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45화 (45/293)

<-- 45 회: 2-4 -->

그렇게 사느니 목숨을 걸고 모험을 해 볼 생각으로 이곳에 선 것이다. 게다가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제자도 생겼으니…… 목숨을 걸 이유로서는 충분한 셈이다.

그래도 무섭기는 했다.

“나 명국영의 운을 시험해 봐야겠어.”

명국영은 호기롭게 뒷짐을 지고 그 어둠이 내려앉은 동굴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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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는 폐허가 된 천막을 노려봤다.

그 쥐새끼 같은 놈이 이런 술수를 쓸 줄이야.

애초에 이 지대의 아래에 복잡한 미로 같은 통로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게 실수였다. 율진 연방 시대에 수백 명의 인간이 암탄주에게 사로잡혀 만든 구조물은 상상을 초월했다. 지상의 구조물은 다 무너졌지만 지하는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그걸 알아낸 누천파가 지하로 몸을 피한 것이다.

‘시간을 끌고 싶은 거지.’

하쿠는 진매록탑의 계승자 녹윤을 쳐다봤다.

“……찾았습니까?”

조급증이 묻어나는 질문에 녹윤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펼친 녹근추는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뿐, 죽었는지 아닌지 또는 어디에서 죽었는지 등은 알 수가 없었다. 광범위한 지역에 뿌리를 내리게 하는 마법이어서 정교함은 떨어졌다.

“제가 해 볼게요.”

왕은설이었다.

하쿠와 녹윤이 기대감에 찬 눈으로 쳐다보자, 왕은설은 무너진 천막의 중앙으로 가서 낮고 빠르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소맷자락에서 은색의 뱀이 기어 나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뱀은 혀를 날름거리며 왕은설을 쳐다봤다.

왕은설이 속삭이자, 뱀은 즉시 구멍 아래로 내려갔다.

“은휼사가 그들에게 안내할 거예요.”

그렇게 말한 왕은설은 구멍 아래로 뛰어내렸고, 하쿠와 녹윤 그리고 다른 마법사들도 아래로 내려갔다. 위에서는 찾을 수 없기에 직접 내려가서 찾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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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태는 세 번째 알약을 먹었다.

두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륜사를 업고 걷기 위해서는 도리가 없었다. 여화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걱정할 것 같아서였다. 평소라면 그 충고를 새겨서 들었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세세한 부분까지 생각하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단태는 생각했다.

다시 힘이 생기자 륜사를 업고 이동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언제까지 이동해야 할까?

그저 앞에서 가는 대로 따라가는데, 여화가 옆으로 다가왔다.

“힘들지?”

“……괜찮아요.”

“조금만 참아. 녹근추 같은 마법으론 우리가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어느 정도 이동하면 잠자코 숨을 거야. 그러면 충분히 쉴 수 있으니까 조금만 더 힘내.”

“알았어요.”

여화의 말에 기운이 났다.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동하는 방향이 이상했다. 단태는 어디에 있더라도, 심지어 방향을 분간할 수 없는 동굴에서 헤맬 때에도 방위를 정확히 알아차리는 기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숲에서 헤매다가 몇 번이나 그 능력 때문에 마을로 돌아오곤 했는데, 누천파가 이끄는 방향은…… 일관적이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것 같았다.

‘대체 어디로 가려는 거지? 계승자님도 모르는 거 아니야?’

그런 의심을 지워 버린 단태는 그저 한 걸음씩 걷는 데 집중했다. 그러다가 처음 천막의 구멍 아래로 내려온 이후 걸어간 방향과 이동 거리를 가늠한 단태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누천파는 용혈의 지하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잘못 알았을지도 몰라.’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힐수록 확신은 점점 더 커졌다. 그러나 함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 결정에 여기 있는 사람들의 목숨이, 여화와 륜사의 목숨이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용혈로는 접근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다. 금지라고 해서 사람들이 막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누구든 자유롭게 용혈로 들어갈 수는 있지만 문제는 나올 수 없다는 점이었다. 륜사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용혈로는 절대 가까이 가지도 말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었다.

탑의 계승자인 누천파를 믿을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감각을 믿을 것인가?

마음이 복잡해진 단태는 힘을 내어 앞에서 걷는 여화의 손을 건드렸다.

“왜?”

“……할 말이 있어요.”

진지한 표정을 본 여화가 단태 옆으로 다가왔다.

“말해 봐.”

“……용혈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뭐?”

“어쩌면 이미 용혈 아래인지도 몰라요.”

“……정말이니?”

“네.”

단태는 누천파를 믿지 않았다. 누천파 개인의 능력에 실망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 누구도 자신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죽는다면 그건 온전히 자신의 뜻이어야 한다고 단태는 생각했다. 그래야 후회 없는 죽음일 테니까.

“알았다.”

이유도 묻지 않은 여화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하인, 하녀 들을 제치고 앞쪽으로 걸어갔다. 누천파에게 말하기 위해서였다.

단태는 제발 누천파가 여화의 말에 귀 기울이길 바랐으나, 이미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고 있었다. 아까 마력석을 5율만 남겨주었던 그 계승자라면 한낱 여자 수련사의 충고에 귀 기울일 리가 없다.

‘방법을 찾아내야 해.’

단태는 생각에 잠겼다.

*상속자들

짙은 어둠에 명국영은 횃불을 가져오지 않은 실수를 뼈저리게 뉘우쳤다. 책이나 읽고 시나 읊던 자신이 강력한 마법사마저도 목숨이 아까워서 들어오지 않는 이 용혈로 오면서 불 하나 챙기지 않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평생 모험과는 담 쌓고 지낼 줄 알았다.

명국영은 손을 뻗어 울퉁불퉁한 벽을 더듬으며 앞으로 나갔다. 갑자기 벽이 끝나고 커다란 공간이 나왔는데, 그때 저 앞쪽에서 샛노란 빛의 덩어리가 나타났다. 그리고 낮고 묵직한 소리가 공기를 타고 전해졌다. 소리라기보다는 진동 같았다.

‘저건…… 눈동자잖아.’

사람 상체만큼 커다란 그 빛의 구체는…… 고양이 눈을 닮은 용의 눈이었다.

명국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용이 숨쉬는 그 무거운 진동에 섞여 침 넘어가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다.

“인간.”

용이 말하자, 수십 명이 동시에 외치는 것 같았다. 아이와 어른, 남자와 여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등 다양한 목소리가 하나의 목소리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나, 나는 명국영이오.”

“규칙은 알고 들어왔겠지?”

이번에도 용의 음성은 그 거대한 공간을 채우고도 남았다. 메아리가 이어져 명국영은 용이 한 마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다, 당신의 질문에 만족스러운 답을 하면 부탁을 들어준다고 했는데, 사실이오?”

“그렇다. 대신, 반대라면 너는 죽는다.”

“……내 운을 시험해 보겠소.”

명국영은 떨리는 다리를 손으로 꽉 잡았는데도 소용이 없자, 꼬집기까지 했다. 어떻게든 몸이 진정되어야 마음도 가라앉을 테고, 그래야 저 용의 질문에 답할 수 있으리라.

“만물의 근본은 무엇이냐, 인간?”

“…….”

“대답하거라.”

용은 감정을 배제한 목소리로 말했으나 재촉하는 느낌이 묻어났다. 죽어 가고 있었던 터라, 이 마지막 순간에 찾아온 용감한 방문객에게서 흡족할 만한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명국영은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머리 꼭대기부터 발바닥까지 내리꽂히는 전율에 사로잡혔다. 자신이 평생 헤매며 답을 찾고 있는 바로 그 질문이었던 것이다. 제국 최고의 고등교육기관인 용태학에 입학해서 미친 듯이 공부한 것도, 용문거에 응시하여 수석으로 합격해서 황제를 배알했는데도 출셋길을 마다하고 뛰쳐나와 버린 것도, 대륙을 떠돌면서 하찮은 스승 역할이나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질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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