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회: 1-3 -->
“너, 순진하구나.”
“뭐?”
“아까 언니를 데려간 놈들이 바로 이 구역을 맡은 경비대원이야. 이제 좀 알겠니?”
“…….”
“어서 달아나.”
그렇게 말한 소녀는 힘없이 엄마 곁으로 갔다.
밖으로 나온 단태는 담을 넘어 설희가 자고 있는 방으로 돌아왔는데, 거기 사람이 있었다.
“누구세요?”
“나? 여기 주인. 너는 누구니?”
안경을 낀 그 남자는 마른 몸매였는데 팔에는 근육이 붙어 있었다. 뺨과 턱에도 상처 자국이 보였다.
“제 동생이에요.”
단태는 설희를 가리켰다.
“아, 네가 바로 단태구나. 그렇지?”
“……네.”
“난 도양이라고 한다. 만나서 반갑다.”
도양이 내민 손을 단태는 잡지 않았다. 그저 엄마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을 뿐이었다.
“엄마는요?”
“볼일이 길어지는 모양이구나. 곧 오실 거다. 배고프지 않니? 맛있는 거 준비하라고 했는데.”
“괜찮아요.”
“어디 갔었니? 여기 왔을 때 널 못 본 것 같아서 말이다.”
“뒤뜰에 가 봤어요. 저는 어딜 가든 궁금한 건 잘 못 참거든요.”
단태는 담을 넘었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다. 흥미로운 시선으로 세간을 둘러본 도양은 곧 저녁 식사를 할 테니 여동생을 깨우라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도양이 대문 밖 운하에 띄운 배로 가는 것을 확인한 단태는 설희를 흔들었다.
“일어나, 어서! 일어나, 설희!”
눈을 비비며 일어난 설희는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아직도 안 왔어?”
“곧 오실 거야.”
단태는 언제든 이곳에서 나갈 수 있도록 짐을 챙긴 다음, 밖으로 나가 엄마가 언제 오는지 살폈다. 운하에는 작은 배들이 다녔는데,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해가 져서 멀리 떨어진 건물의 그림자에 덮였는데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단태는 당장 필요한 물건만 챙겨서 설희와 대문으로 나왔다. 엄마가 오면 당장 떠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기다리는 엄마 대신 도양이라는 인간이 쪽배를 타고 나타났다.
“어, 날 기다렸니? 아주 착하구나. 밥 먹으러 가자. 배고프지? 아, 엄마가 기다리고 있단다.”
그 말에 설희는 단태의 마음도 모르고 쪽배로 올라타 버렸다. 망설이던 단태는 배에 타서 설희와 도양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짐을 챙겼네? 어디 가려고?”
“……큰 도시엔 좀도둑이 많다고 해서요.”
단태가 말했다.
“하긴 도둑놈들이 많긴 해. 조심성이 있는 걸 보니 적응이 빠르겠어. 엄마가 아들을 자랑스러워할 만한데?”
도양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 말을 듣자 단태는 어쩌면 아까 그 소녀가 뭔가를 잘못 안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직 경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사람을 쉽게 믿는 그는 의심 대신 호기심을 갖고 쪽배를 살폈다. 쪽배는 노를 젓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움직였다. 또한 자기가 알아서 방향까지 결정했다.
“신기하니?”
“어떻게 움직이는 거예요?”
“마법이란다.”
“……이 배에 마법이 걸려 있어요?”
단태는 깜짝 놀랐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가끔 마을에 들르는 마법사를 먼발치서 본 적은 꽤 많았지만 한 번도 직접 마법을 펼치는 장면을 보진 못했다. 다만 마법이 걸린 물건은 그 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무렴.”
도양은 팔짱을 꼈다.
“와!”
단태와 설희가 동시에 탄성을 터트렸다.
배는 곧 화려하지는 않지만 깔끔한 문 앞에 멈췄다. 먼저 내린 도양이 신사처럼 설희의 손을 잡아 주었다.
“짐은 거기 두거라. 식사 자리에 들고 가기엔 좀 그렇잖니?”
“알겠어요.”
단태는 마법의 배를 소유할 정도로 부유한 도양이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을 강제로 데려가는 짓은 하지 않았을 거라고 내심 확신했다. 짐을 한쪽에 쌓아 두고 배에서 내리려는데, 뒤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단태!”
고개를 돌린 단태는 열 명 남짓 탈 수 있는 배에 남자들과 함께 타고 있는 엄마를 발견했다. 엄마는 밧줄에 묶여 있었다.
버둥거리는 엄마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남자.
“엄마!”
단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만 같았다. 숨을 헐떡이며 도양에게 엄마가 저기 있다고, 도와 달라고 말하려던 그는 도양에게 잡힌 설희를 발견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한순간 상황이 선명하게 파악되었다. 도양은 애석한 표정을 지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저 여자가 네 엄마니?”
“…….”
“넌 모르겠지만, 네 엄마는 이 아저씨한테 빚이 많단다. 자, 빚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갚아야지. 그러니까…….”
단태는 갑자기 달려들어 도양의 사타구니를 발로 걷어찼다. 신음을 흘리며 도양이 설희를 놓자, 단태는 설희를 잡고 그 쪽배에 올라탔다. 쪽배는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양이 고함을 질렀는데도 쪽배는 앞으로 미끄러지듯 가고 있었다.
“오빠, 엄마는……?”
“곧 만날 거야.”
단태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나, 무서워.”
단태는 설희를 꼭 안은 채로 쪽배를 살폈다. 엄마를 쫓아가려면 배를 돌려야 하는데.
곧 아까 도양이 서 있던 자리에서 기이한 문양을 발견했다.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단태는 심호흡을 하고는 그 자리에 섰다. 그러자 시큼한 과일을 먹었을 때처럼 몸이 떨렸다. 곧 신기하게도 배와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
‘가능할까? 그래, 해 보자. 왼쪽으로!’
생각으로 지시하자, 쪽배는 그 명령에 따랐다. 그러나 너무 지시가 과했는지 쪽배는 왼쪽으로 급선회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물에 잠길 뻔했다. 다행히 몇 번 명령을 내리니 그 요령을 알 것 같았다. 말을 타는 것과 비슷했던 것이다.
핑.
화살이 귀를 스치고 앞으로 날아가 수면에 빠졌다. 고개를 돌린 단태는 세 척의 쪽배가 따라오는 것을 발견했다. 가운데 쪽배에는 노기등등한 도양이 타고 있었다.
“몸을 숙여. 그래, 그렇게.”
설희를 안전하게 챙긴 단태는 선 채로 ‘더 빠르게’ 달리라고 명령을 내렸다. 쪽배는 물살을 가르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두 개의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라 많은 배들이 오가는 교차로가 보였다.
단태는 겁을 집어먹었지만 설희를 내려다보며, 그리고 잡혀간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오가는 배들을 노려봤다. 집중하자 배들의 속도, 위치가 이전보다 훨씬 정확하게 보였다.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
쪽배는 크게 요동을 치며 왼쪽으로, 그다음엔 오른쪽으로, 마지막엔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꺾어 그 복잡한 교차로를 무사히 빠져나갔다.
도를 감안하여 단숨에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배끼리 충돌해 산산조각이 났을지도 몰랐다.
고개를 돌린 단태는 쫓아오던 도양의 패거리가 그 교차로를 통과하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는 모습을 확인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방향을 틀었다. 좁은 골목이었다. 이곳 지리는 잘 모르지만, 이런 곳으로 숨어야 들키지 않을 것 같았다.
잠시 천천히 움직이며 생각을 정리한 단태는 반쯤 허물어진 집 앞에 쪽배를 세웠다.
“가서 엄마 데려올게. 그러니까 여기 꼼짝 말고 있어. 알았지?”
“……무서워, 오빠.”
“…….”
“나, 같이 갈래.”
“……그래.”
마음을 굳힌 단태는 설희를 태운 채로 출발했다. 여기서 헤어졌다가 예기치 않은 일이라도 생기면 영영 못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태는 눈에 띄지 않는 조그만 공간에 쪽배를 숨기고 운하를 지나가는 배를 살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양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쪽배만 다섯 척이었다.
“이 근처에 있어. 그러니까 샅샅이 뒤져서 잡아와. 그 맹랑한 놈, 오늘 끝장내고 말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