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
더 소울(The Soul) - 흔들리는 수호자 [2]
* * * *
“암흑마신은 후지산에 있습니다.”
커다란 일본 지도 앞에 서 있던 묵뢰는 후지산 쪽을 가리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 정보는 그에게서 나온 게 확실한 건가?”
묵뢰에게 질문한 이는 이번 토벌대의 선봉을 맡은 제우스였다.
지금 이 자리에는 제우스를 비롯해 황룡패왕 주백검과 캡틴 듀렌은 물론이고 토벌대의 주요인사들이 모두 와 있었다.
그들이 묵뢰의 설명을 듣는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묵뢰가 세계 최고의 예언능력을 지닌 ‘신안(神眼)’의 부하이기 때문이었다.
신안은 바로 대한민국 헌터 협회의 협회장이었다.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는 협회장.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가진 예언능력이 세계 최고라는 점이었다.
그 능력을 통해 그는 수많은 일을 처리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정상급 소울러들이 그의 도움을 받았었다.
그렇기에 적어도 이곳에 있는 이들은 신안의 예언이 얼마나 정확한지 잘 알고 있었다.
“제가 직접 협회장님에게 들은 정보입니다. 이걸 여러분들에게 정확하게 전하기 위해 한국의 수호자들을 대신해 제가 지원대의 대표를 맡은 것입니다.”
묵뢰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우스의 물음에 대답했다.
“흐음, 그럼 확실하겠군.”
대화를 듣고 있던 듀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는 이미 신안의 정보가 얼마나 정확한지 여러 번 경험했었기 때문에 묵뢰의 말을 많이 신뢰하는 눈치였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묵뢰가 신안의 오른팔 같은 존재라는 걸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묵뢰의 말은 곧 신안의 말이 되었다.
“후지산이라…… 그럼 후지산만 공략하면 되는 건가?”
토벌대 중 선봉에 소속되어 있던 한 소울마스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얘길 했다.
그러자 묵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단순히 그렇게 생각만 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암흑마신이 후지산에 있다는 걸 알아내긴 했지만, 놈의 암흑파장이 너무나 강력해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내질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놈을 수호하는 일곱 명의 굉장히 강력한 부하들이 있다는 것 정도를 알아낸 게 전부입니다. 참고로 신안님은 여기까지 알아내기 위해 앞으로 무려 일 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말고 몸을 회복하는 데에만 집중해야 할 정도로 큰 데미지를 감수했습니다. 즉, 이번 기회를 놓치면 더는 신안님의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허어, 그 정도인가?”
“신안님은 절대 암흑제국과 암흑마신 그리고 그를 수호하는 일곡 명의 강력한 부하들을 무시하지 말라고 전하셨습니다. 솔직히 저는 지금 모인 토벌대로도 부족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안이 상대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군. 놈이 특별하다고 해봤자 결국 혼마의 일종일 뿐이야.”
지금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주백검이 입을 열었다.
그는 신안이 너무 쓸데없이 겁을 먹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판단으론 이 정도 전력이라면 암흑마신과 그 잔당들을 쓸어버리기에 충분했다.
“놈은 다릅니다. 전, 놈의 하위 버전이라 할 수 있는 놈과 싸워봤습니다. 만약 예상대로 암흑마신이 그때 그놈이 진화한 게 맞는다면…… 어쩜 세 분께서 합공을 하셔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 정도인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오버인 것 같은데…….”
이 말에는 제우스도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묵뢰가 말한 세 분이라면 자신과 주백검 그리고 듀렌이었는데 그는 그랜드마스터 세 명이 합공을 해야 할 정도로 암흑마신이 강할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이걸 단순히 제 개인적인 판단일 뿐이라고 치부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놈은 강합니다. 그러니 꼭 이걸 염두에 두고 이번 토벌을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
묵뢰는 자신이 여기서 계속 떠들어봤자 이들을 설득할 수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 발 뒤로 물러나며 최대한 자신의 의견을 어필하는 걸로 마무리를 지었다.
“길게 고민할 것 없이 일단 가보는 게 좋을 것 같군. 암흑제국과 암흑마신이 얼마나 강한지 직접 경험하고 만약 토벌대의 힘이 부족할 것 같은 그때 지원요청을 해도 되는 것 아니겠어?”
선봉을 맡은 제우스는 어서 빨리 공을 세우고 싶었다.
최근 들어 여러 가지 굴욕적인 일들 때문에 유럽연합 내부에서도 제우스를 최고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었다.
그가 이번 토벌대에 선봉까지 서며 적극 참여한 이유는 그 움직임을 초반에 확실하게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제우스는 자신이 다시 명성을 회복하면 불손한 움직임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명성을 쌓는데 이번 일만큼 좋은 건 없었다.
만약 선봉으로 나서서 암흑마신까지 깔끔하게 제거할 수 있다면 떨어졌던 명예는 오히려 떨어지기 전보다 더 올라갈 수 있었다.
제우스가 노리는 것은 그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한시라도 빨리 후지산에 진입하고 싶었다.
“내 생각도 일단은 후지산에 진입하는 게 먼저다. 지원 같은 건 진입 후에 흘러가는 상황을 보고 해도 늦지 않아.”
제우스의 말에 주백검이 동의했다.
이곳에 모인 네 명의 그랜드마스터 중 두 명이 입을 맞추자 나머지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결정이 났군. 그럼 바로 진입하는 걸로 하지.”
지금까지 가장 뒤에 앉아서 회의를 듣기만 하던 성자 칸은 대충 결정이 된 것 같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얘기했다.
현재 그들이 있는 곳은 미 해군의 항공모함 내부였다.
토벌대를 태운 미 해군의 항공모함 한 척은 비밀리에 태평양 쪽에서 도쿄 근처로 접근하는 중이었다.
암흑제국이 선포되고 일본은 경계가 아닌 현실에서도 모든 국가의 접근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항공모함을 타고 접근할 수 있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다.
바다와 하늘이 모두 막혀 있었기 때문에 배나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침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암흑마신은 현실에도 암흑마기를 뿌려놓았다. 암흑마기는 현실에서 사용되는 모든 종류의 전자기기에 치명적인 오작동을 일으키는 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희미한 암흑마기만으로도 얼마든지 현실의 최첨단 병기들을 무력화시킬 수가 있었다.
거기에 원래는 일본의 군대였전 자위대마저 암흑마신의 암흑병단이 되었기 때문에 전쟁할 게 아니라면 대놓고 침투하는 것은 피해야 했다.
결국, 항공모함을 타고 있던 토벌대는 대략 100km 정도의 바다를 자신들만의 힘으로 건너가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걸 특별히 걱정하진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그것에 대한 대책을 세워왔기 때문이었다.
금발의 푸른 눈을 지닌 한 남자가 항공모함 갑판 한가운데 서서 멀리 일본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이름은 데얀. 하지만 소울러들은 그를 데얀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게이트(Gate)’.
그게 바로 그가 경계의 세상에서 불리는 호칭이었다.
그가 이렇게 불리는 이유는 그가 가진 능력 때문이었다.
“이쪽 맞죠?”
일본 쪽을 바라보던 게이트는 옆에 서 있던 단목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맞습니다. 정확히 여기에서 117km 떨어진 곳에 문(門)을 만드시는 겁니다.”
“와우…… 생각보다 더 머네요.”
“얼마나 멀리까지 문을 만들어봤나요?”
“흐음…… 대략 10km 정도가 가장 멀었던 거 같네요. 그때고 그걸 만든다고 별짓을 다 했는데…….”
“괜찮겠습니까? 그때의 열 배가 넘는 거리입니다.”
“사실 거리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내가 그곳을 볼 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제 능력의 한계는 제가 볼 수 있는 곳까지예요. 아까 말한 10km밖에 문을 만들 때도 그걸 만들기 위해 최첨단 망원경까지 동원해서 간신히 만들었던 거죠.”
“그래서 제가 필요한 것이겠죠.”
이미 단목현은 게이트의 능력에 대해 설명을 들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그는 왜 자신이 게이트를 도와줘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맞아요. 당신의 도움이라면 아무리 먼 거리라고 해도 문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게이트도 단목현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단목현은 다른 이들에게 ‘천리안(千里眼)’이라 불리는 인물이었다.
그가 능력을 사용하면 그는 이론적으로는 100km 정도 떨어진 곳도 마치 1km 앞을 살펴보는 것처럼 볼 수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앞에 장애물이 없어야 했지만 어쨌든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만 없다면 100km 밖을 살필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인물이었다.
“왜 저는 없는 사람 취급을 해요? 두 분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제가 없으면 말짱 꽝이란 걸 모르는 거예요?”
게이트와 천리안 뒤에 서 있던 한 여인.
인도 쪽 소울러로 보이는 그녀가 없다면 사실 아무리 게이트와 천리안이 있다고 해도 117km밖에 물은 만들 순 없었다.
“설마 저희가 당신을 잊고 있었겠습니까. 링크(Link)! 당신이 없었다면 애초에 시도조차 못 할 일이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 뒤에 서 있던 여인은 링크라 불리는 여인이었다.
그녀가 필요한 이유는 간단했다.
게이트는 자신이 직접 봐야만 그곳에 문을 만들 수 있었다. 천리안은 게이트를 대신해 그가 봐야 할 곳을 봐줄 수는 있지만, 문제는 그것을 천리안이 아닌 게이트가 봐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이유로 그녀가 필요했다.
그녀의 능력은 ‘감각연결’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녀는 원하는 두 사람의 감각을 자기 뜻대로 연결할 수 있었다.
즉, 게이트의 시력을 천리안의 시력과 연결해 천리안이 보는 걸 게이트도 볼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시력 말고도 인간이 가진 모든 감각을 연결할 수 있었지만 지금 연결이 필요한 것은 오로지 시력뿐이었다.
“그럼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니 잡담은 그만하고 바로 시작할까요?”
세 사람의 등 뒤엔 모든 토벌대의 소울러들이 나와 문이 만들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천리안이 문이 만들어질 적당한 장소를 보고 그걸 링크를 통해 게이트가 같이 보게 되면 게이트는 곧장 그곳에 문을 만들면 되었다.
그가 만든 문은 쌍방향으로 통하는 문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문을 만드는 순간 이곳에도 문이 만들어지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문이 완성되면 그 뒤는 매우 간단했다.
이곳에 모인 모든 소울러가 그 문을 통해 일본으로 상륙하면 끝이었다.
문의 유지시간은 무조건 5분이었기 때문에 게이트는 토벌대가 모두 일본으로 상륙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문을 만들어야 했지만 그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 * * *
토벌대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일본에 상륙하고 있을 그때 건과 철민 그리고 연희는 대마도에서 일본 본토로 건너가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토벌대처럼 문을 만들어 바다를 건널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세 사람은 굳이 문을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매우 간단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절대 간단하지 않은 방법이었다.
파팟, 파파팟!
놀랍게도 세 사람은 바다를 뛰어서 건너는 중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건이 혼자 달리고 있었고 철민과 연희 두 사람은 S룸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냥 평범하게 달리는 것도 아니라 거의 시속 500km가 넘는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바람이 제법 불며 파도마저 상당히 높은 상태였지만 건은 그 모든 걸 아랑곳하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높은 파도를 꿰뚫고 나아갔다.
인간이, 아니 아무리 소울러라고 해도 시속 500km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건은 마음만 먹으면 이것보다 더 빠르게 달릴 수도 있었다.
이미 그의 육체는 인간은 물론이고 소울러가 가질 수 있는 한계까지 모두 초월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렇게 달리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철민이 지금의 건을 흉내 낸다면 어찌어찌 바다 위를 달리는 것까진 가능할지도 몰랐다.
특히 진화된 진뇌력은 지구의 자기장까지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되어 있었기 때문에 몸을 살짝 띄우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하지만 철민이 달릴 수 있는 속도의 한계는 대략 100km였다.
그렇기에 철민은 얌전히 S룸에서 건이 오사카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괜히 일본 본토로 상륙해서 달리면 암흑마신이 사방에 뿌려놓은 암흑마기가 나에대한 정보를 암흑마신에게 곧장 전하겠지? 그렇게 되면 괜히 귀찮은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 그냥 바다를 계속 달려서 오사카로 가자.’
원래는 이대로 바다를 가로질러 규슈 지방에 상륙해 육로로 오사카를 향해 달릴 생각이었지만 귀찮은 일을 최대한 막기 위해 아예 바다 쪽으로 우회할 생각이었다.
물론 달려가야 할 거리를 더 멀어지겠지만 그건 크게 상관이 없었다.
‘거리가 멀어졌으니 속력을 좀 올려볼까?’
건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속력을 더 끌어올렸다.
퍼퍼퍼펑!
건이 지나간 곳의 바닷물이 사방으로 폭발하듯 비산(飛散)되었고 시속 500km 정도로 달리던 건은 거기서 무려 200km를 더 끌어올려 시속 700km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비행기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 건.
이대로라면 정말 두 시간 정도면 충분히 오사카에 도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