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154화 (153/175)

# 154

더 소울(The Soul) - 압도(壓倒) [2]

제우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미 그는 건에게 심신(心身)을 완벽히 제압당한 상태였다.

“잊지 마라. 난 두 번의 기회를 주진 않는다.”

파아아앗!

건의 마지막 말과 함께 경계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제우스는 경계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간신히 고개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땐 이미 건은 치우의 보고를 열고 그곳에서 사라진 후였다.

“……이건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제우스는 아직도 몸을 조금씩 떨고 있었다.

조금 전 죽기 바로 직전까지 내 몰렸었던 그였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죽음 같은 게 아니었다.

그는 죽는 것을 두려워할 인물이 아니었다.

문제는 죽음으로 가는 과정에서 겪은 극한의 두려움이었다. 항거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에 대한 두려움.

그것이 제우스를 여전히 떨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시킨 대로 모든 일을 최대한 조용히 마무리 짓는 것뿐이다.’

제우스는 감히 건에게 반발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를 짓누르는 극한의 두려움.

그것은 마치 방금까지 그를 짓누르던 그 엄청난 압력처럼 그의 온몸을 사정없이 찍어 누르며 그를 굴복시켰다.

* * * *

제우스는 건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

그는 카페 헤븐을 포위하고 있던 모든 소울러를 퇴각시켰다.

모든 소울러를 원래의 자리로 복귀시킨 그는 자신이 가동할 수 있는 모든 채널을 이용해 카페 헤븐을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그의 행동은 마치 카페 헤븐으로부터 뭔가를 얻어내고 카페 헤븐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보니 이젠 많은 소울러가 카페 헤븐이 아닌 제우스에게 관심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제우스는 카페 헤븐과는 다른 존재였기 때문에 그 누구도 함부로 제우스에게 무엇을 얻었는지 묻지를 못했다.

또한 제우스 역시 자신이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얘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실제로 자신이 뭔가를 얻은 것처럼 행동했다.

그는 이렇게 해야지만 카페 헤븐에 쏠려 있던 관심이 사라진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예 자신을 이용해 그들의 관심을 계속 분산시켰다.

그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어떻게 해서라도 건의 방문을 피하고 싶은 마음.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걸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이 정도의 피해는 감수할 수 있었다.

이렇게 건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그랜드마스터의 정신마저 무너트렸다.

그 결과 제법 커질 것 같은 이번 일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제우스는 건의 예상보다 훨씬 더 뛰어나게 이번 일을 정리했다.

과연 유럽을 대표하는 그랜드마스터다운 일 처리였다.

덕분에 카페 헤븐의 세 사람은 아주 여유로워졌다.

물론 아직까진 카페 헤븐 쪽을 주시하는 소울러가 몇몇 남아 있었지만, 그랜드마스터까지 손을 뗀 지금 카페 헤븐을 위협할 곳은 거의 없었다.

굳이 꼽아보라면 일성그룹 정도였는데 갑자기 제우스가 철수하는 바람에 그들은 제대로 기회도 잡지 못하고 계속 카페 헤븐의 주변만 맴돌고 있었다.

“이렇게 깔끔할 게 처리될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제우스가 대단하긴 하네요.”

연희는 다시 한 번 카페 바깥쪽을 바라보며 신기하단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지, 제우스가 대단한 게 아니라 건이가 대단한 거지.”

옆에 앉아서 모닝커피를 음미하던 철민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연희의 말을 고쳐주었다.

“하긴 그게 맞네요. 제우스를 굴복시킨 남자! 백건!!”

연희는 잔뜩 과장된 표정으로 말하며 건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하고 다 먹었으면 이제 다시 수련하러 가자. 소울마스터의 경지가 눈앞이야. 집중해야 해.”

건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제우스를 압박해 이번 일을 말끔히 해결한 후 그 뒤로는 계속 연희의 수련에만 집중하는 중이었다.

“으으, 좀만 더 쉬자.”

연희는 새삼 건이 얼마나 지독한 스승인지 매일매일 깨닫고 있었다.

“지금 쉴 시간이 어디 있어. 쓸데없는 소린 거기까지 하고 일어나. 네가 간신히 깨달은 그 감각이 유지되고 있는 지금 곧바로 벽을 넘어야 해. 조금이라도 지체하다가 다시 감을 잊으면 또 한참을 고생해야 한다고.”

“휴, 알았어요.”

연희는 건이 왜 이렇게 지독하게 구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금방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첫 번째 목표인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기만 하면 그다음부터는 조금 더 여유 있게 수련할 수 있으니까 조그만 참고 힘내 보자.”

건은 연희를 소울마스터의 경지에 올려놓은 것을 그 어떤 일보다 우선으로 여겼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이 철민과 연희였는데 그 중 철민은 사실상 도움이 필요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연희만 조금 더 실력을 올리면 아무래도 마음이 상당히 편안해질 수 있었다.

정확히 3일 후 연희는 소울마스터가 되었다.

물론 S룸에서 보낸 시간은 대략 20일이 넘었지만 어쨌든 연희는 아주 훌륭하게 건의 가르침을 소화해냈다.

지금이야 그랜드마스터인 철민과 그 경지도 초월한 건이 있어서 소울마스터가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었지 원래 소울마스터는 경계의 세상에서 상위 1% 안에 들어가는 대단한 경지였다.

당연히 자부심을 품어도 되는 일이었다.

“기분이 어때?”

철민은 소울마스터가 된 연희를 진심으로 축하하며 그녀를 향해 물었다.

“그냥 얼떨떨해요. 그토록 원하던 걸 이렇게 빨리 이뤄냈는데…… 막상 오르고 나니 뭔가 더 까마득히 높이 솟은 다른 벽을 만난 기분이네요.”

“후후후, 나도 그랬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면 세상을 오롯이 내려다 볼 것만 같았는데 막상 소울마스터가 되고 나니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었지.”

철민은 오래전 자신이 소울마스터가 되었을 때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 벽도 언젠간 넘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그 벽을 넘는 것도 도와줄게.”

건은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연희에게 얘기했다.

“말만이라도 고맙네. 하지만…… 당분간은 좀 쉬자. 인간적으로 너무 수련에만 집중해서 이젠 수련에 수자만 들어도 토할 것 같아.”

연희는 강해지는 것은 정말 좋았지만 그 강해지는 과정이 너무나 힘들어 살짝 질려있는 표정이었다.

“하하하, 알았어. 나도 무리해서 계속 달릴 생각은 없어. 당분간은 느긋하게 일상생활을 즐기자고. 아, 그런 의미에서 오랜만에 사냥이나 가볼까?”

“사냥? 흐음, 나쁘지 않네. 솔직히 치우의 보고에서 매일 같이 무시무시한 혼마들만 상대하다 보니 작고 귀여운 암괴들이 너무 그리웠어.”

연희는 소울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매일 같이 건이 치우의 보고에 가둬놓은 마왕급 혼마들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

물론 옆에서 건이 진짜 위험할 때마다 도와줬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건 정말 최소한의 도움일 뿐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손짓 한 번에 픽픽 쓰러지는 암괴들이 너무나 그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 오랜만에 스트레스도 풀 겸 가볍게 사냥 여행이라도 떠나면 좋겠네. 어때요 사장님 카페 문 닫고 셋이 같이 떠나죠.”

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철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철민은 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안가. 설마 날 눈치 없는 아저씨로 본 건 아니겠지? 난 괜히 둘 사이에 껴서 안 봐도 되는 염장질을 보고 싶진 않아.”

“사장님, 저희가 언제 염장질을 했다고…….”

“진짜 염장은 시작도 안 했는데…….”

“진짜 괜찮으니까 둘이 갔다 와. 어차피 난 할 일이 많아.”

철민은 손사래를 치며 다시 한 번 거절했다.

그의 태도가 분명했기 때문에 건과 연희도 더는 권유를 하긴 힘들었다.

“그럼 우리끼리 오붓하게 갔다 올게요.”

건은 철민의 배려가 고맙다는 표정으로 크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사냥 일정은 내가 짤게.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천리안에서도 우리에게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서 꽤 미안해하고 있으니 걔들에게 따끈따끈한 암괴나 혼마들이 어디에 나타났는지 모두 알아내야겠어.”

오랜만에 사냥이라 그런지 연희는 살짝 들뜬 표정이었다.

* * * *

연희는 경기도 남부를 시작으로 충청도와 전라도 그리고 경상도로 이어지는 사냥 일정을 잡았다.

일정의 마지막은 제주도였다.

사실 원래는 경상도, 정확히는 포항에서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는 것이었지만 건이 마지막에 제주도에서의 2박 3일 일정을 추가했다.

다분히 흑심이 들어간 일정 추가였지만 연희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여 줬다.

대략 20일 정도의 일정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일정을 잡자마자 곧장 카페를 떠났다.

어차피 준비할 것이라고 해봤자 연희의 광혼탄 정도였는데 이미 치우의 보고에 개량된 광혼탄이 잔뜩 쌓여 있었다.

오히려 그들을 잠시나마 고민하게 한 것은 이동 수단이었다.

연희는 바이크가 편하다고 얘기했지만, 건은 무조건 자신의 ‘라페라리’를 이용하자고 얘기했다.

이미 건은 ‘라페라리’를 자신이 얻은 영혼과학의 지식을 이용해 매우 흥미롭게 개조해 놓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그는 그걸 몰고 사냥에 나서고 싶어 했다.

연희도 굳이 바이크가 아니라고 해도 큰 상관은 없었기 때문에 오래 고민하지 않고 건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라페라리의 배기음은 듣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건과 연희가 탄 라페라리는 근처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한눈에 받았다.

페라리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페라리라고 불리는 라페라리.

보통의 남성이라면 보는 순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먼저 하는 차답게 도로 위의 운전자들은 잠시 차가 정차될 때마다 라페라리에 시선을 고정했다.

대놓고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연희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했다.

이래서 그녀는 라페라리가 아닌 자신의 바이크를 타고 떠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라페라리의 선팅이 워낙 진하게 되어 이어 밖에서 안을 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만약 이거라도 없었으면 그녀는 절대 라페라리를 타지 않았을 것이다.

“으으, 불편해.”

연희는 고개를 작게 흔들며 중얼거렸다.

“너도 참 특이해. 보통 너 정도 되는 미모를 지녔으면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데…….”

“난 정말 싫어.”

연희는 딱 질색이란 표정으로 대답했다.

“뭐, 전 당신의 아름다움을 독점할 수 있어서 좋아요.”

“느끼해! 내가 그렇게 느끼하게 얘기하지 말라고 했잖아.”

“매일 담백한 말만 들으면 질려. 가끔은 이렇게 느끼한 말도 들어줘야 담백한 말이 더 기분 좋게 들리는 거야.”

“됐거든.”

장난스럽게 정색하며 손사래를 치는 연희. 건은 그런 연희의 모습을 보고 너무나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정말 이 모습만 보면 연희는 절대 얼음여왕이란 별칭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건과 철민 딱 두 사람뿐이었다.

“정 시선이 신경 쓰이면 스텔스 모드를 켜줄까?”

“스텔스 모드? 그게 뭐야?”

“뭐긴 내가 이 차에 달아놓은 몇 가지 영혼 과학 능력 중 하나지.”

“그걸 작동시키면 어떻게 되는 건데?”

“경계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면 우리를 볼 수 없게 되지.”

“응? 그게 가능해?”

“가능해. 이 차에만 제한적으로 경계를 적용하고 그것을 활성화하면 이 차는 현실에서 순식간에 사라지지. 물론 이걸 유지하려면 막대한 혼력이 필요하지만, 나에겐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니까.”

“역시 대단하네.”

“후훗, 이 정도쯤이야.”

“좋아. 그럼 스텔스 모드 가동!”

연희는 마치 함선의 함장이라도 된 것처럼 큰 소리로 명령하며 손가락을 앞쪽으로 쭉 뻗었다.

“스텔스 모드 가동!”

건은 그녀의 행동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복명복창하며 곧장 스텔스 모드를 작동시켰다.

츠리리릿!

그러자 라페라리에 내장된 복잡한 마법진에 건의 막대한 혼력이 쏟아지며 불가능할 것 같은 이동형 인공경계설정기술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현실에서의 라페라리는 스텔스 모드가 작동되는 것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되자 라페라리를 한참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순간 자신들이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도 알지 모른 체 멍한 표정으로 라페라리가 있었던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계의 힘이 순간적으로 그들의 기억을 지워버린 것이었지만 그들은 그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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