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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륜사 님과 관련이 있어요.”
“난 몹시 배가 고프니까 뭐라고 먹으면서 들어도 되겠지? 따라와.”
반우현은 자신의 소마선에 올라탔다.
반우현이 급히 소마선을 몰아서 도착한 곳은 차망로 지역에 자리 잡은 취영루였다. 나루의 이끼 낀 말뚝에 소마선을 묶고는 취영루로 올라간 그녀는 다가온 하인에게 금룡반침을 주문했다. 금룡반침은 유타루체의 특산물이라 할 수 있는 금룡어 요리였다.
따라온 단태는 조심스레 걸어와 맞은편에 앉자 반우현이 말했다.
“사실, 여기 요리를 먹고 싶어서 천마룡을 타고 이곳으로 돌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금룡반침이 무엇인지는 알지?”
“……네.”
단태는 돈 없는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도시의 방책 너머 호수로 나가서 잡아오는 금룡어에 대해 알고 있었다. 요리하기 까다롭지만 일단 제대로 요리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음식보다 맛 좋은 식재료가 바로 금룡어였다.
“요리가 나오려면 시간이 좀 걸리니까, 말해 봐. 륜사 오라버니와 관련이 있다는 그 이야기. 지금이라면 진지하게 들어줄 수 있으니까.”
그 말에 단태는 조율진의 처지에 대해 설명했다. 철무의 입에서 흘러나온 내용보다 훨씬 조리 있고 간략해서 반우현은 금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륜사 오라버니의 친구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다는 뜻이구나. 오라버니는 유타루체 마둔수탑의 수장이니 섣불리 움직일 수 없어서 도울 방법이 없고. 그렇지?”
“그런 상황이에요.”
“내게 뭘 원하니?”
반우현은 이 맹랑한 종자를 쳐다봤다. 왜 찾아왔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려운 위기를 함께 넘긴 데다, 용에게 선택도 받았으니 가깝다고 느꼈겠지. 거기에 륜사와의 관계도 있으니 조율진을 도와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을 테고.
“그분을 구해 주세요.”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건…….”
“그 조율진이라는 사람, 너와 무슨 관계인지 물어봐도 될까? 혹시 아버지?”
“아니에요.”
“설마 아무 관계도 아닌 거니?”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찾아온 것 같습니다. 전 륜사 님의 고민을 덜어 드리고 싶어서 찾아왔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한 이야기는 잊어 주세요.”
일어선 단태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앉아.”
낮고 차분하면서도 힘이 담긴 목소리에 단태는 다시 앉고 말았다. 도시의 계승자다운 위엄이었다.
“넌 종자답지 않구나. 종자는 스스로 결정해서 움직이면 안 돼. 모시는 마법사를 도와주는 거니까. 네가 날 찾아온 거, 륜사 오라버니는 모르지?”
“……네.”
눈빛이 흔들리는 단태.
“얼굴 구기지 마라. 그런 표정을 보면서 먹으면 금룡반침의 맛이 떨어지니까. 다 먹고 나서 세관국으로 가 보자. 내가 가면 뭐든 알아낼 수 있을 테니 말이야.”
“고, 고맙습니다!”
단태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반우현은 팔짱을 끼고 단태를 쳐다봤다. 정말 이상한 아이였다.
가끔 종자 중에 건방져서 눈꼴사나운 놈이 있는데, 지난번에 저 단태라는 아이에게 당한 배망식이라는 놈이 그런 종자였다. 마치 자신이 커다란 힘이라도 쥐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데, 반우현은 사소한 구실을 붙여서라도 당고를 믿고 날뛰는 배망식을 없애 버리고 싶었다. 단태 덕분에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지만.
단태는 그런 종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예리한 질문에는 벌벌 떨기도 하고, 종자 특유의 두려움이 동작에 배어 있었다. 그런데도 직접 찾아와서 맹랑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하인과 노예, 종자의 공통점인 수동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스스로 결정하는 능동성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 같았다.
금룡반침이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금룡어 위에는 온갖 양념과 약초가 버무려져 있었다. 반우현은 생전 처음 금룡반침을 본 단태에게 금룡어의 가운데 부분을 맛보도록 그릇에 덜어 주었다. 단태는 맛을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 커지며 탄성을 터트렸다.
“정말 맛있어요!”
“내가 이 물의 도시에서 금룡어를 다루는 음식점을 다 돌면서 먹어 봤는데, 여기가 최고야. 다른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왜 인정을 안 해요? 입맛은 비슷하잖아요.”
단태의 반문에 반우현은 금룡어의 부드럽고 고소한 가시를 씹으면서 대답했다.
“여긴 차망로니까.”
“아, 알겠어요.”
“뭘 알겠다는 거니?”
반우현은 자신도 모르게 이 어린 종자와의 대화를 즐기고 있음을 깨달았다. 신선한 느낌 때문이었다.
“여긴 냄새도 심하고, 드나드는 사람들도 좀 그렇잖아요. 이렇게 비싼 요리는 돈 많은 사람들이 주로 먹는데, 여기보다는 상아별로 지역이 훨씬 낫겠죠. 거긴 신기하게 냄새가 안 나더라구요. 같은 물이 흐르는데 어떻게 거기만 냄새가 안 날 수 있어요?”
단태는 신 나게 금룡어를 뜯으면서 물었다.
“그건 나보다 네가 더 잘아야 하는 거 아니니? 마법으로 악취를 없앴으니 말이야.”
“……정말이에요?”
“그 간단한 마법으로 탑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 알면 넌 깜짝 놀랄걸.”
“그런 마법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감탄은 그만하고, 먹기나 해.”
“고맙습니다, 계승자님.”
“뭐가?”
“이런 고급 요리도 먹게 해 주시고, 그분도 도와주신다고 하시고, 아무튼 다 고맙습니다.”
그 말에 반우현은 기분이 좋았다. 진심이 느껴진 까닭에. 도시의 계승자로서 어딜 가더라도 융숭한 대접을 받지만, 진심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계승자라는 지위가 주는 영향력 때문에 고개를 숙이지, 반우현 개인에 대한 감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금룡어는 금세 뼈만 남았다.
“……제가 너무 많이 먹었죠?”
“알긴 아는구나.”
자책하는 얼굴.
“다음엔 네가 사면 되겠다.”
“제가요?”
“황제 폐하께서 금덩이를 주셨다면서?”
“……다음엔 제가 살게요.”
반우현은 감정이 고스란히 얼굴로 드러나는 단태의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돈이 아깝지만 어쩔 수 없이 사겠다는 그 표정은 혼자 보기 아까울 만큼 재미있었다. 종자에게 값비싼 요리를 얻어먹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저 표정을 한 번 더 보기 위해서라도 꼭 날을 잡고 싶었다.
값을 치른 반우현은 단태를 데리고 세관국으로 향했다. 세관국은 시청 북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화려함 대신 견고함이 깃든 커다란 건물 앞에 소마선을 두고 위로 올라간 반우현은 즉시 다가와 허리를 굽히는 사람을 발견했다. 소식이 빠르게 전달된 모양이었다.
“계승자께서 세관국에는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그냥.”
“……그냥이라면?”
“장부를 좀 확인할 게 있어서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거추장스러운 건 딱 질색이에요. 제 성격 아시죠? 그러니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이나 계속 해요.”
“알겠습니다.”
세관국장 평굉은 불안한 눈빛으로 반우현을 쳐다보고는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누구예요?”
단태가 속삭였다.
“평굉.”
“아!”
“넌 내 하인이니까 되도록 입을 열지 마. 고개를 숙이는 게 좋겠어. 네가 륜사 오라버니의 종자라는 게 알려지면 득 될 게 없거든.”
“네, 계승자님.”
반우현은 본격적으로 세관국 내부를 돌아다니며 단태에게 들은 말의 사실 여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 일에는 이미 익숙해져 자신이 왜 이곳에 찾아왔는지 알 수 없게 만드는 동시에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인구조직부 통제실로 즉시 달려갔다면 교활한 평굉이 반우현의 의도를 알아차렸겠지만, 관련이 없는 부서의 장부까지 들쑤시며 들여다 본 까닭에 평굉은 물론 인구조직부의 수장 종양수까지도 갑자기 들이닥친 계승자의 의도를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