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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백 배, 아니지 백만 배는 더 좋을 용의 유산은 거절한 놈이 비단옷 한 벌이 뭐가 좋아?”
단태는 울상을 짓고 말았다.
“사부님, 그만 좀 하세요.”
보다 못한 여화가 몸매가 드러나는 푸른색 옷을 입고 다가왔다.
“뭘 그만해? 내가 잠만 안 잤더라면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없었을 거다. 그리고 넌 대체 뭘 가르쳤냐? 코앞까지 온 용의 유산을 스스로 걷어차 버렸는데!”
륜사가 소리치자, 옷을 가져와서 제대로 맞는지 확인하던 황실 재단사들이 놀라 그를 쳐다봤다.
“사부님, 진심이세요?”
여화는 허리에 손을 올렸다. 그건 진지하다는 뜻이었다.
“……그저 난 아까워서 그러지. 종자 딱지 단번에 뗄 기회였잖아. 뭘 받았을까? 생각만 해도 내가 안타까워서 죽겠다. 그래서 이런다. 너도 아깝지 않냐?”
“전 단태가 잘했다고 생각해요. 용의 부활, 그렇게 어려운 걸 어떻게 약속해요?”
여화가 딱딱하게 받아치자 륜사는 혀를 차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화는 풀 죽은 단태 옆으로 다가갔다.
“넌 잘못한 거 없어. 소신대로 했으니까.”
“……후회해요.”
단태는 진심이었다. 죽어 가는 마지막 용에게 차마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약속을 할 수 없다고 버텼고, 그 때문에 유산을 받을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만약 그 순간을 넘기고 유산을 받았다면…… 엄마와 여동생을 되찾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무식해서, 몰라서, 어려서, 멍청해서, 바보 같아서 그랬다!
기다란 머리카락을 위로 틀어 올린 시녀가 들어와 륜사 앞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알현실로 가셔야 하옵니다.”
“알았소. 자, 다들 가자.”
륜사의 재촉에 여화, 단태는 재단사를 남겨두고 금색과 적색이 뒤섞인 복도로 나갔다. 복도를 따라 세워진 기둥은 온통 금색이었다. 길게 뻗은 복도 저 끝까지 늘어서 있는 기둥에 전등 빛이 반사되어 복도 전체가 금색으로 빛나는 것 같았다.
“휴우.”
륜사였다.
“사부님도 긴장하시네요?”
여화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상대가 황제니까.”
륜사는 일부러 단태에게 꿀밤을 먹이고, 활기차게 여화와도 대화를 나누었으나 용혈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런 위기가 일어나도록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씻을 수 없는 수치였다. 이틀 만에 깨어나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들은 륜사는 화통하게 웃으며 다행이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여화와 단태를 죽이려 했던 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리라 마음먹었다. 개인적으로 만나서 원금에 이자까지 두둑이 받아 내고 말리라.
이미 목록까지 뽑아 놓았다.
염종화탑의 계승자 하쿠와 장로 보천추.
진매록탑의 계승자 녹윤과 장로 옥장철.
도위신탑의 계승자 왕은설과 장로 웅령산.
그리고 후령사탑의 장로 막천무까지.
그런 생각을 하느라 륜사가 입을 다물자 여화와 단태도 침묵에 빠진 채 시녀를 따라 복도를 걸었다.
붉은색 문양이 그려진 커다란 문이 나타났다. 그 앞에 창을 든 병사들이 서 있었는데, 시녀를 보자 절도 있게 문을 양쪽으로 열었다. 문 너머에는 또 다른 복도다 뻗어 있었고 그 끝자락에는 이와 비슷한 문이 닫혀 있었다. 거기에도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대체 언제까지 가야 하는 거야?”
륜사가 투덜거리자 시녀가 쳐다봤는데, 륜사는 개의치 않았다. 조금씩 자신만의 분위기를 찾아가는 륜사였다.
그때, 낯익은 사람이 나타났다. 금색과 흑색이 섞인 망토를 걸친 그 사람은 륜사 일행을 후령사탑의 막천무로부터 구해 낸 황명거사였다. 여화와 단태는 고개를 숙여 반갑게 맞았지만 륜사는 아니었다. 눈치 빠른 륜사는 천마 석장명이 왜 거기 있었는지, 왜 일이 그 지경이 될 때까지 가만히 있었는지 꿰뚫고 있었다.
“폐하께서 마중하라시며 날 보내셨네.”
“……고맙습니다.”
륜사는 그리 고맙지 않은 어투로 말했다.
“가지.”
석장명이 앞장을 섰고, 륜사 일행이 뒤따랐는데 륜사가 나서서 말하지 않자 여화, 단태도 입을 다무는 바람에 대화 없이 건조하게 걷기만 했다.
두 개의 문을 더 통과한 뒤에야 분위기가 달라졌다. 기둥 뿐 아니라 바닥과 천장까지 온통 금색인 방이 나타났는데, 거기가 알현실인 줄 알았더니 시녀가 ‘대기실’이라고 알려 주었다. 알현실은 이보다 열 배는 더 크다는 말에 단태는 깜짝 놀랐다.
‘정말 수도는…… 황궁은…… 다르구나.’
황제가 기다린다고 하더니 한 시간 남짓 기다림이 이어졌다. 천마 석장명조차 기다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자, 륜사는 불평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용마인 그는 천마인 석장명 앞에서 평소처럼 행동할 수가 없었다. 비록 석장명이 마둔수탑 출신이 아니라고 해도 엄연히 마법사들 사이에는 예의라는 것이 존재했다.
환관들이 떼를 지어 나타났고, 악공들도 신기하게 생긴 악기를 든 채 줄지어 다가왔다.
이제 알현실로 들어가나 싶더니, 뚱뚱한 환관이 황제 앞에서의 예절을 꼼꼼히 가르치기 시작했다. 무릎은 어떻게 꿇어야 하는지, 고개를 어떤 각도로 숙여야 하는지, 손은 어디에 둬야 하는지, 몇 걸음을 걸어야 하는지, 어떻게 황제의 말을 경청해야 하는지 등등 알아야 할 항목이 너무나 많았다.
참다 참다 륜사가 폭발했다.
“나, 황제 안 만나고 말아.”
륜사가 알현실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자 황명거사가 어느새 앞을 막았다.
“날 봐서라도 조금만 더 기다려 주지 않겠나?”
“……휴우, 그럽시다.”
륜사는 마법사들 사이에서 싸가지없는 놈이라 불리고 싶지는 않았다. 선배이니 한 번은 양보하는 것도 괜찮으리라.
환관들은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남은 항목 중 굵직한 것 몇 가지만 확인하고는 절차를 대폭 생략했다. 그러자 륜사도 더 이상 분위기를 악화시키지 않았다.
악공들이 연주를 시작했고, 잔뜩 긴장한 환관들이 륜사 일행을 문 앞에 대기시켰다. 그러나 문이 저절로 열렸다. 안쪽에서 문을 연 것이다. 단태는 석장명, 륜사, 여화를 따라서 마지막으로 알현실에 들어섰다. 원래 여화와 단태는 수련사, 종자여서 알현에 빠질 예정이었는데, 륜사가 한사코 반대하는 바람에 추가된 상황이었다.
알현실은 정말 대기실보다 열 배, 아니 스무 배는 큰 것 같았다. 거대한 용이 새겨진 화려한 대리석 정사각형 판 수십 개가 바닥에 놓여 있는데, 틈이 없어 전체가 한 장의 대리석 같았다. 기둥은 승천하는 용 형상인데, 얼핏 봐도 백배가 넘는 용이 바닥에서 천장으로 날아오르는 중이었다. 그 용들은 제각기 다른 종류였다.
저 앞쪽에 금색의 계단이 있고, 그 위에 옥좌가 놓여 있었다. 옥좌는…… 비어 있었다.
환관들도 놀란 눈치였다.
그때, 단태 옆으로 비슷한 나이의 소년이 다가서며 속삭였다.
“용의 유산, 왜 거절했어?”
긴장했던 단태는 그 소년의 복장을 보고 환관이라 여겼다. 그래서 맘 편히 대답했다.
“나도 모르겠어. 미쳤었나 봐.”
“뭐? 푸하하하하!”
소년은 알현실이 떠나가라 웃어 댔다.
그제야 옥좌 주변을 살피던 환관들이 소년을 발견하고는 달려왔다. 석장명과 륜사, 여화도 단태 옆에 서 있는 소년을 발견했다. 석장명이 먼저 반응했다.
“폐하, 그런 옷은 입으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습니까?”
“황명거사는 너무 딱딱하오.”
“……폐……하?”
얼이 빠진 단태는 주위 반응을 보고는 즉시 무릎을 꿇었다. 석장명, 륜사, 여화는 이미 부복한 상태였다.
“폐하!”
환관들이었다.
“왜 그래? 난 정말 진실을 알고 싶었어. 알았어.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옷 갈아입고 올 테니까.”
황제는 환관들과 함께 옥좌 뒤쪽으로 향했다.
겨우 고개를 든 단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운 비단옷이 땀에 젖어 엉망이었다. 옆에 다가온 그 소년이 황제였다니!
륜사가 장난스럽게 단태를 쳐다봤다.
“넌 이제 죽었다. 감히 황제 폐하께 반말을 해?”
“……사부님.”
단태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괜찮을 걸세. 폐하는 꽉 막힌 분이 아니시니 말이야.”
석장명이었다.
“반우현 계승자님과 누천파 계승자님은 알현을 마치셨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