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더 소울(The Soul) - 태동(胎動) [1]
@ 태동(胎動).
서로의 강한 끌림으로 결국 뜨거운 역사를 이루어낸 건과 연희는 그 이후엔 누가 봐도 뜨겁게 연애를 하는 연인(戀人)들처럼 보였다.
말이 사냥이지 이건 거의 사냥을 빙자한 연애질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나마 그걸 보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혹시라도 철민이 이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면 철민은 당장 뛰쳐나갔을 게 분명해 보였다.
알콩달콩을 훌쩍 넘어서 이젠 낯 뜨거운 수위의 연애질을 서슴지 않는 두 사람의 만행은 사냥 여행 내내 계속되었다.
혀와 혀는 그들만의 밀어(密語)를 나누며 서로 뒤엉켰다.
당연히 뒤엉킨 것은 혀뿐만이 아니었다. 마치 연리지(連理枝)와 같이 서로 뒤엉켜 한 몸이 된 두 사람은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황당한 것은 그들이 이렇게 불타오르고 있는 장소였다.
두 사람은 수십 마리의 최상급 암괴에게 둘러싸인 상태에서 계속 서로를 탐닉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서로를 탐닉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최상급 암괴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뜨겁고 격정적인 딥키스와 함께 건의 손에서 흘러나간 전능강기가 최상급 암괴들을 찍어눌러놓으면 연희가 양팔로 건의 목을 휘감은 상태에서 가볍게 이기어총(?)의 한 수로 마무리를 지었다.
역사를 이룬 그날 이후 그들의 사냥은 늘 이런 식이었다.
사실 이들이 이런다고 제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차피 경계엔 그들을 제외하곤 암괴나 혼마뿐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더욱 거침없이 본능을 불태웠다.
그렇게 그들이 그들만의 사냥법으로 사냥여행을 하는 사이 경계의 세상은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 변화의 출발점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한국에서 있었던 신의 흔적 사건 이후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일본의 성향을 고려하면 무조건 한국의 카페 헤븐에 소울러들을 파견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잔뜩 움츠리고 외부의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일본. 보통 때라면 그런 일본의 변화에 관심이 있었을 만도 했지만, 신의 흔적에 이어 여러 굵직한 사건들이 계속 터지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의 변화는 잊혔다.
당연히 일본의 이러한 변화는 암흑마신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놈은 일본의 소울러들을 자신의 권속으로 만들며 세력을 확장했다.
특히 놈은 풍신의 육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후 그 육체가 가진 권력을 이용해 교묘하게 최상위권의 소울러들을 자신의 어둠으로 물들였다.
덕분에 평소라면 자연스럽게 뭉쳐서 대항했을 소울러들이 오히려 뭉쳐서 일본을 어둠으로 물들이는데 앞장섰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암흑마신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자신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암흑마신은 결단을 내렸다.
그는 일본의 경계를 완벽하게 자신의 어둠으로 물들이기 위해 다시 한 번 모험을 하기로 했다.
이미 풍신의 육체를 차지하기 위해 한 번 모험을 했었던 그였다.
하지만 이번 모험은 어쩜 그때보다 더 큰 모험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그가 이렇게 무리를 하면서까지 모험을 하려고 하는 이유는 만약 이 모험을 성공할 수만 있다면 그땐 그의 이름에 붙은 신(神)이란 단어에 어울리는 정말 대단한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진정한 마신이 되려면 꼭 필요한 모험이었기 때문에 암흑마신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모든 걸 잃거나 혹은 모든 걸 얻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그그그긍!
사방을 짓누르는 존재감.
그것은 암흑마신마저 짓누르고 있었다. 물론 암흑마신은 그 존재감에 대항하며 똑바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그는 푸른색의 돌로 이루어진 거대한 거인과 대치중이었다.
거인이 전신에서 내뿜고 있는 존재감은 어지간한 이들은 단지 그것을 느끼는 것만으로 정신을 잃을 것처럼 매우 강력했다.
하지만 암흑마신은 어지간한 이들이 아니었다.
그는 그랜드마스터인 풍신의 육체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억겁의 세월동안 많은 것을 견디며 살아남았을 정도로 엄청난 정신력도 지닌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는 거인이 내뿜는 존재감을 아무렇지도 않게 견딜 수 있었다.
[존재하지만 존재해서는 안 될 어둠의 흔적이여. 풍신의 육체를 약탈하고 수많은 맹약의 고리를 끊고 있는 너의 만행은 이제 멈춰야 한다. 바람의 신 타라고크가 나에게 남긴 권능으로 널 벌하겠다.]
암흑마신 앞에 있는 거인은 일본의 경계를 유지하는 영혼석이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신들의 시대에 바람의 신 타라고크가 이 세상에 남겨놓은 흔적이었다. 비록 신들의 시대가 끝나며 모든 신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겨놓은 이런 흔적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영혼석’이라 불리며 초월의 시대에 등장한 초월자들과 손을 잡고 새롭게 열리는 세상 밖에 또 다른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었다.
그 세상이 바로 경계였다.
영혼석은 신들이 남긴 흔적이었기 때문에 미약하게나마 신들의 권능이 담겨 있었다.
전지전능한 신의 힘과 비교하면 분명 미약한 게 맞았지만 신의 힘을 제외하고 얘기하면 그 힘은 절대 미약하지 않았다.
오히려 초월의 시대에 등장한 초월자들보다 더 강력했다.
그렇기에 이 세상을 복제해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 암흑마신이 서 있는 공간은 일본 경계의 중심이라 할 수 있었다.
일명 영혼경계(靈魂境界)라 불리는 그곳은 영혼석이 존재하는 경계였고 이 경계는 이 세상을 복제하지 않고 창조해낸 유일한 공간이었다.
똑같은 경계였지만 기존의 경계와는 또 다른 세상.
오로지 영혼석만 만들 수 있는 그런 특별한 경계에 암흑마신이 침입한 것이었다.
물론 암흑마신이 이곳에 침입할 있었던 것은 그가 장악한 풍신의 육체 덕분이었다.
풍신은 그랜드마스터이자 일본의 경계를 이끄는 수장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유일하게 일본을 대표하는 영혼석과 대화가 가능한 인물이었다.
암흑마신은 그런 풍신의 육체를 빼앗고 그의 기억을 강제로 읽어 이곳에 들어오는 방법을 알아냈다.
만약 그가 풍신의 육체를 얻지 못했다면 아무리 그가 대단한 힘을 지녔다고 해도 여기에 절대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오래전 일본이 대한민국을 침입해 강제로 대한민국을 병합하려고 했을 때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혼석의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해 완벽한 병합을 하지 못했었다.
영혼석의 위치만 알 수 있다면 영혼석을 파괴하는 것도 가능했기 때문에 그것은 정말 중요한 비밀이었다.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진지 오래인 고대의 신들이 남긴 찌꺼기 같은 놈이 진짜 신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는 게 너무나 역겹군.”
암흑마신은 신들의 시대에도 존재했었다.
물론 그땐 지성이란 것을 아예 가지지 않은 암흑 그 자체였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때 시대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건방진 놈!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네 놈이야 말로 신이라도 된 것처럼 날뛰는 구나.]
영혼석도 암흑마신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 역시 암흑마신 만큼이나 오랜 세월 이 세상에 존재했었기 때문에 당연히 암흑마신의 진정한 정체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크크크,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와 신이 되려는 나와 권좌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발악하는 너. 둘 중 누가 더 간절할 것 같으냐?”
암흑마신은 푸른 거인을 바라보며 웃었다.
한쪽은 신성(神性)을 얻으려는 자. 또 한쪽은 계속 신성을 유지하려는 자였다.
[너에게 진짜 신의 힘이 무엇인지 알려주마!]
푸른 거인은 이젠 더 이상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한 발을 들어 올려 바닥을 내리찍었다.
꽈과광!
그가 오른발로 바닥을 내리찍자 강력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와 함께 푸른 거인의 몸에서 세상을 쓸어버릴 것 같은 강력한 바람이 쏟아져 나왔다.
이것이 바람의 신이 남기고 간 미약한 권능이었다.
물론 아무리 봐도 절대 미약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힘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태곳적 존재했던 고대의 신의 기준에선 미약한 게 맞았다.
콰과과과광!
암흑마신은 자신의 암흑마기를 이용해 바람의 힘에 저항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고대의 신들 따위…… 이 기회에 내가 완전히 지워주마!”
암흑마신은 고대의 신들이 남긴 파편과 같은 존재가 이 세상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새로운 세상이 열렸으면 새로운 신이 탄생해야 하는 법.
그는 자신이야 말로 새로운 세상의 신으로 가장 적합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영혼석과 암흑마신의 싸움.
솔직히 둘 중 누가 나락으로 떨어질지 전혀 예측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싸움의 결과에 따라 일본 경계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사실이었다.
* * * *
건과 연희의 사냥 여행은 그냥 불타는 여행이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정도로 매일 같이 불타올랐다.
특히 그들은 경기도를 거쳐 충청도, 전라도까지 이어지는 경로에서는 정말 누가 볼까 부끄러울 정도로 뜨겁게 불타올랐었다.
그나마 경상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살짝 진정하기 시작해 이제는 예전만큼 낯 뜨겁게 붙어있진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두 사람은 언제 어디서라도 늘 딱 붙어 있었다.
서로의 마음을 너무나 확실하게 여러 번 확인했기 때문에 이젠 눈빛만 봐도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서로 통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열흘 정도는 S룸에서 백의 마지막 진화를 지켜봐야 할 것 같아.”
“오, 드디어 완벽한 신수로 진화하는 거야?”
“응, 기운의 갈무리는 모두 끝나고 이제 남은 것은 갈무리된 기운으로 몸을 재구성하는 건데 아무래도 너무 빨리 성장하는 바람에 아직 몸을 재구성하는 요령이 부족한 것 같아. 그래서 내가 강제로라도 개입해서 도와줘야 뭔가 답이 나올 것 같아.”
건이 연희에게 백이 S룸에서 폐관수련을 하고 있다고 얘기했던 것은 정말 사실이었다.
다만 건이 연희에게 거짓말을 한 부분은 백이 폐관수련을 해도 두 사람이 들어가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연희도 대충 그 부분을 예상했으면서도 그냥 속아준 것이었기 때문에 건의 거짓말은 크게 상관이 없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백이 진짜 폐관수련을 하고 있었다는 점과 지금 그 폐관수련이 끝나간다는 사실이었다.
“알았어. 갔다 와. 난 뭐 그 동안 혼자 사냥이라도 하고 있으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건이 없다고 해서 연희가 혼자 사냥을 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녀는 소울마스터였다.
건은 늘 그녀를 품에 끼고 보호했지만 사실 그녀는 그렇게 보호받을 수준의 소울러가 아니었다.
“괜찮겠어?”
“당연히 괜찮지. 다만…… 조금 아쉬울 뿐이야.”
당연히 그녀가 아쉬운 것은 건의 보호가 아니었다.
“으음, 그건 나도 아쉽지만 어차피 S룸에서 열흘이라고 해봤자 현실에선 하루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까 조금만 참아.”
“알았어.”
“그럼 최대한 빨리 끝내고 올게.”
건은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도중에 잠깐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게 별로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언제까지 백의 마지막 진화를 미뤄둘 순 없었다.
차라리 조금이라도 빨리 녀석의 진화를 돕고 다시 돌아오는 게 제일 좋았다.
츠츠츳!
건은 연희와 딥키스를 하며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잠깐 동안의 이별.
사실 하루 정도 떨어져 있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었다.
특히나 연희는 소울마스터였다.
그런 그녀가 사냥을 하다 위험에 처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녀 역시도 애초에 건도 옆에 없는데 무리를 해서 위험한 사냥을 할 일도 없었다.
하지만…… 세상일은 정말 예측이 불가능한 게 분명했다.
하필 건이 잠깐 자리를 비운 이 순간.
누군가 아주 오랫동안 준비한 회심의 일격이 모든 준비를 끝냈다.
그들은 모든 준비를 건과 연희가 있다는 과정 아래 했었다. 애초에 그들은 건이 자리를 비울 것이란 예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건이 자리를 비운 지금 이 순간에도 그가 자리를 비웠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이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우연의 일치였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말도 안 되는 우연의 일치가 이곳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