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155화 (154/175)

# 155

더 소울(The Soul) - 역사는 이루어져야 한다 [1]

@ 역사는 이루어져야 한다.

스텔스 모드를 작동시킨 라페라리는 빠른 속도로 질주해 서울을 벗어났다.

건과 연희가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경기도 용인이었다.

정확히는 경기도 용인시 지곡동.

그곳에 있는 지곡저수지에서 상급의 경계가 만들어졌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쪽으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두 사람은 경부고속도로를 내달려 수원IC로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현재는 스텔스모드가 풀어져 있었다.

스텔스 모드는 굳이 유지하고자 한다면 언제까지라도 계속 유지할 수 있었지만 비효율적인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건은 서울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스텔스 모드를 풀러버렸다.

어차피 이제는 주변의 시선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아무 이유 없이 혼력을 낭비하며 스텔스모드를 유지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수원IC를 빠져나와 지곡동까지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한국 민속촌을 지나쳐 지곡동에 도착한 건과 연희는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타고 지곡저수지까지 올라갔다.

끼이익.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운 두 사람은 차에서 바로 내리지 않고 조용히 앞쪽의 저수지를 바라보았다.

“여기에 상급 경계가 언제 생겼다고?”

“천리안에서 준 정보에 따르면 삼일 전에 생겼데.”

“흐음…… 이거 아무래도 진화가 일어난 것 같은데.”

“응? 진화?”

진화란 경계가 성장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곳의 경계는 이미 상급을 넘어서 최상급에 가까운 경계가 되었어. 범위 자체는 넓지 않지만, 등급은 확실히 올라갔네.”

“그래? 그럼 어쩜 혼마도 나올 수 있겠네? 이거 시작부터 재수가 좋은 걸.”

보통의 헌터라면 긴장부터 할 상황이었지만 건과 연희는 보통의 헌터가 아니었다.

연희는 당장 경계가 최상급 경계에 가깝게 진화 되었다고 하자 뭔가 신나는 표정으로 웃었다.

확실히 그녀 역시 소울마스터가 된 이후 생각하는 게 전과 많이 달라진 느낌이었다.

“혼마가 나올 수도 있고 최상급 암괴가 나올 수도 있고…… 정확한 것은 들어가 보면 알거야.”

“그럼 다른 헌터가 오기 전에 후딱 사냥을 끝내자.”

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건은 그런 그녀를 붙잡았다.

“잠깐 굳이 내릴 필요없어.”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단순히 이 차에 스텔스 기능만 추가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그럼 설마…….”

“그래, 이 차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그아아앙!

끼기기기기긱!

건은 가속페달을 강하게 밟자 라페라리는 총에서 쏘아진 탄환처럼 앞을 향해 튀어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거짓말처럼 라페라리가 경계의 선(線)을 넘었다.

파앗!

“와…… 이게 가능한 거였어?”

이번에도 연희는 깜짝 놀라며 중얼거렸다.

“이건 오히려 스텔스 기능보단 쉬운 거야.”

“하긴 생각해보니 그리 특별한 게 아니네. 미국 애들이 소울 머신을 생각하면 이것도 충분히 가능하겠구나.”

“아, 그거랑은 조금 다르긴 해. 그래도 뭐 원론적으로 들어가면 비슷하긴 하지. 어쨌든 그리 어려운 건 아니야. 다만 별로 의미가 없어서 아무도 이런 짓을 하지 않았던 것뿐이지.”

사실 경계에 차를 끌고 들어온다고 해서 특별히 좋을 것은 별로 없었다.

어차피 소울러는 경계 안에서 차보다 더 빨리 그리고 훨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에 차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짐이 될 수 있었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 흩어져서 찾을까?”

“굳이 귀찮게 우리가 왜 찾아.”

건은 슬쩍 웃으며 라페파리의 창문을 내렸다.

지이잉.

그리곤 왼손을 창밖으로 내밀고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그의 왼손 근처의 공간이 왜곡되며 작은 통로가 만들어졌다.

이것은 치우의 보고와 연결된 통로였다.

“야, 튀어나와라.”

통로를 만든 건은 명령하듯 얘기했다.

그러자 그 통로에서 한 줄기의 붉은빛이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부르셨습니까.”

모두가 잠깐 잊고 있던 백(魄)이었다.

녀석은 건이 강해지며 은연중에 흘린 혼력을 착실하게 받아먹고 전과 전혀 다른 존재로 성장해 있었다.

이젠 백을 영수(靈獸)라고 부르는 게 더 이상한 게 되어버렸다.

순수하게 지닌 혼력만 따지고 보면 거의 신수(神獸)에 가까울 정도로 엄청난 혼력을 지닌 백.

다만 그 혼력을 아직도 전부 소화하지 못해 늘 건의 허락을 받고 S룸에서 매일 같이 그 혼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백에게 혼력을 소화하는 게 중요해도 역시나 가장 중요한 것은 건의 명령이었다.

“지금당장 이곳에 있는 모든 영혼체를 찾아.”

“넵!”

건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백은 정신을 집중하며 경계 안의 모든 혼력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신수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지만 여전히 백의 특기는 탐색이었다.

아니, 아예 백은 탐사 쪽에 특화된 능력을 지닌 신수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그래서 지금 건과 연희가 들어와 있는 이런 작은 규모의 경계는 순식간에 살펴볼 수 있었다.

“이 경계에 존재흔 영혼체는 모두 374개입니다. 그 중 331개는 그냥 무시를 해도 되는 잡귀(雜鬼)들이고 나머지 43개 중 40개는 하급에서 중급의 암괴들입니다. 주인님이 찾으시는 목표는 아무래도 나머지 3개겠죠. 이놈들 중 하나는 마병(魔兵)급 혼마고 나머지 둘은 그 혼마가 부리는 최상급 암괴입니다.”

“굿! 역시 혼마가 있었어.”

건의 옆에 앉아서 백의 보고를 같이 듣던 연희는 혼마가 있다는 얘기에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혼마는 어느 쪽에 있어?”

“그게…… 물속에 있습니다. 저수지 정중앙 가장 깊은 밑바닥에 두 마리의 암괴와 함께 있습니다.”

“저수지 밑바닥? 하필 귀찮게 거기 숨어 있네.”

연희는 백의 보고를 전부 들은 후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물론 거기에 혼마가 있다고 해서 사냥이 불가능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단지 물을 묻히는 게 귀찮을 뿐이었다.

“오케이 알았어. 넌 들어가서 수련이나 마저 해.”

연희와 달리 건은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는 백을 다시 치우의 보고로 들여보낸 후 천천히 라페라리에서 내렸다.

“어떻게 할까? 내가 들어가서 끌고 나올까?”

건과 함께 차에서 내린 연희는 저수지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 소중한 여자 친구의 몸에 물을 묻히라고? 그건 안 돼지.”

건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손가락을 가로저었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

“놈과 우리를 막고 있는 귀찮은 존재가 물이라면…….”

스윽.

천천히 앞으로 몇 걸음을 걸어 나간 건은 저수지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그걸 없애면 되는 거잖아.”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저수지의 물 전체가 허공으로 들여 올려졌다.

콰과과과과!

물을 통째로 들어 올린 건.

그러자 저주지 밑바닥에 있던 혼마와 최상급 암괴 두 마리가 그대로 드러났다.

키에에엑!

혼마는 진혼마가 아니었다.

연희는 혼마를 발견하자마자 곧장 두 자루의 권총을 꺼내 들고 혼마에게 달려들었다.

건은 그런 연희를 바라보며 자신이 들어 올린 저수지의 물을 통째로 기화시키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익!

그는 연희를 도와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차피 이번 사냥 여행의 목적은 연희가 소울마스터가 된 것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건은 이번 여행에서는 무조건 연희를 보조만 할 생각이었다.

* * * *

당연한 얘기지만 연희는 마병급 혼마와 최상급 암괴 두 마리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녀는 소울마스터가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실력만 놓고 보면 소울마스터들 중에서도 꽤 상위권에 속했다.

그런 그녀에게 마병급 혼마와 최상급 암괴 두 마리는 상대가 되질 않았다.

가볍게 사냥을 끝낸 두 사람은 경계를 빠져나와 다음 목적지를 향해 움직였다.

그들은 용인에 이어 오산에서도 한 번 더 사냥을 했다.

오산에서는 겨우 상급 암괴 몇 마리를 잡은 게 전부였지만 어차피 돈을 벌려고 하는 사냥 여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건 그것 나름대로 즐기며 사냥을 했다.

오산에서의 사냥까지 모두 끝내자 어느새 하루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적당한 시간이 되었다고 느낀 건은 오산에서의 사냥이 끝나자마자 차를 다시 서울로 돌렸다.

건은 모든 남자들이 한 마리의 늑대가 되었을 때 내뱉은 전형적인 한 마디 말인 ‘피곤하니까 쉬었다가 가자.’를 연희에게 날리며 자신이 미리 예약해놓은 서울의 특급호텔로 향하고 있었다.

원래 최초 계획은 휴식은 S룸에서 최소한으로 하며 빠르게 전국을 한 바퀴 도는 것이었지만 철민이 지나가다가 은근 슬쩍 건에게 흘린 한 마디 말 때문에 모든 일정이 바뀌었다.

‘뭐야? 정말 순수하게 사냥만 하려는 거야? 이럼 내가 빠져준 의미가 전혀 없잖아.’

철민의 그 한 마디 말 덕분에 건은 자신이 얼마나 좋은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 뻔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동안 그는 연희와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단둘이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주구장창 괴물들만 사냥할 순 없었다.

그래서 건은 일정을 대폭 수정했다.

물론 사냥을 아예 빼버리면 연희가 당장 지적할게 분명했기 때문에 그녀가 지적하지 않을 정도의 범위 안에서 적당히 관광을 끼어 넣었다.

“그냥 S룸에서 자도 되잖아. 그게 훨씬 효율적일 것 같은데.”

연희는 S룸을 놔두고 특급호텔을 예약한 건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연신 중얼거리는 중이었다.

“말했잖아. 거기서 백이 중요한 폐관수련 중이라 당분간 방해를 하면 안 돼.”

“근데 백은 아까도 네 명령을 받고 나왔었잖아. 폐관수련 중에 그렇게 나와도 되는 거야?”

“그건…… 내가 영혼으로 이어진 마스터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건은 순간 뜨끔했지만 대충 적당히 둘러대며 넘겼다.

“뭐 그럼 어쩔 수 없지.”

연희는 수련을 위해 S룸을 비워야 한단 얘길 별 의심 없이 믿는 표정이었다.

사실 치우의 보고에는 S룸 말고도 수많은 공간이 있었지만 연희는 굳이 그 공간들을 언급하진 않았다.

오산에서 서울로 다시 돌아오는 시간은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번에도 역시 라페라리를 발견한 모든 사람들은 일단 하던 일을 멈추고 라페라리를 바라보았다.

미끈하게 잘빠진 붉은색 라페라리의 몸체는 보는 사람에게 저절로 탄성이 나오게 하는 요물(妖物)이었다.

그런 라페라리를 끌고 특급호텔로 들어서는 건은 살짝 긴장한 표정이었다.

복잡해진 머릿속이 계속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는 그런 상황이었다.

‘긴장할 것 없어. 그냥 평소처럼 하면 되는 거야.’

끼이이익.

건은 특급호텔 정문에 라페라리를 세우고 먼저 차에서 내렸다.

이미 이 호텔의 스위트룸으로 모든 예약을 끝내놨기 때문에 체크인을 하는 과정에서 걸릴 것은 없었다.

‘오늘밤 난 기필코 역사를 이루어내고 만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한 명의 병사처럼 건은 연희가 타고 있는 쪽의 차문을 직접 열어주며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건은 마제급 혼마를 잡을 때보다도 훨씬 더 긴장한 것 같아 보였다.

철컥, 푸슛.

건은 라페라리 특유의 버터플라이 도어를 위로 올리고 연희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한 줄기의 익숙한 기운이 건과 연희를 휘감았다.

정확히는 그 기운은 특급 호텔 전체를 휘감으며 그 호텔이 서 있던 공간을 전혀 다른 공간으로 바꿔버렸다.

그 익숙한 기운은 바로 ‘영혼의 거울’이 깨어지며 만들어지는 경계의 존재감이었다.

‘어떤 새끼야!!!!’

건은 경계의 존재감이 자신을 휘감는 순간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

그는 지금은 역사를 이뤄야 하는 중요한 순간이었기 때문에 그 어떤 방해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만약 지금 누군가 자신을 방해한다면 그건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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