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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계승자가 아니잖아.”
볼멘소리.
“너한테만 하는 얘긴데, 나 시장 자리에 관심 없어. 지금은 내가 계승자지만, 네가 충분히 자라면 그 자리는 네 거야. 그러니까 철저히 준비해. 알았니?”
“……정말?”
“≪무무비경≫, 다 읽어라. 저런 아이하곤 어울리지 말고.”
“알았어.”
반중치는 낮게 속삭였다. 위연미가 듣지 못하도록. 누나를 보내고 나면 위연미와 놀려는 의도였다.
용마사가 반우현을 따라서 저택 본채로 걸어가는데, 반중치가 따라가서 말을 걸었다.
“저, 천마룡을 타고 날 수 있을까요?”
“도련님 부탁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오래 비행할 수는 없습니다.”
시장에게서 봉급을 받는 용마사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딱 한 시간이면 돼요.”
“좋습니다.”
용마사가 다시 천마룡 쪽으로 걸어가자, 반중치는 겁이 나서 얼어 버린 위연미 쪽으로 달려갔다.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어 신이 난 그는 위연미의 손을 꽉 잡았다.
잠시 후, 반중치는 덜덜 떠는 위연미와 함께 천마룡의 등에 올랐다. 그리고 천마룡은 낮고 길게 울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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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제실에 형운세초, 반장단초, 오칠윤초 등 필요한 약병을 찾아서 나오던 단태는 뚱뚱한 여자와 마주쳤다. 놀란 단태는 그 여자를 쳐다보다 자신도 모르게 딸꾹질을 시작했다. 돈덕실은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었으나 달려들지는 않았다. 륜사 덕분에 시각을 되찾은 그녀는 단태 옆으로 스치듯 지나가며 속삭였다.
“너, 운이 좋구나.”
돈덕실이 약제실로 사라지자, 단태는 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움켜쥔 채로 그곳을 벗어났다. 지하 기율실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몸이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약병을 들고 연구실로 들어서자, 여화가 발을 걸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여지없이 당하고 만 단태는 바닥에 넘어졌고, 단태가 들고 있던 약병은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 귀한 약병이 부서질까 걱정한 단태는 쓰러진 채로 손을 뻗었으나…… 약병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단태를 쳐다본 여화는 너무도 쉽고 간단히 약병을 낚아챘다.
“항상 긴장하라고 했지?”
“……너무해요.”
“사부님은 나보다 더 심하셔. 잊지 마라.”
여화는 그 약병을 들고 자기 자리로 향했다. 웃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이유는 모르지만 단태는 가까이 지낼수록 재미있는, 그래서 귀여운 아이였다. 괜히 건드리고 싶달까? 가끔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륜사의 방 앞에 선 단태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젯밤 잠을 거의 자지 않고 책을 읽었는데도 이해한 부분은 한 줌에 불과했다. 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질문이 쏟아질 텐데, 그중 하나라도 제대로 답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거기 서서 뭐 해? 들어와.”
륜사였다.
마음을 단단히 먹은 단태는 문을 열고 들어섰다. 두 명의 륜사가 방에 있었다. 하나는 의자에 앉아 발을 책상에 올린 채 하품을 늘어지게 하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책을 든 채 그 앞을 왔다 갔다 하는 중이었다. 둘 중 분신은…… 책을 든 쪽이었다. 그렇다면 그 책까지도 가짜라는 뜻이다. 창으로 비쳐든 햇살에 분신의 몸이 반짝거리지 않았다면 단태는 어느 쪽이 진짜인지, 어느 쪽이 분신인지 알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물방울이 햇살을 반사하는 바람에 알 수 있었다.
“자, 시작하자.”
“네, 사부님.”
처음 ‘사부님’이라는 호칭을 허락받았을 때의 감동을 단태는 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며칠 만에 그 호칭은 복인 동시에 재앙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륜사는 자기 마음대로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배우는 사람 중심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 중심이어서 따라가는 사람의 가랑이가 찢어져도 나 몰라라 할 사람이기도 했다.
단태는 ≪마법 맛보기≫라는 독특한 제목의 책을 읽고 깨달은 부분을 더듬거리며 말했다. 차라리 책을 외우라는 명령이었다면 더 쉬웠을 텐데. 수십 번 반복해서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알기 어려운데, 거기서 알아낸 것을 설명하라니.
“인마설에 대해 말해 봐.”
륜사는 두툼한 마법서를 읽으며 말했다.
“인마설은…… 사람이…… 스스로 마법을 발견했다는 주장으로…….”
거기까지가 단태가 아는 내용이었다.
“마법의 기원에 대해 아는 대로 읊어 봐.”
“마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마법의 기원이라고 하는데, 네 종류의 주장이 있습니다. 그중 첫 번째가 인마설로…… 사람이 스스로 마법을 발견했다는 주장입니다. 두 번째는…… 두 번째는……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읽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용마설.”
“아, 두 번째는 용마설입니다. 용마설은 용이 인간에게 마법을 전달했다는 주장입니다. 세 번째는…….”
“그것도 기억 안 나니?”
“……영마설입니다. 기억났습니다! 정령마설이라고도 하는데, 정령이 마법을 인간에게 전했다는 주장입니다. 마지막은 신마설로, 신이 인간에게 마법을 전해 주었다는 이론입니다.”
중간에 헤맸지만 질문에 답할 수 있어서 단태는 뿌듯했다. 아직 마법을 펼치지는 못하지만, 마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넌 그중 어떤 게 옳다고 생각해?”
륜사는 책을 덮고 책상 너머에 서 있는 단태를 쳐다봤다. 이런 식으로 응시할 때는 질문이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단태는 적잖이 긴장했고, 곧 등을 세웠다.
“용마설 같은데요.”
한참 만에 단태가 답했다.
“왜?”
“용은…… 그러니까 이야기에 등장하는 용은 마법을 아는 종족이잖아요.”
“인간이 용에게 마법을 가르쳤을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겠네요.”
“너, 직접 용을 본 적 있지?”
“네, 머리 위로 날아가는데 어마어마하게 컸어요.”
“녀석, 덩치가 크다고 해서 똑똑한 건 아니야. 덩치가 크다고 해서 마법 능력이 뛰어난 건 더더욱 아니고.”
“……네.”
륜사는 농담조를 버리고 진지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난 인마설이라고 믿는다. 증거? 물론 있지. 한데, 인마설 외에 용마설, 영마설, 신마설도 나름대로 증거가 있단다. 내 생각엔 관점에 따라서 각자 하나의 실체를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것 같은데, 어쩌면 내가 잘못 보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난 인마설을 믿는다. 이유? 당연히 있지. 난 나를 믿거든. 인간을 믿는다는 뜻이다. 용이 인간에게 마법을 가르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이미 지난 일이야. 현재 용은 사라져 가는 종족이다. 살아 있는 용은 얼마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태어나는 용은…… 지능을 잃어버려 가축이나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런 용에 의해 인간이 마법이라는 위대한 학문을 시작했다는 주장은 어리석기 짝이 없어. 물론 사실 관계만 따진다면 그렇다고 해도 난 상관없어. 문제는 용마설을 이용하려는 자들의 위험한 발상이야.”
“그게 뭔데요?”
“아, 그건 나중에. 어려운 얘기거든. 그보다, 마법의 단계에 대해서 말해 봐라.”
“네, 사부님. 첫 번째는 조합 그다음은 융합, 마지막은 해소입니다.”
이번 질문은 자신 있게 답했다. 꼭 질문할 거라면서 여화가 가르쳐 주었던 부분이었다.
“그중 제일 중요한 단계는?”
“……잘 모르겠습니다.”
“찍어 봐라.”
“첫 번째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마법사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거기서 마법사는 마법을 빨리 펼치지 못해서 당할 때가 많아요. 마법을 빨리 펼칠 수 있다면 가까이 다가온 전사도 쉽게 이길 수 있잖아요. 그러니 첫 번째 단계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답은 세 번째다. 이유는 내일까지 알아내도록.”
“네, 사부님.”
“자, 준비됐느냐?”
“……네.”
단태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륜사의 입이 벌어진 순간, 이미 마법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