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
더 소울(The Soul) - 어둠의 나라 [1]
@ 어둠의 나라.
철민이 경계의 이상한 변화에 대해 조사하고 있을 때 건은 너무나도 여유로운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는 말처럼 건과 연희는 왜 이제야 연애를 시작했는지 그게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열렬히 서로를 탐닉했다.
사실 최근에 일어난 많은 일들 때문에 카페 헤븐 자체는 거의 망한 것처럼 장사가 되질 않았다.
경계의 세상에서도 워낙 시끄러웠던 일이었고 워낙 많은 소울러가 카페 헤븐을 공격했다가 박살이 났기 때문에 보통의 소울러들은 그냥 카페 헤븐 근처에 가지 않는 게 이롭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연희와 건은 개점휴업 상태로 쉬면서 실컷 사랑만 나누었다.
“사장님한테 연락 왔었어.”
연희는 자신의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건의 귀를 잡아당기며 얘기했다.
“아아아아. 아파.”
“천하의 스페셜 원님이 왜 이렇게 엄살이 심해. 그만하고 일어나봐. 사장님이 부탁하신 일이 있단 말이야.”
“응? 부탁?”
“뭐를 좀 알아봐달라고 하셨어.”
“사장님은 지금 제주도에서 사냥하고 계시잖아? 근데 알아볼게 뭐있지?”
“일본 쪽 동향을 알아봐 달라셔. 아무래도 제주도에서 사냥을 하시다가 뭔가 이상한 걸 발견하신 거 같아.”
“일본이라…… 그러고 보니 일본도 우리랑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는데 최근에 너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긴 하네. 그 녀석들 성격이라면 벌써 뭔가 수작이 들어왔어야 정상인데…….”
일본이란 얘길 들은 건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그건 좀 진짜 이상하긴 하다. 일본 애들이 이런 일에 빠질 리가 없긴 한데.”
건의 얘길 들은 연희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알아보면 대충 이유가 나오겠지. 천리안에 의뢰할 거지?”
“아마도 그래야겠지.”
“천리안 애들도 내 정보를 좀 얻으려고 카페 근처에서 기웃거리는 거 같던데 한 놈 잡아다가 심부름 시키면 되겠네.”
“아, 그게 빠르겠네.”
건의 말을 들은 연희는 고개를 끄덕이곤 곧장 카페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략 어디쯤에 있는지 위치만 알려줘. 내가 잡아올게.”
“그냥 간단하게 내가 잡아다줄게.”
“아니야, 이것도 결국 수련의 연장선이야. 빨리 대략적인 위치만 얘기해봐.”
“오른쪽 담벼락 끝자락.”
연희는 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 자리에서 사라졌다.
파팟!
그리곤 몇 초 후 다시 나타났다.
물론 다시 나타난 그녀의 손에는 한 명의 소울러가 사로잡혀 있었다.
“오우, 제법인 걸?”
“대략적인 위치까지 아는데 못 찾으면 소울마스터를 딱지치기해서 딴 거나 마찬가지지.”
연희는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란 표정으로 자신이 잡아온 소울러를 앞쪽에 놓여 있던 의자에 앉혔다.
“이름이 뭐죠?”
강제로 의자에 앉혀진 소울러는 다짜고짜 잡아와 이름부터 묻는 연희를 바라보며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천리안 소속인 거 알고 있어요. 지금 제가 좀 급해서 그러니까 일단 정확한 소속과 이름부터 밝혀 봐요.”
연희는 쓸데없는 잡설은 모두 생략하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속사포처럼 쏟아진 연희의 말에 천리안의 요원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황하지 않으셔도 되요. 요원님에게 해를 끼치려고 데리고 온 게 아니에요. 오히려 요원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 겁니다.”
천리안의 요원이 너무 당황한 것 같자 연희는 잠깐 살짝 그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래서였을까? 천리안의 요원도 약간은 표정이 괜찮아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천리안 천급 외부감시요원 고병수입니다.”
“천급 요원이면 꽤 실력 있는 분이었군요. 좋아요. 제 용건은 간단해요. 제가 천리안에 의뢰를 할 게 좀 있는데…… 이걸 최대한 빨리 천리안에 전해줄 수 있죠?”
“아! 그런 것이라면 할 수 있습니다.”
고병수는 처음에 연희에게 잡혀올 때만해도 뭔가 아찔한 기분이었는데 막상 그녀가 의뢰를 하려고 한다고 얘기하자 크게 안도할 수 있었다.
“이번 의뢰는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까 최대한 빨리 결과를 알려주세요.”
“네, 최우선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지금 경계의 세상에서 가장 핫(hot)한 카페 헤븐에서 들어온 의뢰였다.
설사 연희가 따로 얘길 하지 않았다고 해도 당연히 이 의뢰는 최우선적으로 처리하는 게 맞았다.
“현재 일본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가져다주세요. 경계는 물론이고 현실까지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있으면 모두 파악해서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의뢰 내용을 들은 고병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자, 그럼 빨리 움직이세요.”
순식간에 볼일을 끝낸 연희는 웃으며 카페의 문을 열어주었다.
“최대한 빨리 정보를 모아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고병수는 연희와 건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곧장 카페 밖으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확실히 천리안의 천급 외부요원답게 움직임이 매우 은밀하고 빨랐다.
“왠지 시간이 오래 걸릴 거 같은데…….”
카페 밖으로 사라진 고병수를 말없이 지켜보던 건은 연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얘기했다.
“천리안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그래도 명색이 천리안인데 하루 안에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뭐, 빨리 오면 좋겠지만 내 감이 왠지 그게 쉽지 않을 것 이라고 자꾸 얘기하네.”
“그래? 네가 워낙 감이 좋아서 뭐라 반박을 못하겠다. 어쨌든 정보가 오길 기다려보자.”
“그럼 우린 정보가 도착할 때까지…….”
건은 은근슬쩍 연희를 바라보며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연희는 그런 건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 그만! 나 수련해야 하니까 그거나 도와줘.”
“쩝, 알았어.”
단호한 연희의 말에 건은 어쩔 수 없이 머릿속에 깨어난 음란마귀를 다시 잠재워야 했다.
* * * *
정보는 건의 예상대로 며칠 만에 도착했다.
자신을 천급 외부감시요원이라 소개했던 고병수는 부탁대로 모든 일처리를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빠르게 끝내고 직접 정보를 가지고 다시 카페 헤븐에 찾아왔다.
“지금 일본은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연희와 건에게 커다란 서류뭉치를 내밀면서 자신이 직접 요약된 정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저희도 단순하게 생각했었는데 정보를 모으다 보니 이게 단순한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됐습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연 고병수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일본은 겉으로 보기엔 지극히 정상적이지만 실제론 정말 이상한 곳이 되어 있습니다. 경계는 존재하지만 마물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소울러들마저 전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건과 연희는 고병수의 얘길 들으며 차분히 그가 넘겨준 서류 뭉치를 살펴보았다.
그 서류에는 현재 일본의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이한 현상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흐음, 그러니까 이 모든 게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란 거죠?”
서류에 기록되어 있는 현상들은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닌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것들을 모두 하나로 합쳐보면 분명 굉장히 이상한 거대한 흐름 같은 게 느껴졌다.
“네, 맞습니다. 그런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질문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네, 하세요.”
고병수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연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어떻게 일본이 이런 상황이란 걸 알게 되신 건가요? 솔직히 저희도 카페 헤븐의 의뢰가 아니었다면 특별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넘어갈 뻔 했습니다.”
카페 헤븐의 의뢰였기 때문에 뭔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작은 의심도 계속 파고들었기 때문에 이런 분석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분명 분석 결과는 180도 바뀌었을 게 분명했다.
“솔직히 저희도 일본이 이런 상태인 줄은 몰랐어요. 단지 뭔가 일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죠. 결정적으로 저희 사장님이 부탁한 일이라 우리도 자세한 것은 사장님에게 여쭤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럼 혹시 이 정보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것은 가능할까요? 일본의 상황이 생각보다 너무 심각한 것 같아 그냥 놔둘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공유는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사장님도 남들 몰래 뭔가 하려는 건 아니니까요.”
오히려 연희는 일본에 뭔가 큰 일이 생겼다면 공개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아, 대신 한 가지 부탁을 할게요.”
“네? 무슨 부탁이신가요?”
“이왕 공유하는 거 거래하는 모든 소울러에게 이 정보를 날려요. 당연히 정보이용료 같은 것은 받지 말고 공개 정보로 싹 날리는 거예요. 알았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보통이라면 그런 것은 윗사람들하고 상의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겠지만 부탁을 하는 상대가 상대인만큼 고병수는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이건 우리가 직접 사장님에게 전해야겠지?”
스윽.
연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건을 바라보았다.
“귀찮지만 그래야할 것 같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볼일을 모두 끝낸 고병수가 돌아가고 연희와 건은 열어두었던 가게 문을 닫았다.
연희는 가게 문을 닫으며 곧장 철민에게 연락을 했다.
“네,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한 거 같아요. 일단 저희가 천리안에서 받은 모든 정보를 들고 그쪽으로 갈게요.”
현재 철민이 있는 곳은 제주도였다.
아쉽게도 건이 제주도 쪽엔 아직 고정 통로를 만들어놓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향해야 했다.
“아니에요. 어차피 가게에 있어도 할 일도 없어요.”
철민은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했지만 어차피 장사도 안 되는 가게에 가만히 있는 게 더 싫었던 연희는 무조건 제주도로 가겠다고 얘기했다.
“네, 지금 바로 출발할 거니까 아마 몇 시간 내로 도착할 거예요. 아, 그리고 이번 정보는 그냥 모두 공개해 버렸어요. 네, 그렇게 처리했어요.”
연희는 철민에게 모든 걸 다 보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제 갈까?”
건은 그 사이 라페라리 카페 앞에 대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가자.”
제주도로 향하는 연희와 건.
적어도 이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이 일이 경계의 세상에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
“결국 다른 국가들이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모든 빛이 차단된 어둠으로 이루어진 공간.
그 공간 한 가운데 완전히 검게 변해버린 영혼석(靈魂石)이 놓여져 있었고 그 영혼석 앞에는 한 남자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준비는 얼마나 됐지?”
“구 할 이상을 끝내놓은 상황입니다.”
“흐음, 좋군. 그럼 이제 슬슬 내가 나설 때가 된 건가?”
“로드께서 나서신다면 모든 건 완벽해질 겁니다.”
“암흑병단과 암흑투사 그리고 암흑기사들은 대기 중이겠지?”
“네, 대기 중입니다. 그리고 로드의 충실한 수족인 저희 암흑칠왕(暗黑七王)이 위대한 존재의 탄생을 영접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크크크크, 이제야 모든 게 완벽하게 갖춰졌군. 좋아, 아주 좋아!”
남자, 아니 암흑마신은 기분 좋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래전 그는 제주도에서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땐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 때문에 완벽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그 뒤 그는 기적과 같이 부활해 이젠 진정한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그는 영혼석이라 불리는 아주 절대적인 존재를 자신과 하나라 합치는데 성공해 그 영혼석과 맹약으로 묶여 있는 모든 소울러를 자신의 권속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즉, 일본의 모든 소울러는 암흑마신의 권속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결국 암흑마신은 자신만의 왕국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제 일본은 더 이상 일본이 아니었다.
그곳은 암흑마신이 만든 어둠의 나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