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
더 소울(The Soul) - 일성 그룹 [2]
블랙 플랜은 뒤가 없는 동귀어진(同歸於盡)의 수였다.
당연히 황재운은 그걸 말릴 수밖에 없었다.
“이미 모든 게 틀어졌다. 이번 계획이 실패한 순간 이미 우린 나락(奈落)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이 상황에선 모든 걸 챙길 수는 없다. 대부분을 버리고 우리가 가지고 갈 수 있는 최소한의 것만 챙겨야 한다. 그렇기에…… 일성은 버려야 한다.”
“회장님!”
황재운은 아무리 상황이 최악이라고 해도 도저히 블랙 플랜만큼은 인정할 수가 없었다.
“난 이미 결정을 내렸다. 블랙 플랜을 실행한다. 그룹의 모든 소울러들과 블랙에이전트들을 동원해 놈을 저지한다.”
“……크으.”
조건희의 확고한 표정을 본 황재운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조건희가 결정을 바꾸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블랙 플랜…… 실행하겠습니다.”
결국, 황재운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을 했다.
블랙 플랜.
그것은 그리 복잡한 작전이 아니었다.
다만 해서는 안 되는 작전일 뿐이었다.
조건희가 블랙 플랜을 만든 이유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적이 나타났을 때 마지막 한 수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일성 그룹이 경계 안에서 발휘할 수 있는 훌쩍 넘어서는 적을 일성 그룹이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힘을 이용해 상대하는 작전이었다.
더 간단히 얘기하자면 일성 그룹이 현실에서 지니고 있는 힘을 통해 적을 제거하는 작전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작전을 위해서는 적이 경계로 도망치는 걸 막아야 했기 때문에 조건희는 오랫동안 돈과 시간을 투자해 경계의 생성을 방해하는 방법을 연구해 왔었다.
그리고 결국 그 방법을 찾아냈다.
비록 엄청나게 많은 준비를 해야 하고 거기에 아주 많은 숫자의 소울러들의 투입되어야 한다는 큰 단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효과는 확실했다.
그렇게 적이 경계로 도망치지만 못하게 한다면 일성 그룹은 얼마든지 현실에서 적을 제거할 자신이 있었다.
소울러가 아무리 약간의 힘을 현실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해도 결국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일성 그룹이 총력을 기울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문제는 이걸 결행해서 성공한다고 해도 남는 것은 결국 적을 제거했다는 것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경계에서의 일을 현실로 끌어들인 그 순간 일성 그룹은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게 경계의 절대 규칙이었다.
조건희도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블랙 플랜을 실행할 때는 일성 그룹 자체를 모두 포기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자신을 포함한 몇 명의 측근과 가족을 살리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포기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가 블랙 플랜을 결행하려는 이유는 가만히 있으면 그마저도 구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난 이제 모든 걸 걸었다. 이걸로 내 아들의 복수를 끝내고 진천일성의 이름을 지켜낼 것이다.”
조건희는 자신이 평생을 쌓아올린 일성을 버리는 대신 확실하게 모든 것을 끝낼 생각이었다.
“최대한 빨리 준비를 끝내겠습니다.”
이미 결정이 내려진 이상 황재운도 망설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조건희의 말처럼 이왕 블랙 플랜을 발동시키는 것이라면 확실하게 끝장을 봐야 했다.
* * * *
일성 그룹이 블랙 플랜을 준비하는 동안 건은 매우 여유 있게 일성 그룹의 본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사실 서두르고자 마음먹었다면 아예 치우의 보고를 이용해 카페 헤븐으로 간 후 거기서 일성 그룹 본사로 향했으면 더 빨랐겠지만, 건은 굳이 그러지 않았다.
그는 마치 조건희에게 삶을 정리할 마지막 시간이라도 주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조건희에게 삶을 정리한 시간을 주는 게 아니라 마지막 발악을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것이었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인 건이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조건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하게 해주고 그걸 한 방에 날려버리는 것으로 정리를 끝낼 생각이었다.
물론 다른 이들이 봤을 땐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처리 방식일 수 있었다.
하지만 건에겐 이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었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라페라리.
건은 무려 시속 250km 속도로 질주했다.
당연히 라페라리는 모든 과속 카메라에 찍혔지만, 어차피 영혼과학기술인 ‘인식거부기술’이 적용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반 카메라로는 절대 라페라리의 모습을 찍을 수가 없었다.
특히 건은 경계와 현실을 자유롭게 오고 가며 장애물들을 피해 질주했기 때문에 라페라리는 마치 유령처럼 고속도로를 질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질주를 거듭하자 건은 대략 두 시간 만에 일성 그룹의 본사 건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한 번 와본 곳이었기 때문에 나름 익숙한 곳이었다.
끼이이익.
재미있는 것은 건이 이 앞까지 오는데 아무도 그를 저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아예 일성 그룹 본사 건물 주변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뭔가 대단한 이벤트라도 준비한 건가?”
건은 50층짜리 건물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전에 왔을 땐 50층짜리 건물이 통째로 경계와 현실에 걸쳐져 있었는데 지금은 경계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철컥, 푸슛.
건은 라페라리에서 내리며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침묵이 내려앉은 일성 그룹.
확실히 뭔가 예전과 많이 다르긴 했다.
‘준비한 이벤트에는 응해주는 게 맞겠지?’
이 정도라면 상대방이 뭔가 대단한 걸 준비했을 것이란 사실을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었지만, 건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일성 그룹의 본사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타킷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조금만 더 안으로 들어오면 억제장치를 작동시킬 수 있습니다.]
[억제장치에 혼력을 주입할 소울러들도 모두 대기 중입니다.]
[타킷을 요격할 요원들도 준비완료입니다.]
조건희는 조용히 앉아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준비 완료 보고를 듣고 있었다.
두 시간이란 시간은 긴 시간이 아니었지만, 일성 그룹의 본사 건물에는 오래전부터 억제장치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블랙 플랜을 결행하기 위한 준비를 끝내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화력은 충분하겠지?”
조건희는 마지막 확인을 했다.
“저희가 준비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했습니다. 극비리에 미국에서 들여온 대소울러용 벌컨포까지 준비했으니 화력이 부족할 리는 없습니다.”
황재운은 자신 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억제장치는 어때? 분명 놈이 경계로 도망치는 걸 막을 수 있겠지?”
“억제장치에 혼력을 주입하려고 대기하고 있는 소울러만 오백 명입니다. 그랜드마스터들이 단체로 나타난다고 해도 최소 오 분 정도는 절대 경계를 열 수 없을 겁니다.”
황재운은 이것도 자신 있었다.
비록 내키지는 않았지만 일단 결정이 내려진 이상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블랙 플랜을 준비했고 이제는 결행만 남을 상태였다.
“평생을 쌓아올린 일성 그룹이 이렇게 무너지는군.”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조건희.
“실행하게.”
하지만 그렇다고 결행을 망설이진 않았다.
어차피 모든 걸 내던지고 선택한 복수였기에 조건희는 이걸로 확실히 끝을 볼 생각이었다.
조건희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기하고 있던 오백 명의 소울러들이 동시에 억제장치에 혼력을 쏟아 부었다.
고오오오오오오!
철컥, 철컥! 그그그그그그그그긍!
혼력이 주입되자 억제장치가 작동했다.
건은 건물 전체를 묘한 기운이 휘감는 걸 느끼며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지는 몰라도 평범하진 않겠군.’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았음에도 건은 계속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어차피 건은 일성을 근본부터 박살 낼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무엇을 준비했던지 그걸 모두 꺼낼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것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
억제장치가 완전히 작동하며 일성 그룹의 본사 건물 전체에 이상한 기운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순간 완전무장한 수백 명의 블랙 에이전트들이 건을 향해 총구를 겨냥했다.
철컥, 철컥…….
[사격개시!]
준비가 끝났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사격개시 명령과 함께 수백 정의 기관총이 불꽃을 내뿜었다.
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만약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 순간 건은 경계만 열면 끝이었다.
어느 정도 이상의 능력을 지닌 소울러라면 생각하는 것만으로 경계를 열 수 있었다.
설사 핵폭탄이 떨어지는 순간이라고 해도 경계를 열고 그 안으로 도망치면 핵폭탄의 폭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결국, 제대로 소울러를 잡으려면 경계 안에서 상대하는 수밖에 없단 뜻이었다.
물론 경계를 열지 못하는 실력이 떨어지는 소울러라면 얼마든지 현실에서 암살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겨우 그런 소울러들을 잡으려고 그런 짓을 했다간 모든 경계의 세력에게 응징을 당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조건희가 이번 블랙 플랜을 결행하며 일성 그룹을 포기한 이유도 모든 경계의 세력에게 응징을 당할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룹을 포기하고 자신과 가족들 그리고 몇몇 측근들만 데리고 잠잠해질 때까지 잠적할 생각이었다.
어쨌든 경계라는 세상이 존재하는 이상 소울러는 현실을 얼마든지 부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일성 그룹의 본사 건물 안에선 경계를 열 수 없다는 점이었다.
조건희가 건물 전체에 설치해 놓은 억제장치.
그것이 작동되며 경계의 생성을 억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백 정의 기관총이 불꽃을 내뿜은 그 순간 건은 이 건물 전체를 휘감은 묘한 기운이 바로 경계의 생성을 억제하는 기운이란 걸 알아차렸다.
‘오호라. 이런 거였어?’
만약 건이 평범한 소울러였다면 경계가 열리지 않는 순간 크게 당황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평범한 소울러가 아니었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수백 발의 탄환이 건에게 적중되었다.
이 정도라면 아무리 소울러라고 해도 견디기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블랙 에이전트들의 공격은 이제 겨우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콰광, 콰과과과과과과광!
그들은 본사 건물을 무너트리려고 마음먹은 것처럼 미리 준비해놓았던 폭탄까지 터트렸다.
그뿐 아니라 기관총에 이어 각종 수류탄과 클레이모어까지 모두 터트리며 제대로 화력을 집중시켰다.
꽈과과과과과광!
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
폭탄이 마구 터지고 있는 그 와중에도 기관총 사격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한 수.
그것은 바로 미국에서 개발한 대소울러용 기관총인 ‘헬파이어’였다.
[헬파이어 사격 준비완료!]
위이이이이잉, 철컥!
헬파이어가 등장한 곳은 건이 걸어 들어온 출입구 외곽이었다.
사격 개시 명령이 떨어지자 어느새 블랙 에이전트들은 헬파이어가 설치된 대형 트럭을 그쪽에 새워놓고 그것을 사용할 준비를 끝내놓았다.
헬파이어는 대소울러용 벌컨포답게 그 크기가 작은 버스만큼이나 컸다.
조준만 잘하면 전투기도 요격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위력을 지닌 그것은 1분에 3만 발의 탄환을 쏠 수 있는 괴물이었다.
그냥 평범한 탄환 3만 발이 아니었다.
헬파이어의 탄환은 한 발, 한 발이 철갑을 꿰뚫을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그런 걸 1분에 3만 발이나 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상식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오픈 파이어!]
다시 한 번 사격명령이 떨어지자 헬파이어가 엄청난 불꽃을 내뿜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초토화란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전방에 있는 모든 것 날려버리는 헬파이어.
이 정도라면 진짜 전설 속에 나오는 최강의 마법 ‘헬파이어’와 비슷한 위력처럼 보였다.
물론 이곳이 만약 경계 안이었다면 이 정도 공격은 소울마스터들만 되어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그만큼 소울러들이 가지고 있는 힘은 대단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경계 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소울러들은 현실에선 자신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에 헬파이어의 공격은 아주 치명적일 수 있었다.
쿠쿠쿠쿠쿵!
헬파이어의 파괴력이 워낙 대단해 일성 그룹의 본사 건물이 마구 흔들렸다.
이대로 사격을 계속하면 정말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헬파이어는 사격을 계속하고 블랙 에이전트들은 사격을 중지하고 계획대로 탈진한 소울러들을 구출해 건물을 빠져나간다!]
기다리고 있던 두 번째 명령이 떨어졌다.
그것은 바로 일성 그룹의 건물 전체를 무너트려 그곳을 건의 무덤으로 만드는 계획의 시작을 알리는 명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