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회: 1-2 -->
아레마고의 문 뒤에는 거대한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놓여 있었다. 큼지막한 현수교에는 성벽을 통과하려는 사람들의 행렬로 가득 찼다. 대부분은 수레에 가득 실린 가죽, 수공품, 밀포대 등 도시로 가서 물건을 팔 목적으로 온 상인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자, 단태는 조급해졌다. 문이 닫히면 꼼짝없이 야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이슬을 맞고 잔 터라 하루라도 빨리 저 도시에 들어가고 싶었다.
차례가 되었다. 창을 든 병사들 앞에 서 있던 관리가 다가와 날카롭게 물었다.
“유타루체에 온 목적은?”
“숙부님께서 초대하셔서요.”
엄마는 마을을 떠난 이후로 꺼내지도 않았던 편지와 증명서를 미간이 좁은 관리에게 보여 주었다. 서류를 읽은 관리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걸렸는데, 단태는 혹시 엄마에게 흑심을 품은 게 아닌가 싶어 잔뜩 긴장했다.
그러나 관리는 서류를 돌려주며 ‘통과’라고 외쳤고, 단태는 여동생과 수레를 밀어 성벽 안으로, 물의 도시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단태는 주먹을 꽉 쥐었다.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
수레는 헐값에 팔렸다.
목적지가 운하를 통해서만 갈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배를 처음 타 보는 운마도 문제였다. 어쩔 수 없이 운마도 팔았다. 가족 같은 운마가 팔려 가는 모습에 엄마, 단태 그리고 설희까지 마음이 가라앉았는데, 상인과 흥정하는 그 작자만 돈을 손에 쥐어 흥이 난 것 같았다. 분명히 3마전이었는데 엄마에게 2마전만 주고도 어렵게 받아 낸 거라고 헛소리를 하는 남자. 단태는 저 남자의 주머니를 뒤지면 1마전이 나올 거라고 확신했지만 새롭게 출발하는 첫날 그런 다툼으로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남자는 들를 곳이 있다면서 배에 타지 않았다. 돈이 생겼으니 쓰러 가는 것이다.
배는 넓은 물길은 물론 골목길처럼 좁은 곳을 누비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얼마 없는 세간을 나눠서 들고 작은 배에서 내려 이끼 낀 계단을 딛고 올라선 세 사람은 낡은 대문 앞에 섰다.
“엄마한테 숙부님이 있었어?”
운하의 악취 때문에 손으로 코를 막은 단태가 물었다. 물의 도시는 멀리서 볼 때만 환상적이었다.
“……나중에 얘기해 줄게.”
엄마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고, 단태와 설희도 자기 몫의 물건을 들고 뒤따랐다.
숙부님이라는 말에 넓은 저택에 무수한 하인들을 거느린 부자를 내심 기대했던 단태는 좁고 기다란 집을 보고는 실망했다. 아니, 이런 곳에 집을 가지고 있다는 게 어디야? 단태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대신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엄마의 숙부님이라면 어떻게 불러야 하지? 엄마에게 물어볼까 했던 단태는 굳은 표정에 질문을 삼켰다. 엄마가 이렇게 긴장한 것은 오랜만에 보았다.
미간이 좁고 턱이 뾰족한 중년 여자가 다가왔다. 배를 타고 온 듯, 아까 단태 가족이 들어선 문에서 나왔다.
“서류는?”
“……여기.”
엄마가 관리에게 보였던 그 서류를 여자에게 건넸다. 쌀쌀맞은 그 여자는 서류를 휙 읽더니 돌려주며 말했다.
“저기 왼쪽 방이야. 거기 있어. 어르신께서 오면 알려 줄 테니까.”
“……네.”
엄마가 대답하는데, 이미 여자는 가 버리고 없었다.
엄마는 단태, 설희와 함께 짐을 가지고 그 여자가 가리킨 왼쪽 방으로 걸어갔다. 벽은 이끼와 곰팡이가 섞여 있었고, 하나밖에 없는 침대는 한쪽이 푹 꺼져 잠을 자면 허리가 아플 것 같았다. 물병과 나무 컵이 놓인 탁자가 가운데 있었는데, 탁한 색은 왠지 불결해서 물도 못 마실 것 같았다.
말없이 짐을 푼 엄마는 준비해 온 곡물 가루를 물에 타서 설희에게 주었다. 배가 고팠던 설희는 평소 좋아하지 않던 그 가루 탄 물을 순식간에 마셨다.
“잠깐 나갔다 올게.”
엄마가 나가자, 단태가 따라 나갔다.
“엄마, 숙부님 이야기, 거짓말이지?”
“…….”
“돈 주고 서류 산 거지?”
“……설희 잘 보고 있어.”
엄마는 단태를 두고 아까 그 여자가 사라진 문으로 가 버렸다.
방으로 돌아온 단태는 벽에 기댄 채 엄마가 만들어 준 낡은 인형을 안고서 곯아떨어진 설희를 들어다가 침대에 눕혔다. 짐에 있던 옷가지 몇 개를 푹 꺼진 곳에 채우자 그런대로 침대로 쓸 만했다.
배가 고픈 단태는 곡물 가루를 물에 타서 한 모금 마셨는데 물맛이 이상했다. 그래도 버릴 수가 없어서 삼켰다. 설희도 맛이 이상했을 텐데, 엄마 앞이라서 억지로 삼켰으리라. 설희에게 다가가서 머리를 쓰다듬은 단태는 밖으로 나왔다.
대문 바깥은 바로 운하여서 배가 없이는 움직일 수 없었다. 단태는 이곳저곳 기웃거렸다. 그 기다란 집에는 문이 일곱 개나 있었는데, 다른 방은 다 비어 있었다. 이곳이 어디인지도 알아내지 못한 그는 주위를 둘러본 다음, 뒤로 물러섰다가 앞으로 달려 얻은 도약력으로 담장 위에 올라섰다.
비슷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일곱 개의 문이 달린 낮고 기다란 집이었다. 조용해서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가운데 문이 열리더니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열일곱, 열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의 손을 잡고 끌고 가려는 남자들과 결단코 딸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나이 든 엄마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늙은 여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남자가 휘두른 주먹에 배를 맞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딸은 남자들에게 붙잡혀 끌려갔는데, 그 집 대문 바깥에서 기다리던 배로 옮겨졌다.
배가 가 버리자 엄마는 닭똥 같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소녀가 방에서 나와 엄마 옆으로 걸어갔다.
“엄마, 언니는…… 어디 갔어?”
딸을 와락 끌어안고 엉엉 울던 엄마는 충격 때문인지 기절하고 말았다. 당황한 소녀가 엄마를 흔들며 말했지만 엄마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단태는 훌쩍 뛰어내려 소녀 옆으로 걸어갔다.
“누, 누구야?”
경계하는 소녀.
“이상한 사람 아니야. 내가 누군지보다 엄마가 더 중요하지 않아?”
“…….”
“내가 잠깐 볼게.”
단태는 손목을 만져 보고 다음엔 목에 손가락을 댔다. 스스로 돌팔이라고 부르는 마을 의사에게 배운 것이었다. 맥박이 들뜬 것 같지만 중심은 단단해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그렇게 알려 주자 소녀는 눈에 띄게 안심했다.
“안쪽으로 옮길게.”
단태는 체구가 작고 몸이 가벼운 소녀의 엄마를 업고 방으로 들어갔다. 설희가 누워 있는 그 침대는…… 멀쩡한 편이었다. 다리 하나가 부러져 아예 기울어 버린 침대는 돌을 괴어 겨우 균형을 잡고 있었다. 엄마를 눕히자 침대가 흔들렸다.
“고마워.”
소녀가 말했다.
“난 단태, 오늘 도착했어. 저 담 너머에 말이야.”
“저기?”
“응. 엄마랑 여동생이랑. 여기 물의 도시로 오는 데 거의 한 달이나 걸렸거든.”
“시골에서 왔지?”
“……응? 응.”
단태는 살짝 마음이 상했다. 도와줬는데 시골 출신이라고 무시하는 걸까?
“난 모중반에서 왔어. 한 달쯤 됐어.”
“난 울담반.”
모중반은 서남쪽 끝자락에 붙어 있는 어촌이었다. 다행히 저 소녀도 이곳 출신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직 늦지 않았어. 당장 이곳을 떠나. 여긴…… 지옥이야. 너도 나처럼 물의 도시에서 살기 위해 왔겠지만, 여긴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살 곳이 못 돼. 아까 봤지? 언니를 잡아가는 거? 내일, 어쩌면 모레쯤엔 날 잡으러 올 거야.”
“왜?”
슬금슬금 불안이 느껴졌다. 갑자기, 마을을 떠나기 전에 친하게 지냈던 그 돌팔이 의사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여러 면에서 마을 어른들과 달랐던 그 의사는 인신매매와 관련된 끔찍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돈이 없으면 몸을 팔아서라도 갚아야 해. 여기 하루 묵는 데 얼마인지 알아? 10마전이래, 10마전. 밥 한 끼엔 5마전이고. 그런 돈이 어디 있어? 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막무가내야. 돈이 없으면 딸을 데려가겠다고 말했고, 네가 본 것처럼 언니를…… 데려갔어.”
“말도 안 돼. 경비대원은? 신고 안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