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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르신, 헛살지는 않았네. 너처럼 잘생긴 손자도 있으니 말이야.”
그렇게 말한 마법사는 눈을 감아 버렸다.
단태는 그 자리에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종춘은 성격이 독특한, 아니 욕 나올 만큼 제멋대로인 마법사가 많으니 끝까지 참아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거꾸로 붙어 있는 마법사,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물어보고 싶은데, 무서워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단태는 한 걸음 왼쪽으로 옮겨 가서 위를 올려다보았고, 다음에는 오른쪽으로 두 걸음 가서 마법사를 살폈다. 혹시 등을 천장에 고정시키는 도구가 있지 않을까 확인한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마법사의 몸종이나 다를 바 없는 종자라는 신분도 잊고 단태는 방 끝으로 가서 륜사를 관찰했다. 그것도 모자라, 신발을 벗고 책상으로 올라갔다. 그래도 기구가 보이지 않자 의자까지 책상에 올려 그 위에 섰다. 그래도 부족하자 까치발을 들고 마법사의 등을 눈여겨본 단태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등과 천장 사이에 미세한 틈이 있었던 것이다. 밀착된 상태가 아니었다.
륜사가 눈을 떴다.
“뭐 하니?”
놀란 단태가 비틀거리다 넘어졌는데, 륜사가 어깻죽지를 잡았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떨어진 의자는 한쪽 다리가 부서졌다. 륜사는 단태를 잡은 채로 천장에 붙어 있었고, 단태는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귀 먹었냐? 뭐 하냐고 물었다.”
“……신기해서요. 죄송합니다.”
“뭐가 신기해?”
“그거, 마법이죠?”
“당연히 마법이지.”
“처음 봤어요. 너무 신기해서 저도 모르게 확인하고 싶었어요. 정말 마법인지, 아니면…… 속임수인지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래?”
불호령이 떨어지리라 생각했던 단태는 의외로 륜사가 웃자 왠지 불안했다. 그 이상으로 화를 내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몸에 힘을 빼거라.”
“……네?”
“어서.”
“……네.”
단태는 허공에 매달린 채 몸을 늘어뜨렸다. 쉽지 않았지만 힘의 일부는 뺄 수 있었다.
그러자 륜사는 힘을 써서 단태를 천장으로 들어 올렸다. 륜사가 주입한 마법의 기운이 단태를 감싸자, 단태도 륜사처럼 천장에 붙어 버렸다.
“어떠냐?”
“이야! 얏호!”
단태는 흥분을 참지 못했다.
몸이 아래로 떨어져 바닥에 처박힐 것 같은데 마치 구름 위에 둥실 떠 있는 것처럼 천장에 붙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신기했다. 마법이 이처럼 신 나는 것이라니!
처음 놓은 덫으로 토끼를 잡았을 때처럼 발광을 하던 단태는 한참 후에야 옆에 마법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갑자기 조용해졌다.
“충분히 즐겼니?”
“……죄송합니다, 마법사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
“엄포윤 어르신의 손자라면서? 그러면 어릴 때부터 마법을 자주 봤을 텐데?”
“저는 시골에서 자랐어요.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구요. 거기는 깡촌이라 마법사도 자주 찾아오지 않아요.”
단태는 들킬까 봐 조심조심 대답했다.
“그랬구나. 그러면 이건 어떠냐?”
마법사가 낮고 빠르게 중얼거리자, 단태는 천장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여전히 허공에 떠 있었다. 버둥거리자 몸은 수영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떠다녔다. 발이 벽에 닿자 살짝 밀었는데, 몸은 반대쪽으로 움직였다. 깃털이 미풍에 흘러 다니는 것 같았다.
단태는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여기 왜 있는지, 가족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잊어버릴 만큼 좋았다. 공중에서 떠다니면서 소년은 마법에 매료되었다. 이 자유로움에 마음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평생 이런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그러다 노예로 팔린 엄마와 여동생을 생각해 낸 단태는 죄책감에 고개를 숙였다. 혼자만 좋아하다니. 못할 짓을 한 사람처럼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왜, 그건 싫어?”
마법사가 물었다.
“너무 좋아서 아무 말도 못 하겠어요.”
단태는 거짓으로 답했다.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순간, 이 마법사가 꽤 젊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저 마법사의 경지는 용마였다. 천마 바로 아래인데, 이 탑에는 단 세 명뿐이었다.
처음 모실 마법사가 용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단태는 긴장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용마라면 보고 배울 게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백발의 노마법사가 떠올랐다. 엄포윤보다는 훨씬 늙었으리라 예상했던 것이다. 어째서 엄포윤은 피부가 주름지도록 타마에 머물러 있는데, 저 사람은 아버지 그 작자보다도 몇 살 어린 것 같은데 용마에 이르렀을까?
륜사는 천장에 누운 채 상체를 일으키더니 거꾸로 일어섰다. 그 자세로 천장을 걸었다. 벽으로 오자 륜사는 수평으로 서 있는 것 같았다. 바닥에 내려선 그는 손을 뻗어 둥실 떠다니는 단태를 끌어당겼다.
잠시 후, 그 기이한 힘은 사라지고 무게감이 되살아났다.
단태는 아쉬웠다.
“난 종자를 들이지 않는다.”
“마법사님?”
당황한 단태.
“하지만 기회는 줘야겠지? 난 멍청하고 줏대 없는 놈은 보기 싫어. 그래서 쫓아냈지. 종자 없이도 충분하거든. 몇 명이나 쫓아 버렸더라? 그래, 다섯이었다. 내일까지 천장에 달라붙는 그 마법을 익히거라. 그러면 널 종자로 받아들이마.”
기회가 아니었다. 쫓아낼 핑계를 갖다 붙인 것이다.
“불만 있니?”
“……전 그 마법, 오늘 처음 봤어요.”
“그래서 못하겠다? 그러면 종자방으로 가서 쫓겨났다고 하거라. 결정은 네 몫이다.”
마법사는 벽을 걸어 다시 천장으로 가서 누웠다.
그 모습을 부러운 시선으로 살피던 단태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종자방으로 갈 수는 없었다. 아까 거기 벽에 붙어 있는 이름표에서 빈자리는 여기뿐이었다. 갈 곳이 또 있을 리 없었다. 여기서 쫓겨나면…… 탑에서도 쫓겨날지도 모른다.
굳게 결심한 단태는 몸을 돌려 복도로 나갔다.
단태가 사라지자, 바깥 연구실에서 지켜보다가 단태를 피해 서가 뒤에 잠시 숨었던 여화가 방으로 들어왔다.
“저 아이, 괜찮죠?”
“몰라.”
“사부님이 종자를 바로 내쫓지 않다니, 오랜만이에요.”
“그랬나?”
“마법사가 되려고 어릴 때부터 비싼 돈 주고 선생님을 들여서까지 준비한 아이들과는 좀 다르죠? 사부님은 마법보다 마법사라는 지위를 위해 탑에 들어온 아이들을 싫어하시잖아요.”
“얼마나 다를지는 지켜보면 알겠지.”
“흡체수, 너무 어려운 시험이에요.”
“넌 그 시험을 통과했었다.”
“운이 좋았어요.”
“운도 실력이다.”
륜사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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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포윤은 주름진 이마를 어루만졌다.
‘골이 다 아프구나.’
사제 엄숭이 약병을 빼돌리다 걸려서 처벌을 받았을 당시를 제외한다면 살아오면서 이토록 심각한 고민은 해 보지 않았다. 아니, 엄숭 때보다 더 심각했다.
이 녀석의 정체가 밝혀지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한 짓도 드러날 테니까. 승급은커녕 기율옥으로 끌려가 횡령죄로 감옥살이를 할지도 몰랐다. 평생 마법사로 살아온 그에게 기율옥은 죽음이나 다를 바 없었다. 어떻게든 이 녀석을 숨겨야 한다.
그렇다고 탑 밖으로 데려갈 수도 없었다. 연구를 진행하려면 그때그때 필요한 마법 재료를 적절히 사용해야 하는데, 탑은 마법 재료의 반입, 반출을 엄격하게 통제해서 약병을 외부로 가져갈 수가 없었다. 검출 마법까지 만들어 불법적인 유출을 차단했기 때문에 단태는 탑 안에 있어야 했다.
엄포윤의 속을 알 리 없는 단태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 마법, 배울 수 없을까요?”
“수련사 중에도 흡체수를 소화 못한 자들이 부지기수다. 너 따위가 만만하게 볼 마법이 아니야.”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도 어려운 마법이라는 말에 단태는 기가 죽었다. 이러면 꼼짝 못하고 쫓겨나고 말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