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158화 (157/175)

# 158

더 소울(The Soul) - 태동(胎動) [2]

그 시각 서울의 일성그룹 본사에서는 진천일성 조건희가 초조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천일성 옆에는 그를 수십 년간 보좌한 그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황재운이 서 있었다.

그는 시계를 한 번 더 확인한 후 진천일성에게 보고를 했다.

“곧 시작됩니다.”

“……이번 계획에 얼마를 썼다고 했지?”

“정확히 사조 사천 억 원입니다.”

4조4천억.

이것은 보통 사람과는 전혀 다른 경제관념을 지닌 진천일성에게도 아주 큰돈이었다.

그는 이 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모든 비밀자산을 처분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모아두었던 영혼유물들까지 모두 팔아버렸다.

심지어 그가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모든 부동산마저 팔아서 요즘 조건희는 호텔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렇듯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비자금을 탈탈 털어서 이번 작전에 쏟아 부었기 때문에 이젠 어디에 제대로 로비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많군.”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조건희.

황재운은 그런 조건희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취소할까요? 솔직히 이건 너무 위험한 계획입니다. 아무리 조심했다고 해도 자칫 꼬리라도 잡히면…… 상대는 그랜드마스터입니다.”

“취소는 안 돼. 이대로 강행한다. 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그 많은 돈을 쓴 것이잖아. 어차피 그랜드마스터까지 상대하는 걸 감안해서 짠 계획이다. 아무리 강철민이 대단하다고 해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조건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강행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들이 짠 계획.

그것은 바로 강철민과 멀리 떨어진 건과 연희를 제압해 강철민을 잡는 계획이었다.

“왜 강철민이 우리에게 이런 좋은 기회를 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것이 함정이 아니란 걸 확인한 이상 무조건 이번 기회를 잡아야 한다.”

조건희는 최초 건과 연희가 카페 헤븐을 떠나 여행을 시작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땐 무조건 함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면밀히 살펴본 결과 그게 함정이 아니란 걸 알아냈다.

그 순간 조건희는 지금이야 말로 준비하고 있던 계획을 실행할 때란 걸 깨달았다.

무려 4조 4천억 원이 들어간 계획이었다.

물론 아직은 그 중 20% 정도인 1조원만 지급이 된 상태고 나머지는 지급 대기 상태로 묶여 있었지만 어차피 그래봤자 그 돈은 계획이 완전히 실패를 해야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그 녀석들 실력은 믿을만하겠지?”

“이런 일은 전 세계에서 그들이 최고입니다. 회장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알고 있긴 하지. 블러디 로드…… 그 전설적인 유령(幽靈)이라면 설사 강철민과 직접 부딪친다고 해도 밀릴 게 전혀 없겠지.”

블러디 로드.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경계의 절대강자로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최초의 고스트(유령)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너무나 오래전부터 경계의 세상에 존재해온 그는 당연히 그랜드마스터였다.

그의 이름은 듀라크라온.

고대 뱀파이어 언어로 피의 하늘이란 뜻이었다.

모든 뱀파이어의 왕이자 최고의 연금술사 그리고 최강의 마법사인 그는 그랜드마스터들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세 명의 인물 중 하나였다.

보통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드라큘라란 이름과 그의 이름이 비슷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실제로 현실 세계에 알려진 드라큘라는 그에게서 유래된 전설과 같은 이야기였다.

물론 그가 정말로 현실 세계에서 피를 탐닉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작은 소문 하나가 크게 부풀려져 지금의 드라큘라란 존재가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 소문이 블러디 로드 듀라크라온으로부터 시작된 것은 맞았다.

일단 오해를 먼저 풀어주자면 뱀파이어들은 피를 탐닉하지만 그렇다고 일반 사람의 피를 먹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들이 탐닉하는 피는 흔히 말하는 암괴나 혼마들 같은 괴물들의 피였다.

그들의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괴물들의 피뿐이었다.

심지어 같은 소울러들의 피도 그들의 갈증을 풀어줄 순 없었다.

뱀파이어 일족은 전통적인 고스트(유령) 세력이었는데 당연히 그들을 이끌고 있는 것은 블러디 로드 듀라크라온이었디.

“하지만 문제는…… 그가 진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줄까? 그를 움직이기 위해서만 무려 사 조를 썼지만 그럼에도 난 여전히 불안해.”

그들이 사용한 사조 사천 억 원 중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사조 원은 오로지 블러디 로드를 움직이기 위해서 사용된 돈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사천 억으로 그의 부하들을 고용한 것이었다.

뱀파이어 일족은 경계의 세상에서 제법 알아주는 용병들이었다.

그들은 돈만 주면 무슨 일이라도 해결해주는 해결사와 같았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왕이라는 블러디 로드는 돈만으로는 움직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조건희는 비록 4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음에도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습니다.”

“하긴…… 모든 걸 다 가지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겠지. 난 그저 그가 내 아들을 회복시키는 걸 돕는 것으로 만족할 생각이야. 어차피 강철민이 가졌다는 그 대단한 영혼유물은 내가 설사 일성그룹 전체를 내놓는다고 해도 구하지 못할 게 분명하니까…….”

“잘 생각하셨습니다. 블러디 로드도 분명 그것 때문에 이번 의뢰를 받아들였을 겁니다. 평소의 그였다면 사조 원이 아니라 백조 원을 가져다 줬어도 움직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휴우, 힘들군. 예전엔 그저 내가 가진 힘과 돈이라면 이루지 못할 게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하늘 밖에 하늘이라는 게 존재하는 건가?”

“회장님도 충분히 높은 하늘입니다.”

황재운은 애써 조건희를 위로하려고 했지만 이미 조건희는 큰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야. 난 어쩜 하늘에 오르지도 못했던 것일지도 몰라…….”

씁쓸한 표정으로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는 조건희.

그는 요 근래 부쩍 더 늙은 느낌이었다.

* * * *

“경계를 열어라.”

파아아앗!

명령과 함께 수십 명의 뱀파이어들이 자신의 피를 영혼거울에 뿌리며 경계를 열었다.

이렇게 다수의 뱀파이어들이 자신들의 피를 이용해 경계를 열 경우 그 경계는 그 자체로 강력한 결계가 되어 강제로 깨고 탈출하거나 침입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경계를 만들어냈다.

뱀파이어들은 이것을 ‘피의 경계’라고 불렀다.

피의 경계가 열리자 수백에 달하는 뱀파이어들이 경계 안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그들은 4천억 원이라는 큰돈을 받고 한 가지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 대한민국에 들어와 있었다.

지금 그 뱀파이어들을 이끌고 있는 것은 미트리 백작이었다.

그는 듀라크라온이 가장 신임하는 세 명 중 한 명이었다.

일명 ‘레드 스파이더(붉은 거미)’라고도 불리는 그는 소울마스터였다.

듀라크라온은 자신의 피에 담긴 힘을 이용해 세 명의 심복을 모두 소울마스터로 만들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뱀파이어일족의 특성 때문이었다.

뱀파이어일족은 피를 나누는 것으로 자신의 일족을 늘려갈 수 있었는데 그렇게 피를 나누어 받은 이는 자신에게 피를 나누어준 이에게 절대복종을 하게 되어 있었다.

물론 피를 나누어준다는 의미는 자신의 힘의 일부분을 영구적으로 나눠준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남발할 수는 없었다.

가장 강력한 뱀파이어인 듀라크라온도 겨우 세 명의 심복에게만 진혈(眞血)을 나눠주었을 뿐이었다.

어쨌든 미트리 백작은 듀라크라온의 피를 이어받은 덕분에 소울마스터가 될 수 있었다.

그가 소울마스터가 된지도 벌써 200년에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그의 위에는 더 오랫동안 듀라크라온을 모셔온 백작이 둘이나 있었다.

“목표는 두 명이다. 둘 중 하나는 소울마스터니 함부로 달려들지 마라.”

미트리 백작은 수백의 뱀파이어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피의 경계를 연 이상 제 아무리 소울마스터라고 해도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피의 경계를 힘으로 깨고 나갈 수 있는 이들은 그랜드마스터라 불리는 이들뿐이었다.

한편 연희는 갑작스럽게 자신을 휘감는 이질적인 기운을 느끼는 순간 그것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경계의 기운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뭐지?’

연희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보통의 경계는 회색빛으로 세상이 물들었던 것에 비해 지금 연희를 집어삼킨 경계는 붉은빛으로 세상이 물들어 있었다.

이것을 확인한 순간 연희는 자신이 어떤 경계에 휘말린 것인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피의 경계!”

그녀는 비록 피의 경계에 휘말렸던 경험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피의 경계 자체가 워낙 유명했던 것이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뱀파이어…….’

연희는 어쨌든 이것이 진짜 피의 경계가 확실하다면 뱀파이어들이 자신을 노리고 피의 경계를 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뱀파이어는 경계에서 아주 유명한 용병들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생각이었다.

“어째 요즘 잠잠하다고 생각했어.”

연희는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두 자루의 권총을 뽑아들었다.

뱀파이어를 고용한 이가 누군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그건 바로 한 번쯤 자신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소울마스터가 되었다는 걸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다는 점이었다.

미트리 백작이 이끄는 뱀파이어들은 순식간에 연희를 포위했다.

연희는 뱀파이어들이 자신을 포위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피의 경계 안에서는 그들을 피해 도망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들이 자신을 포위하게 놔두었다.

미트리 백작은 마치 연희를 이미 잡아놓은 물고기처럼 바라보았다.

그는 오히려 연희와 함께 있어야 할 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 이상하게 생각했다.

“네 남자친구는 어디 있는 거지?”

“글쎄, 잠깐 화장실이라도 갔나?”

미트리 백작의 질문에 연희는 정말 성의 없는 답변을 해주었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지 모르는 것 같군.”

“심각하다고? 왜? 누가 죽기라고 했어?”

“크크크, 그렇게 애써 태연한척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건가?”

“푸하하하하, 태연한척이라고? 뭐 좋을 대로 생각해. 그런데…… 네가 말한 대로 상황이 이런데 도대체 뭘 망설이고 있는 거야?”

휘리리릭, 파팟!

연희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양손에 들고 있던 권총을 손 안에서 돌리며 양 팔을 좌우로 뻗었다.

그리곤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타타탕!

포위당한 연희가 오히려 선제공격을 시작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상대방을 압박하듯 정신없이 난사를 하기 시작했다.

뱀파이어들은 연희가 공격을 시작하자 당연히 그 공격을 막거나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것 자체가 그들의 실수였다.

그들은 연희가 소울마스터가 되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공격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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