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4화 (4/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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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시를 받은 부하들이 흩어졌다. 씩씩대던 도양도 쪽배를 타고 어둠이 깔리는 수면을 가르며 움직였다.

단태는 물에 둥둥 떠다니는 더러운 가죽을 건져 망토처럼 두르고는 눈만 내민 채 쪽배를 몰았다. 평소 방향 감각에 자신이 있었지만, 이곳은 처음인 데다가 땅이 아니라 물이어서 한참 만에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도양 무리가 다 단태를 찾으러 나온 이 시점에 단태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향했던 것이다.

“여기 있어.”

설희에게 말한 단태는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살금살금 들어섰다. 주위를 둘러본 그는 문을 두드렸다. 반응이 없었다. 다시 두드리려는 순간, 문이 홱 열렸다.

“또 뭘 원하…… 넌?”

“언니, 어디 있는지 알아? 그 사람들이 어디로 데려가는지 들은 거 없어?”

“악마의 거리로 간다고 했어.”

“……여기 지리, 아니?”

“조금.”

“어머니는 괜찮으셔?”

“아니, 별로 안 좋아.”

“그럼, 너만 가자. 네 언니도 구하고, 우리 엄마도 구하고.”

“어떻게?”

“따라와.”

단태는 소녀의 손을 잡고 대문으로 데려갔다.

쪽배를 본 소녀의 눈이 커졌다. 단태는 쪽배의 문양 위치에 올라타고는 소녀를 향해 손짓했다. 망설이던 소녀는 설희를 보고는 조심스레 쪽배에 한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쪽배는 출발했고, 몸이 기운 소녀를 설희가 끌어당겼다. 쪽배의 속도에 두려움마저 느낀 소녀는 설희 옆에 앉았다.

“언니는 누구야?”

“나는…… 위연미야.”

“난 설희.”

“……그래.”

“언니는 엄마가 어디 있는지 알아? 나쁜 아저씨들이 엄마를 데려갔어. 오빠는 그 친절한 아저씨의 다리 사이를 걷어찼고. 그러고는 오빠가 배를 막 빨리 움직였는데, 그다음은 잘 모르겠어.”

설희의 이야기를 통해 상황을 유추한 위연미는 단태를 쳐다봤다. 소마선이라 불리는 이 마법의 배를 자유롭게 조종하다니. 마탑에서 발급하는 자격증이 있어야 할 만큼 소마선 조종은 까다로운 편인데. 잠시 지켜보니 그 악마 같은 도양보다도 더 잘 모는 것 같았다.

그때, 앞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저기 있다! 잡아라!”

어둠을 가르고 조명탄이 허공으로 올라가 빛을 뿌리자 어둠에 잠겼던 건물 외벽과 시꺼먼 운하가 대낮처럼 환해졌다. 단태는 이쪽을 손가락질하는 소마선 두 척을 보았고, 즉시 몸을 돌려 위연미를 쳐다봤다.

“악마의 거리, 어느 쪽이야?”

“왼쪽.”

단태는 선수를 왼쪽으로 틀었다.

소마선이 급격히 방향을 틀자 한쪽으로 기울었는데 단태는 몸의 무게중심을 낮추어 그 영향력을 이겨 냈다.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배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간 단태는 끈질기게 쫓아오는 배들을 볼 수 있었다. 연신 하늘로 조명탄이 올라갔다.

이래서는 숨지도 못한다.

악마의 거리로 직행하는 수밖에.

단태는 위연미의 안내를 받아 소마선을 몰았다. 물살을 뒤로 남기며 달리던 소마선은 차츰 속도가 줄어들었다. 조급한 마음에 ‘더 빨리’ 명령을 내렸지만 겨우 줄어든 속도를 유지할 수 있을 뿐이었다. 거리가 좁아져서 조급한데, 졸음까지 쏟아졌다. 몸이 축 늘어질 것만 같았다. 이대로 눈을 감는다면 며칠은 잘 것처럼 피곤했다.

“마력석이 부족해서야.”

위연미는 소마선을 뒤지더니 한쪽에 뚜껑을 발견하고 거기서 꺼낸 은색의 돌멩이들을 단태가 서 있는 문양에 쏟아부었다. 그 돌멩이들은 빛을 뿜으며 문양으로 스며들었다. 배고픈 말이 건초를 먹고 힘을 내듯, 소마선은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단태가 위연미를 쳐다봤다.

“고마워.”

“뭘.”

조명탄을 다 쓴 모양인지 더 이상 하늘은 밝아지지 않았다. 이쪽이 유리하다는 뜻이었다.

단태는 방향을 틀어 좁은 통로로 접어들었다. 그 좁은 물길은 제대로 조종하지 못하면 소마선이 이리저리 벽을 쳐서 자칫 잘못하면 배에 구멍이 날 수도 있는 어려운 통로였다. 멋모르고 그쪽으로 들어온 단태는 정신을 집중해 물길만 쳐다봤다. 몇 번 쿵쿵 소리가 날 만큼 배가 벽과 모서리에 부딪혔지만, 곧 소마선은 이리저리 꺾인 물길을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물이 들어와! 큰일이야!”

뒤에서 들린 소리였다. 배 한 척이 가라앉자, 뒤에 있던 소마선들은 따라올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야호!”

위연미가 환호했다.

그 반응에 단태와 설희는 서로를 쳐다보더니 위연미처럼 소리를 질렀다. 운하 옆에서 담배 피던 노인이 시끄럽다고 말하자, 세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 웃은 다음, 위연미가 단태 옆으로 다가왔다.

“소마선 조종법, 배웠니?”

“소마선? 이 배의 이름이야?”

“……그것도 몰랐어?”

“오늘 처음 타 봤거든.”

위연미는 기가 막혔다. 직접 보지 않았다면 누가 이런 이야기를 해 줘도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

“난 단태야.”

“난 위연미.”

이제야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된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웃었다. 그냥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상황인데 웃음이 나와서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곧 악마의 거리가 나타났다.

딱 한 번 와 본 적이 있다는 위연미의 안내는 정확했다. 붉은 등을 달아 기이한 분위기를 풍기는 통나무집들이 운하 양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비명과 고함이 뒤섞여 들렸고, 악취는 한층 더 심해졌다.

단태는 사냥 갔다가 실종되는 바람에 뒤늦게 찾아낸 촌장의 셋째 아들의 시체에서 풍기는 그 냄새를 기억해 냈다. 반쯤 썩어 있던 그 시체를 생각하자 몸이 떨렸다.

“여기, 뭐 하는 곳이야?”

“나도 몰라.”

“물어볼까?”

“……그래.”

위연미는 감추려 했지만 겁먹은 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소마선을 가까운 통나무집 계단 옆에 멈춘 단태는 아까 주웠던 가죽을 뒤집어쓰고 위로 올라갔다. 덩치 큰 사내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단태를 힐끔 본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애들은 못 들어간다.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라.”

“……여기가 뭐 하는 곳이에요?”

“뭐하긴, 사람 사고파는 곳이지.”

단태는 할 말을 잃었다.

“너, 혼자 왔니?”

사내가 갑자기 부드럽게 말하자, 단태는 즉시 뒤로 물러나 소마선에 타고 출발했다. 돌아보니 사내는 어느새 단검을 쥐고 이쪽을 아쉬운 듯 쳐다보고 있었다. 하마터면 저놈에게 잡힐 뻔했다.

“뭐래?”

위연미였다.

“인간시장이래.”

단태는 설희가 못 듣도록 위연미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러자 위연미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빚

푸른색 용이 그려진 커다란 배 한 척이 물살을 가르며 움직이고 있었다. 선수 갑판에 서 있던 누천파는 뒷짐을 진 채 저 앞에 있는 ‘암방거로’를 쳐다봤다. 속칭 악마의 거리인 그곳이 가까워지자 악취가 코를 자극했다.

늙은 하인이 다가와 약병의 뚜껑을 열었다. 약병에서 숲의 향기가 흘러나왔다. 누천파는 손을 뻗어 반투명한 약을 손가락으로 찍어 코 근처를 문질렀다. 악취는 씻은 듯 사라지고 여름 숲의 향기가 코로 스며들었다.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아까 내가 말한 거, 알아봤어?”

“네, 도련님. 그 용은 시장님이 수도에서 구입하여 직접 타고 오신 거라고 들었습니다.”

“얼마에 샀대?”

“백만 마전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백만?”

누천파의 눈이 커졌다.

“어떤 사람은 천만 마전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렇게 비싸?”

“워낙 희귀한 천마룡이니까요. 몸집이 작은 용은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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