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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둔수탑에 소속된 마법사는 123명이었다. 수련사는 297명, 생도는 611명, 종자는 524명이었다. 노예는 집계가 되지 않았는데, 대략 1,500명 정도였다. 524명의 수에는 30세가 넘어 생도의 자격을 상실한 종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법사를 꿈꾸는 종자는 360명이었다. 360명이 한꺼번에 모일 장소는 그리 많지 않았는데, 주로 지하 창고가 종자회의 장소로 활용되었다.
처음으로 지하 서고 아래까지 내려온 단태는 인사하느라 바빴다. 첫인상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두꺼운 목제 문은 열려 있었다. 다른 종자들과 함께 창고에 들어선 단태는 그 광활함에 깜짝 놀랐다. 재난의 시기를 대비해 곡식은 물론 마력석, 약재 등 다양한 물품을 비축하는 이 창고는 탑에서 가장 큰 방이었다. 물품 쌓은 공간을 고려한다면 수천 명이 한꺼번에 들어와도 될 것 같았다.
단태는 시선이 마주친 사람마다 말을 붙여 보려고 애를 썼지만, 누구도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다들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랜만에 모여서인지 할 말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 녀석 이야기 들었어?”
“그 녀석이라니? 혹시 타마 노인네의 손자?”
“맞아. 륜사의 종자 자리를 꿰찼더라구. 그 노른자위를 말이야. 돈이라도 먹인 거 아니야?”
“륜사는 고지식해서 돈을 주면 기율옥에 처넣어 버릴걸.”
“그러면 대체 어떻게 륜사를 꾄 거야?”
“륜사가 아니라, 그 천박한 수련사 때문일 거야.”
“수련사? 아, 여화라는 수련사지? 그렇지?”
“여화가 그 단태라는 놈과 아는 사이인가 봐. 둘이 같이 가는 걸 본 사람이 있대. 여화가 살랑살랑 륜사를 꼬드겼겠지. 침대맡에서 말이야.”
“아, 그렇게 된 거구나.”
종자들은 단태가 듣고 있는지도 모르고 마음대로 덧붙여 소문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종자는 물론 수련사까지 거부해 온 천재 마법사 륜사의 마음을 바꾼 여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끄는 여자였다. 어떻게 륜사의 종자를 거쳐 수련사에 이르렀을까? 매력적인 외모가 그 이유라고 종자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미인계로 륜사를 꼬여서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라고.
“그러면 륜사가 그 새끼를 받아들여 마교원에 넣는 거 아니야? 그러면 우리 자리가 줄어들잖아.”
마교원은 정원은 60명이었다.
“그 새끼가 생도가 되어 운 좋게 마교원을 무사히 졸업해도 승급 시험에는 붙을 수 없어. 평생 수련사로 지내다가 늙어 죽을 거야.”
“왜?”
“왜라니? 아무리 륜사라고 해도 당고 님이 쫙 잡고 있는 승급위원회의 결정을 무시할 수는 없잖아. 그 새끼는 썩은 줄인지도 모르고 륜사를 잡은 거라구. 엄포윤 그 늙은이도 도와줄 순 없어. 자기도 타마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잖아.”
“아하, 그렇구나.”
종자들은 온갖 이야기를 다 했다.
거기에 귀 기울이던 단태는 화가 나서 몇 번이나 뛰어들어 한바탕 소란을 일으킬 뻔했지만 있는 힘껏 참아 냈다. 시골 마을에 있을 때는 울컥 성질이 나면 물불 가리지 않고 싸우기도 했지만, 물의 도시에 와서 겪은 세상의 냉혹함에 그는 신중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지금은 나서서 주먹을 휘두를 때가 아니라 잠자코 들을 때였다.
다른 곳으로 가서 또 이야기를 들으려는데, 통통한 종자가 앞을 가로막았다.
“너, 엄포윤 어르신의 손자 맞지?”
단태는 깜짝 놀랐다.
“난 창수라고 해. 그런 표정 짓지 마. 난 저런 놈들이랑은 다르거든.”
창수는 달짝지근한 과자를 입에 넣으며 고개로 모여서 다른 사람의 흉이나 보는 종자들을 가리켰다.
“어떻게 다른데?”
“난 나를 잘 알아. 마법사가 될 재능 따위는 처음부터 없으니까. 난 그저 입에 풀칠 좀 하려고 이곳에 들어온 거야. 돈을 벌어야 하거든. 이 정도면 저런 놈들하곤 많이 다르지 않아?”
“……그건 그러네.”
단태는 창수를 눈여겨 살폈다. 볼살이 늘어지고, 배가 나온 창수는 혼자 있으면서도 전혀 기죽지 않았다. 종자 중에도 이런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단태는 창수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륜사 님의 종자가 됐다면서? 고생문이 열렸네. 그러면 너도 용혈에 가겠네?”
“용혈?”
“륜사 님이 곧 용혈로 가시잖아. 천마룡을 타고. 몰랐어?”
“전혀.”
“좋겠다. 용도 다 타 보고. 아니, 타 본 사람 말로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니까 부러워할 건 없지. 하늘 높이 올라갔는데 용이 재채기라도 하면 추락해서 죽어 버릴 테니까. 안 그래?”
“글쎄…….”
단태는 용혈이 어디인지도 몰랐다. 그러니 얼버무리는 수밖에 없었다.
곧 360명에 달하는 종자 대부분이 창고에 모였다. 마법사의 지시를 수행하느라 늦는 종자들도 꽤 있었다. 나무 상자를 쌓아서 만든 앞쪽의 단으로 한 사람이 올라왔다. 그를 본 순간 단태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때렸던 그자였다.
“종자회를 이끄는 배망식이야. 조심해. 미친개거든. 우리 탑이 자랑하는 세 분의 용마 중 한 분인 당고의 종자라서 자부심이 하늘을 찔러. 그러니까 웬만하면 눈에 띄지 마. 저놈에게 걸려서 종자를 때려치우고 탑을 떠난 사람만 수십일 거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은 사람도 제법 있는 것 같고.”
창수가 말했다. 개인적으로 감정이 있는 듯한 말투였다.
단태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배망식을 바라봤다. 뺨에 있는 점이 유독 도드라져 안하무인 같은 사람이었다. 자부심이라면 이쪽도 만만치 않다. 륜사 님도 용마니까. 게다가 공식적으로는 타마 엄포윤의 손자가 아닌가? 그러니 꿀릴 이유는 없다.
배망식이 회장으로서 말을 하고 있었다. 요즘 기강이 무너졌다고 말문을 연 그는 마법사님들이 종자의 무능에 우려를 표하고 있으며, 마둔수탑의 발전을 위해서 종자들이 더 힘을 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열변을 토했으나 주위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매번 저런 식으로 자기 생각에 취해 말을 해 온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의지를 보여 줄 생각이다. 신입 종자 단태! 앞으로 나와라!”
이름이 불린 단태는 당황했다.
“나가지 마.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창수가 속삭였다.
“단태! 나오라니까! 아니면 겁이 나서 종자회에 참석하지 않은 건가? 실력이 없어서 꼼수로 륜사의 종자가 된 개새끼라면 이런 곳에 떳떳한 마음으로 참석할 순 없겠지. 그놈은 제 할아버지를 믿고 있나 본데, 곧 당고 어르신이 엄포윤 그 개 같은 늙은이를 탑에서 쫓아 버리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아주 궁금해 죽겠다.”
그 말에 종자들이 크게 떠들며 웃었다.
단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손목을 꽉 잡으며 고개를 흔드는 창수를 떨쳐 내고 앞으로 나가며 소리쳤다.
“여기 있다!”
사람들이 일제히 단태를 쳐다봤고, 웃음은 사라졌다.
단태는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걸었다. 이런 분위기, 어디를 가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외부인은 일단 배척하고 보는 차가운 분위기. 한번 밀리면 끝까지 인정 못 받는 상황. 좀 맞더라도 회피하는 것보다는 백번 낫다. 겁쟁이는 어디에서도 인정받을 수 없다.
단 위로 올라간 단태는 용기를 끌어모아 배망식을 노려봤다. 기세 싸움이 중요하다. 밀리면 아예 짓밟으려고 할 것이다. 또한 단태는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저 배망식이 용마 당고의 명성을 등에 업고 지랄발광을 하는 것처럼, 자신에게도 용마 륜사가 있었다. 그러니 꿀릴 게 없는 셈이다.
“오호, 의외로 강단 있는 놈이었네. 좋아. 그 용기를 인정해 주지. 자, 제군들, 그 까다로운 륜사 님의 종자가 된 단태에게 박수를!”
배망식의 말에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손바닥을 마주 쳐 나는 그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다는 것을 단태는 처음 알았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었다. 처음이었다. 가슴 안쪽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그 때문에 만나자마자 손찌검을 한 배망식에 대한 경계심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능력 있는 종자라도 환영식은 피할 수 없는 법!”
배망식이 눈짓하자 건장한 종자들이 나와 단태의 팔을 꽉 잡았다. 배망식은 한 걸음 앞으로 나와 사람들을 내려다봤다.
“오늘은 특별히 신입 종자의 수영 실력을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