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더 소울(The Soul) - 암흑제국 [2]
예외는 없었다.
그들이 아무리 암흑마기를 통해 다시 태어난 존재라고 해도 건의 절대 명령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 이게 무슨…….”
“어떻게…….”
세 암흑왕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암흑기사들은 모두 그 자리에 쓰러져 절명(絶命)했다.
건은 그들에게까지 전능언을 사용하진 않았다.
아무리 정체된 놈들이라고 해도 그랜드마스터는 그랜드마스터였기 때문에 전능언이 큰 효과를 볼 수는 없었다.
굳이 억지로 효과를 보겠다고 생각하면 보게 할 수도 있었지만 별로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시체나 다름없는 녀석들을 그렇게 강제로 끌고 다니는 것은 별로 좋지 않아. 적어도 인간들은 이런 걸 싫어한다고.”
건이 암흑기사들을 망설이지 않고 제거한 이유는 그들이 회생 가능성이 전혀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간단히 설명하자면 움직이는 시체와 같은 존재였다.
만약 그들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올 방법이 있었다면 건도 그들을 깔끔하게 제거하는 걸 살짝 망설였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건은 그들을 보는 순간 그들이 이미 영혼이 사라졌다는 걸 알았다.
영혼이 없단 얘긴 다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건은 망설이지 않고 그들에게 안식을 선사했다.
이쯤 되자 암흑왕들도 더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건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은 각기 다른 힘을 지니고 있었지만, 건은 그들이 가진 힘 같은 것은 관심이 없었다.
파파팟!
유령왕이 뿌린 몇 개의 투명한 조각은 혼력을 압축해서 만든 암기와 같은 것이었다.
물론 그 위력은 두꺼운 강철도 꿰뚫을 만큼 강력했다.
투명해서 맨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또한 빠르기도 엄청나게 빨라서 절대 쉽게 피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건은 너무나 여유롭게 몸을 슬쩍슬쩍 움찔 거리는 것만으로 이 투명한 암기들을 모조리 피해버렸다.
다른 사람 눈에는 안보일지 몰라도 건의 눈에는 너무나 선명하게 유령왕이 던진 암기들이 보였다.
그냥 보이는 게 아니라 하품이 날 정도로 느리게 날아오는 게 보였다.
빠르다는 것은 유령왕 쪽의 기준일 뿐이었다.
그리고 다른 두 암흑왕의 공격도 유령왕의 공격과 그다지 차이가 있질 않았다.
투왕의 강력한 파괴력이 느껴지는 선이 굵은 공격은 유령왕의 공격보다 더 쉽게 피할 수 있었고 그림자를 이용한 악마왕의 공격은 아예 위협조차 되지 않았다.
‘확실히 진짜 그랜드마스터들보단 수준이 떨어지네.’
많이 볼 필요도 없이 단 한 번의 공격만 보고도 건은 세 암흑왕의 수준이 제우스와 같은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그랜드마스터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1:1로 싸운다면 하루 안에 제우스와 같은 그랜드마스터들이 암흑왕들을 제압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그래도 단기간에 만들어냈다는 걸 고려하면 확실히 암흑마신이 보통 놈은 아니군.’
문제는 이 암흑칠왕이 아주 단기간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놈이란 사실이었다.
누구도 이렇게 짧은 시간에 그랜드마스터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심지어 건도 이렇게 인위적으로 그랜드마스터를 만들어내진 못했다.
시간을 들여 전력을 다해 노력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수는 있었지만 적어도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는 불가능한 게 맞았다.
건이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세 암흑왕은 건이 아주 강하다는 확실하게 걸 느끼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곧장 자신들이 가진 모든 힘을 끌어올렸다.
아무리 찍어내듯이 만들어낸 그랜드마스터라고 해도 그랜드마스터는 그랜드마스터였다.
그렇기 때문에 세 암흑왕이 동시에 모든 힘을 끌어올리자 주변의 혼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투왕이었다.
투왕은 이름 그대로 싸움꾼이었다. 그는 강력한 육체 능력을 바탕으로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래스처럼 모든 걸 맨손으로 찍어누르는 전형적인 육체 강화 계열 소울러였다.
“크어어어어!”
근육이 잔뜩 부풀어 올라 마치 헐크와 같은 모습으로 변한 투왕은 괴성을 내지르며 곧장 황소처럼 건을 향해 돌진했다.
그 순간 유령왕은 정말 유령처럼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는 투왕과 정반대로 절대 정면 대결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암살자처럼 상대방이 인지하지 못한 곳에서 공격했었다.
그래서 그가 유령왕이었다.
두 사람이 이렇게 직접 공격을 할 때 악마왕은 정신을 집중하며 자신의 특기라 할 수 있는 그림자 괴물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건의 그림자에서 솟아올라 온 그 괴물들은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아귀(餓鬼)와 비슷하게 생겼다.
그것들은 모두 악마왕의 혼력과 암흑마기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놈들이었다.
앞에선 황소 같은 투왕이 달려오고 유령왕은 암중에서 공격을 노리고 마지막으로 악마왕이 건의 그림자에서 소환한 아귀와 같은 괴물들은 어느새 건의 다리를 휘감고 있었다.
언뜻 보기엔 건이 굉장히 위험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위험한 사람치고는 표정이 너무나 평온했다.
우선 건은 오른팔을 들어 자신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는 투왕을 향해 뻗었다.
두두두두!
투왕은 있는 힘껏 건을 향해 몸통박치기를 시도했다.
그의 몸통박치기는 세상에 모든 것을 파괴해버릴 수 있을 것처럼 너무나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하지만…… 실제로 세상의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꽈과과과과광!
있는 힘껏 건을 들이받은 투왕. 그렇지만 투왕은 그저 들이받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았다.
투왕은 건을 한 발자국, 아니 조금도 움직이게 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건의 오른팔에 가로막혀 제자리에 멈춰섰다.
아무리 있는 힘껏 용을 써도 건을 밀어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몸을 빼낼 수도 없게 되었다.
“이이이익!”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지만 투왕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자신의 몸에 닿아 있는 건의 오른팔을 떨쳐내기 위해 마구 발악하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절대 건의 오른팔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건이 투왕의 몸을 휘감은 전능강기를 거둬주지 않는 이상 그는 계속 그렇게 건에게 붙잡혀 있어야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암중에서 기회를 노리던 유령왕이 움직였다.
건이 투왕과 힘겨루기를 하는 사이 건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꽂아넣기 위해서였다.
움직인 것은 유령왕만이 아니었다.
건의 그림자에서 괴물을 소환한 악마왕도 자신이 소환한 괴물들에게 건을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건이 투왕을 막는 데 힘을 쓰는 동안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들이 이득을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고 있는 게 하나 있었다.
건은 투왕을 막는 데 별로 큰 힘을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건은 투왕을 막을 때 무슨 특별한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순수하게 자신이 가진 근력을 이용해 투왕을 저지했을 뿐이었다.
그 뒤에 투왕을 투명한 전능강기로 휘감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지만, 이 정도는 건에게 손톱만큼의 무리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즉, 유령왕과 악마왕이 착각하는 대로 건이 많은 힘을 사용하고 있는 게 절대 아니란 뜻이었다.
그 착각의 대가는 너무나 컸다.
이미 전능안을 통해 유령왕의 움직임을 너무나 쉽게 파악하고 있던 건은 슬쩍 유령왕 쪽을 바라보았다.
분명 유령왕의 은신(隱身)은 완벽했지만 전능안은 모든 걸 꿰뚫고 그를 찾아냈다.
유령왕을 찾아낸 건은 왼손을 슬쩍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한줄기 기운이 흘러나와 유령왕을 휘감았다.
그 순간 유령왕은 세상이 완전히 뒤바뀌는 걸 경험했다.
지금까지 존재하던 모든 게 사라지고 그의 눈앞에 거대한 화염의 벽이 나타났다.
화르르르륵!
주변에서 동시에 치솟은 불길은 곧장 그를 향해 몰려들었다.
유령왕은 그 불의 벽을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 수 있는 틈 자체가 존재하질 않았다.
“허어억!”
결국, 거대한 화염은 유령왕을 휘감았다.
순간 유령왕은 온몸이 불에 타며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그는 이대로 재가 되어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죽지를 않았다.
온몸이 타는 엄청난 고통은 계속 느껴졌는데 죽지를 않았다.
차라리 깔끔하게 죽을 수 있다면 나을 것 같은데 이렇게 계속 엄청난 고통만 느끼고 죽질 못하니 유령왕은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크아아아아, 제발…… 제발…… 날 죽여줘!!”
발악하는 유령왕.
하지만 그가 아무리 발악을 해도 현실을 바뀌지 않았다.
그의 몸을 휘감은 힘은 전능환영.
그렇기에 그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환영에 사로잡혀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이었다.
건에게 붙잡혀 바동거리는 투왕과 환영에 휘감겨 혼자 바닥을 구르고 있는 유령왕.
건은 순식간에 두 암흑왕을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럼 이제 남은 왕은 하나.
악마왕뿐이었다.
이 순간에도 악마왕은 자신이 만든 그림자 괴물들로 건을 붙잡아 제압한 후 다른 암흑왕들을 구해낼 생각이었다.
이미 건의 그림자에선 수십 마리의 그림자 괴물이 마구 튀어나와 건의 양발을 붙잡으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건은 그런 그림자 괴물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신 그는 천천히 오른발을 들어 올렸다.
그리곤 가볍게 오른발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쩌저저저저적!
마리 거미줄처럼 갈라지는 바닥.
건의 오른발로부터 시작된 균열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반경 10km 안의 공간 전체에 뻗어 갔다.
단지 가볍게 내리찍었을 뿐인데 건은 바닥의 결을 모조리 끊어버리며 자신의 그림자에서 솟아오른 괴물들도 똑같이 모조리 조각조각 내버렸다.
“커억!”
악마왕은 자신의 혼력까지 섞어서 만들어낸 그림자 괴물들이 한순간에 박살이 나자 큰 충격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투왕은 바동거리고 유령왕은 뒹굴고 악마왕은 비틀거렸다.
누구 하나 제대로 공격에 성공하질 못했다.
아니 오히려 공격 성공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은 셋 모두 제대로 버티질 못하고 있었다.
“그만 끝내자.”
건은 이런 의미 없고 귀찮은 싸움은 절대 길게 끌고 싶지가 않았다.
촤아아아악!
건의 등에서 솟아오른 황금빛 날개.
끝내고자 마음먹은 건은 전능천익을 펼쳤다.
건이 전능천익을 펼친 순간 투왕은 자신의 몸을 사정없이 짓누르는 어마어마한 압력을 느꼈다.
우드드드득!
“크아아아아악!”
투왕은 그 압력에 버티려고 했지만, 그 순간 압력은 더욱 강해져 투왕의 두 다리를 완전히 부숴버리며 투왕을 강제로 바닥에 처박았다.
“결국, 힘이란 것은 늘 상대적인 법이니 너무 억울해하지는 마라.”
건은 그 말과 함께 투왕을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엄청난 압력으로 찍어눌러 한 줌의 혈수(血水)로 만들었다.
콰드드드드드드득!
투왕은 뭐라 제대로 말도 못하고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악마왕은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분명 아니었다.
자신들은 자랑스러운 암흑칠왕 중 한 명이었다.
더욱이 그는 그랜드마스터였다. 그리고 지금 똑같은 경지에 오른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적을 상대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단 몇 분 만에 투왕이 죽었다.
그것도 그냥 죽은 게 아니라 처참히 짓이겨져서 죽었다.
그리고 적은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악마왕은 투왕이 느꼈던 그 어마어마한 압력이 자신을 짓누르는 걸 느꼈다.
“커어억!”
이건 도저히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허물어져 내리는 악마왕.
그렇게 투왕에 이어 악마왕도 한 줌의 혈수가 되었다.
악마왕 다음은 아직도 바닥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유령왕이었다.
건을 막기 위해 암흑마신이 보낸 세 명의 암흑왕.
하지만 그들은 절대 건을 막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