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37화 (37/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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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단태는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꽤 커진 붉은 용을 유심히 살핀 여화가 속삭였다.

“염종화탑이야.”

“염종화탑이라면?”

“맞아. 불의 도시에 있는 탑이야. 아무래도 염종화탑도 용혈에 사람들을 보낸 것 같아.”

골치 아픈 일인 듯 여화의 미간이 찌푸려져 있었다.

단태는 붉은 용의 정수리에서 펄럭이는 깃발의 문양을 눈여겨보았다. 타오르는 횃불 문양이었다. 책에서 본 그 문양과 같았다. 제국에는 특별한 도시가 여럿 있었다. 물의 도시 유타루체도 그중 하나인데, 염종화탑이 자리 잡은 불의 도시 방염루체는 제국의 북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활화산인 방염산 꼭대기에 우뚝 서 있는 방염루체는 저 멀리서 보면 산 위에 솟구친 뿔처럼 보여서 ‘뿔탑’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천마룡의 정수리에서 ‘허락’을 뜻하는 깃발이 펄럭였다. 붉은 용은 그 위에 올라탄 사람들의 표정이 보일 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저 용, 화운룡이야.”

여화가 말했다.

붉은 용이 천마룡 위쪽으로 접근하자, 거기서 젊은 남자가 훌쩍 뛰어내렸다. 그 남자는 단태와 여화 앞에 착지했다. 한쪽 무릎을 꿇은 그는 여화를 보더니 빙긋 웃었다. 부드러운 미소였다.

“아가씨가 유타루체의 계승자인가요? 소문대로 미인이시네요.”

“나는…….”

“내가 반우현이에요.”

여화의 말을 싹둑 자르고 반우현이 끼어들어 그 남자 앞에 섰다. 남자는 자신의 실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우현 앞으로 오더니 웃으며 말했다.

“제가 잘못 봤군요. 실례했습니다. 저는 염종화탑의 하쿠, 물의 도시의 계승자에게 인사드립니다.”

하쿠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환영해요. 이쪽으로 가시죠.”

반우현은 상냥하게 웃으며 하쿠를 자신의 천막으로 안내했다. 이제 막 용의 정수리에서 등으로 내려온 륜사는 반우현의 행동을 지켜볼 뿐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이번 임무의 책임자는 바로 자신이며, 반우현은 그저 일행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시킬 수도 있지만 그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어쩌면 이번 기회로 반우현이 기어이 이번 임무에 함께한 이유를 알게 될지도 몰랐다.

“저 여자가 륜사 님도 무시하네요.”

누천파였다.

“너도 날 무시하는데, 반우현이라고 해서 날 무시하지 말란 법 있냐?”

말문이 막힌 누천파는 몸을 돌려 자기 천막으로 가 버렸다. 여화는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참다가 풋 터트리고 말았다. 단태는 누천파가 천막으로 들어간 후에야 웃었다.

“사부님, 탑의 계승자에게 너무하시는 것 같아요.”

“저놈은 구제불능이야.”

륜사는 혀를 차더니 천막으로 향했다. 시선을 교환한 여화, 단태가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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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째 저녁 무렵, 천마룡은 화운룡과 함께 용금탄의 숲에 착지했다. 호수까지 끼고 있는 그 숲은 광활해서 용 열 마리가 한꺼번에 머무를 만했다. 오랜만에 휴식을 취한 천마룡은 소 일곱 마리를 먹어 치우고는 드렁드렁 코를 골았고, 화운룡도 흙바닥에 몸을 대고 자고 있었다.

사흘 만에 용의 등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저마다 볼일을 위해 용금탄 곳곳으로 흩어졌는데, 용혈로 출발하는 내일 아침까지 돌아올 예정이었다. 엄포윤과 누천파는 각각 다른 길로 오금반서관으로 향했고, 반우현도 볼일이 있는지 하인들을 거느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중용림이라 불리는 그 숲에 남은 사람은 륜사와 명국영, 여화 그리고 단태와 몇 명의 하인들뿐이었다.

“우리도 놀러 갈까?”

륜사가 말했다.

“어디로요?”

여화였다.

“음, 지금이라면…… 광릉축제가 열릴 것 같은데, 아닌가?”

륜사는 명국영에게 물었다.

“아, 맞네. 광릉축제가 열리고 있을 걸세.”

“그렇다면 여기서 빈둥거릴 수는 없지. 같이 가자구.”

륜사는 행동파 마법사답게 숲을 빠져나가 대기하는 마차에 올라탔다. 말 두 마리가 이끄는 마차는 명국영, 여화, 단태가 올라타자 곧 출발했다. 륜사는 마부더러 광릉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가자고 말했다.

“광릉축제가 뭐예요?”

단태는 여화에게 속삭였다.

“……나도 몰라.”

여화도 속삭였다.

“다 들린다. 내가 알려 줄 수도 있지만, 이 시대를 대표하는 대석학의 입을 빌려서 들으면 더 좋겠지.”

륜사는 명국영을 쳐다봤다. 명국영은 너스레 떠는 륜사가 처음엔 부담스러웠지만 점점 그 마음을 알게 되자 웃어넘길 수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시 낭송으로 가다듬은 목소리로 광릉축제의 유래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광릉은 탕무 신국 시대, 그러니까 제국력이 시작되기 2,500년이나 거슬러 올라간 시대에 바로 이곳 용금탄에서 살았던 거인의 이름이라네. 키가 커서 구름 위로 머리가 올라갈 정도라는 광릉이 한 걸음 걸으면 땅이 출렁거리고, 숨을 내쉬면 돌풍에 숲이 뽑혀 나갈 정도였지. 물론 전설이라네. 어딜 가더라도 있는 전설. 어느 날, 광릉은 구름 아래로 펼쳐져 있는 세상이 너무 따분해서 재미있는 무언가를 선물로 줘야겠다고 생각했지. 무엇을 주면 땅에 사는 존재들이 기뻐할까 생각하던 광릉은 밝은 햇살을 주고 싶어서 손을 휘휘 저어 구름을 걷었는데, 그 때문에 세상은 가뭄이 들어 사람들이 고통을 겪게 되었네. 사람들이 원망을 하자 미안한 광릉은 공기를 빨아들여 저 먼 바다에 있던 구름을 끌어 왔는데, 그 때문에 홍수가 들고 말았지. 사람들은 광릉에게 몰려 가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가만히 있으라고 고함을 쳤다네. 광릉은 선한 의도로 한 자신의 행동이 세상에 재앙을 일으켰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네. 어떻게든 실수를 만회하고 싶었지. 그래서 고민을 하던 광릉은……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었고, 그 고민 때문에 점점 죽어 갔네. 어느 날 광릉은 통나무 쓰러지듯 땅에 쓰러졌고, 그 거대한 몸은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거름이 되었지. 그런데 어느 날 땅의 일부가 된 광릉에게서 조그마한 반딧불 수천수만 개가 올라왔네. 사람들은 그 반딧불을 보고는 기뻐했어. 그제야 땅의 일부가 된 광릉은 웃음을 지을 수 있었지. 이제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노라고 말하면서. 바로 그 광릉을 기념하는 축제가 바로 광릉축제라네.”

긴 설명이 하나도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명국영은 같은 내용이라도 더 조리 있고, 실감나게 말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었다. 천마룡 등에서는 겁에 질린 남자에 불과했지만 일단 땅에 발이 닿자 그는 말솜씨가 탁월한 재주꾼으로 바뀌어 있었다.

“광릉이야말로 ≪무무비경≫의 군왕 같아요.”

설명에 취한 단태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생각이 저절로 말로 나온 느낌이었다.

그 말에 명국영의 눈이 반짝거렸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 그게…….”

단태는 자기가 한 말 때문에 당황했다. 또한 륜사와 여화가 있는 데서 질문에 답을 하려니 어딘지 모르게 낯이 뜨거웠다.

“솔직하게 말해 봐. 나도 듣고 싶으니까.”

륜사였다.

용기를 낸 단태가 입을 열었다.

“군왕은 바다 같다고 했잖아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게 바다인데, 광릉은 처음엔 자기 생각대로 사람들을 대했어요. 그때는 바다가 아니었고 그 때문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재앙만 일으켰어요. 하지만 점점 자기 뜻이 아니라 사람들의 뜻을 받아들였어요. 마치 강을 바다가 말없이 받아들이는 것처럼요. 그런데도 광릉은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어떻게 채워 줄지 찾아내지 못했어요. 그런 상황에서도 광릉은 포기하지 않았잖아요. ≪무무비경≫에는 군왕의 자질 중 첫 번째는 아니지만 두 번째는 될 덕목이 ‘끈기’라고 나와 있어요. 광릉은 끈기를 갖춘 셈이에요. 그리고 그 끈기 때문에 광릉은 죽어서 땅의 거름이 되었고,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줄 수 있었어요. ≪무무비경≫ 후반부에 보면 군왕은 죽어야 산다는 대목이 있는데, 그게 바로 광릉의 경우와 일치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광릉이 죽은 이후에, 땅의 일부가 된 이후에, 또 다른 행복…… 단순히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 잘 먹고 살도록 해 주는 그런 행복이 아니라…… 그 이상의 행복을 반딧불을 통해 주잖아요. 군왕은 그 흔적으로 백성을 즐겁게 한다는 ≪무무비경≫의 마지막 부분과 뜻이 통하는 것 같아요. 광릉의 흔적은 수천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사람들을 즐겁게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광릉이야말로 ≪무무비경≫의 주인공이 아닐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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