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회: 1-30 -->
몸이 허공으로 떠오른 단태는 처음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공빈수’라 불리는 마법이었다. 처음 이 마법에 걸렸을 때는 너무 신이 났지만, 시간이 흐르자 뱃멀미보다 몇 배는 심한 현기증에 시달렸을 뿐 아니라 몸 곳곳이 쑤시고 아팠다. 륜사에게 아프다고 했더니, 륜사는 스스로 그 마법에서 벗어나는 게 곧 공부라고 알려 주었다. 벌써 열흘이나 이 공부를 하고 있지만 단태는 속수무책이었다.
풍선처럼 위로 올라간 단태가 천장을 밀자 몸은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배 속이 뒤틀렸다. 신호가 온 것이다. 오늘도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아침에 먹은 것까지 쏟아 내고 말 테고, 그걸 깨끗이 씻어 내고, 닦아 내는 일은 자기 몫이었다. 무엇보다 쏟아 낸 오물로 추락하는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여화에게 방법을 물어봤지만 알려 주지 않았다. 알면서도 가르쳐 주지 않다니, 섭섭했다. 그래서 퉁명스럽게 불만을 말했더니, 여화는 한마디로 단태의 마음을 바꿔 버렸다.
-당고.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불만은 녹아 버리곤 했다.
공중에 뜬 채 몸이 뒤집어지자, 부글부글 끓었던 배 속의 무언가가 역류하여 입으로 나오려 했다. 단태는 황급히 오른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왼손을 휘저어 어떻게든 몸을 원상태로 돌리려 했다. 그러나 위로 올라가서 천장 구석에 멈춰 있는 풍선과 달리 이 몸은 제멋대로 움직였다. 마음과는 따로 놀았다.
“오늘은 좀 버티는데?”
륜사가 위를 올려다봤다.
입을 가득 채운 그 역겨운 것을 억지로 삼킨 단태는 륜사 위로 가서 토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런 꼴을 당해도 저렇게 웃을까?
“……힘듭니다.”
“그게 공부의 목적이야.”
“네?”
“힘을 빼는 것.”
“…….”
“이해할 수 없겠지. 그저 날 믿고 따라와라. 그러면 너 자신도 깜짝 놀랄 테니까. 아, 그리고 너, 내일 나와 함께 용금탄으로 간다. 물론 여화도 함께.”
“……용을 타고 가나요?”
“맞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의 단태라면 날뛸 정도로 좋아했겠지만, 지금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의 두려움을 너무나 잘 아는 단태는 할 수만 있다면 남고 싶었다. 용의 등을 타고 수도까지 날아가는 일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직접 본 그 거대한 용을 떠올린 단태는 한숨을 내쉬었는데, 그제야 발이 바닥에 닿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몸이 저절로 아래로 내려왔고, 서 있는 자세로 발이 바닥에 닿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인식하자마자 몸은 다시 풍선처럼 떠올랐다.
“이야, 가능성은 있는걸. 좀 전에 좋았다. 거의 성공할 뻔했어. 난 볼일이 있어서. 그러니 수고해라.”
륜사는 공중에서 버둥거리는 단태의 등을 밀고 밖으로 나갔다. 단태는 그리 크지 않은 힘에 밀려 창문, 벽, 책장 등에 부딪히며 공간을 가로질렀다. 공빈수에 걸리면 손아귀 힘이 약해져 다른 물건을 쥘 힘도 없었다. 행여 쥔다고 해도 튕겨 나가는 힘이 더 강해서 소용이 없었다.
‘조금 전 어떻게 된 거지? 왜 발이 바닥에 닿았지? 한번 해 봤으니, 또 할 수 있을 거야.’
단태는 희망을 가졌으나…… 그날 밤 늦게까지 허공에서 버둥거리고 말았다. 하품을 하던 여화가 방에 들어와 구해 주었을 무렵에는 지쳐서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대충 치운 연구실 한편에 마련된 간이침대에 누운 단태는 피곤해서 눈이 저절로 감겼다.
기를 쓰고 눈앞에 있는 무언가를 쟁취하려 했기 때문에 단태는 가족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떠올려 봐야 마음만 상했던 것이다.
@
누천파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용혈로 가서 고룡 암탄주를 만나기 전에 아버지에게 승급 시험에 참가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고 싶었건만, 일이 틀어져 버렸다. 게다가 그 녀석 때문에 일정까지 뒤로 밀렸다. 이러다가 출발하기도 전에 암탄주가 죽어 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이었다.
날씨는 좋았다.
화창한 하늘은 비행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열기가 빠진 바람이 불자 나뭇잎이 부딪히며 기이한 연주를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자연만큼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것도 없다. 그러나 누천파는 떠오르는 기억을 막을 수 없었다.
열흘 전, 아버지는 집에 와서 누천파에게 말했었다.
“네게 실망했다.”
“……전 최선을 다했습니다.”
“최선으론 충분히 않다. 넌 중재자이자 심판자였다. 네가 주도하여 그 일을 마무리해야 했어. 한데, 넌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조차 몰라. 자, 말해 봐라. 당고가 왜 스스로 날 찾아와서 사소한 다툼은 덮기로 했다고 말했느냐? 대답하거라.”
누천파는 할 말이 없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당고가 왜 자존심을 꺾었는지, 왜 깨어난 배망식이 탑을 떠나게 되었는지 그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천파야, 탑주는 주도권을 놓쳐서는 안 된다. 비록 겉으로 드러나는 주도권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이번 일이 진행되는 동안, 넌 안일하게 행동했다. 당고의 움직임도, 륜사의 움직임도 넌 몰랐어. 너 혼자라서 그랬다? 그건 핑계란다. 난 계승자에게 일을 맡겼다. 특권을 지닌 계승자에게. 마음만 먹었다면 넌 사람을 동원할 수도 있었는데, 그 일을 과소평가하는 바람에 너 혼자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게 실수였다. 알겠느냐?”
“……네, 아버지.”
누천파는 집이어서 아버지라고 불렀다.
“이제 날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넌 뼛속 깊이 계승자여야 한다. 어디에 있어도 넌 계승자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알겠습니다, 탑주님.”
누천파는 섭섭했지만 아버지, 아니 탑주의 말이 옳았다. 그래도 쓰린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마치 아버지를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집에서는 아버지였는데.
“……힘들 게다.”
누천파는 깜짝 놀랐다. 이런 말을 할 아버지, 아니 탑주가 아니었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아도 아버지가 자신을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가슴이 뜨겁게 부풀어 오르는 것만 같았다.
“네게 힘겨운 짐을 지운 것,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단다. 네 형이 죽었으니 말이다. 네 형이라면……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한 말은 잊어라. 이제 넌 내 아들이 아니라, 마둔수탑의 계승자란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려라.”
“네, 탑주님.”
누천파가 아버지가 숨겨둔 진실을 엿본 직후, 달아오른 마음은 차갑게 식어 버렸다. 죽은 형을 아직도 생각하다니. 그 형보다 못한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니.
‘두 번 다시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겠다. 절대로.’
누천파는 속으로 맹세했다.
그 전부터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관계는 악화되고 있었지만, 그날을 기점으로 아들은 아버지를 버렸다. 아들은 스스로 마둔수탑의 계승자일 뿐 누군가의 아들이 아니라고 다짐했던 것이다. 그 결정을 내린 후, 누천파는 오히려 후련함에 당황하기까지 했다. 마음이 무거울 줄 알았는데,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홀가분했다. 진작 관계의 끈을 놓아버릴 것을. 왜 이제까지 미련하게 쥐고 있었을까?
그때, 거대한 그림자가 누천파를 덮었다. 고개를 든 그는 날개를 움직이며 내려오는 천마룡을 볼 수 있었다. 시장의 딸인 반우현이 천마룡의 목덜미에 타고 있었다.
먼지를 일으키며 천마룡이 착륙했다. 강풍이 불자 성질 급한 나무들이 떨군 낙엽들이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누천파는 우울한 기분은 날려 버리고 천마룡 쪽으로 걸어갔다. 날개를 접었는데도 천마룡은 범선만큼이나 몸집이 컸다. 반우현은 날렵한 동작으로 줄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오랜만이야.”
“……그래.”
“기분이 왜 그래? 륜사 오라버니?? 때문에?”
누천파는 그제야 륜사가 이번 여행의 책임자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관계가 그래?”
“그 사람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
누천파는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그 순간을 절대 잊을 수가 없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마둔수탑 최고의 천재는 륜사였고, 누천파는 당연히 륜사를 마법 스승으로 삼고 싶었다. 그런데 륜사는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거절했고, 그 일은 소문으로 도시 전역에 퍼져 나갔다. 한동안 누천파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뒤이어 륜사가 배경 하나 없는 고아인 여화라는 계집을 제자로 들이자, 누천파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웬만하면 륜사와는 같은 공간에 있지도 않았고, 미리 안다면 피해 버릴 만큼 그를 싫어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