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24화 (24/293)

<-- 24 회: 1-21 -->

종자 사이에 벌어진 일로 기율옥에 십 년을 가둬? 엄포윤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지만 곽진의 단호한 눈빛을 보자 이미 결정을 내렸구나 싶었다. 곽진은 당고의 편에 서서 편파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항의라도 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자신에게도 불똥이 튈 수 있음을 알기에 엄포윤은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때, 문을 발로 차고 뚱뚱한 여자가 기율실로 들어섰다. 휙휙 주위를 노려본 그녀는 곽진을 발견하고는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 새끼, 어디 있어?”

“저 안에 있습니다만, 사실 확인을 한 후에…….”

그 여자는 곽진을 무시했다.

상대를 알아본 엄포윤은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저 여자는 용마 당고의 수하로 당고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진마 돈덕실이었다. 워낙 규칙을 자주 어겨 몇 번쯤 기율옥에 갇힐 법도 한데, 당고가 손을 써 주는 바람에 아직까지는 활개치고 다녔다.

“그놈이 가만히 있는 우리 망식이를 팼다면서? 목격자도 수백 명이고. 그러면 사실 확인 끝난 거잖아!”

돈덕실은 문을 벌컥 열고 의자에 묶여 있는 단태의 머리를 잡아 벽으로 던졌다. 의자가 부러져 밧줄이 느슨해지자 단태는 신음을 흘리며 일어섰다. 거대한 몸집의 여자가 씩씩거리며 자신을 노려보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시면 안 됩니다.”

곽진이 들어와 말렸지만 형식적이었다. 그저 이곳의 책임자로서 말리는 척했던 것이다.

“나가 있어!”

“네.”

곽진은 즉시 밖으로 나왔다. 기율옥 밖으로 나온 그는 엄포윤 앞에 섰다.

“자네 손자는…… 이제 죽은 목숨이야.”

엄포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단태는 대체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영악하긴 해도 허튼짓을 할 아이는 아니었는데. 게다가 요 며칠 종자가 되어 기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런 아이가 갑자기 왜 그랬을까? 순간, 어젯밤에 종자회가 열렸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단태가 종자회에 간다고 말했던 것이다. 혹시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저 아이가 죽으면…… 연구는 끝장이고, 연구비를 횡령했으니 자신도 여기 기율옥으로 끌려올 것이다. 들어가서 목숨을 걸고 말릴까? 부마 곽진도 소용이 없는데, 자신이 나선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으리라. 한숨을 내쉬며 운명을 받아들이려는데, 륜사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륜사는 곽진, 엄포윤을 슬쩍 쳐다보고는 즉시 기율옥으로 들어갔다. 머리가 깨지고, 팔과 다리가 뒤틀린 단태를 본 그는 이제 막 감옥으로 들어선 불청객을 노려보다가 상대가 누구인지 깨닫고는 당황한 돈덕실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뭐 하는 거지?”

“저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제아무리 건방지고 무례한 돈덕실도 용마 륜사 앞에서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용마일 뿐 아니라, 탑주의 사제였다. 무엇보다 마둔수탑 최강의 실력자였다! 입 한번 잘못 놀렸다가는 이 자리에서 바로 죽을지도 모른다.

“대화?”

륜사가 코웃음을 쳤다.

“……왜 종자 배망식을 때렸는지 부드럽게 물어보려는데, 갑자기 달려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말에 륜사는 돼지처럼 살찐 돈덕실의 몸과 비쩍 마른 단태를 번갈아 살폈다. 생각 같아서는 저 돼지를 기율옥에 가두라고 명령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질 터였다. 그는 당고가 자신을 눈엣가시처럼 생각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기회만 생긴다면 호전적인 당고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여화!”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깃든 마력 때문에 돈덕실은 자신도 모르게 귀를 막았다. 머릿속이 흔들렸던 것이다. 그러나 구석에 처박혀서 가쁜 숨을 내쉬는 단태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 오직 돈덕실만 고통스럽도록 륜사가 고함을 내지른 것이다.

“네, 사부님.”

어느새 여화가 기율옥 안에 들어와 있었다.

“단태를 데리고 올라가.”

“명령, 받들겠습니다.”

눈치 빠른 여화는 단태를 안아 들고 기율옥 밖으로 나왔다. 축 늘어진 단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엄포윤을 볼 수 있었다. 여화가 나가자 륜사는 돈덕실을 향해 손을 폈다. 그러고는 빠르고 정확하게 마문을 외웠다. 곧 그 손에서 흘러나온 검은색 연기가 당황한 돈덕실을 에워쌌는데, 연기가 사라지자 돈덕실이 소리쳤다.

“앞이 안 보여! 앞이 안 보여!”

륜사는 비틀거리며 걷는 돈덕실의 발목을 걸었다. 돈덕실이 쿵 소리를 내며 넘어지자 그는 냉정한 얼굴로 기율실을 나갔다. 당고와 맞서고 싶지는 않지만 저 오만한 여자를 두고 볼 수도 없었던 것이다. 치료 마법사들이 달려들어도, 심지어 당고가 직접 손을 쓴다고 해도 저 어둠을 풀지는 못하리라. 어둠을 헤매며 찾아와 무릎을 꿇는다면 그때에야 빛을 찾아주리라.

밖으로 나온 륜사에게 엄포윤이 다가섰다.

“……미안하네.”

“어르신, 놀라셨죠?”

“그럴 아이가 아닌데. 어젯밤 종자회에 갔다온 이후에 좀 이상하긴 했지만, 그런 일을 하다니.”

“종자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건 나도 모르겠네. 그저 얼굴이 어두웠다네.”

엄포윤은 오지랖 넓은 륜사에게 슬쩍 자신이 품은 의문점을 털어놓았다. 직접 알아보고 싶지만 용마 륜사에게 맡기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아서였다. 이야기를 들은 륜사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는 제가 종자로 받아들였으니, 제게 맡기십시오.”

“……부탁하겠네.”

“그럼.”

살짝 고개를 숙인 륜사는 밖으로 나갔다.

곽진이 엄포윤 옆으로 다가와 섰다.

“한바탕 싸움이 일어나겠어. 자네 손자 덕분에.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커지는 모양이니 말이야. 그래봐야 결과는 뻔하지. 아무리 사제라고 해도 탑주는 11인위원회의 실력자 당현추의 동생이자 빼어난 마법사인 용마 당고 어르신을 내칠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전대 탑주께서 륜사에게 탑주의 자리를 넘겨주려 했지만 륜사가 거절했다는 소문도 있잖아. 그러니 탑주는 륜사를 무조건적으로 감쌀 수는 없을 걸.”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엄포윤은 깜짝 놀랐다. 륜사와 누마탄 사이에 그런 사정이 있었다니. 진실이 아니라 소문이라고 해도, 권위를 중시해야 하는 탑주로서 마냥 사제를 두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게 진실이라면? 륜사는 물론 단태와 자신까지 탑에서 쫓겨날지도 몰랐다.

“소문이지만, 내가 볼 때는 사실이야. 깨놓고 말하면, 인품으로나 실력으로나 륜사가 마둔수탑 최고의 마법사니까. 륜사는 너무 뛰어나서 문제야. 주위 사람들을 껄끄럽게 만들잖아.”

“……그만 가보겠습니다.”

엄포윤은 잔뜩 고민거리를 가지고 기율실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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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절상을 입은 팔과 다리의 뼈를 겨우 맞춘 여화는 약을 가져와 단태의 몸에 발랐다. 옷을 벗겨 놓으니 고생을 한 티가 역력했다. 근육은 제법 붙어 있었는데, 모두 고된 일로 생긴 것이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일에 시달리는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때?”

륜사가 물었다.

“일단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젯밤 종자회가 열렸나 봐. 거기 갔다 온 이후로 이상했다니까 한번 알아봐.”

“네, 사부님.”

여화는 무슨 일인지 직감했다. 단태는 신입 종자였으니 당연히 신고식이 벌어졌을 것이다. 어쩌면 단태는 그 신고식의 수치를 참지 못하고 종자들의 우두머리인 배망식을 의자로 내리친 건지 모른다. 신고식은 일종의 텃세이자 통과의례였다. 여화 자신도 종자회에서 공개적으로 수치를 당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속에서 불이 났다. 속옷은 입은 상태였지만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기다니.

단태를 살핀 여화는 밖으로 나와 안면이 있는 종자를 찾아갔다. 종자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자, 상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나 대답은 의외였다. 신고식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신입 종자가 들어왔는데 신고식이 없었다? 배망식처럼 으스대기 좋아하는 녀석이 그런 기회를 발로 차 버렸다? 그럴 리는 없다.

다른 종자도 찾아갔지만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배망식은 평소처럼 탑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강조했을 뿐이었다. 다섯 명의 종자를 만난 여화는 누군가 미리 손을 써 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종자들의 눈에 하나같이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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