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68화 (68/293)

<-- 68 회: 2-27 -->

“……네가 한 거니?”

“내가 한 거야. 내가 한 거야. 용조가 한 거야.”

단태는 할 말을 잃었다. 용처럼 태생적으로 마법이 가능한 동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종자장 필기시험을 준비하면서 책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곧 몸은 가뿐해졌다.

단태는 용조가 앉은 손바닥을 얼굴 앞으로 가져왔다.

“혹시 너 밖으로 나가는 길 아니?”

“용조는 안다. 용조는 안다.”

“날 밖으로 안내해 줄 수 있을까?”

“용조는 밖으로 나가고 싶다.”

그렇게 말한 조그만 새는 손바닥에서 훌쩍 날아올랐다.

단태는 급히 용조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평굉을 비롯한 늙은이들과의 대화에 신물이 난 반우현은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수상한 부분을 발견하면 단태가 돌아와서 코를 만지기로 약속했는데, 벌써 두 시간이 지났건만 그 녀석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먹고 노느라 그 일을 잊은 건가?’

반우현은 괜히 그런 아이를 끌어들였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와타를 데리고 올걸. 와타를 배제한 이유는 이곳에 온 목적을 알면 와타는 즉시 아버지에게 진실을 알릴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현 시점에서 제국의 세금 제도를 낙관할 수는 없습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가진 자들, 즉 귀족이나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두고 싶어 하시지만 그게 마음대로 될 수 없으니까요. 세금을 조금이라도 올렸다가는 강렬한 저항에 부딪칠 겁니다.”

평굉이 전문가다운 어조로 말했다.

“……그러면 당분간은 세금 제도가 바뀔 가능성이 없다는 건가요?”

반우현은 하품을 참고 물었다.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즉위하신 지 곧 7년째가 됩니다. 제국의 지배자로서 힘을 보다 적극적으로 발휘하시려면 무엇보다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세금 제도를 손보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만, 그 전에 반대 세력을 흔들어 놓을 필요가 있을 듯 보입니다.”

평굉의 말에 담긴 깊은 의미에 반우현은 눈을 반짝거렸다. 돈만 밝히는 작자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안목까지 갖춘 사람이었다.

“그 필요를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계승자께서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굳이 말씀하시니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이미 반대 세력을 흔들고 계십니다. 용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이유로 폐하께서 두 분의 계승자를 황궁에 머물게 하셨을 뿐 아니라, 마둔수탑을 팔마탑의 일원으로 끌어올리셨습니다. 그 때문에 상당한 영향력을 자랑하던 패용녹탑은 용금탄에서 쫓겨났습니다. 패용녹탑은 팔마탑 중에서 재력으로는 으뜸입니다. 그런 탑을 내쫓은 것만 봐도 폐하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뜻이 숨어 있었군요. 국장님의 설명에 깜짝 놀랐습니다.”

반우현은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계승자가 된 이후 처음으로 배운 지혜가 바로 이런 태도였다.

“과찬이십니다.”

평굉은 기분이 좋은지 껄껄 웃었다.

또다시 단태를 찾느라 주위를 살핀 반우현은 이쪽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얼굴에서 긴장을 읽어 냈다. 곧 두 사람을 발견한 평굉의 반응을 통해 두 사람은 평굉을 만나러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반우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평굉은 즉시 두 사람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반우현은 반극권 ‘나무의 장’, ‘목극이공’을 펼쳤다. 내공을 끌어 올려 귀의 감각을 순간적으로 예리하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음명석을 더 달라고?”

못마땅해하는 평굉의 말이 들리자마자 보이지 않는 장막에 부딪치는 느낌을 받았다. 반우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평굉을 따라다니는 마법사가 이런 식의 도청을 막는 마법을 펼친 모양이었다. 그래도 영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음명석은 소리의 마법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마법 재료였다. 스스로 소리를 내는 돌인 음명석은 소리의 종류에 따라 인음석, 조음석, 맹음석 등 다양했는데, 반우현은 한 번도 자연 상태에서의 음명석을 본 적은 없었다. 돌 스스로 노래를 부르면서 뛰어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적게는 수백 개, 많게는 수십 만 개의 돌멩이들이 기이한 노래를 부르며 산자락을 혹은 사막을 돌아다닌다는 소문인데, 소리의 마법을 전문으로 하는 탑에는 이 음명석을 채취하기 위해 대륙 전역으로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음명석이라면 당연히 소리 마법사와 관련이 있을 터였다.

‘소리 마법사가 왜 여기 와 있는 거지? 평굉이 개인적으로 불렀을까? 그러면 장부 누락으로 빼돌린 돈으로 소리 마법사를 데려왔을까?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순간, 반우현은 팔마탑의 일원인 은후성탑의 계승자 성주명을 떠올렸다. 듣기 좋은 목소리의 소유자인 성주명은 평범 그 자체였지만 항상 어깨에 앉아 있던 맹금 덕분에 인상적이었다. 그 매는 백관조로 소리 마법의 능력을 타고난 새였다.

평굉이 돌아왔다.

“급한 볼일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워야겠습니다만.”

“그러세요. 전 연회를 즐기러 여기 왔으니까요.”

“그럼.”

고개를 숙여 예의를 표한 평굉은 그 두 사람과 함께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잠시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반우현은 화장실로 가서 새까만 옷으로 갈아입었다. 복면까지 한 그녀는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와 평굉이 사라진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용조를 따라서 발걸음을 재촉하던 단태는 갑자기 용조가 방향을 틀어 나무 상자가 쌓인 곳으로 숨자 당황했다. 용조가 날아와 단태의 옷깃을 물고 그쪽으로 당겼다. 그제야 용조의 뜻을 알아차린 단태는 나무 상자들 뒤로 가서 숨었다.

“음택수 그 자식이 미쳤구먼.”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일단 이야기나 해 봐야겠어. 음명석 두 근을 더 달라? 아예 한몫 단단히 챙기려고 작정을 했어.”

평굉은 씩씩거리며 단태가 왔던 곳으로 걸었고, 두 사람이 그 뒤를 부지런히 쫓았다.

단태는 코앞에서 날고 있는 용조를 쳐다봤다.

“고맙다. 네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잡혔을 거야.”

“용조가 단태를 구했다. 용조가 단태를 구했다.”

“가자.”

“가자.”

그렇게 말한 용조가 앞서 날자, 단태는 묘한 만족감을 느끼며 달리기 시작했다.

연회장이 가까운지 연주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자 단태는 이제 살았구나 싶었다. 그러나 용조는 밖으로 나가는 대신, 옆으로 숨었다. 이번에는 단태도 즉시 움직여 용조 옆으로 가서 몸을 웅크렸다.

건장한 사내 두 사람이 조그만 아이를 끌고 내려오고 있었다. 아이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우리 형이 너희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우리 형은 마둔수탑의 마법사야! 너흰 다 죽었어!”

퍽.

주먹이 아이의 배에 박혔다.

“이 녀석 지치지도 않네. 형이 마법사라고? 웃기고 있네. 종자 주제에 마법사라니?”

“……곧 마법사가 될 거야.”

아이는 신음을 흘리면서도 말했다.

사내들은 그 건방진 아이의 버릇을 고친다면서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밟았다. 아이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자 그들은 아이를 질질 끌어다가 입구 근처의 복도 끝자락에 있는 방에 가두고 문을 잠갔다. 빨리 돌아가서 연회 음식이나 먹자는 그들이 사라지자, 단태는 밖으로 나가는 용조 뒤를 따라가지 않고 그 아이가 갇힌 방으로 향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마둔수탑 종자의 동생이 왜 여기 평굉의 저택에 잡혀 있을까?

‘난 아직 종자장은 아니지만…… 곧 종자장이 될 거야. 종자장의 의무 중에는 어려움을 당하는 종자를 도와주는 것도 있어. 그러니 그냥 나갈 수는 없어.’

단태는 문에 달라붙어 조심스레 두드렸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주위를 살핀 단태가 조금 더 세게 두드리자, 안쪽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차라리 날 죽여!”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웃음이 터졌다. 단태는 고집만 센 아이의 의미 없는 저항이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여도 실속은 없다는 점을 잘 알았다. 격렬하게 저항할 때도 있지만, 조용히 힘을 아껴서 기회를 엿볼 때도 있는 법이다.

“형이 마둔수탑의 종자라고 했지?”

“……그래.”

아이도 무언가를 느낀 듯 문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구해 줄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단태는 문을 열 만한 도구를 찾아 주위를 헤맸지만 쇠붙이 하나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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