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
더 소울(The Soul) - 하이에나들 [2]
* * * *
우드득!
“커억!”
건은 전능강기를 커다란 손 모양으로 만들어 민재열의 몸을 꽉 잡은 후 자신의 앞으로 당겨왔다.
민재열은 저항할 힘을 모두 잃은 상태였다.
이미 건은 민재열을 적당히 두들겨서 쓰러트린 후 그가 데리고 온 부하들은 전능언의 힘만으로 폐인을 만들어 버렸다.
강력한 전능언의 힘은 그들의 혼력을 모조리 지워버리는 것과 동시에 그들이 가진 경계에 대한 기억마저 완벽하게 없애 버렸다.
이것은 마치 영원히 풀 수 없는 아주 강력한 암시와 같은 것이었다.
전능언의 힘이 그들의 몸속에 남아 그들을 영원히 구속했기 때문에 그들은 이제 더는 경계의 사람들이 아니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민재열 뿐이었다.
“끄으으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당장 건과 연희를 납치할 것처럼 설치던 민재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온몸의 뼈가 부러진 상태로 조금이라도 빨리 건이 자신을 죽여주길 원하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영혼과학자 민재열.”
건은 민재열을 바라보며 천천히 그를 자신의 바닥으로 짓눌려 꿇어 앉혔다.
우드드득!
민재열은 두 무릎이 박살 나며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커어억!”
민재열은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정말 차라리 그냥 빨리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평생을 남들을 짓밟고 살았을 테니 정작 자신이 짓밟히는 것은 생소하겠지?”
“……날…… 죽여줘…….”
민재열은 이미 살기를 포기한 상태였다.
“걱정하지 마. 애초에 널 살려줄 생각은 없었어.”
건은 민재열의 부하들은 적당히 폐인을 만들고 기억을 지우는 것만으로 끝내줬지만 민재열은 그렇게 해줄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넌 인장의 주인이라는 것만으로도 넌 나에게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건은 최초 민재열이 나타났을 때부터 그가 인장의 주인이란 걸 알아차렸다.
민재열이 가진 인장은 ‘지식의 인장’이었다.
그 인장이 있었기 때문에 민재열은 엄청난 수준의 영혼과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설마…….”
“난 솔직히 인장의 주인이 이렇게 흔할 줄은 몰랐다.”
실제로 건은 민재열이 인장의 주인인 걸 알아보고 살짝 놀랐었다.
세상에 수많은 인장이 흩어져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쉽게 연속해서 인장의 주인들을 만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었다.
물론 인장이 지닌 힘은 인장의 종류만큼이나 천차만별이었다. 지금 건이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린 민재열만 해도 그가 지닌 인장의 힘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
굳이 비교한다면 건이 최초로 흡수했던 ‘역천(逆天)의 인장’보다도 훨씬 떨어지는 수준의 인장이었다.
그런데 소울러의 능력 자체는 역천의 인장을 지닌 혈룡보다 지식의 인장을 지닌 민재열이 훨씬 뛰어났다.
이것만 봐도 인장의 힘이 곧 소울러의 능력과 완벽하게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의미 없는 대화는 여기까지만 하자. 민재열, 난 너에게 특별한 감정은 없다. 어디까지나 네가 이런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너의 잘못된 선택에 있다는 걸 잊지 마라.”
스윽!
건은 민재열에게 마지막 얘길 한 후 조용히 전능강기를 폭발시켰다.
콰과과광!
폭발과 함께 소멸한 민재열.
그렇기 영혼과학자 민재열은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다.
민재열이 소멸하자 당연히 민재열이 가지고 있던 인장의 힘은 자연스럽게 건을 향해 날아왔다.
건은 배덕의 인장 때와는 다르게 지식의 인장은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스르르륵!
지식의 인장은 지금까지 건이 흡수한 인장들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힘을 지니고 있는 인장이었다.
“아…….”
지식의 인장은 다른 인장들과 다르게 어떤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수많은 지식이 담겨 있는 일종의 지식 저장매체와 같은 느낌이었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마치 그동안 지식의 인장을 소유한 이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종류의 지식을 차곡차곡 인장 안에 모아놓은 느낌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USB 메모리처럼 지식의 인장 안에는 수많은 소울러들의 지식이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었다.
덕분에 건은 전혀 다른 부분에서 상당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감히 다른 소울러들이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경지에 올라 있는 건이었지만 그런 그도 영혼과학이란 분야는 아주 생소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민재열이 지닌 지식의 인장을 흡수하게 되면서 그는 단번에 영혼과학에 대한 이해도가 거의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갔다.
물론 건은 이미 영혼과학은 절대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의 힘을 얻은 상태였지만 그래도 전혀 모르고 있던 것들을 깨달음을 통해 알게 된다는 것은 상당히 즐거운 일이었다.
‘영혼과학이란 게 이런 것이었군.’
대략 이십 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건은 지식의 인장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지식의 인장보다 훨씬 더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었던 배덕의 인장을 흡수하는 데 걸린 시간이 불과 5분도 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지식의 인장은 정말 긴 시간 동안 흡수한 것이었다.
건이 이렇게까지 시간을 투자하면서까지 공들여 지식의 인장을 흡수한 것은 그만큼 지식의 인장에 담겨 있던 것들이 마음에 든다는 뜻이었다.
“끝났어?”
연희는 건이 눈을 감고 가만히 서서 뭔가 명상을 하는 분위기를 풍기자 이십 분 동안 그를 보호하면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 누나. 미안해요. 생각지도 않게 좋은 걸 얻어서 잠깐 집중을 했네요.”
“괜찮아. 그나저나 우리가 신의 흔적에서 뭔가를 얻었다고 소문이 퍼진 것 같은데…… 이거 생각보다 더 일이 귀찮아진 것 같네.”
“그러게요. 조건희가 적당한 수준에서는 정보를 통제할 줄 알았는데…… 역시 일성의 능력으로는 이 정도의 정보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게 불가능한 게 맞았네요.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진짜 우리에게 찾아오는 손님만 상대하면 될 것 같아요.”
“결과적으론 조건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게 아주 정확한 판단이었네. 어쨌든 오늘은 쇼핑할 기분이 안 난다. 그냥 돌아가자.”
“쩝, 간만에 누나한테 제대로 쏘고 싶었는데…… 너무 아쉽네요.”
“네 마음만 고맙게 받을 게.”
“전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고요.”
“알았어. 그럼 오늘 쇼핑 대신에 다음에 제대로 온종일 놀아줘.”
“네, 네? 다, 당연히 누나가 원하면 전 언제라도 괜찮아요.”
건은 연희의 갑작스러운 데이트 신청에 깜짝 놀라며 당황했다. 그는 연희에게 은근히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긴 했었지만, 그녀가 이렇게 확실한 대답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었다.
“기대할게.”
연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짧게 대답했다.
결국, 보기와 다르게 연예경험이 너무나 없었던 건의 지지부진한 대쉬를 보다 못한 그녀가 한 발자국 더 건에게 다가가는 걸로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더 빠르게 깊어져만 갔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따뜻한 훈풍(薰風).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 이 순간 건과 연희를 휘감는 이 바람은 따뜻함을 넘어 뜨겁기까지 했다.
* * * *
민재열 이후 카페 헤븐에는 능력도 안되는 하이에나들이 종종 나타났었다.
하지만 놈들은 대부분 연희 수준에서 정리되었다.
연희는 그녀가 선언했던 것처럼 최근 들어 아주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특히 건의 S룸은 그녀에게 정말 최고의 수련장소였다.
연희는 S룸에서 철민과 건에게 집중적으로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그랜드마스터인 철민과 그랜드마스터마저 초월한 건의 가르침들은 하나하나가 대단한 것들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녀의 실력은 일취월장(日就月將)할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그녀는 매우 뛰어난 재능을 지닌 소울러였다.
비록 그녀는 함께 있는 두 사람 덕분에(?) 졸지에 평범한 소울러처럼 보였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는 상위 1%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재능을 지닌 소울러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건과 철민의 가르침을 마치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빠르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더욱이 이번엔 연희 자신도 꽤 절실하게 강해지길 원했기 때문에 그녀는 더욱 빠르게 강해져 갔다.
또한, 건은 그녀를 위해 지식의 인장을 통해 얻은 능력을 한껏 이용해 그녀의 무기들을 상당히 업그레이드시켜주기도 했다.
건은 새롭게 얻은 이 능력을 이용해 미군에게서 빼앗아온 각종 장비를 개조 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개조된 미군의 장비는 원래 미군이 사용하던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난 성능을 지니게 되었다.
건은 그런 식으로 연희를 가르치는 것과 동시에 온갖 물건들을 만들어내거나 개조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간간이 몇몇 하이에나들이 나타나는 걸 제외하면 가장 굵직한 손님이라 할 수 있는 미국과 유럽연합 그리고 일성 쪽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연희는 그것에 대한 정보를 구해보려고 천리안에 문의를 해보기도 했지만, 천리안도 정확한 정보를 구해주진 못했다.
이 부분에서 연희는 살짝 답답해했지만 정작 건과 철민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그들은 오히려 연희를 다독이며 지금까지처럼 그저 기다리면 된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동시에 건은 드디어 용기를 내어 연희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건과 연희의 공식적인 첫 데이트는 다른 보통의 연인들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간단히 술을 한잔하는 기본적인 데이트 코스…… 하지만 건은 이 기본적인 것들만으로도 아주 충만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연희 역시 건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동안 서로 표현을 하지 않았을 뿐 이미 오래전부터 서로 애틋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마치 물을 막았던 둑에 약간의 틈이 생기자 그 틈을 통해 물이 쏟아지며 둑 전체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처럼 두 사람의 감정 역시 급속도로 서로 뒤엉키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동시에 손을 잡고 평범한 연인들처럼 바짝 붙어서 데이트를 즐겼다.
완연한 봄.
이게 바로 두 사람이 느끼고 있는 감정의 계절이었다.
“누나, 나 이제 누나를 누나라고 못 부를 것 같아.”
건은 뭔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앞에 놓여 있던 맥주 한 잔을 한 번에 들이킨 후 연희를 똑바로 바라보고 얘기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누나가 뭐라고 해도 이젠 연희라고 부를 거야.”
“뭐, 뭐야 갑자기…… 그래도 이름을 부르는 건…….”
당황하며 말을 더듬는 연희.
이 모습만 놓고 보면 그녀는 절대 얼음여왕이라 불릴 자격이 없어 보였다.
“이제부턴 절대 누나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알았지 연희야!”
“야! 너무 맞먹는 거 같잖아.”
“그럼 내가 사랑하는 여자한테 언제까지 누나라고 불러. 그냥 받아들여.”
“그래도 너무 갑작스럽잖아.”
“이게 뭐 갑작스러워. 진짜 갑작스러운 건.”
파팟!
건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신이 앉아있던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런 건이 다시 나타난 곳은 연희의 옆자리였다.
건은 현실에서 고속이동 능력을 사용하며 동시에 연희의 머리를 감싸며 그녀의 입에 키스했다.
“웁.”
연희는 갑작스러운 건의 키스에 당황했지만 이내 건의 리드에 몸을 맡겼다.
말없이 혀가 뒤엉키며 두 사람의 몸이 순간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렇게 10분이 넘게 이어지던 키스가 끝나며 건은 행복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이런 게 진짜 갑작스러운 거지.”
“야…… 너…….”
연희는 마치 화난 것처럼 건을 바라보았지만, 실제론 전혀 화가 나지 않았었다.
“그렇게 바라보지 마. 또 갑작스러워지고 싶잖아.”
건은 그런 연희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웃었다.
판타지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엘프가 이렇게 생겼을까?
두 볼에 살짝 홍조를 띠고 있는 건을 바라보고 있는 연희는 확실히 압도적이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