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62화 (62/293)

<-- 62 회: 2-21 -->

‘내가 단태를 죽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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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국영에게 오전 내내 ≪무무비경≫ 때문에 시달린 단태는 피곤했지만 자신을 노려보는 철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 갑작스러운 눈싸움에서 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사람 무안하게 만드는 저 예리한 시선을 마주 보고 있으니 얼음 위에 맨발로 서 있는 기분이었는데, 익숙해지자 참을 만했다.

잠자코 응시하고 있으려니 철무의 무뚝뚝한 얼굴 표정이 눈에 들어왔고, 서 있는 자세의 특징도 알 수 있었다. 보통 어른과 달리 철무의 자세는 반듯했고, 동작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민첩했다. 또한 가만히 서 있는데도 언제든 이쪽을 공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난 지금 저 사람을 흉내 내고 있어.’

단태는 철무가 처음 본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알아내는 것처럼, 철무에게서 비밀을 알아내고 싶었다.

햇볕에 그을려 까무잡잡한 피부, 살짝 짓이겨진 채로 머리에 딱 붙어 있는 귀, 턱과 목에 난 상처들,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과 단단한 팔뚝을 보니 왠지 노련한 사냥꾼 같았다. 그러나 곧 사냥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냥꾼은 활과 화살을 사용한다. 마법사가 아닌 이상, 화살보다 사냥에 적합한 도구는 없다. 덫을 놓고 기다리는 소극적인 사냥꾼이 아니라면.

그런데 철무의 손에는 화살 시위를 당길 때 생기는 깊은 자국이 없었다. 오랫동안 사냥꾼으로 살아왔다면 그 자국은 사라지지 않을 만큼 깊이 새겨졌을 텐데. 오른쪽 손가락에 있어야 할 그 자국이 없으니 사냥꾼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 혹시 용병이었을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확신할 근거는 찾지 못했다.

그때, 철무가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발을 올리며 말했다.

“조사는 끝마쳤다.”

“보고서는요?”

“그런 건 없어. 자, 앉아서 들어라. 그 내용을 하나도 틀리지 않고 널 여기로 보낸 사람에게 전하면 된다.”

“……제가요?”

“그럼 내가 하리?”

“……알았어요.”

단태는 등을 세우고 긴장하며 이미 시작된 철무의 설명을 듣고 머릿속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조율진은 성격이 꼿꼿한 마법사로 세관국 인구조직부 통계실의 책임자였다. 도시의 재정 중 상당 부분을 거둬들이는 세관국에서 인구조직부는 사람의 수를 세어 세금을 매기고, 정해진 세금이 제대로 들어왔는지 확인하는 부서인데 그중 통계실은 각 집의 가족 수를 장부로 만들고 유지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직접 찾아갈 필요가 있는 그 작업을 통하여 각 집의 수입까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기에 통계실이 만드는 장부는 재정의 기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문제는 조율진이 위로부터 내려온 지시를 거부한 이후 시작된 모함과 비난 그리고 이어서 터진 횡령, 뇌물수수 의혹이었다.

“지시를 거부했다구요?”

“인구조직부장 종양수가 장부 조작을 지시했는데, 조율진은 끝까지 거절했다더군.”

“……설마 그 사소한 거부 때문에 일부러 그런 일을 꾸민 건가요?”

“사소한 거부? 아니, 종양수 입장에서는 큰일이었다. 인구등록대장이 수정되지 않으면 종양수가 곤란해졌을걸.”

“왜요?”

“네 어깨 위에 있는 그 물건은 왜 붙어 있는 거냐? 제발 생각 좀 해라.”

철무는 혀를 찼다.

그 말에 오기가 생긴 단태는 곧 종양수가 왜 곤란해졌는지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논리적으로 명백한 부분이었다.

“아! 종양수라는 사람도 누군가에게 명령을 받은 거죠?”

“좀 낫다.”

퉁명스레 말했지만 철무는 단태가 금세 상황 파악을 해내자 속으로는 놀랐다.

“세관국장이 이번 사건의 범인인가요? 아니면 그보다 더 위로 올라가야 하나요?”

“…….”

철무는 저 기묘한 녀석을 노려봤다.

무언가 말을 잘못했다고 판단한 단태는 실수했다고 말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의 도시에 와서 고생을 하고 탑에서 이런저런 일을 겪어 보니 세상 돌아가는 방식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 말이 옳았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종양수가 그런 짓을 하고도 멀쩡히 살고 있다면 그 위쪽의 누군가가 더러운 짓을 했다는 뜻이 아닌가.

순간, 단태는 꼭대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

“설마 도시를 책임지는 시장님까지 관련이 있어요?”

단태는 단숨에 도시의 꼭대기 시장 반명까지 이번 사건에 끌어들였다. 간단히.

“비리 규모로 볼 때, 그건 아니야. 세관국장 평굉이 주범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평굉은 돈을 탐하는 자야. 탐욕으로 돈을 빨아들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평굉은 장부를 속여서 많은 세금을 거두고, 그중 상당 부분을 자기 주머니로 넣었어. 그런데 그 계획을 조율진이 막은 거지. 전체 계획까지 다 알고서 제동을 건 것은 아니겠지만. 그 때문에 평굉과 종양수는 조율진을 제거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가짜 증인과 증거를 만들어 이 지경에 이른 거다.”

“그러면 증인과 증거가 가짜라는 사실을 밝히면 그분은 무사할 수 있겠네요?”

“어떻게 그걸 밝혀? 결정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는 장부, 즉 인구등록대장은 소수의 사람만 볼 수 있는데. 검사도 시장의 허락을 받아야만 볼 수 있을걸. 조율진이 이번 결정을 뒤집을 가능성은 낮아.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시장님이 직접 조사하신다면요?”

“……의지가 있다면 가능할 수도 있지. 네 이름이 단태라고 했지? 단태, 세상은 복잡하고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연결되어 있다. 시장은 구름 위로 떠 있는 용이 아니야. 세상을 단순하게 보지 마라. 그것보다 어리석은 건 없으니까. 시장에게 의지가 있다면 이번 사건을 파헤쳐서 일벌백계 제대로 처리할 수도 있지. 하지만 시장은 도시 전체를 안전하게, 제대로 유지할 책임이 있다. 조율진을 위해서 그보다 위에 있는 관리인 종양수, 평굉을 날려 버리면 도시를 지탱하는 조직 전체가 휘청거린다. 시장이 과연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평범한 관리인 조율진의 손을 들어줄까? 차라리 황제가 직접 이곳에 와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높을 거다.”

“…….”

단태는 입을 다물고 철무를 쳐다보고 있었다.

“자, 난 설명 다 했으니까 가 봐라. 다신 오지 말고.”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해 봐라.”

철무는 평소와 달리 질문을 허락했다. 저런 아이가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 알고 싶었다.

“아저씨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뭐?”

예상을 벗어난 질문이었다.

“아저씨는 이틀 만에 그 조율진이라는 분의 사정을 명쾌하게 알아내셨잖아요. 그게 궁금해요.”

“밑바닥에서 살다 보면 이런저런 것을 알게 된다.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구나.”

“그건 대답이 아니잖아요. 그러면 다른 질문으로 바꿔도 되죠?”

“……그래라.”

철무는 왠지 저 녀석에게 휘말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예 등록소 장부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노예 등록소? 그건 왜?”

“질문은 답이 아니에요.”

차분한 단태의 지적에 철무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뇌물 좀 쥐여 주면 된다. 많이 줘야겠지만.”

“돈을 드릴 테니, 제 부탁 들어주실 수 있어요?”

“뭐? 네가 일을 맡기겠다? 후후, 일단 이야기부터 들어 보자.”

“특정한 날짜에 팔려 간 노예가 어디로 갔는지 확인하고 싶어요.”

“널 여기로 보낸 사람의 지시냐? 네가 알고 싶은 거냐?”

“…….”

단태는 말없이 철무를 쳐다봤다.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철무에게 보여 주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난 그 일은 맡을 생각이 없다. 노예 등록소 쪽으로는 오줌도 누고 싶지 않거든.”

“알았어요.”

단태는 더 이상 요구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더니 허름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혼자 남은 철무는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사람의 말과 행동에는 과거의 흔적이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다르게 말하면,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분위기, 말, 행동은 그의 지나간 시간을 통해 쌓아올린 모든 것의 결과였다.

무시하고 싶은데 저 아이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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