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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설로 굳어지고 있었는데, 오늘 다시 수룡이 나타난 것이다.
“보고해야겠지요?”
“당연히.”
그러나 윤강은 누가 이 사실을 믿을까 생각해 봤다. 안전을 중시하는 경비대 윗선은 보고 자체를 묵살하고 말 것이다. 괜한 헛소리로 도시의 분위기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말라는 비난을 받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의무는 다해야 한다.
‘유천주는 왜 방책 가까이 나타날까?’
윤강은 그 생각을 하면서 경비대 본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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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좋겠다. 입어 봐.”
반우현이 건넨 비단 재질의 옷을 손에 쥐고 탈의실로 들어가서 갈아입은 단태는 속으로 옷값을 계산하고 있었다. 못해도 10마전, 어쩌면 20마전 이상일지도 몰랐다. 황제가 하사한 금덩이는 1천 마전 값어치를 지니고 있었지만 단태는 엄마와 설희를 되찾기 전까지는 그 돈을 한 푼도 쓰고 싶지 않았다.
탈의실 밖으로 나온 단태를 본 반우현이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잘 어울리는데? 보기 좋아. 키가 커지면 훨씬 좋겠어.”
그 말에 단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쳐다봤다. 연꽃이 수놓인 파란색 비단 옷을 입은 사람은 꽤 잘생겼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사실이긴 한 모양이었다.
반우현이 옷값을 치렀다. 13마전이었다.
“나중에 드릴게요.”
“뭐?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먹겠다. 난 륜사 오라버니를 위해 네게 옷 한 벌 사 주는 거니까 나중에 드린다는 말 따위는 하지도 마. 넌 날 얕보는 경향이 있어. 난 이 도시의 계승자라니까.”
“……죄송해요, 계승자님.”
반우현은 알 없는 안경을 꺼내어 단태의 얼굴에 갖다 댔다. 마음에 드는지 안경을 씌웠다.
“가만히 있어. 됐다. 이제 누구도 네가 륜사 오라버니의 종자라고 생각하진 않을 거다.”
“……네.”
단태도 동의했다. 안경 하나 썼을 뿐인데,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정말 똑똑한 하인 같았다.
“빨리 가자. 이러다가 연회 다 끝나겠다.”
반우현은 서둘러 소마선에 올라탔다. 약속 장소인 취영루에 소마선을 두고 온 단태는 반우현 옆에 섰다. 소마선은 평굉의 저택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소마선이 상아별로 들어서자 냄새부터 확연히 달라졌다. 공기 중에는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풀 향기가 섞여 있었고, 천천히 흐르는 운하도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깨끗했다. 바로 ‘정염수’라는 마법 때문이었다. 마력석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펼칠 수 있는 정염수는 물과 공기를 정화하는 기초적인 마법이었다. 이곳 상아별로에는 정염수를 펼치는 대규모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어 같은 운하인데도 악취로 고통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지역 전체를 악취로부터 보호하는 마법진을 운용하는 데 필요한 마력석 때문에 거액을 탑에 지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상아별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그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 기꺼이 돈을 지불했던 것이다.
평굉의 저택은 상아별로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3층 높이의 우아한 저택이었다. 가까워지자 웃음소리와 악기 소리가 들렸다. 반우현은 운하에서 벗어나 저택의 정문, 즉 아치형 통로로 접어들었다. 곧 연못이 나왔다. 상아별로의 저택은 운하와 이어진 연못을 개인적인 선착장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자, 내리자.”
하인에게 배를 맡긴 반우현은 단태와 함께 대리석 계단을 딛고 위로 올라갔다.
후추를 뿌려서 통째로 굽는 돼지가 입구 왼쪽에 자리 잡고 있었고, 오른쪽에는 산더미처럼 쌓인 여러 종류의 요리가 기다란 탁자 위에 놓여 있었으며, 사람들이 앉아 있는 동그란 탁자들 너머에는 수십 명의 악사들이 기품 있는 선율을 연주하고 있었다.
다들 빛나는, 때로는 반짝이는 비단 재질의 옷을 입고 있었다. 손가락에는 비싼 반지를 꼈고, 귀에도 보석 귀걸이를 했으며, 손에 들고 있는 부채마저도 비단이었다.
“앉자.”
반우현이 속삭였다.
정신을 차린 단태는 반우현을 쫓아 악사들 근처에 있는 커다란 탁자로 향했다. 바로 평굉이 앉은 곳이었다.
“아, 계승자님!”
평굉이 일어나며 소리치자, 악사들이 연주를 멈췄다. 사람들은 그 소리에 놀라 일제히 반우현을 쳐다봤다. 그런 시선에 익숙한 반우현은 활짝 웃으며 손을 들어 관심에 고마움을 표했지만 단태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종자장이 되기 위해 종자들 앞에서 연설을 했던 것과는 차원이 달라서였다.
“용금탄에서 오늘 오셨다고 들었는데, 여기 오신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평굉의 눈은 의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세관국장님께 자문을 구할 문제가 있어서요. 물론 여기 음식이 그립기도 했구요.”
“아, 그러십니까?”
평굉은 눈에 띄게 안심했다.
반우현은 능숙한 태도로 평굉과 그 지인들이 앉아 있는 탁자에 합류했고, 용에게 선택을 받아 유산을 상속받았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사람들도 반우현의 말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순식간에 반우현은 연회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암탄주의 외모를 설명하던 반우현이 손을 들어 귀를 만지자, 잔뜩 긴장했던 단태는 어색한 자세로 일어나 연회장을 벗어났다. 사람들이 반우현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대번에 단태가 수상쩍다고 생각했을 터였다.
반우현이 사람들의 관심을 한쪽으로 모으고 단태가 저택을 둘러본다는 계획은 반우현의 생각이었다. 어디를 가나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는 반우현이 은밀하게 움직인다는 건 불가능했다. 반우현은 그 상황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만약 단태가 돌아다니다가 붙잡혀도 반우현의 하인이니 위험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단태는 접시를 들고 나가는 하인들 사이에 섞였다. 보통 하인은 연회장 밖에서 약간 질이 떨어지는 요리를 먹으며 기다리는 터라, 누구도 단태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주방은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연회장 입구에 쌓여 있는 그 요리로도 부족한 모양인지 수십 명의 요리사들이 제각기 다른 음식을 만들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것만 같았다. 그들 사이를 교묘하게 빠져나온 단태는 저택이 생각 이상으로 커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연회가 열리는 본채 외에도 별채가 세 채 이상이었다. 운하에서 끌어들인 물로 만든 연못으로 분리된 건물로 가려면 무지개처럼 생긴 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그 다리의 중앙에는 횃불을 든 사내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어쩌지?”
반우현에게 돌아가서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반우현이 도와주었는데도 조율진이라는 사람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힐 테고, 그 가족은 거리에 나앉고 말 것이다. 어쩌면 그들도 도양 같은 악덕 상인에게 걸려 노예가 될지도 몰랐다.
조율진이 아버지냐는 반우현의 질문이 생각났다. 따지고 보면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었다. 종자장 시험을 코앞에 둔 때에 이런 식으로 나설 필요가 없는 일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가만히 있으면 답답해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치 엄마와 설희가 다시 한 번 팔려 가는데도 잠자코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멍청한 짓일지 모르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단태는 유독 경계가 심한 별채로 가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연못에 들어갔다. 소리 나지 않게 헤엄을 쳐서 그 무지개다리 아래를 통과하자, 본채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확 줄어들었다. 바람에 연못의 수면에 물결이 치는 소리가 커졌고, 구름이 달을 가려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다.
그때, 수면 위로 샛노란 눈이 보였다.
두 개의 눈이었다.
물결을 가르고 다가오는 두 개의 눈.
본능적으로 육식동물의 눈이라고 직감하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단태는 연못 맞은편으로 헤엄을 쳤다. 빠르게 다가온 그 눈은 천천히 물 아래로 사라졌다.
다행이라고 생각한 단태가 안도하는 순간, 거대하고 강력한 무언가가 덥석 단태를 물었다. 비명을 지를 수도 없이 물 아래로 끌려 간 단태는 허우적거렸지만 저항할 수가 없었다. 겨우 눈을 뜬 단태는 자신을 문 것이 거대한 악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샛노란 눈이 바로 옆에 있었던 것이다.
‘……난 죽었어.’
그렇게 생각하는데, 악어는 단태를 문 채로 수로의 입구로 들어서더니 아래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위로 등 복잡하게 움직였다. 단태가 숨을 참을 수 없어서 반쯤 정신을 잃는 순간, 악어는 단태를 물고 물 밖으로 나왔다.
악어가 입을 벌리자 단태는 부드러운 땅으로 굴러떨어졌다. 비싸게 주고 산 비단옷이 찢어져 엉망이었지만 단태는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팔다리도 멀쩡했다. 악어는 먹잇감을 물고 몸을 거칠게 돌려 먹잇감을 해체시킨다더니, 사실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