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65화 (65/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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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군.’

반우현은 장부에서 조작된 흔적을 찾아냈다. 무려 천 명에 달하는 납세자 명단이 누락되어 있었다. 인구등록대장은 세금 수입과 직결된다. 따라서 이 장부에 누락이 발생하면 곧 세금 수입이 줄어든다는 뜻인데, 한두 명…… 혹은 수십 명 정도의 누락은 심심찮게 발생하지만 천 명이나 되는 누락은 처음이었다.

반우현은 본능적으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저 평굉이라는 자가 아무리 탐욕스러워도 이런 짓을 혼자 벌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일에 누가 개입되었을까? 11인위원회의 당현추? 동생인 당고가 용금탄으로 떠나 버려 힘의 공백이 생긴 마당에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을 텐데. 그렇다면 혹시 아버지가?

다시 한 번 장부를 확인한 반우현은 줄잡아 10만 마전이라는 돈이 중간에서 사라졌다고 확신했다. 이 누락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니, 몇 배의 돈이 어디론가 흘러갔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100만 마전 이상의 돈이 누군가의 수중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돈으로 무얼 하려는 거지? 혹시 반란인가?’

반우현은 등골이 오싹했다. 식은땀도 흘렀다.

도시는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안정감을 유지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150년 이상 유타루체를 지배하고 있는 반우현의 가문은 끊임없는 위협에 직면하고 있었다. 어려서 위험을 알 리 없는 반중치와 달리, 반우현은 아버지 반명이 도시에 불만이 많은 무리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키려던 전직 경비대장이었던 자를 붙잡아 재판도 거치지 않고 죽였다는 사실을 우연히 엿들었다.

처음엔 아버지가 법을 무시했다는 사실에 분개해 찾아가서 따지기도 했다. 그러나 상황을 알게 되자, 반우현은 아버지의 방식이 최선임을 깨달았다. 법의 심판에 맡겼다가는 도시의 하층민 가운데 그자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반란을 일으킬 자들이 얼마나 나올지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이다.

도시는 세 개의 층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하층민, 중산층 그리고 상류층.

하층민 자체는 문제가 될 게 없었다. 그러나 하층민이 주축이 되어 만든 조직 추명은 이야기가 달랐다. 추명은 비밀 조직이었다. 목숨을 건 결사 조직 추명은 도시를 혼란으로 몰기 위해 온갖 협잡을 다 저질렀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방책을 허무는 일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운하에 악어들이 출몰했는데, 그게 다 추명이 꾸민 짓이었다. 악어에게 물려 사람들이 죽어 나가자 도시를 운영하는 시청에 대한 불만은 극에 달했다. 추명은 그 불만을 이용하기 위해 그런 음모를 꾸민 것이다.

‘만약 그 돈이 추명에게로 전해졌다면……?’

이번엔 몸이 떨렸다. 주저앉고 싶을 만큼이나.

당장 아버지를 찾아가서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 반우현은 구체적인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장부는 누락만 보여 줄 뿐이었다. 조직적인 횡령인지, 단순한 실수인지 밝히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데, 세관국에서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한다면 돈을 빼돌린 자들은 즉시 꼬리를 자르고 숨어버릴 것이다.

“괜찮으세요?”

단태가 속삭였다.

“……그래. 천마룡을 타고 날아왔더니 좀 피곤할 뿐이야.”

“뭐 좀 찾으셨어요?”

“아니.”

반우현은 거짓말을 했다. 단태는 믿을 만한 아이지만, 이 정보가 밖으로 흘러나간다면 발생할지도 모르는 혼란 때문이었다.

“그래도 고마워요. 이렇게 도와주셔서요.”

“……륜사 오라버니와 관련된 일이니까.”

“아! 아까 얼핏 들었는데, 오늘 세관국장의 집에서 연회가 열린대요. 거기 가면 증거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

반우현의 눈이 반짝거렸다.

국장 평굉의 끈질긴 질문을 대충 넘겨 버기고 세관국 밖으로 나온 반우현은 탑으로 가려고 소마선에 올라탄 단태를 쳐다봤다.

“너, 맛있는 거 또 먹고 싶지?”

“…….”

금룡어 요리를 사라는 말이라고 생각한 단태는 입을 다물었다.

“네게 요리 얻어먹을 마음은 없어. 아까는 농담이었다. 그보다, 오늘 세관국장의 연회에 가볼  생각인데, 너도 같이 가지 않을래? 싫으면 할 수 없고.”

“가고 싶어요!”

“좋아.”

단태와 약속 시간을 정한 반우현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시청으로 소마선을 몰았다.

*백관조

어둠 속에서도 방책은 견고했다.

늪지대와 도시 안쪽의 운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방책은 ‘수철목’이라 불리는 나무로 세워졌는데, 촘촘하게 꽂혀 있어 피라미 한 마리 통과할 틈도 없었다. 방책은 위아래로 뻗어 나가 북쪽과 남쪽의 성벽과 만났다. 성벽만큼 견고하지는 않지만 서쪽의 위험으로부터 도시를 지켜 낼 만큼은 튼튼했다.

방책 위에는 걸어 다닐 수 있는 통로가 만들어져 있었는데, 규칙적으로 횃불이 꽂혀 있었다. 경비대원들은 통로를 걸어 다니며 어둠을 주시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대규모 공격은 없었지만 가끔 악어나 물뱀이 나타나 방책에 충동하거나 방책의 일부를 물어뜯었다. 그럴 때면 경비대원은 석궁을 발사하면서 근처에 설치된 종을 울렸다. 그러면 탑에서 파견된 마법사들이 최대한 빨리 방책으로 달려와 마법으로 악어나 물뱀을 쫓아 버리곤 했다.

윤강은 수철목을 잡고 흔들었다. 바닥 깊이 박힌 수철목은 요동조차 없었다.

‘이런 방책도 수룡의 꼬리에는 나뭇가지처럼 부서지고 말겠지.’

어릴 때 수룡이 그 거대한 꼬리로 후려쳐 방책의 절반을 무너뜨린 순간을 직접 봤던 윤강은 당시의 공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두려움을 억누르기 위해 일부러 빨리 걸었는데, 석궁을 든 부하가 윤강을 보고는 경례를 붙였다.

“좀 춥지?”

“소추님께서 지급해 주신 털옷 덕분에 전혀 춥지 않습니다.”

경비대에 들어온 지 석 달밖에 안 된 왕세충이 크게 말했다. 소추는 열 명 남짓한 경비대원을 이끄는 직책이었다.

“쉿! 여기선 낮게 말하라고 했을 텐데.”

“……죄송합니다, 소추님.”

“정신 바짝 차려.”

“네, 소추님.”

왕세충의 어깨를 어루만진 윤강은 다음 초소로 향했다. 실망스럽게도 한 사람은 자고 있었고, 얼굴에 칼자국이 난 다른 사람은 그림이 그려진 책을 넘기고 있었다. 윤강은 소리도 없이 다가가 단검으로 책을 든 남자의 목에 갖다 댔다.

“…….”

놀란 남자.

“넌 죽었다, 추관구.”

“……소추님도 무사하진 못하실 겁니다.”

어느새 추관구의 단검이 윤강의 가슴 앞에 멈춰 있었다. 윤강은 빙긋 웃었다.

“인기척을 느꼈나?”

“아주 조금요. 하마터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뻔했습니다. 그리고 저 녀석은 제가 재웠습니다. 오늘 부역으로 간척장에 가서 뼈 빠지게 일했거든요. 좀 쉬어야 하니 뭐라고 하지 마십시오.”

“좋아.”

윤강은 부하를 생각하는 추관구의 마음 씀씀이가 보기 좋았다. 다른 초소로 가려는데, 낮게 가라앉은 추관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추님…….”

“왜 그러나?”

돌아선 윤강은 소름이 돋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어둠 속에 커다란 달 두 개가 떠 있었다. 샛노란 구체인데, 그 안에 적색의 타원 형체가 들어 있었다. 달이 아니었다. 눈이었다! 윤강은 저 눈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지만 때리기만 하면 소리가 나서 마법사를 이리로 불러올 구리종이 있는 곳으로 걸어갈 수조차 없었다. 추관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눈은 윤강과 추관구를 노려보더니 점점 작아졌다. 그러다가 어둠 너머로 사라졌다.

그제야 윤강은 움직일 수 있었다.

“……소문이 사실이었나 봅니다.”

추관구가 말했다.

“그런 것 같군.”

며칠 전에도 수룡 유천주가 방책 근처에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돌아다녔는데, 직접 본 사람조차 시간이 흘러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었던 터라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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