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
더 소울(The Soul) - 어둠의 부활.
@ 어둠의 부활.
세상이 모두 ‘신의 흔적’에 관심이 쏠려 있을 그때.
세상의 다른 한쪽에서는 ‘신의 흔적’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더 큰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아주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충격적인 일은 너무나 은밀하게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 일을 눈치채질 못했다.
“커억…….”
털썩, 쓰러지는 한 남자. 그의 이름은 유토 마사히로.
그는 일본 소울러들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남자였다.
풍신(風神).
그는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불렸다.
풍신 마사히로…… 그는 일본의 유일한 그랜드마스터였다. 일본의 소울러들은 성향과 관계없이 모두 그를 따랐다.
당연히 그는 강했다.
특히 그는 자신만의 강력하고 특별한 술법(術法)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는데 이 술법이 워낙 강력해 같은 그랜드마스터들도 풍신과의 싸움은 쉽지 않다고 얘기했었다.
하지만 그 정도의 평가를 받던 그가 무려 7일 밤낮을 저항하다가 결국 쓰러졌다.
“……아…… 직…… 난…….”
쓰러진 상태에서도 풍신은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7일 동안 쉬지 않고 적과 싸운 풍신의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절대 마르지 않을 것 같은 그의 혼력은 이미 바닥나버린 지 오래였고 어지간한 상처는 순식간에 회복하던 그의 육체엔 치명적인 상처만 8개가 넘게 있었다.
“이런, 이런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거야?”
풍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한 사람.
아니, 사람이라고 표현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다.
마치 그림자로 만들어진 것 같은 사람. 분명 형태는 사람과 같았지만, 그에게선 전혀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질 않았다.
“쿨럭, 쿨럭…… 넌 절대…….”
풍신은 피를 계속 토해내며 그를 노려보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풍신은 그에게 패배했다. 하지만 사실 실력 자체는 풍신이 그보다 더 뛰어났다.
실제로 처음엔 풍신이 그를 압도 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압도했을 때 놈을 끝장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싸움이 장기전이 되자 결국 풍신은 놈에게 역전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아무리 그랜드마스터라고 해도 풍신은 분명 힘의 한계가 존재하는 인간이었고 놈은 한계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고밀도의 에너지 덩어리였다.
당연히 장기전에선 놈이 더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풍신이 한 가장 큰 실수는 끝낼 수 있을 때 무리를 해서라도 끝내지 못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이런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
“인제 그만 이 지겨운 싸움을 끝내야겠군.”
스윽.
그림자 인간은 천천히 풍신을 향해 다가갔다.
지금 놈이 원하는 것은 풍신의 육체였다.
놈은 풍신의 벌써 몇 달 전부터 계속 풍신을 육체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놈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따로 있었다.
놈이 대한해협을 건너 이곳 일본까지 넘어온 이유는 단순히 그랜드마스터의 육체를 차지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영광스럽게 생각해라. 너의 육체는 이제 모든 존재의 머리 위에 군림하게 될 것이다. 비록 너의 영혼은 소멸하겠지만, 그것만으로도 넌 대단한 영광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노오옴!!”
그림자 인간의 말에 풍신은 정말 피를 폭포수처럼 토해내며 소리를 질렀다.
부들부들 떠는 풍신.
하지만 그는 이제 더는 저항할 힘이 없었다.
“이놈이라니 소멸하기 전에 이거 한 가지만 알아둬라. 난 이제 이 세상의 모든 어둠을 지배하고 나아가 세상 전체를 어둠으로 물들일 암흑마신(暗黑魔神) 님이시다.”
자신을 신이라 칭하는 그림자 인간, 그는 바로 한국에서 이미 한 번 토벌 당했던 어둠의 왕이었다.
그는 자신이 예언한 대로 다시 부활했다.
지리산 마영암굴(魔影暗窟)에서 극적으로 부활한 그는 예전과는 또 다른 힘을 얻었다.
분명 예전보다 훨씬 특별하고 강해졌지만 그럼에도 그는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한 번의 실패로 소울러들이 가진 힘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된 그는 아주 치밀하게 움직였다.
특히 그는 한국의 소울러들은 이미 한 번 자신을 경험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더 까다로울 것으로 생각하고 아예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으로 넘어와 버렸다.
그렇게 일본으로 넘어온 암흑마신은 상당히 오랫동안 어둠 속에 숨어서 앞으로의 어떻게 해야 이 세상을 온통 어둠으로 물들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오랜 고민을 한 끝에 그는 가장 확실한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물론 쉽진 않은 방법이었다.
아주 강력한 힘을 얻은 암흑마신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암흑마신은 아주 치밀하게 준비를 한 끝에 결국 자신의 계획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웠던 부분을 완벽하게 처리 할 수 있었다.
스르르르륵.
암흑마신은 피를 토하고 있는 풍신의 육체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풍신은 벼락에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만약 그가 정상적인 몸 상태였다면 절대 암흑마신의 침투를 허락하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 그의 몸 상태로는 암흑마신이 자신의 몸을 차지하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암흑마신이 풍신의 몸을 차지하기 시작하자 당연히 원래 그 육체의 주인이었던 풍신의 영혼은 조금씩 소멸하기 시작했다.
‘끄어…….’
풍신은 어떻게 해서라도 영혼이 소멸 되는 걸 막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그는 암흑마신을 막지 못했다.
결국, 수백 년 동안 일본의 소울러들을 이끌었던 풍신 유토 마사히로는 단 한 번의 방심 때문에 치욕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암흑마신은 그토록 원했던 풍신의 육체를 얻었다.
그 얘긴 풍신의 영혼이 완전히 소멸하였다는 뜻이기도 했다.
“크크크크크크,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이 육체야말로 나를 위해 준비된 최고의 그릇이었어!”
풍신의 육체를 차지한 암흑마신은 매우 기뻐했다.
그랜드마스터의 육체는 그 자체로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암흑마신은 다시 한 번 성장할 수 있었다.
“이젠 진짜 마신(魔神)의 자리에 오를 모든 준비가 끝났다. 남은 건…… 차근차근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이는 것뿐이다.”
암흑마신은 몇 번이고 새로 얻은 자신의 육체를 내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가장 어렵게 생각한 부분을 완벽하게 해결한 이상 이제는 차분하게 자신이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되었다.
‘일단…… 이 녀석의 심복들을 모조리 나의 권속들로 만들어야겠군.’
암흑마신은 현재 자신이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부하들이 가장 필요했다.
사실 권속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실력 있는 믿을만한 권속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예전에 암흑마신이 자신의 오른팔로 여겼던 김광택과 같은 혼마를 만들려면 상당히 공을 들일 필요가 있었다.
‘믿을만한 권속들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어둠으로 물들일 수만 있다면…… 그때부터 난 진정 마신의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암흑마신은 과거 어둠의 왕일 때 이미 한 번 실패를 경험했었다.
그 실패 덕분에 그는 좀 더 치밀하고 음흉해졌다.
“난 이제 왕을 넘어 신이 될 것이다.”
마치 선언을 또박또박 얘기하는 암흑마신.
그는 확실히 어둠의 왕일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 * * *
암흑마신이 일본에서 자신의 계획을 하나씩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던 그 사이 한국에서는 폭풍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카페 헤븐에 모든 소울러의 관심이 집중된 상태였다.
하지만 정작 소울들의 관심이 집중된 카페 헤븐은 너무나 평온했다.
어차피 너무 관심이 집중되어 손님도 거의 오지 않았기 때문에 건과 철민 그리고 연희는 대부분의 시간을 S룸에서 보내며 모두 연희의 수련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연희의 실력은 불과 한 달 정도 만에 정말 엄청나게 많이 상승했다.
사실 현실 시간으론 한 달이었지만 S룸에서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열 달에 가까운 시간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녀의 실력은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특히 건은 연희와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하면서 그는 그녀의 실력을 더욱 적극 끌어올리고 있었다.
콰과과과광!
연희는 양손에 들고 있는 벌컨포에서 쏟아져나온 개량된 광혼탄(光魂彈)은 사방을 초토화했다.
이것은 그녀가 자랑하는 세 가지 특수 병기 중 하나인 빛의 심판이었는데 원래도 위력이 대단하던 이 병기였지만 건이 개량해준 이후로는 예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병기가 되어 있었다.
건은 광혼탄도 개량해 벌컨포에 특화된 ‘광혼탄-S’를 만들어줬기 때문에 위력은 여기서도 다시 한 번 또 증가하였다.
어쨌든 지금 그녀가 사용하는 이 빛의 심판은 소울마스터들도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대단한 위력을 지닌 무기였다.
하지만 그 대단한 무기의 집중포화를 받고도 멀쩡한 이가 한 명 있었다.
“아니지, 지금보다 공격범위를 조금 더 줄여야 해. 잔챙이들을 상대할 땐 예전처럼 넓게 난사하듯이 쏴도 상관없지만 소울마스터 정도의 실력자들에겐 범위를 최대한 줄여야 해.”
건은 빛의 심판에서 쏟아져 나온 광혼탄을 몸으로 받아내며 그 와중에 연희에게 조언하고 있었다.
“더 줄이라고? 휴, 근데 그게 쉬운 게 아니야.”
“알아. 하지만 최소한 가로세로 일 미터 정도 되는 공간 안에 모든 사격을 집중시킬 수 있어야 해.”
“후움, 알았어. 노력해볼게.”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내가 저번에 알려준 대로 빛의 심판과 네가 하나가 되도록 노력해봐. 그렇게만 할 수 있으면 가로세로 일 미터가 아니라 가로세로 삼십 센티미터 안에도 포격을 집중시킬 수 있을 거야.”
“나도 네가 내 몸에 혼력을 넣어 강제로 느끼게 해준 그 감각이 중요하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그게 말처럼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래? 그럼 그 감각을 한 번 더 느끼게 해줄까?”
뭔가 살짝 표정이 변하는 건. 연희는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너 또 그 핑계 대고 스킨쉽 하려고 그러는 거지?”
“아, 아니야. 날 어떻게 보고!”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했던가? 건이 황급히 부정하자 연희는 슬쩍 실눈을 뜨며 건을 바라보았다.
“너 요즘 너무 밝혀.”
“아니라니까.”
“그래? 아쉽네. 맞는다고 하면 못 이기는 척 부탁하려고 그랬는데.”
“그럼 맞는 걸로 하자!”
“이미 버스는 지나갔어.”
“크으…….”
연희는 건을 잔뜩 놀리며 혀를 삐쭉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본 건은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전능보를 이용해 순간 연희의 등 뒤로 공간이동을 했다.
“지나간 버스는 이렇게 다시 따라잡으면 되잖아.”
그리곤 연희를 뒤에서 포옹하며 그녀의 몸에 가볍게 자신의 혼력을 흘려 넣었다.
“아…….”
그 순간 연희는 짜릿한 느낌을 받았다.
건은 단순히 혼력을 강제로 흘려 넣은 게 아니라 고도로 정화된 너무나도 깨끗한 혼력을 이용해 그녀의 몸 전체를 순간적으로 자극했다.
이건 일종의 혼력을 이용한 벌모세수라고 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연희의 혼력은 빠르게 증가했다.
“야, 너 자꾸 말도 안 하고 이럴래.”
연희는 건을 나무라듯 얘기했지만 정작 그녀는 건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말하고 하면 재미없잖아. 조용히 해봐. 이제 진짜 제대로 어떤 감각인지 알려줄게.”
건은 슬쩍 미소 지으며 연희의 몸 안으로 흘러들어 간 혼력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빛의 심판과 그녀가 하나가 되도록 해주었다.
사실 이렇게 자신의 혼력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능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건은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었다.
연희의 실력이 그녀가 가진 재능을 초월한 수준으로 빠르게 증가하는 이유는 이런 건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연희를 안고 있던 건의 표정이 살짝 찡그려졌다.
“이런…….”
“응? 왜 그래?”
“아무래도 나가봐야겠다.”
“무슨 일인데?”
“카페에 손님이 오신 거 같아.”
“손님?”
“응, 우리가 기다리던 그 손님이 지금 막 카페로 들어왔어.”
건은 치우의 보고 안에 있으면서도 카페의 상황을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그가 S룸과 통하는 출구를 카페 헤븐에 만들어놨기 때문이었다.
“기다리던 손님이라면…….”
“그래, 제우스. 유럽연합을 대표하는 그랜드마스터 제우스가 찾아왔어.”
건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하며 조용히 카페 헤븐으로 연결되어 있던 출구를 열었다.
제우스의 방문.
이것은 곧 폭풍우의 눈에도 본격적으로 폭풍이 몰아치려고 한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