시에 자신의 혼력을 잔뜩 끌어모았다. 그가 계약한 영혼은 무려 4등급의 영혼인 김유신이었다.
물론 순수한 그의 능력으론 김유신의 영혼과 맹약을 맺을 수가 없었다.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정천일성 조건희였다.
조건희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 거의 반강제로 조원혁과 4등급 영혼인 김유신의 맹약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조원혁은 김유신이 가진 모든 걸 얻을 순 없었지만 그래도 4등급 영혼인 김유신의 힘은 강력했다.
여기에 조건희가 직접 구한 수많은 영혼유물이 더해지자 결국 조원혁은 소울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거의 조건희가 억지로 조원혁을 소울마스터의 경지까지 끌어올렸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어쨌든 반강제로 얻은 경지라고 해도 일단 조원혁이 소울마스터란 사실은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그의 힘은 분명 일반적인 소울러들보단 훨씬 강했다.
“오늘 내가 너의 버릇을 확실하게 고쳐주마.”
스르릉.
조원혁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3등급 영혼보물 ‘가야신검(伽耶神劍)을 뽑았다.
가야신검은 금관가야국 시조인 김수로왕(金首露王)의 보검이었다. 다른 이름으로 가락신검(駕洛神劍), 수로신검(首露神劍) 또는 금관지보(金官之寶)라고도 불렸는데 금관가야의 마지막왕인 구해왕(仇亥王)이 신라에 항복한 이후 사라졌었다.
그 이후에 김수로왕의 13대손인 김유신은 15세에 화랑이 되어 17세에 고구려, 백제의 잦은 침략에 삼국통일의 큰 뜻을 품고 서라벌 서쪽 산에 있는 석굴에 들어가 목욕재계하고 천지신명에게 고구려, 백제, 말갈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자 4일 만에 한 노인이 나타나 김유신의 인내와 정성을 가상히 여겨 비법이 담긴 책과 신검(神劍)을 주었다고 삼국사지, 동국여지승람, 동경잡기에 소개되어 있었다.
바로 이때 노인이 김유신에게 준 신검이 금관가야의 멸망 후에 사라졌던 가야신검이었다. 가야신검에는 “금관가야국 김수로대왕(金官伽倻國 金首露大王)”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김유신은 이 신검으로 고구려, 백제와 싸울 때마다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며 당시의 화랑들이 수도하던 산에서 김유신은 이 칼로 무술연마를 하면서 바위들을 베었다고 하여 산의 이름이 단석산(斷石山)이 되었다.
조원혁은 자신이 맹약을 맺은 김유신이 실제로 사용했던 가야신검을 구해서 사용하는 것으로 자신이 맺은 맹약의 불완전한 점을 극복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가야신검이었고 그가 옷 안에 입고 있는 것은 5등급 영혼보물인 ‘철룡보갑(鐵龍寶鉀)’이었다.
그 밖에도 그는 몇 가지 영혼보물을 더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모자란 실력을 영혼보물로 채워 넣었다. 덕분에 그는 평균적인 소울마스터의 실력을 갖출 수 있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는 설사 건이 소울마스터라고 해도 상관없다는 자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그가 그토록 만만히 보고 있는 인물이 건이라는 사실이었다.
소울마스터의 경지 따윈 눈에 보이지 않을 절도로 초월해 버린 건.
그렇기에 건에게 조원혁은 한 마디로 하룻강아지였다.
“하압!”
조원혁은 망설이지 않고 건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그렇다고 건을 죽이거나 그럴 생각은 없었다. 그저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주며 건을 제압하기만 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건 그의 생각일 뿐이었다.
스륵.
건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조원혁을 바라만 보았다.
진짜 아무것 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조원혁은 자신의 향해 날아오는 압도적인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꽈광!
그 힘은 가야신검과 충돌했다.
그러자 가야신검이 뒤로 강하게 튕겨 나가며 동시에 가야신검을 들고 있던 조원혁도 뒤로 튕겨 나갔다.
“크윽.”
주르르륵.
한참을 밀려나는 조원혁.
그는 자신을 튕겨낸 그 힘이 도대체 뭐였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건이 방금 가볍게 뿌린 전능강기는 그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는 힘이었다.
“이건 무슨…….”
조원혁은 자신을 튕겨낸 힘을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작정 부정하기엔 너무나 확실한 존재감을 가진 힘이었다.
한편 조원혁보다 일찍 건의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느끼고 있던 톰은 조원혁이 튕겨나는 걸 바로 옆에서 직접 보며 더욱 큰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이건 단순한 소울마스터의 힘이 아니다.’
톰은 조원혁과 달리 상당한 경지에 오른 소울마스터였다. 그렇기에 그는 건의 힘이 얼마나 까마득한 경지에 올라 있는 능력인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원혁은 아직도 그걸 제대로 느끼질 못했다.
그는 뭔가 자신이 착각했다고 생각하며 다시 가야신검을 들어 올렸다.
그는 여전히 건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마치 절대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건은 가야신검을 다시 들어 올린 조원혁 쪽으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전능강기가 조원혁의 주변에 생겨났다.
이것은 전능강기를 전능보의 힘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조원혁의 앞으로 이동시킨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전능강기를 거의 한계가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조원혁의 주변에 나타난 전능강기는 그의 몸을 완전히 휘감았다.
“허억!”
그러자 조원혁은 정말 손가락 하나 꼼짝일 수 없게 되었다.
마치 강제로 얼려진 것처럼 그대로 굳어진 조원혁.
건은 그런 조원혁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넌 그곳에 서서 네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들이었는지…… 똑똑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콰드득, 쩌저정!
그 말과 함께 조원혁이 들고 있던 가야신검이 전능강기의 어마어마한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이 조각나버렸다.
무려 3등급 영혼보물인 가야신검을 단순히 힘으로 부숴버린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영혼보물은 본래 이렇게 쉽게 부서지는 물건들이 아니었다.
특히 3등급의 영혼보물이라면 더욱 그랬다.
조원혁은 자신이 들고 있던 가야신검이 산산조각이 나는 그 순간…… 건이 원하면 자신의 몸 역시 가야신검과 똑같이 산산이 조각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 그는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다.
그를 보호하고 있던 모든 것들이 일순간에 무너져 내리며 그의 나약한 영혼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되자 그는 더는 일성의 황태자 조원혁이 아닌 너무나도 평범한 한 명의 인간이 되었다.
“사, 살려줘.”
하얗게 질린 조원혁이 가장 먼저 한 말은 삶을 구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건은 이미 그에게 더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물론 건의 앞에 서 있던 미국의 국토안보부 장관 톰 리지 역시 건의 관심 밖의 인물이었다.
지금 건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인물은 가장 뒤쪽에 서 있는 한 남자였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그는 다른 일행들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마치 관망이라도 하듯 조원혁과 톰 리지의 행동들을 조용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건은 그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몰랐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 하나는 알고 있었다.
바로…… 그가 흔히 그랜드마스터라 불리는 경지에 오른 인물이란 사실이었다.
“본론을 얘기하려면 당신과 해야 할 것 같은데…… 계속 지켜만 보고 있을 게 아니라면 인제 그만 나설 때가 된 것 같지 않나?”
건은 그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설마 이곳에서 내가 나서게 될 것으로 생각하진 않았는데…… 이거 아무래도 너무 심각한 정보의 오류가 있는 것 같군.”
그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오며 건을 바라보았다.
처음 연희와 건이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는 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는 지금까지 아무리 강한 소울마스터라고 해도 무조건 경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런데 건의 경지는 전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 뜻은 결국 건이 최소 자신과 비슷한 경지란 얘기였다.
그는 그걸 믿기가 힘들었다.
그가 듣기에 건이 소울러가 된 지는 이제 겨우 몇 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에 자신이 오른 경지에 도달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난 엔드류 마틴이라고 하네.”
“엔드류 마틴!”
그가 자기소개를 하는 순간 건의 뒤쪽에 서 있던 연희는 정말 깜짝 놀라며 그의 이름을 외쳤다.
“배덕의 군주!”
그리고는 곧바로 아주 오랫동안 그에게 붙어 있던 한 가지 별칭을 연속해서 외쳤다.
“어떤 이들은 날 그렇게 부르기도 하지.”
마틴은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덕의 군주 엔드류 마틴.
그의 또 다른 별칭은 ‘그림자 군주’였다.
그는 대략 250년 전 미합중국이 만들어질 때 역사에 뒤편에서 모든 것을 주도했던 인물이었다.
사실상 진짜로 미합중국을 완성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그는 원래는 모든 인디언을 대표하는 ‘하늘의 별을 지키는 자’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따르는 모든 인디언을 배신하고 인디언들의 영혼석을 이용해 미합중국이란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얻은 힘을 통해 그는 드디어 그토록 염원하던 그랜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그랜드마스터가 된 그는 무려 25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미합중국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왔다.
미국에는 분명 대통령이라는 국민의 대표가 존재했지만 사실상 미국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엔드류 마틴이었다.
“어떻게 배덕의 군주가 이곳에…….”
연희는 그때야 조원혁이 왜 그렇게 도가 지나친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뭐, 반쯤은 호기심이었지.”
마틴도 처음부터 이곳에 직접 올 생각은 없었다. 단지 시간이 많이 남았고 왠지 모르게 호기심도 생겼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찾아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