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7화 (7/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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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빠른 중개인은 와타가 내민 돈주머니를 받아 들고는 깨끗하게 설희를 포기했다.

잔뜩 겁먹은 설희는 위연미와 함께 와타가 구해 온 소마선에 올라탔다. 반우현은 문양이 그려진 ‘용좌’에 서서 소마선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소마선은 도시의 중심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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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법사 엄포윤은 푸줏간 주인이 돼지를 꼼꼼히 뜯어보듯 단태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끈적끈적하기까지 했다. 마법사는 고개를 돌려 중개인을 힐끔 봤다.

“이 아이가 소마선을 조종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요.”

“얼마라고 했지?”

“5천 마전입니다.”

“3천 마전.”

“……마법사님, 4천 마전…… 그 아래는 안 됩니다. 우리도 먹고살아야지요.”

“3천 5백.”

“……알겠습니다. 그런데 매번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다음엔 절대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알겠네.”

마법사는 다음번에도, 그다음 번에도, 어쩌면 늙어 죽을 때까지 그럴 생각이었다. 상인이 밑지고 판다는 것만큼 새빨간 거짓말도 없으니까.

이번 물건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사실 중개인에게 확인을 위해 물어봤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저 아이가 소마선을 조종하는 모습을 직접 봤던 것이다. 게다가 오늘 처음 소마선에 탄 아이라니. 저 아이라면 중요한 연구를 완성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노마법사는 자신의 소마선을 이끌고 마둔수탑으로 향했다.

저 푸르스름한 탑은 볼 때마다 처음 들어선 순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거대한 꿈을 품고 탑의 일원이 되었지만, 그 꿈은 곧 현실에 짓눌려 사라지고 말았다. 꿈을 이루기는커녕 치열한 경쟁에 밀려 도태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다 보니 벌써 노년이었다.

올해로 육십을 훨씬 넘긴 그는 더 늦기 전에 학계를 깜짝 놀라게 할 논문을 발표하고 싶었다. 탁월한 논문 한편이면 이제까지의 수모를 모두 잊을 수 있으리라.

“약제실 타마 어르신, 오셨습니까?”

“……별일 없지?”

“그럼요.”

“수고하게.”

탑 입구를 지키는 젊은 수련 마법사와 대화를 나눈 그는 굳은 얼굴로 탑 내부에 들어섰다. ‘약제실’, ‘타마’ 모두 자존심을 건드리는 호칭이었다.

약제실은 마둔수탑 내에서 가장 힘이 약한 부서 중 하나였다. 게다가 타마는 마법사의 자격을 인정받은 사람들 중에 가장 낮은 경지를 의미했다. 그 위로 ‘부마’, ‘진마’, ‘강마’, ‘용마’가 있었다. 제국 전체를 통틀어 일곱 명밖에 없는 ‘천마’는 모든 마법사들의 꿈이었다.

연구실로 들어선 그는 실험 기록을 훑었다. 가설을 지지하는 실험 결과가 몇 군데 있었지만 논문으로 낼 만큼 확실하지 않았다. 바로 그 때문에 오늘 무리해서 구입한 그 녀석이 필요한 것이다.

마법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마웅퇴’라 불리는 부작용이었다. 마력석을 적당한 매개체를 이용하여 흡수한 다음, 다양한 방식으로 마법을 실행하는데, 부작용은 언제든 마법사를 찾아오는 적이었다. 그런데 마웅퇴의 원인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마법의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마웅퇴의 원인 또한 다양할 수밖에 없다는 게 기존 학계의 입장이었다.

엄포윤은 그 입장을 뒤집고 싶었다.

보편적인 원인을 알아낸다면 학계는 엄포윤이라는 마법사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타마 꼬리표를 떼고, 부마, 진마, 어쩌면 용마로 단숨에 올라갈지도 모른다.

엄포윤은 그 꿈을 떠올리며 자료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배달은 내일 이루어지니, 그때까지는 이론의 허점을 찾아보리라.

그때, 수정구가 빛을 발했다. 무시하려던 엄포윤은 수정구 앞으로 가서 손으로 수정구를 만졌다. 그러자 수정구 안에 백발의 노인이 나타났다.

“잘 있었나, 친구?”

“……그다지.”

엄포윤은 마법사들의 편리한 의사소통 도구인 수정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대화 자체를 즐기지 않는 은둔형 마법사였다.

“획기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소소한 취미일 뿐입니다.”

엄포윤은 속으로 저 녀석이 어떻게 알아냈을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되묻는다면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아, 내 정신 좀 봐. 이번에 승진하게 됐네. 진매록탑의 칠장로 중 하나로 운 좋게 뽑혔어. 제일 먼저 자네가 생각나더군. 자네도 곧 좋은 소식이 있겠지. 그 연구가 성공한다면 말이야.”

“축하합니다.”

“고맙네. 나중에 술 한잔 사겠네.”

수정구는 시꺼멓게 변했다.

그 수정구를 노려보던 엄포윤은 하마터면 5천 마전에 달하는 수정구를 던져서 박살 낼 뻔했다. 그랬다가는 수정구를 물어내야 할 것이다. 수정구는 그의 소유가 아니라, 탑의 소유물이었던 것이다.

칠장로라면…… 최소 강마라는 뜻이다.

배가 아팠다. 쓰리도록.

이번 연구는 반드시 성공해 내고 말리라.

*할아버지

단태는 주홍색의 팔찌를 찬 채로 소마선보다 몇 배나 커다란 배에 설치된 철제 우리에 갇혀 있었다. 그 팔찌를 찬 이후로 기력이 없고 정신까지 가물가물했는데,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제정신이었다면 마음이 찢어져 그 울분을 억누르지 못했을 터였다.

운하를 미끄러지듯 거슬러 올라가는 그 배 주위에는 과일을 싣고 장사하는 조각배, 음식을 준비해서 팔러 다니는 뗏목, 쇠그릇을 포함해 각종 도구를 수리해 주는 수리선 등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배고프지?”

매매소 직원이 물었지만 단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커다란 나뭇잎에 고기와 볶은 밥을 넣고 돌돌 만 ‘육엽식’을 우리 안으로 밀어 넣었다.

“먹어 둬. 거기 가면 고생길이 훤히 열릴 테니까.”

“……어디로 가는데요?”

“마둔수탑.”

“거기가 뭐 하는 곳인데요?”

단태는 어떻게든 달아나기 위해 고분고분하게 말했다.

“탑이야. 그거, 내 돈으로 산 거야. 먹어 두라니까.”

직원은 육엽식을 가리켰다.

“……네.”

단태는 육엽식을 들어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저 남자의 비위를 잘 맞춘다면 어디로 끌려가는지 알 수 있을 테고, 그러면 도망칠 가능성도 높아진다. 금세 육엽식을 다 먹어 치운 그는 매매소 직원이 서 있는 우리의 앞쪽에 붙었다.

“저기 높이 솟은 탑으로 가는 거예요?”

“그래.”

“거기 가면…… 힘들까요?”

“가 보면 알아.”

직원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주저앉은 단태는 시골 마을의 술집을 기웃거리며 탑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해 냈다.

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있다는 탑은 마법사들이 모여서 세운 건축물이었다. 비슷한 성향의 마법사들이 모여서 만든 회합이 점점 외형을 갖춘 게 탑인데, 대마법사 하랑처럼 하층민이었지만 타고난 재능과 끝을 모르는 노력으로 탑주가 된 전설적인 인물 이야기에 등장하곤 했다.

단태는 거기 가면 억울한 사정을 이해하고 도와줄 멋진 마법사를 만날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지만, 곧 세상이 얼마나 냉정한지 생각하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대신 다른 희망을 품었다. 어깨너머로 마법을 배운다면…… 엄마와 설희를 하루라도 빨리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까워지자 탑이 얼마나 크고 높은지 알 수 있었다. 벽으로 난 창문을 세었더니…… 무려 20층이었다.

단태가 감탄하고 있는데, 배는 탑의 뒤쪽으로 돌아갔다. 거기 시꺼먼 동굴처럼 탑 안으로 들어가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어둠을 뚫고 배가 그 구멍으로 들어가자, 곧 환한 빛이 배를 덮었다. 선착장이 탑 내부에 있었던 것이다.

“약제실 엄포윤 타마 어르신께서 주문하셨습니다.”

“그래? 알았네.”

체격이 건장한 남자는 매매소 직원이 내민 서류를 훑더니 서명을 했다. 위에서 갈고리 달린 굵은 밧줄 네 개가 내려오자, 매매소 직원과 그 남자는 단태가 있는 철제 우리의 모서리에 그 갈고리를 걸고는 밧줄을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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