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
더 소울(The Soul) - 배덕의 인장 [1]
@ 배덕의 인장.
콰과과과과과광!
마틴은 거대한 에너지 폭풍을 만들어 주변에 있는 것들을 모두 쓸어버린 후에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그가 만든 에너지 폭풍은 그의 주변에서 거칠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충분하겠지?’
마틴이 만들어낸 이 에너지 폭풍은 흔히 슈퍼 태풍이라 불리는 것들을 몇 개 정도 하나로 합쳐서 한껏 압축시켜놓은 것과 비슷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력했다.
폭탄을 예로 든다면 핵폭탄이 동시에 100개 정도가 폭발하는 것 같은 위력이었다.
물론 그 힘은 소용돌이 안쪽에만 적용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힘의 영향권은 얼마든지 마틴이 조절할 수가 있었다.
마틴은 건이 일단 소용돌이에 집어삼켜 진 이상 무조건 치명적인 충격을 입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슬슬 마무리를 지어볼까.’
마틴은 이 정도쯤 되었으면 건이 자신 앞에 무릎을 꿇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마틴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일어났다.
드드드드드득!
갑자기 소용돌이가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소용돌이 안쪽에서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번쩍!
“으음?”
마틴은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을 지으며 소용돌이를 향해 두 팔을 뻗었다.
자연의 힘을 더 쏟아 부어 소용돌이를 안정시키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자연의 힘을 쏟아 붓는 것과는 별개로 이미 소용돌이는 안쪽부터 소멸하고 있었다.
쯔팟! 꽈르르릉! 콰과과과과광!
결국, 소용돌이는 그보다 더 강한 힘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했다.
“커억!”
마틴은 그 충격 때문에 뒤로 한참을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콰과광!
당연히 소용돌이를 폭발시킨 사람은 건이었다.
건은 허공에 떠 있었다.
그의 등 뒤로 솟아 있는 황금빛 날개.
그것은 전능천익(全能天翼)이었다.
전능천익은 중력을 다루는 힘이었다. 건은 전능천익을 이용해 언젠가 황제가 그에게 사용했던 천압과 같은 힘을 사용할 수도 있었고 또한 그와 반대로 중력에서 자유로워져 허공을 날아다니는 것도 가능했다.
마틴이 만들어낸 그 대단한 소용돌이를 산산조각낸 것도 이 전능천익의 힘이었다.
마틴의 소용돌이가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그 내부의 중력을 한없이 압축시켰다가 일시에 폭발시키면 당연히 소멸할 수밖에 없었다.
소용돌이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건이 일으킨 폭발의 힘도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건도 그 폭발의 영향에서 벗어날 순 없었지만 건에게는 전능천의와 전능강기가 있었다.
건은 이 두 가지 힘이라면 아무리 강력한 폭발 속이라고 해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어, 어떻게…….”
마틴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건을 바라보았다.
“넌 평생을 뛰는 놈 위에 있는 나는 놈으로 살아왔겠지. 하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나는 놈 위에는 그 나는 놈을 한없이 내려다볼 만큼 까마득히 높게 나는 놈이 있다. 하늘 밖의 하늘(天外天). 넌 그걸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건은 그 말과 함께 조용히 마틴을 향해 오른팔을 뻗었다.
그러자 마틴의 주변에 다시 한 번 전능강기가 생겨나며 마틴을 휘감았다.
“커억!”
이번엔 마틴도 그걸 피하지 못했다.
처음 입었던 약간의 내상에 조금 전 입었던 큰 내상이 겹쳐지며 그는 이제 자연의 힘 하나를 사용하는 것도 힘겨운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 상태에서는 절대 전능강기를 막거나 피할 수가 없었다.
주르륵.
전능강기에 휘감긴 마틴은 그대로 허공으로 떠올랐다.
누가 보기엔 그저 마틴이 혼자 허공으로 떠오른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그는 전능강기에 꽁꽁 휘감긴 상황이었다.
그렇게 마틴을 끌어올린 건은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던 조원혁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놀랍게도 조원혁은 소용돌이에 휘말렸음에도 다른 소울러들처럼 먼지가 되어 소멸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몸을 휘감고 있던 전능강기가 그를 지켜준 것이었다.
“조원혁, 넌 저 마틴이란 영감을 믿고 그토록 설쳐댔던 것이겠지? 평생을 너 자신의 힘이 아닌 다른 사람의 위세를 등에 업고 그렇게 설쳐댔으니 이젠 좀 조용히 입 닥치고 살 때가 된 것 같아.”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조원혁은 그랜드마스터였던 마틴마저 너무나 쉽게 건에게 제압당하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그렇기에 그는 그저 빌고 또 빌 수밖에 없었다.
“걱정하지 마. 다른 놈들은 몰라도 넌 살 수 있을 거야. 영원히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세상을 바라만 보면서 살게 될 거야. 넌 네가 감히 넘보지 말았어야 할 사람을 넘봤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야. 그걸 꼭 마음속에 새겨둬.”
건은 실제로 조원혁을 살려둘 생각이었다.
단지 그의 몸을 휘감고 있는 전능강기은 그대로 놔둘 생각이었다.
전능강기에 자신의 혼력을 가득 채워두면 최소 몇십 년 정도는 그대로 형태가 유지될 수 있었다.
물론 형태가 유지될 뿐 특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그것을 감히 파괴할 수 있는 인물은 그랜드마스터들 정도밖에 없었다.
조원혁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 건은 손을 휘저어 그를 다시 멀리 밀어놓았다.
그리곤 여전히 허공에 떠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마틴을 바라보았다.
“엔드류 마틴.”
건은 마틴을 바라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크으으…… 만약 날 죽인다면 미국이 한국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한국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미국에게 점령당할 것이다. 정녕 그렇게 되고 싶은 게냐?”
마틴은 순수하게 소울러의 힘만으로는 절대 건을 쓰러트릴 수가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이젠 미국의 힘을 이용해 건을 협박했다.
“그래서?”
“그래서라니. 네 나라가 무너질 것이란 말이다. 그냥 무너지는 게 아니라 영혼석마저 잃고 민족 자체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아, 인디언들처럼?”
“그래, 인디언들처럼 이 세상에서 지워질 것이다.”
“그 얘길 하면서도 거부감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확실히 인디언들을 배신한 것에 대해 아무런 양심의 가책 같은 걸 받지 않나 보네?”
“내가 왜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하지? 난 더 나은 선택을 했을 뿐이다.”
마틴은 오히려 당당하게 얘기했다.
건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겠지. 배덕의 인장을 지닌 너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옳지.”
“어, 어떻게 내가 배덕의 인장을 지녔다는 걸 알고 있는 게냐?”
“그러니까 넌 아직 멀었다는 거야. 난 네가 지닌 인장의 힘을 처음부터 느꼈는데 넌 아직도 내가 가진 인장의 힘을 못 느끼고 있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넌 그랜드마스터 중에서도 좀 많이 부족한 쪽에 속하는 놈 같아.”
“이, 인장의 주인이었던 게냐? 그랬군. 그래서 내가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진 것이었군.”
마틴은 이제 아예 자기 합리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건은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하던 말을 계속했다.
“너도 인장의 주인이니까 인장의 주인들이 싸우면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지 잘 알고 있겠지?”
“자, 잠깐! 넌 정말 대한민국이 망해도 상관없는 것이냐?”
인장의 주인이 다른 인장의 주인에게 패배했다는 것은 곧 자신이 지닌 인장의 힘을 모두 빼앗기고 소멸 된다는 뜻이었다.
마틴도 그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건의 얘기에 깜짝 놀라며 황급히 다시 한 번 협박했다.
“넌 왜 대한민국이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미국이 지닌 힘이라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래? 그럼 질문을 바꾸지. 넌 왜 네가 여기서 사라지면 미국이 대한민국을 이 세상에서 지워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 그건 당연히 나를 따르는…….”
“푸하하하, 설마 배덕의 인장을 지닌 네가 다른 이들은 널 배신하지 못한다고 얘기하려는 건 아니지?”
“그럴 리가 없다. 그들은 완벽하게 나에게 복종하고 있다.”
“그건 네가 생생하게 존재하고 있을 때나 그런 것이지. 그들이라고 일인자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을 것 같아? 갑자기 네가 사라지고 일인자의 자리가 공석이 된다면…… 과연 그들은 마음을 합쳐 사라진 너를 찾다가 널 결국 못 찾게 되자 널 사라지게 한 원흉을 찾아 복수하려고 할까?”
마틴은 건의 물음에 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네가 정말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미국이 대한민국을 침공하면 대한민국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부분이야. 넌 그 상황에서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상대해 봤으니까 잘 알겠지. 내가 나서는 그 순간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바뀔 것 같아?”
“……날 살려주면 네가 원하는 모든 걸 들어주겠다. 돈? 명예? 뭐든지 들어줄 수 있다.”
건에겐 협박마저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마틴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회유를 시도했다.
“그래도 명색이 그랜드마스터인데 너무 구차하게 느껴지지 않아?”
건은 끝까지 살기 위해 발악하는 마틴을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살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심한 굴욕도 견딜 수 있다.”
하지만 마틴은 그런 것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살 수만 있다면 정말 무슨 짓이라도 할 것처럼 보였다.
“아아, 내가 잠깐 잊었군. 배덕의 인장을 지닌 너는 일단 살아남는 게 가장 중요하지. 그래야 다시 철저히 준비해서 뒤통수를 칠 테니까.”
“아니다. 날 살려만 준다면 평생 네 수족이 되어줄 수도 있다. 아니, 주종의 맹세를 하고 평생 견마지로(犬馬之勞) 하겠습니다.”
“진짜 더 이상은 못 봐주겠군. 배덕의 인장이 지닌 가장 큰 힘이 그 어떤 맹약도 깨어버릴 수 있다는 점인데 무슨 주종의 맹세를 하겠다는 거야? 휴우, 인제 그만 끝내자.”
건은 더 이상은 못 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얘기했다.
“살려주게. 아니 살려주세요.”
끝없이 무너져 내리는 마틴. 하지만 건은 아무리 마틴이 빌고 또 빌어도 그를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엔드류 마틴. 저 세상에 가서는 부디 네가 배신한 모든 인디언에게 용서를 빌 길 바라마.”
콰드득.
건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능강기가 사정없이 압축되었다.
당연히 전능강기에 꽁꽁 감싸져 있던 마틴은 그대로 한 줌의 혈수가 되어버렸다.
그토록 비굴하게 살려달라고 외쳤던 마틴은 결국 비굴한 그 모습 그대로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미합중국의 건국을 뒤에서 조종하고 그로부터 지금까지 쭉 미국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군림해 왔던 마틴.
하지만 그는 자신의 호기심 때문에 너무나도 뼈아픈 최후를 맞게 되었다.
츠츠츳!
한편 마틴이 소멸하자 당연히 배덕의 인장은 건에게 흡수되려고 했다.
하지만 건은 배덕의 인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래 건은 배덕의 인장을 아예 소멸시켜버리려고 했었지만 배덕의 인장이 마틴에게서 떨어져 나와 자신에게 다가온 그 순간 배덕의 인장이 지닌 힘이 단순히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래서 건은 배덕의 인장 중 부정적인 면에 해당하는 부분은 자신의 힘을 사용해 강제로 소멸시키고 긍정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것만 흡수했다.
물론 인장의 힘이라고 해봤자 건이 워낙 어마어마한 경지에 올라 있었기 때문에 그에겐 그저 그런 힘일 뿐이었다.
츠으으, 파아아앗!
어쨌든 나름 정화(?)된 배덕의 인장을 흡수한 건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자신의 혼력과 하나로 합쳤다.
만약 보통의 소울러가 이렇게 인장의 힘을 흡수했다면 당장에라도 혼력이 몇 배로 늘어날 수도 있었지만, 건은 그저 물이 가득 찬 아주 큰 욕조에 물 한 컵 정도만 붓는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건에게 별로 크지 않은 힘이었기 때문에 그걸 흡수해서 안정화하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끝났군.”
배덕의 인장을 완벽하게 흡수한 건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엔 오로지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는 조원혁 밖에 없었다.
조원혁은 정신적으로 너무 심각한 충격을 입었는지 눈빛이 아예 흐리멍덩하게 변해 있었다.
어차피 건은 조원혁에겐 관심조차 없었다. 건이 결정을 내린 그 순간 조원혁은 영원히 지금 모습 그대로 석상처럼 굳어져 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