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49화 (49/293)

<-- 49 회: 2-8 -->

누천파 역시 무언가 귀중한 유산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 어리석은 종자는 멀뚱멀뚱 주위를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나와의 약속을 잊지 마라.’

그 말을 남긴 용은 공중에 뜬 채로 섬광을 뿜으며 장렬하게 죽었다. 용의 몸은 마력석 덩어리가 되어 흩어졌고, 그 때문에 눈이 온 것처럼 땅바닥이 하얗게 변했지만, 안전하게 착지한 반우현은 잃어버릴 염려 없는 머릿속의 책들을 떠올렸다. 그 책들은 하나같이 고대에 사라진 진귀한 책이었다.

수십 권의 제목을 확인한 반우현은 사람들 모두가 놀라도록 고함을 내지르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아 냈다. 암탄주가 자신에게 어떤 선물을 주었는지 깨달았던 것이다.

[편지]연금술

어떤 물질이든 금으로 바꿀 수 있는 최고의 기술!

아니, 금뿐 아니라 모래를 마력석으로도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이었다!

흥분을 가라앉힌 반우현은 누천파의 상태를 살폈다. 그도 믿기지 않는 선물에 당황하고, 흥분해서,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무엇을 받았을까?

아마 마법과 관련된 유산일 터였다. 용은 마법의 종족이니, 그 역시 연금술에 필적할 만한 위대한 유산을 받고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리라.

반우현은 멍하게 서 있다가 여화와 이야기를 나누고, 곧 깨어난 륜사 옆으로 달려가는 종자를 바라봤다. 곧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다. 저 녀석은 보물도, 마법도 놓쳐 버렸다! 종자의 어리석음이, 무지가, 그 황당한 고집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유산을 발로 차 버리게 만든 것이다.

평화로운 용금탄의 건축물 위로 날아다니는 용들을 본 반우현은 그 종자를 어리석다고 폄하했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단태라는 이름의 종자와 이야기를 나눠 본 터라, 그녀는 단태가 순진하고 어리석은 종자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도시의 계승자라는 신분의 영향력과 돈 몇 푼으로 구워 삼을 수 없는 종자였다. 눈치도 빠르고 머리가 나쁘지 않았던 종자이니만큼 용혈 앞에 모여 있던 마법사들이 뿜어내는 그 분위기, 용의 유산을 고대하는 그 강렬한 열망을 느끼지 못할 리 없었을 텐데.

‘알고도 거절했을까? 아니, 그럴 리는 없어.’

반우현은 단태에 대한 의문, 관심을 끊고 싶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궁금한 부분은 참지 못하는 성격 탓이었다.

수도의 백성들이 대로 양쪽으로 나와 손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었다. 갓난아이를 위로 들고 복을 내려 달라고 말하는 아낙도 있었다. 용의 유산을 이은 상속녀이니 아이의 미래에 복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무시할 수 없는 비율의 사람들이 용을 신으로 섬겼다. 그들의 눈에 인간을 태우고 날아다니는 용이 보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용신을 믿었다. 그들이 인정하는 용신은 이제 세상에서 사라졌는데도 그들의 믿음은 여전히 뿌리박혀 있는 듯했다.

반우현은 그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었지만 겉으로는 손을 내밀고 복을 내리는 시늉을 했다. 사람들은 그 행동에 환호하며 박수까지 쳤다. 참 단순한 사람들이었다.

“뭘 하는 거야?”

누천파였다.

“저들을 즐겁게 해 주고 있어. 도시의 계승자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니까.”

“이곳은 수도야. 그 말, 위험한 발언인 거 알지?”

누천파는 조심스러웠다.

“당연히 알지. 난 역심 따윈 품지 않아. 내 그릇을 알거든. 난 유타루체의 계승자니까.”

말과 달리 반우현의 가슴은 새로이 뿌려진 씨앗 때문에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연금술을 터득한다면 물의 도시만으로 만족할 수 없을 터였다. 염종화탑이 불의 도시에 이어 물의 도시까지 영역을 넓히려 했으니, 물의 도시 유타루체도 확장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황제로부터 독립하여 도시의 지배권을 완전히 되찾고 싶었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고, 낼 생각도 없었다. 그런 말이야말로 황제에 대한 반역으로 비칠 테니까.

“넌 뭘 받았지?”

이틀 만에 누천파가 물었다.

“그러는 넌?”

“언마.”

반우현의 예상과 달리, 누천파는 입을 열었다.

“언마? 그게 뭔데?”

“천마 위에 있다는 경지.”

“……그게 정말이야? 대단하다. 언마의 경지에 올라가면…… 제국 최강의 마법사가 되는 거잖아.”

“아마도.”

“……난 연금술이야.”

망설이던 반우현은 진실을 말했다. 어릴 적부터 함께 지낸 시간이 많아서 누천파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던 것이다.

“연금술? 그 용이 정말 똑똑하긴 했어. 너와 나에게 각각 필요한 것을 줬으니 말이야.”

“동의해.”

빙긋 웃은 반우현은 누천파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륜사의 종자, 단태를 노려보는 모습을 발견했다. 저 탑의 계승자도 용의 유산을 거부한 종자가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바보 같은 종자로만 치부하기엔 무언가 꺼림칙한 게 분명했다.

“저 종자, 대단하지?”

반우현은 일부러 단태를 칭찬했다.

“……뭐가?”

퉁명스러운 반응.

“용의 유산을 거부했잖아. 그 약속을 지킬 수 없다면서.”

“미친놈이야.”

“우리와 달리 거짓말을 하지 않은 거지.”

“뭐라구?”

“맞잖아. 너도 나도 용족의 부활엔 관심이 없잖아. 안 그래? 설마, 처음부터 용족의 운명이 슬퍼서 도와주려고 부랴부랴 용혈로 날아갔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나 반우현이야. 네 소꿉친구. 네가 날 아는 만큼, 나도 널 안다는 걸 잊지 말아 줘.”

“…….”

누천파는 침묵으로 긍정을 표현했다.

황궁의 첫 번째 관문인 ‘지황문’이 커지고 있었다. 황궁은 크게 세 개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지황문은 첫 번째 성벽을 통과하는 문이었다. 두 번째는 ‘중황문’, 마지막이 ‘천황문’이었다. 코끼리가 이끄는 거대한 마차는 드디어 지황문을 지나갔고, 백성의 환호는 순식간에 뚝 끊겨 아련하게만 들렸다.

갑작스러운 고요가 부담스러운 반우현이 소리 죽여 누천파에게 물었다.

“황제는 우리를 왜 불렀을까?”

“……유산을 내놓으라고 하겠지.”

누천파의 말에 반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녀도 예상했던 바였다.

“우리를 가둘지도 몰라.”

그 말은 반우현을 불안하게 했던 우울한 추측이었다.

제국 최고의 권력을 손에 쥔 황제라면 용의 유언을 모조리 빼내기 위해 온갖 핑계를 붙여 누천파, 반우현을 황궁에 붙잡아 둘 가능성도 꽤 높았다. 그러면 두 계승자는 평생을 황궁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머릿속에 든 수백 권, 어쩌면 수천 권에 달하는 그 책을 베껴 쓰느라 시간을 다 보내게 될지도 몰랐다.

“그럴 순 없어.”

누천파는 단호했고, 그 기세가 반우현의 불안을 덜어 주었다.

코끼리가 멈추자, 마차도 멈췄다.

붉은색 관복을 입은 관리들이 마차에 올라탔다. 황궁은 확실히 옷차림부터 달랐다. 공작의 깃털이 모자에 꽂혀 있었고, 허리띠는 값비싼 악어가죽이었으며, 구두도 무두질을 잘한 사슴 가죽으로 만든 제품이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그는 수염 없는 환관이었다.

“폐하께서 기다리십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시선을 교환한 반우현, 누천파가 먼저 내렸고, 륜사 일행은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정교하게 조각되어 하나도 똑같은 게 없는 대리석 바닥을 가로질러 금색으로 빛나는 황궁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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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태는 처음으로 입어 본 비단옷의 매끄러운 감촉에 손으로 계속 만졌다. 몸에 딱 맞는데도 움직임에 불편이 전혀 없고, 붉은색과 검은색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 만들어 낸 용의 형상 덕분에 자부심마저 느낄 수 있었으며, 아쉬움과 불안마저 잊을 만큼 기분이 붕 떠 있었다.

그런 단태를 본 륜사가 다가와 꿀밤을 먹였다.

“그렇게 좋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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