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69화 (69/293)

<-- 69 회: 2-28 -->

그때, 용조가 날아와 그 낡고 무거운 자물쇠를 몇 번 쪼았는데 툭 소리가 나며 자물쇠가 부서졌다.

깜짝 놀란 단태 앞으로 용조가 날아와 코앞에 떠 있었다. 하도 날갯짓이 빨라서 빨간 몸만 허공에 떠 있는 것만 같았다.

“고맙다.”

“용조가 단태를 도왔다.”

“그래, 용조가 단태를 도왔어.”

단태는 용조의 은빛 머리를 가볍게 건드리고는 그 문을 열었다. 씩씩거리고 있지만 공포에 질린 아이가 벽에 기대고 앉아 있었다.

“걸을 수 있겠어?”

“……아니.”

“내가 부축할 테니까 일어서.”

“너, 누구야?”

“난 네 형처럼 마둔수탑의 종자야.”

“뭐? 이름이 뭔데?

“……단태.”

괜히 이름을 밝혔다가 여기서 륜사의 종자라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을까 겁이 났지만 그래도 저 아이에게 확신을 주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아, 그 늙은 마법사의 손자?”

“…….”

“미안해. 형이 그렇게 말했거든.”

“……나가자. 여기는 위험해.”

단태는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를 부축해서 용조가 이끄는 대로 통로 밖으로 나왔다. 연못과 연못 아이의 정원에 자리 잡은 커다란 바위틈이 출구여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이런 통로의 존재조차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단태가 무지개다리로 걸어가는데, 저 앞에서 바람처럼 누군가가 달려오고 있었다.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어?”

“계승자님!”

단태는 반우현이 이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냐?”

그 질문에 단태는 믿기 힘든 부분은 제외하고 연못을 건너다가 물살에 휩쓸려 우연히 찾아낸 지하 공간에 대해 설명했다.

“평굉의 연못에는 악어가 돌아다니는데, 넌 운이 좋았던 모양이야.”

“……그런가 봐요.”

대충 둘러댄 단태가 ‘음명석’을 언급하자 반우현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야기를 다 들은 반우현은 그 바위 사이의 통로로 들어가는 대신 단태와 그 아이를 데리고 자신의 소마선으로 향했다. 일단은 이곳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라고 여긴 것이다.

결정적인 증거를 잡은 셈이니, 아버지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으리라.

평굉의 저택을 벗어난 반우현은 손짓으로 단태를 불렀다.

“저기서 있었던 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특히 륜사 오라버니에게는 말하면 안 돼. 알았지?”

“네, 그럴게요.”

“널 믿는다.”

반우현은 단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

“망현아!”

“……형!”

창수는 동생을 얼싸안았다. 망현도 마찬가지였다.

그 반응에 단태는 할 말을 잃었다. 망현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칭찬하던 마둔수탑의 종자가 창수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망현의 몸을 살피고 무사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창수가 단태를 쳐다봤다.

“……고맙다.”

“도시의 계승자님이 도와주셨어.”

“이 형이 날 구했고 그 예쁜 누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

망현이 끼어들었다.

“정말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내 동생은…… 위험했을 거야.”

창수는 눈물을 흘렸다.

“운이 좋았을 뿐이야. 근데 왜 동생이 거기 갇혀 있었던 거야? 세관국장에게 잘못한 거 있어?”

“……그런 거 아니야. 난 동생을 집에 데려다주고 올게. 나중에 지하 창고에서 봐.”

창수는 동생 망현을 데리고 재빨리 탑에서 빠져나왔다. 혹시 백율가진이나 명운이 보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도시의 서남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창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완전히 안심할 수가 없어 탑 쪽을 살폈다. 쫓아오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그 자식들이 날 왜 데려갔는지 형은 알지?”

창수는 입을 꽉 다물었다.

“그 형 아니었으면 나 죽었을 거야. 정말로.”

“……알아.”

“나 대신 그 형에게 이 은혜를 갚아 줘.”

“그렇게 할게.”

배가 집 근처에 도착할 때까지 창수는 말없이 이끼 낀 말뚝, 흐르는 운하, 양쪽에 자리 잡은 낡은 건물을 쳐다보았다. 단태가 망현을 데리고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망현이 세관국장 평굉의 집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도 의외였다.

‘단태는 거기 왜 갔지? 반우현 님도 함께 있었다니, 더 이상하잖아. 그래도 단태가 내 동생을 구한 건 사실이야. 난 이 빚을 갚아야 해. 형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야.’

배에서 내린 창수는 주위를 살핀 다음, 망현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망현을 본 부모님이 단숨에 달려 나왔다. 상처를 보여 주며 신 나게 자랑하는 망현을 쳐다보는 창수 옆으로 할아버지가 다가와 섰다. 할아버지는 창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무사히 돌아왔구나.”

“제가 말씀드린 적이 있는 륜사 님의 종자, 기억하세요?”

“단태라는 아이 말이냐?”

“네. 그 아이가 망현을 구했어요.”

“자세한 이야기 좀 듣고 싶구나.”

어떤 상황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할아버지의 나직한 목소리에 창수는 평상에 걸터앉아 단태와 망현이 들려 준 내용을 간추려서 할아버지에게 전했다.

“세관국장의 저택이라…… 쉽게 판단할 수가 없구나.”

“백율가와 명가가 세관국장과 관련이 있다는 거잖아요.”

“이제부터 그 부분은 내게 맡겨라.”

할아버지는 빙긋 웃었다.

저 미소를 보면 언제든 기분이 좋아졌다. 창수는 무거운 마음을 털어버리고 엄마 앞에서 자기가 어른들을 때려눕히고 탈출했다고 허풍을 떠는 동생 옆으로 걸어갔다. 그런 창수를 쳐다본 할아버지 번운재는 뒷짐을 지고 집 뒤로 돌아가 쪽문으로 나왔다.

대기하던 마차에 올라타자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망현이 돌아왔더군요.”

“자네들이 수고해도 찾지 못했는데, 하늘이 우리 손자를 무사히 돌려보낸 게지.”

“어떻게 된 겁니까?”

“가서 얘기하세.”

마차는 ‘서천목로’로 불리는 하류층의 미로 같은 거주지를 이리저리 달려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번운재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지하실로 내려갔다. 몇 사람의 건장한 사내들이 통로 길목마다 서서 번운재를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추명의 지도자를 향한 경외심이 묻어나는 태도였다. 번운재는 횃불이 활활 타오르는 지하 석실로 들어섰다.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망현이 돌아왔네.”

“다행입니다, 어르신.”

번운재의 말에 사람들은 기뻐했다.

“더 다행스러운 일은 놈들이 날 노리고 손자를 납치한 게 아니라는 점이야. 구체적인 이유는 알아봐야겠지만 아무래도 내 손자는 우연히 납치의 대상이 된 모양이야.”

“누가 구했습니까?”

횃불에 그늘진 칼자국이 더욱 깊어 보이는 남자가 물었다.

“세상은 참으로 재미있네. 망현의 형 창수가 마둔수탑의 종자로 있다는 사실은 자네들도 알 거야. 그 창수의 친구가 세관국장 평굉의 저택에서 망현을 구해서 데리고 나온 모양일세. 그 과정에는 도시의 계승자인 반우현도 관련된 듯하고.”

“……뭔가 이상한데요.”

“아주 많이 이상하다네. 그래서 자네들이 움직여 줘야겠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야겠어. 그리고 망현을 구한 종자의 이름은 단태라네. 만약 그 아이에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생긴다면 내 체면을 봐서 도와주게나.”

“어르신의 손자는 곧 우리 가족입니다. 그러니 단태는 우리 가족을 구한 은인입니다.”

칼자국 난 사내 추관구 맞은편에 앉은 윤강이 말했다.

“고맙네.”

번운재는 이제 본격적으로 회의를 진행했다. 이번 모임의 주제는 윤강과 추관구가 직접 목격한 수룡 유천주였다.

“자네는 왜 유천주가 방책 가까이 다가왔다고 생각하는가?”

번운재는 윤강을 쳐다봤다. 경비대의 소추로서 윤강은 전투 실력과 지휘 통솔력뿐 아니라 사태를 파악해 내는 통찰력으로도 뛰어나서 번운재의 뒤를 이어 비밀 조직 추명을 이끌 인재로 평가받고 있었다.

“……아무래도 150년 전에 있었던 재앙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윤강은 조심스러웠지만 그 내용이 일으킨 파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사람들은 물론 번운재마저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그 재앙이라면? 설마 누군가 일부러 유천주를 불러들였다는 뜻인가?”

“수룡 유천주는 짐승에 가까워서 조종할 수는 없지만, 미끼로 불러낼 수는 있습니다. 숲의 탑, 변신의 탑 그리고 소리의 탑 마법사라면 유천주를 방책으로 불러낼 수는 있을 겁니다.”

“그 목적은 뭔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