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18화 (18/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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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헐떡인 단태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더 많은 약초를 먹는다면…… 더 높이 떠오를 수 있으리라.

복통에 인상이 찡그려지고 두통도 시작되었지만 단태는 개의치 않았다. 몸 좀 아픈 게 쫓겨나는 것보다 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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륜사는 인상을 구긴 채 밖으로 나왔다.

닫힌 문을 노려봤으나 탑주실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누마탄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다. 탑주의 사제라는 이유로 탑의 규율을 어긴다면 탑주의 권위가 훼손될 뿐 아니라, 마탑의 결속력을 해친다는 지적에 륜사는 반론할 수가 없었다. 다만 왜 이제까지 가만히 있다가 하필 지금 그런 충고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종자는 탑주가 직접 챙길 만큼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그는 뜻을 꺾었다.

그 아이를 종자로 받아들인 것이다.

마법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마법을 보며 즐거워하는 그 아이가 싫지는 않았다. 열이면 열, 종자는 마법사가 되기 위해 탑에 들어온다. 마법이 아니라, 마법사가 목표인 것이다. 그런 놈들에게 마법사는 마법을 좋아해서 마법에 헌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법을 익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과정일 뿐이었다.

륜사는 그런 인간이 역겨웠다.

아무리 순수한 아이라고 해도, 떠밀려서 종자로 받으니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시험을 통과하지도 않았는데 종자로 받아들이면 마법사의 권위가 무너지고 만다.

그 아이를 괴롭혀서 스스로 종자를 그만두게 만들까?

‘그 아이가 무슨 죄가 있어? 륜사, 제발 좀 유치하게 굴지 마라.’

그런 생각을 하며 연구실로 들어선 륜사는 복잡한 생각을 하게 만든 장본인을 발견했다.

“마법사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래?”

벌써 소식을 듣고 온 것인가? 영악한 놈 같으니라구. 괜히 화를 내고 싶었지만, 어른이라서 참고 있었다.

“그 마법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비슷하게 해 보겠어요.”

“뭐?”

“그래도 될까요?”

“해 봐라.”

륜사는 팔짱을 꼈다. 예상을 깨는 행동 자체는 마음에 들었다. 예상 가능한 것만큼 지루한 것도 없다는 게 륜사의 지론 중 하나였다.

단태는 눈을 감았다. 아이 특유의 순진한 표정 대신에 착 가라앉아서 숙연한 분위기마저 자아내는 표정이 자리를 잡았다.

그 변화에 륜사는 ‘요놈 봐라’ 싶었다. 아직 10대 중반인데 감정을 이토록 쉽게 가라앉히다니. 그 또래에겐 어려운 일일 텐데.

지루해서 륜사가 하품을 한 순간, 미풍이 불었다. 륜사는 탑 외부로 향하는 창문이 열렸나 싶어 그쪽을 쳐다봤다. 창문은 모두 안쪽으로 잠겨 있었다. 바람이 불 리가 없는데…… 륜사는 깜짝 놀랐다.

저 아이에게서 바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흐릿하지만 그 기운이었다. 엄포윤의 연구실에서 순간적으로 감지되었던 바람의 기운! 그렇다면 저 아이가 그 기운의 소유자라는 건가?

단태의 몸이 살짝 떠올랐다. 한 뼘 그리고 두 뼘. 그러나 거기가 한계였다. 바람이 줄어들더니…… 비틀거린 단태의 발이 바닥에 닿았다. 땀을 흘리며 헐떡거리던 단태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륜사를 쳐다봤다.

“……보셨죠?”

륜사는 말없이 아이를 응시했다.

“마법사님?”

륜사는 여전히 쳐다볼 뿐이었다.

“……죄송했습니다.”

단태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연구실 밖으로 향했다.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떻게 한 거냐?”

륜사가 물었다.

그 말에 다시 돌아와 륜사 앞에 선 단태는 비밀을 털어놓았다. 연구실에서 찾아낸 약병에서 약초를 두 줌이나 삼켜서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는 내용이었다.

“약병, 가지고 왔느냐?”

“……여기 있어요.”

단태는 주머니에서 약병을 꺼냈다.

“류천초를 먹었어? 왜?”

“……그걸 먹으면 몸이 뜰 것 같아서요.”

“그걸 어떻게 알았지?”

“그냥 그럴 것 같아서요.”

단태는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엄포윤의 손자가 아니라 노예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죽지는 않더라도 탑에서는 쫓겨나고 말 것 같았다.

“엄포윤 어르신이 가르쳐 줬느냐?”

“네? 할아버지는…… 제가 여기 있는 것도 몰라요. 할아버지한테는 말씀드리지 말아 주세요. 걱정하실 거예요.”

“알았다.”

“……그러면 가 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단태는 힘없이 몸을 돌렸다. 그런 단태를 향해 륜사가 한마디 했다.

“거기 서라.”

“……네?”

“넌 마법사라면 절대 하지 않을 멍청한 짓을 저질렀다. 그 독한 류천초를 복용하다니 말이다. 그대로 가면 내장을 크게 다친다. 이쪽으로 와서 누워라.”

륜사는 바닥을 가리켰고, 망설이던 단태는 그 바닥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 단태의 배에 손을 올린 륜사는 마력을 끌어 올려 단태의 몸에 남은 류천초의 독소를 빼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조합, 융합 그리고 해소에 대해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아이가 류천초를 이용해서 바람의 마법을 기본적인 수준에서나마 펼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이런 재능도 있군.’

“내 밑에서 종자를 하고 싶으냐?”

“네!”

단태는 우렁차게 답했다.

“나 귀 안 먹었다.”

“……죄송합니다, 마법사님.”

“약속해라. 두 번 다시는 이런 약초, 먹지 않는다고.”

“약속합니다!”

“귀 안 먹었다니까.”

“……알겠습니다, 마법사님.”

“자, 이제 속이 좀 어떠냐?”

“훨씬 좋아졌어요. 편해졌어요. 어떻게 하신 거예요?”

“독을 해소한 거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약초를 맘대로 먹었다가는 당장 쫓아낼 거다. 네 멋대로 마법을 펼치면 그때는 끝이다.”

“알겠습니다.”

“내일 일찍 오너라.”

놀란 단태를 바닥에 그대로 두고 륜사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단태는 잠시 후에야 환호를 질렀다. 그러다 입을 막고는 륜사가 화가 나서 결정을 번복할까 봐 복도로 나갔다.

세상을 다 얻은 사람처럼 고함을 지르던 단태는 망토를 입은 마법사, 빨간 목도리를 두른 수련사를 보고는 입을 다물며 빠지지 않고 인사를 했다. 그래도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그런 단태를 불러 세운 건 건장한 체격의 사내였다. 왼쪽 뺨에 커다란 점이 있는 20대 중반의 남자는 단태를 노려봤다.

“너, 종자 맞지?”

“그런데요.”

“타마 어르신의 손자?”

“네.”

퍽.

주먹이 날아와 명치에 박히자 숨쉬기가 어려웠다. 예고도 없어서 속수무책이었다.

“건방진 놈.”

사내의 주먹이 등을 치자, 단태는 쓰러지고 말았다.

그 사내가 간 후에야 겨우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단태는 그 남자 역시 종자복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대체 누구기에 주먹을 휘두른 거지? 건방지다니, 누가? 이곳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다고 생각했건만, 그게 아무것도 아님을 저 남자가 보여 주었다.

어딜 가든 텃세는 있다. 시골도 그랬으니, 도시라고 해서, 여기 마탑이라고 해서 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단태는 기쁜 소식을 알리기 위해 엄포윤의 연구실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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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소에 갔다 오셨다구요?”

단태는 깜짝 놀랐다.

“조금 전에 갔었다. 네 어머니와 여동생이 어디로 팔려갔는지 알아보려고 말이다.”

“……정말요?”

“그런데 불이 나서 기록은 타 버렸고, 거기 있던 사람들은 흩어져 버렸더구나.”

단태는 울먹거렸다. 울지 않으려 애를 쓰느라 얼굴이 일그러졌다. 엄포윤은 그런 아이를 가볍게 안아 주었다. 엄포윤의 품 안에서 단태는 울기 시작했다.

“너무 실망 마라. 내가 두 사람을 계속 찾아볼 테니까.”

“……고맙습니다.”

“내가 네 할아버지가 아니냐? 그러니 당연히 네 가족을 찾도록 도와줘야지.”

“은혜, 잊지 않을게요.”

눈을 닦으며 엄포윤의 품에서 빠져나온 단태는 그를 향해 허리까지 굽혀 인사를 했다.

그 모습에 마음이 흡족한 엄포윤은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허허 웃었는데, 탑주와의 성공적인 협력으로 인해 들뜬 나머지 단태의 속내를 파악하지는 못했다. 물의 도시 사투라체에 와서 호되게 당했던 단태는 아무리 친절을 베풀어도 일단 의심부터 했다. 믿을 만한 근거가 없다면 의심부터 했던 것이다.

엄포윤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긍정적이었으나, 매매소까지 직접 갔다 온 행동 자체가 믿을 수 있는 이유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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