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38화 (38/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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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에 더듬거리거나 잠시 멈춘 부분도 있지만 단태가 광릉과 ≪무무비경≫을 엮어서 한 말에 다들 깜짝 놀랐다. 특히 명국영은 비약이 있는 동시에 논리와 설득력을 갖춘 설명에 감탄하고 말았다. 비록 거칠고 허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는 명쾌한 해석이었다. 단 이틀 만에 ≪무무비경≫의 핵심을 꿰뚫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제가 수다스러웠죠? 죄송합니다!”

단태가 일어나서 고개를 꾸벅 숙이다 마차가 덜컹거려 앞으로 몸이 쏠리자, 명국영이 재빨리 단태를 잡아 주며 말했다.

“무무가 직접 들었어도 탄복할 만한 이야기였네. 감탄했어. 정말일세.”

단태는 감동으로 말문이 막혔다. 무무는 그 책의 저자였다. 이런 칭찬을 들으니……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설명도 듣고 깊은 교훈도 얻었으니 이제 구경만 남았군.”

륜사가 웃자, 사람들도 같이 웃었다.

마차가 축제가 벌어지는 광장 입구에 멈추자, 그들은 모두 내려 걸었다. 마차로는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어서였다.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자칫 잘못해서 넘어졌다가는 깔려서 죽을 것 같았다. 아치형 다리 아래로 강이 흘렀고, 그 너머 광장에는 온갖 종류의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피리 부는 노인부터, 묘기를 부리는 여인들, 불을 뿜는 사내, 뱀을 조종하는 아이, 약을 파는 남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거기서 무언가를 보여 주며 돈을 받고 있었다.

처음으로 축제를 본 단태는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마차 안에서 말했던 광릉 이야기는 잊은 지 오래였다. 그들은 함께 돌아다니며 송사리를 잡기도 했고, 징그럽게 생겼지만 맛있다는 장사꾼의 유혹에 눈 꼭 감고 맛본 후에는 서로 먹겠다고 난리를 치기도 했고, 활을 쏘아 술병을 타내기도 했고, 아슬아슬한 옷을 입은 채 묘기를 부리는 여인들 앞에서 입을 벌린 채 멍하게 있기도 했다. 륜사는 마법사라는, 명국영은 대학사라는, 여화는 여자이자 수련사라는, 단태는 종자라는 딱지를 떼고 함께 놀았다. 왁자지껄 웃었고, 슬픈 연극에 눈물도 흘렸으며, 배가 고파서 엄청나게 많은 요리를 사 와서 다리 한쪽에 자리 잡고 푸짐하게 먹었다.

밤이 되자, 드디어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광장에 모두 모여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펑펑펑.

불꽃이 꼬리를 남기며 하늘로 올라가 수백 조각으로 나뉘어 빛을 뿌리며 사라졌다. 단태는 그 광경을 보며 광릉을 떠올렸다. 전설이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였다. 세상에 광릉 같은 사람이 있을까? 구름 위로 얼굴을 내밀 만큼 굉장한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영웅이 정말 있을까? 한낱 전설에 불과한 것일까? 전설이라면 ≪무무비경≫이라는 책이 지금까지 그토록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진 않았을 것이다.

명국영을 통해서 단태는 ≪무무비경≫이 용문거를 비롯해서 각종 시험에서 빠지지 않는 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들이 그 책을 귀하게 여긴다면, 사람들은 광릉 같은 인물이 어딘가에 있기를…… 또한 그 자신이 광릉 같은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물의 도시는 그 지경이 되었을까? 도시 한쪽에서 버젓이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노예로 팔아먹는 장사꾼이 돌아다니는데도 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을까?

불꽃놀이는 평생 잊지 못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단태의 내면에 깊이 새겨진 건, 광릉 이야기였다. 유타루체에 광릉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가족과 헤어지지 않았을 텐데. 거기에 ≪무무비경≫을 읽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 ‘군왕’이 있었다면 그런 비극은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단태는 머리가 아팠다. 끔찍한 두통이 아니라, 한꺼번에 많은 것을 깨달아 머리가 묵직해진 것이다. ≪무무비경≫이 그에게 첫 번째 충격이었다면, 광릉 이야기는 두 번째 충격이었다. 두 개의 충격이 융합하여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왔는데, 그게 세 번째 충격이자 가장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러나 15세 단태가 소화하기엔 벅찬 깨달음이기도 했다. 씨앗이 뿌려졌으니…… 시간이 흐르면서 경험이라는 양분을 빨아들여 싹을 틔우고, 급기야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들은 숲으로 돌아왔다. 다들 말이 없었다. 각자가 축제에서 생각할 바를 가져온 모양이었다.

천마룡 옆에 자리 잡은 숙소는 텅 비어 있었다. 하인 몇 명만 모닥불에 둘러앉아 내일 또 시작될 비행이 넌더리난다고 투덜대고 있었다. 반우현과 누천파는 물론 엄포윤도 보이지 않았다.

“일찍 자. 내일 아침엔 서둘러야 하니까.”

륜사였다.

단태는 종자로서 할 일을 다 한 다음, 천막 한쪽에 마련된 침대에 누웠다. 아까 봤던 불꽃놀이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오랫동안 생각한 것은 광릉이었다. 한동안은 광릉을 머릿속에 담아 두고 지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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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포윤은 마음이 급했다. 오금반서관이 문을 닫기 전에 그 책을 찾아내야 한다. 용혈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다시 용금탄에 들를 수도 있지만, 사정이 생긴다면 일정이 바뀔 가능성도 충분히 높았다. 더 깊숙한 서가 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그는 낯익은 책을 발견했다.

“여기 있었구나!”

그 소리가 고요한 서관으로 퍼져 나갔다.

엄포윤은 주위를 살핀 후에 그 책을 뽑아서 펼쳤다. ≪마법지체사전≫은 마법의 재능과 관련된 체질을 설명한 두꺼운 책으로 제국에 몇 권 없는 책이었다. 목차를 훑어본 그는 재빨리 원하는 부분을 펼쳤다.

“아, 여기다.”

엄포윤은 ‘풍계지체’ 항목을 읽기 시작했다. 바람의 재능을 타고난 몸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는데, 곧 그가 그토록 확인하고 싶어 했던 부분이 나타났다.

[편지]칠보주에 모두 반응하나, 그중에서도 풍주에 격렬한 반응을 보인다. 여기서 풍주를 살펴보라. 내부 깊숙한 곳부터 균열이 일어났다면 풍혈지체일 가능성이 높다. 풍혈지체는 대단히 희귀한 재능으로 풍계 마법에 있어서는 최고의 몸이라고 할 수 있다. 풍계 최고의 마법인 ‘풍천계’를 이룰 몸이다. 가능성이 있다면 왼쪽 팔꿈치에서 아래로 두 푼인 지점에 마력을 주입하여라. 등에 세 개의 별이 나타나서 빛을 발한다면 풍혈지체인 것이다.

그러나 풍혈지체는 단명의 운을 타고난다. 체내에 숨어 있는 잠력을 한꺼번에 폭발하기 때문이다. 짧으면 십 대에, 길어도 스무 살 이전에 목숨을 잃어 대성할 수가 없다. 그 위기를 넘길 수 있다면 풍혈지체는 가히 천하를 굽어보리라.[편지]

단태가 풍혈지체일 가능성에 희열을 느꼈지만, 단명한다는 내용 때문에 마음까지 식어 버렸다. 이 글이 옳다면 내일이라도 급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서둘러야 한다. 그 아이를 움직여 천린풍탑을 하루라도 빨리 찾아야 한다. 마둔수탑으로 돌아간다면 탑주와 이 부분을 터놓고 의논해야 할 것이다. 탑주라면 적절한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책을 덮고 서관을 나서려는데, 서가를 이리저리 오가며 책을 뒤지는 사람을 발견했다. 반가운 동시에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누천파는 왜 여기 있을까? 내일 아침에 용혈로 출발하는데 아직까지 이곳에 있다면, 중요한 일임에 분명했다. 다가가서 알은척할까? 아니다. 비행하는 동안 살펴보니 누천파는 친화력 영역은 꽝이었다. 누가 다가가도 퉁을 놓는 분위기의 소유자였다.

‘못 본 척하자.’

몸을 돌려 나가려는데, 누천파가 불렀다.

“어르신.”

“……네?”

엄포윤은 깜짝 놀랐다. 누천파의 입에서 ‘어르신’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탑의 젊은 마법사들 중 그런 호칭을 사용하는 사람은 륜사뿐이었는데.

“여쭐 게 있어서요.”

“말씀하십시오.”

“이 많은 책 중에 단 한 권만 선택한다면 어떤 책을 가져가시겠습니까?”

황당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었지만 누천파가 풍기는 진지한 분위기 때문에 웃을 수는 없었다. 그저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례를 했습니다.”

“한 권만 뽑는다면, 계승자님을 뽑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책 좀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하는 농담이 있습니다. 수천 권의 책 중에서 무엇을 고르겠냐고 누군가 질문을 던졌는데, 지혜로운 사람 하나가 이렇게 대답했지요. 나 자신을 고르겠다고. 이유를 물었더니 앞으로 수천 권의 책 모두를 담을 단 한 권의 거대한 책이 바로 나라고 설명했는데, 다들 그럴듯해서 고개를 끄덕였다지요.”

“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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