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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주가 되는 날, 누천파는 륜사를 탑 밖으로 쫓아낼 생각이었다. 그게 가능하다면.
누천파의 안색을 살핀 반우현은 화제를 바꾸었다.
“그 용이 정말 마법의 비밀을 알고 있을까?”
“불을 피우지 않으면 연기가 날 리가 없잖아.”
“그렇다면 용이 마법을 우리에게 가르친 거잖아.”
“난 관심 없어.”
상당수의 진지한 마법사들은 마법의 기원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크게 네 개의 이론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데, 가장 큰 세력을 가진 이론은 바로 ‘인마설’이었다. 인간 스스로 마법을 발견하고 발전시켰다는 주장이었다. 용마설은 용이, 신마설은 신이, 영마설은 정령이 각각 인간에게 마법을 전해 주었다는 가설이자 이론이었다.
“관심없을 리가 없잖아. 용마설이 힘을 얻으면…… 제국 전체의 판도가 달라질 테니까.”
반우현의 지적은 예리했다.
아무리 마법사들이 배경이 아니라 실력으로 서로를 평가한다지만, 그들도 인간인 이상 조직을 만들고 경쟁을 통해 세력을 키우는 건 마찬가지였다. 제국의 정점에는 황제가 있고, 그 아래로 크고 작은 조직이 서로 위로 올라가기 위해 경쟁하는데, 탑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탑은 보유한 마법사의 실력과 수, 소유한 마법의 질, 지역에 대한 영향력으로 그 우열이 판가름 나지만, 황제를 비롯해 세상 사람들의 평가 역시 중요한 부분이었다. 만약 인마설 대신 용마설이 주도권을 잡는다면 이제까지 인마설을 이용하여 제국 전체에서 주도권을 잡았던 기존의 탑들은 그 힘을 잃게 될 터였다. 마둔수탑 역시 인마설을 지지하기 때문에 이번 임무를 통해 정말 용이 인간이 알지 못하는 은밀한 마법을 알고 있으며, 그로 인해 용이 인간보다 탁월한 마법사라는 사실이 증명된다면…… 탑의 장래는 불투명해지고 말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륜사를 인솔자로 도시의 장래를 책임질 계승자가 둘이나 이번 임무에 포함된 것이다.
“저기 온다.”
반우현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륜사 일행이 걸어오고 있었다. 륜사와 그 제자 여화, 그리고 늙은 마법사와 뜨거운 햇살 아래 허약해 보이는 녀석이 전부였다. 각각 가방 하나씩 등에 멘 터라 하인은 한 명도 없었다. 요리사를 제외한 하인만 열 명 이상을 거느린 누천파, 반우현과는 완전히 달랐다.
“준비 다 됐나?”
륜사는 누천파를 쳐다보며 물었다. 누천파만 준비가 끝나면 다른 사람들은 문제없다는 노골적인 표시였다.
“……네.”
그 의도를 누천파가 모를 리 없었다.
“저분은 누구시죠?”
반우현이 물었다.
“이번 임무에 동행하게 된 타마 엄포윤 어르신이야. 저 아이는 어르신의 손자이자 내 종자고.”
“아, 네.”
타마라는 말에 반우현의 관심은 시들었다. 저렇게 늙도록 타마에 머물러 있다면 더 볼 것도 없다는 판단이었다. 대신 운이 기가 막히게 좋은 단태를 쳐다봤다. 반우현도 어째서 이 아이가 멀쩡하게 살아 있는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시청의 정보력도 그 부분은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
하인들은 물론 짐까지 모조리 넓은 천마룡의 등으로 옮겼으나 륜사는 출발하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반우현이 다가가서 묻자 륜사는 올 사람이 있다고만 답했다.
잠시 후, 허겁지겁 한 사람이 달려왔다. 천마룡의 거대한 이빨에 놀란 그는 륜사를 보더니 용기를 내어 다가왔다. 륜사가 아래로 내려가 그를 맞았다.
“미안하네. 늦어서.”
“나중에 술이나 한잔 사.”
“그러지.”
명국영은 륜사의 도움을 받아 꿈틀대는 천마룡의 다리를 타고 등으로 올라갔다.
하인들이 천마룡의 등에 친 천막에 있다가 밖으로 나온 누천파는 명국영을 보고는 ‘끙’ 소리를 냈다. 정말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륜사에 이어 명국영까지. 륜사가 이번 일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누천파의 명예를 무너뜨렸다면, 명국영은 간접적으로 계승자의 위신을 흔들었다.
명국영이 직접 써서 보낸 글은 유려한 문체와 색다른 재미로 곧 도시 전역에 퍼져 나갔다. 수청보는 평소보다 다섯 배가 더 많은 신문을 찍어 냈는데도 다음 날 더 찍어 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탑 내부의 하층민이라 할 수 있는 종자의 세계에도 신고식이라 게 있고 그 때문에 마법사들의 싸움으로 커졌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는데, 자연스럽게 탑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권력을 쥔 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바로 민심이었다. 탑주는 즉시 조치를 취하였다. 종자회를 해산하지는 않았지만 신고식은 더 이상 없다는 명령이었다. 또한 탑주는 그 내용을 수청보에 실었다. 마둔수탑을 향한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서였다.
누천파는 눈엣가시 같은 두 사람이 최근에 급격히 가까워졌고, 친구나 다를 바 없어졌다는 사실은 상상도 못 했다.
륜사는 단태의 안전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 신문의 원고에 고마워 비싼 술을 사서 찾아갔고, 술을 좋아하는 명국영은 오히려 신선한 경험이었다면서 함께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금세 두 사람은 말이 잘 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륜사는 명국영이 학자답지 않게 부드럽다는 사실에 놀랐고, 명국영은 륜사가 마법사답지 않게 해박하면서도 깊이까지 갖추었다는 사실에 눈을 크게 떴다. 두 사람은 서로를 우러러보는 친구가 되어 가는 중이었다.
“출발하지.”
륜사가 명령을 내렸다.
용마사의 지시에 따라 천마룡은 거대한 날개로 공기를 밀어내며 하늘로 떠올랐다. 물의 도시를 한 바퀴 선회한 천마룡은 제국의 중심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광릉
엄포윤은 구역질에 정신이 없었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고, 속에서는 계속 허연 물이 나왔다. 안 그래도 천마룡이 기류 때문에 가끔 흔들릴 때마다 속이 철렁하고 손발이 차가워졌는데, 이 망할 멀미 때문에 죽을 것만 같았다. 그는 고생하면서도 천마룡의 등에 얼기설기 감아 놓은 쇠사슬에 묶어 둔 자신의 생명줄이 끊어지지 않을까 수시로 잡아당겼다. 천마룡은 언제든 솟구칠 수도, 아래로 꺼질 수도 있기 때문에 생명줄이 끊어졌다가는 추락을 면할 길이 없었다.
“괜찮으세요?”
“……넌 괜찮냐?”
“네.”
“……좀 쉬어야겠다.”
한숨을 내쉰 엄포윤은 역시 젊음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인들 중에는 자신처럼 멀미로, 고소공포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는데, 단태는 땅보다 이 높은 곳이 더 좋은 모양인지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단태의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었다. 뭐랄까, 빛나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처음 봤을 때도 똘똘하게 생겼다, 잘생겼다 싶었지만 요즘엔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매력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저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엄포윤은 또 한 번 옆에 놓인 나무통에 토했다. 하얀 액체밖에 안 나오는데도 구역질은 계속되고 있었다.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은 노마법사는 거대한 날개를 움직이는 근육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몸통의 가장자리까지 나가서 아래를 힐끔거리는 단태를 노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풀 수 없는 의문이 있지만 알아낼 수가 없었다.
당고는 왜 그 일을 불문에 붙이겠다고 했을까?
당고의 성격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단태는 죽은 목숨이라고 확신했었다. 그게 단 하루 만에 달라졌다. 단태는 너무나 자유롭게 탑을 돌아다녔고, 당고 쪽 사람들은 누구도 단태를 건드리지 않았다. 며칠 전에는 돈덕실이 단태를 노려보며 지나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단태에게 맞아서 의식을 잃었다가 겨우 깨어난 배망식은 탑에서 쫓겨났다. 그런데도 돈덕실은 단태에게 손 하나 대지 않았다.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불안했다. 그래서 은근슬쩍 단태를 불러다가 물어보기도 했다. 무슨 일이 있지 않았냐고. 단태는 순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슨 일요?”
그 질문에 엄포윤은 더 이상 단태에게 묻지 않았다.
다시 구역질에 토하고 만 엄포윤은 느리더라도 마차를 타고 느긋하고 편하게 용금탄으로 갈 걸 하고 후회했다. 그러나 이미 천마룡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엄포윤이 생명줄을 꽉 붙잡고 눈을 감고 있다가 갑자기 하강한 천마룡 때문에 ‘윽’ 신음을 흘리고 있을 때, 단태는 날갯죽지 근처까지 가서 아래를 쳐다봤다. 등골이 오싹했다. 물의 도시에서 시작되어 저 남쪽까지 뻗어 있는 길은 기다란 선 같았고, 짐수레가 통과하는 데 반나절은 걸릴 법한 숲은 손바닥 두 개를 보탠 것처럼 작았다. 햇살을 반사하여 반짝이는 강에 떠 있는 뗏목과 범선은 장난감 같아서 손을 뻗어서 집어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이 이렇게 넓을 줄이야.
이 높은 곳이 이렇게 신 날 줄이야.
단태는 그 자리에 앉았다. 바닥이 움직였다. 천마룡의 근육이 날개를 당겼다가 풀었다 하면서 움직이고 있는 게 몸으로 느껴졌다. 이 거대한 생물의 활력이 너무나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