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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구름에서 빠져나오자, 단태가 주저앉은 그곳이 밝아졌다. 수십 개의 샛노란 눈들이 단태를 에워싸고 있었다.
악어들이었다.
단태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수십 마리의 악어들이 그 잔인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신비로운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먹어치울 것만 같은 시선이었다. 그제야 평굉이 연못에 악어를 풀어놓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단태는 속으로 평굉을 욕했다.
달이 구름에 가렸다가 빠져나오기를 여러 번 반복했는데도 악어는 요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돌로 만든 것처럼.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단태는 살짝 손을 들었다. 악어들이 일제히 그 손을 따라 대가리를 살짝 움직였다. 자는 것도, 돌처럼 굳은 것도 아니었다.
공포에 휩싸인 단태는 바싹 말라 버린 입술을 침으로 적셨는데, 침마저 부족했다.
‘정신 차려야 해. 여기서 죽을 순 없어. 대체 저 녀석들은 왜 저러는 거지? 내가 움직이기를 기다렸다가 먹어 치울 건가?’
단태는 악어의 습성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악어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단태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라도 해야 돼.’
용기를 낸 단태를 눈을 질끈 감고 몸을 일으켰다. 단단한 악어의 피부가 땅과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악어들이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리라 생각했던 단태는 주먹을 꽉 쥔 채 기다렸으나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천천히 눈을 떴다.
악어들은…… 보이지 않았다.
한 마리도.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다시 나온 달빛에 주위를 살피니, 악어들은 모조리 소리 내지 않고 물로 들어가 버린 모양이었다.
맥이 풀려 주저앉은 단태를 이를 악물고 일어나 물 반대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벽이라고 생각했던 어둠에는 조그만 통로로 나 있었다. 울퉁불퉁한 벽을 짚고 앞으로 걷는데, 당장이라도 악어들이 쫓아올 것 같아서 자신도 모르게 서둘렀다.
짙은 어둠 속으로 한참을 걷자 바닥도, 벽도 평평해졌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곳이었다. 곧 빛이 나타났는데…… 저 위쪽 벽에서 흘러나온 빛이었으나 단태에게는 한낮의 햇빛처럼 밝고 반가운 것이었다. 그 빛은…… 벽에 새겨진 마법진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제 살았다고 생각한 단태는 나선형의 계단을 딛고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어디선가 기이한 노랫소리가 들려서 멈추고 말았다. 구슬픈 여자의 울음 같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남자 특유의 묵직함을 가진 목소리였다. 기분 좋게 하는 동시에 뼛속 깊이 공포를 심어 주는 목소리이기도 했다. 어쩌면 목소리 때문이 아니라 그 노래의 선율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무래도 멀리서 들리는 소리 같았다.
또 한참을 올라가자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반가운 마음에 여기 사람 있다고 외치려던 단태는 ‘조율진’이라는 이름에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저기 위쪽에 있는 누군가가 조율진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단태는 벽에 붙어 그 대화를 엿들었다.
“조율진, 그 친구 참 안됐어.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더군. 우리가 나서서 가족이라도 좀 도와줄까?”
“그런 말 하지 마.”
“그래도…….”
“조율진 그 새끼 때문에 우리가 단체로 옷 벗을 뻔했다는 거, 벌써 잊었어? 그놈이 자존심을 내세우는 바람에 우린 저 밑으로 내던져져 악어 밥이 될 뻔했다구.”
“…….”
“두 번 다시 그 녀석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
“알았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단태는 그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내밀었지만 마법진이 뿜어내는 흐릿한 빛만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저 노랫소리는 대체 뭐야? 넌 알지?”
조율진 가족을 언급했던 목소리였다.
“음혼탈맹.”
“그게 뭔데?”
“모르는 게 나아. 알면 다칠 수도 있으니까.”
그때, 휘파람 소리가 길게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또 부르는 모양이야.”
“가자. 늦으면 우릴 다 죽일지도 몰라.”
사람들이 서둘러 달려가는 소리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 단태는 손을 뻗어 그 구멍 밖으로 나왔다. 나와서 보니, 그 구멍은…… 커다란 우물 같아서 직접 내려가 보지 않는 이상 안쪽에 계단이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힘을 썼더니 숨이 찼다.
단태는 조심하면서 그 사람들이 간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런 고생까지 했는데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한 채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 기이한 노랫소리가 점점 커졌다.
붉은 횃불이 어둠을 밝히는 통로 끝에는 은회색의 문이 달려 있었다. 벽에 손을 올리고 그 문으로 걸어가는데 몇 시간이 걸린 것처럼 느껴졌다. 단태는 문이 벌컥 열리고 누군가 밖으로 나와 자신을 발견하지 않을까 두려웠지만, 의미 있는 결과를 위해서 문으로 다가가 귀를 쫑긋 세웠다. 목소리가 들렸다.
“……음명석이 부족하시다구요? 계약 내용대로 음명석 한 근을 드렸을 텐데요.”
아까 조율진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말라고 했던 사람의 목소리에는 불만이 담겨 있었다.
“마법은 그대들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네. 그 복잡 미묘한 예술적 기교에는 변수가 상존하지. 그러니 당장 나가서 음명석 두 근을 더 가져오게.”
“음명석 두 근이라면…… 적어도 수천 마전이나 합니다만.”
“그거야 내 알 바 아니지. 만약 그게 싫다면 난 이곳을 떠나는 수밖에. 안 그래도 방염루체에서 빨리 오라고 재촉을 했는데, 잘됐구먼.”
“……알겠습니다. 가져오겠습니다.”
거기까지 들은 단태는 재빨리 뒤로 물러나 횃불이 밝히지 못하는 벽의 구석진 곳으로 가서 숨었다.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나왔다. 한 사람은 씩씩거렸고, 다른 하나는 말리고 있었다.
“참아. 괴팍한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아.”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음명석 세 근이면 족히 만 마전은 넘을 거야. 당장 국장님을 만나야겠어.”
“……그렇게 하자.”
두 사람이 횃불을 쥐고 움직이자, 단태는 신중하게 그 뒤를 쫓았다. 국장님은 필시 세관국장 평굉일 테고, 그러면 저들 덕분에 이 축축한 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열린 문 틈으로 무언가가 빠져나왔다.
처음 눈에 들어온 건, 붉은색이었다. 주먹만 한 붉은 덩어리가 날아왔는데, 곧 흰색의 날개를 볼 수 있었다. 그 조그만 새가 주위를 맴돌자 단태는 새의 머리가 은색으로 빛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당장 돌아와!”
음명석을 더 요구했던 목소리.
단태는 두 사람을 쫓아가는 대신 어둠으로 몸을 숨겼다.
문이 열렸다.
은색의 망토를 걸친 백발의 남자가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새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단태는 살짝 고개를 빼내어 남자를 보고는 즉시 몸을 벽에 밀착시켰다. 그 새는 단태의 정수리에서 오른쪽 어깨로, 거기서 왼쪽 어깨로 옮겨 다니고 있었다.
“용조, 돌아와라. 네가 좋아하는 음명석을 줄 테니까.”
남자에게서 조바심이 느껴졌다.
새는 그 남자에게로 갈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이 망할 놈의 새 같으니라구! 당장 돌아오지 않으면 음명석은 없어! 좋아. 실컷 돌아다니다가 독수리나 매에게 먹혀 버려!”
남자는 문을 쾅 닫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단태가 그 어둠에서 빠져나오자 새도 빛을 받아 그 자태를 드러냈다. 타오르는 불꽃같은 몸통, 스스로 빛을 내는 듯한 흰색의 날개, 똘망똘망한 눈망울, 은색으로 반짝이는 머리. 한눈에 봐도 평범치 않은 새였다.
이 새 때문에 빠져나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도 잊은 채 단태는 손가락 위에 앉아 있는 새를 쳐다보고 있었다.
“네가 용조니?”
“난 용조, 넌?”
“……!”
새가 분명히 말했다! 억양이 이상했지만.
“나, 나는 단태야.”
“넌 단태, 난 용조.”
새는 검은색 부리를 귀엽게 움직이며 말했다.
단태는 그게 너무 깜짝해서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어 주었다. 기분이 좋은 새는 입을 벌렸는데, 가슴 안쪽까지 시원해지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단순히 기분만 좋아진 게 아니었다. 아까 연못을 건너다가 악어에게 물려 수로로 끌려 온 바람에 젖어 버린 몸이 빠르게 말랐고, 찢어진 비단 옷의 일부가 저절로 이어졌다. 구멍 난 부분은 방법이 없는지 그대로였지만 찢어진 곳은 비단이 스스로 붙어버린 것처럼 완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