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147화 (146/175)

# 147

더 소울(The Soul) - 제우스 [2]

제우스는 배덕의 군주와는 또 다른 거물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수호자 세력을 대표해 온 제우스는 유럽 연합 쪽의 소울러였지만 영향력만큼은 전 세계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찾아온다는 얘긴 그들도 이번 일을 단순한 실종 사건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배덕의 군주에 이어 제우스라…… 왠지 우리가 엄청난 일에 휘말린 느낌이네.”

“애초에 신의 흔적이 나타난 시점부터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일들이야. 다만 우리가 그 핵심에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지.”

철민은 신의 흔적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 그것이 대한민국에 나타나면서 대한민국의 경계가 한바탕 시끄러워질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대한민국의 경계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속되고 있었다.

“차라리 그냥 조건희 회장의 제안을 받아들일 걸 그랬나…….”

일이 생각보다 커지는 것 같자 연희는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얘기했다.

“누나, 괜찮아요. 어차피 우리가 그 제안을 받건 안 받건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예요. 조건희는 자신이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애초에 조건희가 알 수 있을 정도의 정보였다면 아무리 조건희가 노력한다고 해도 결국 미국이나 유럽연합도 알게 되었을 거예요. 특히 조건희가 그것을 손에 쥐고 우리를 휘두르려고 했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짜증 나는 일이 되었을 거예요. 결정적으로 우리에게 조건희의 도움 따윈 전혀 필요 없어요.”

건은 걱정하는 연희에게 차분하게 왜 조건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얘기해주었다.

“그리고 모든 걸 다 떠나서…… 전 조원혁이 다시 회복하는 걸 원하지 않아요. 그놈은 아직 제대로 자신의 죗값을 치르지도 않았잖아요.”

건은 조원혁이 싫었다.

그냥 싫은 게 아니라 굉장히 싫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연희를 바라보는 조원혁의 노골적이면서 권위적인 눈빛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겉으로는 포기했지만, 그는 여전히 연희를 끈적끈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연희를 차지하고 싶어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전능심혼을 통해 약간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건은 그걸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조원혁에게 자신이 내린 지옥 같은 형벌을 풀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긴 조건희와 그의 일성 그룹이 대단하다고 해도 미국이나 유럽 연합을 막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

“뭐가 됐건 우리는 그저 우리를 찾아오는 손님들만 상대하면 되는 거야. 복잡할 게 하나도 없어.”

제우스가 온다는 얘길 들었음에도 철민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예전의 철민이었다면 아무리 철민이 금강철벽이라 불리는 강철과 같은 마음을 지닌 인물이라고 해도 약간은 긴장을 했겠지만, 지금의 철민은 진짜 말 그대로 금강철벽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설사 제우스가 자신보다 강하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카페 헤븐에는 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게요. 저도 그냥 간단하게 생각해야겠네요.”

건과 철민의 말을 들은 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 * * *

“어디로 갈까?”

건과 함께 쇼핑을 위해 카페 헤븐을 벗어난 연희는 자신의 오토바이에 건을 태우고 가장 먼저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이 어딘지 물었다.

“일단…… 차를 사죠.”

“차?”

“네, 누나처럼 바이크를 살까도 생각해 봤는데 바이크는 누나가 있으니 전 차를 사려고요.”

“잘 생각했어. 모름지기 남자의 로망은 차지. 무슨 차를 살 거야?”

“오래전부터 페라리를 한 번 몰아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돈에 얽매여 살아갈 때 건은 늘 늘씬하게 잘 빠진 페라리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는 꿈을 꾸곤 했었다.

물론 그땐 헛된 망상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절대 망상이 아니었다.

그의 통장엔 현금만 천억에 가까운 돈이 쌓여 있었다.

아직 팔리지 않은 영혼유물들도 조금 남아 있고 치우의 보고에는 지금까지 판 영혼유물들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유물들이 쌓여 있는 걸 고려하면 이 돈을 오늘 다 써버려도 전혀 아쉬울 게 없는 건이었다.

“알았어. 그럼 바로 페라리 매장으로 가자!”

연희는 고개를 끄덕이곤 곧장 건을 태우고 페라리 매장으로 향했다.

그녀가 건을 데리고 간 곳은 청담동에 있는 페라리 매장이었다.

도산대로를 가로질러 페라리 매장 앞에 바이크를 세운 연희와 건은 망설이지 않고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연희와 건은 지극히 평범하게 입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페라리 매장의 영업사원은 90도에 가깝게 허리를 숙이며 두 사람을 반겨주었다.

그는 흰 장갑을 끼고 연희와 건을 자동차들이 전시된 곳으로 안내했다.

매장엔 생각보다 많은 페라리가 전시되어 있었다.

알루미늄 무광 도색된 페라리 F12 베를리네타부터 페라리 458 스파이더까지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차들이 여기저기에 세워져 있었다.

“멋지긴 하네.”

연희는 페라리를 쭉 둘러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녀의 기준에선 그저 멋지고 비싼 차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에게 차와 바이크는 보다 단순한 이동수단들일 뿐이었다.

현실보단 경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그녀였기 때문에 당연히 다른 사람들과는 가치관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흐음…….”

건의 옆에서는 영업사원이 열심히 차들을 추천했지만 정작 건은 마음에 드는 차가 없는 표정이었다.

그러던 와중 건의 눈에 들어온 한 대의 차가 있었다.

매장 한쪽에 몇 개의 가림막으로 잠시 가려져 있던 한 대의 차.

보통 사람이라면 가림막에 가려 제대로 보지 못했을 차였지만 건은 달랐다.

아무리 이곳이 경계가 아닌 현실이라고 해도 건의 전능안은 얇은 가림막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꿰뚫어볼 수 있었다.

다른 소울러들이 현실에서는 기껏해야 최대 경계의 30% 정도의 힘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과 달리 건은 거의 50%가 넘는 힘을 현실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다.

일단 건이 가진 힘의 크기가 다른 소울러들과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에 건은 현실에서 감히 예상이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저기 저건 뭐죠?”

“어떤…… 아, 저기 가림막 안쪽에 있는 차요? 근데 저건…… 파는 게 아닙니다. 며칠 전 있었던 특별 전시를 위해 들어왔다가 내일 다시 본사로 보내질 차입니다.”

“저 차 이름은 뭐죠?”

“저 차는 라페라리라고 하는 차입니다.”

영업사원은 건이 라페라리를 직접 보고 물어봤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그냥 가림막 뒤에 있는 차 이름이 뭔지 물어봤다고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보통 사람이 가림막을 꿰뚫어 볼 수는 없었기에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저걸 살 수는 없는 건가요?”

“그게…… 이미 일 년 전에 판매 예약이 모두 끝난 차량이고 그나마 그 판매 예약을 할 수 있는 조건도 기존에 페라리 차량을 소유한 분들에게만 기회를 제공해 드렸던지라…….”

영업사원은 말끝을 흐리며 난감해했다.

솔직히 그는 눈앞에 있는 건이 라페라리를 살 수 있을만한 재력이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라페라리의 기본 가격은 무려 한화로 15억 원 정도였다.

여기에 라페라리는 499대만 한정 생산된 자동차였기 때문에 이걸 지금 사려면 프리미엄이 붙어 훨씬 더 비싸질 수밖에 없었다.

20억? 25억? 말로는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금액이었지만 실제로 자동차 한 대를 그 돈을 주고 살만한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페라리를 구매했던 사람만 살 수 있는 것이라면 저 밖에 있는 것 중 아무거나 하나를 사죠. 그러면 일단 조건은 만족하게 하는 것이니 구매할 수 있겠죠?”

“그, 그게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지만 이게 판매를 위해서 들어온 물건이 아니라서…….”

영업사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말끝을 흐렸다.

“세상에 안 파는 물건이 어디 있어요. 이제부턴 당신이 할 일은 저 물건을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지 그걸 알아보는 거예요. 얼마를 내야 가능한지 그런 건 고려하지 말고 무조건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는지만 알아와요.”

지금까지는 옆에서 가만히 지켜만 보던 연희는 영업사원이 자꾸 말끝을 흐리자 특유의 냉정한 목소리로 그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 순간 영업사원은 연희의 카리스마에 완전히 눌려버렸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연희의 기에 제대로 눌린 영업사원은 그녀의 말대로 혹시라도 건이 라페라리를 살 방법이 있을지 찾아보기 위해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연희는 가림막에 가려져 살짝 앞부분의 실루엣만 어렴풋이 보이는 라페라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건아, 저 차가 마음에 드는 거야?”

“네, 저 차가 딱 제 마음에 드네요. 저걸 사야겠어요.”

“사고 싶으면 당연히 사야지. 아마 살 수 있을 거야. 다른 건 몰라도 대한민국에서는 돈은 모든 일을 해결하는 만능열쇠와 같은 존재거든. 물론 경계의 세상이 아닌 현실 세상의 얘기지만 어쨌든 우리에겐 만능열쇠가 충분히 있잖아.”

“그런가요? 하긴 소울러가 되기 전에는 돈을 많이 버는 게 인생의 목표이긴 했었죠.”

“그럼 적어도 그때 세웠던 인생의 목표는 충분히 달성한 거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으니 인생의 목표 역시 똑같이 큰 차이로 변화했죠. 이제 돈은 저에게 단순한 유흥거리 정도밖에 되질 않네요.”

건의 얘길 들은 연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소울러라고 해서 돈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수의 소울러가 돈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건은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소울러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셨죠?”

대략 삼십 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영업사원이 돌아왔다.

“괜찮아요. 그래서 방법은 찾았나요?”

연희는 아까와는 다르게 약간 부드러운 어투로 질문했다.

“백방으로 알아본 결과…… 저기 있는 저 라페라리를 살 방법 있긴 했습니다.”

“거 봐요. 찾으면 있을 거라고 했잖아요.”

“그런데……그 방법이 좀…….”

영업사원은 방법을 찾았다고 했으면서도 계속 말끝을 흐리고 있었다.

“괜찮아요. 그냥 있는 그대로 방법을 얘기해봐요.”

건은 그런 영업사원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아까 얘기하셨던 것처럼 라페라리를 제외한 다른 페라리를 먼저 구매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추가로 라페라리의 기본 가격인 십오억에 프리미엄과 기타 특수비용이 더 붙어서 삼십억을…….”

여기까지 얘기한 영업사원은 사실상 말도 안 되는 판매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차 한 대에 십오억이란 가격도 어마어마한 가격인데…… 거기에 최소 몇억은 하는 페라리를 한 대 더 사야 하고 추가로 차 가격에 맞먹는 십오억의 프리미엄을 더 얹어줘야 한다는 것은 사실상 이 차를 사지 말라는 뜻과 같았다.

“일단 저기 전시되어 있던 페라리 458 스파이더를 사는 걸로 하고 그다음 삼십억으로 라페라리를 사면 되겠군요.”

건은 영업사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구매결정을 내렸다.

그 순간 영업사원은 너무나 깜짝 놀라며 건을 바라보았다.

“저, 정말 사시는 건가요?”

“그럼 제가 여기서 농담 따먹기라도 하고 있는 줄 아셨나요?”

“아, 아닙니다. 바……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스파이더만 해도 거의 5억 정도는 되는 차였다.

그런데 거기에 라페라리를 30억 주고 사겠다는 것은 35억이란 돈을 지금 이 자리에서 쓰겠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영업사원은 혼이 쏙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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