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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택수가 잠자코 듣기만 하는 세관국장 평굉을 향해 말하자, 양도출은 귀까지 빨개졌다. 흥분한 양도출이 나서려는데 손을 들어 막은 평굉이 음택수를 바라봤다.
“승급 시험을 통과한 증표가 바로 백관조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국장께서는 알고 있군요. 맞소. 백관조는 단순한 새가 아니오. 소리 마법사의 자존심이자, 평생의 동반자라고 할 수 있지요. 용조와 나는 수십 년 동안이나 함께해 왔는데, 간수를 못해서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는 겁니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음택수는 양도출을 노려보며 물었다.
양도출은 아무 말도 못했다.
“백관조는 제가 책임지고 찾아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계약대로 이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평굉이었다.
“좋소. 한 달 드리겠소. 그때까지 용조를 돌려주지 않는다면, 나는 이 도시를 떠날 것이오.”
음택수가 결론을 내렸다.
회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일방적인 이야기만 듣고 나온 양도출은 부글부글 들끓는 화를 억누르느라 애를 먹었다. 생각 같아서는 저 건방진 마법사의 혓바닥을 뽑아 버리고 싶었다. 그가 이제 막 나온 평굉에게 하소연을 하려는데, 평굉이 커다란 손바닥으로 양도출의 뺨을 후려쳤다.
철썩.
양도출은 옆으로 밀리며 나무상자를 덮쳤다. 부서진 나무상자 위에서 양도출은 멍한 시선으로 평굉을 쳐다봤다.
“그깟 새 한 마리 때문에 대사를 그르칠 생각이더냐?”
“……국장님.”
“한시라도 빨리 그 새를 찾아와!”
“날아가 버린 새를 어떻게 찾…….”
“무조건 잡아와!”
평굉이 소리치자 양도출은 한숨을 내쉬며 저택 현관에서 기다리는 평직수를 만났다. 평직수는 아버지인 평굉을 무서워하는 사람이었다. 불호령이 떨어질 게 뻔해서 양도출 혼자 아버지를 만나게 했던 것이다. 궁금해하는 평직수에게 양도출이 말했다.
“솜씨 좋은 화공 아는가?”
“춘화도 잘 그리는 화공 한 명을 잘 압니다만.”
“춘화도?”
양도출은 아버지와 달리 주색잡기에 능할 뿐 그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평직서를 노려봤다.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른 채 춘화도나 언급하다니.
“기가 막히게 그립니다.”
평직서는 음흉하게 웃었다.
“그 화공을 만나러 가세.”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평직서를 따라나선 양도출은 그 용조라는 이름의 백관조 그림을 그려서 도시 전역에 뿌릴 생각이었다. 그러면 누군가 그 새를 본 사람이 현상금 때문에라도 찾아올 것이다. 현상금으로 얼마를 걸어야 할까? 한시라도 빨라야 하니 1백 마전은 필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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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포윤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탑주실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막 탑주실 밖으로 나온 중문석을 본 그가 물었다.
“부탑주께서는 안에 계신가?”
“그렇습니다만.”
“안내해 주게.”
“무슨 일이십니까?”
“……급한 일일세.”
“알겠습니다.”
중문석은 엄포윤이 륜사의 종자이자 오늘부로 종자장이 된 단태의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엄포윤은 넓지만 상대적으로 수수한 탑주실로 들어오며 방의 주인에 따라 방 자체가 다르게 보이는구나 생각했다. 륜사는 책상에 앉아 서류를 읽고 있었고, 그 옆에는 수련사 여화가 서서 륜사가 서명한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엄포윤을 본 륜사가 책상 앞쪽에 자리 잡은 탁자 쪽으로 걸어와 엄포윤 맞은편에 앉았다. 엄포윤은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으며 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내어 륜사에게 내밀었다. 륜사는 편지를 받으며 말했다.
“이게 뭡니까?”
“……읽어 보게나.”
엄포윤은 손자가 치명적인 질병을 타고나서 안타까워 미칠 것 같은 할아버지의 표정을 짓고, 거기에 어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죠.”
륜사는 편지를 빠르게 읽었는데, 다 읽기도 전에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고개를 들어 엄포윤을 쳐다봤다. 무슨 일인지 궁금한 여화가 륜사 옆으로 다가와 섰다.
“단태는 어디 있는가?”
엄포윤이 말했다.
“불렀으니 오는 중일 겁니다.”
“돌아오는 즉시 확인해 주게.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아무래도 풍혈지체인 듯싶어 말일세.”
“……어르신의 염려가 기우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저 역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오금반서관에 아는 이가 있는데, 그 사람에게 혹시나 싶어 ≪마법지체사전≫을 확인해달 라고 부탁했고, 이 편지는 그 결과라네. 며칠 전에 받았는데…… 밤새 고민하다가 내겐 힘이 없어서 자네를 찾아왔네.”
“아, 그래서 그때 용금탄에 남으셨군요. 아무튼, 잘하셨습니다.”
륜사는 그 편지를 한 번 더 읽었다. ≪마법지체사전≫을 발췌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여화가 해 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용혈에서 절체절명의 순간, 단태는 또 한 번 풍계 마법을 펼쳐 여화와 륜사는 물론 누천파, 반우현 그리고 하인, 하녀 들까지 살렸다는 내용이었다. 심각한 부작용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고룡 암탄주 덕분에 회복되었는데, 지극히 운이 좋은 경우였다.
사실, 륜사는 단태를 불러 호되게 야단을 치려고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단태는 사부의 경고를 가볍게 여긴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사부를 포함한 사람들을 구한 것이다. 칭찬하지 못할망정 그 충성심을 짓밟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단태가 이토록 치명적인 체질의 소유자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또 한 번 그런 일이 닥치면 단태는…… 피를 뿜으며 죽을지도 모르니까.
그때, 단태가 탑주실로 들어섰다.
“이리 와 봐.”
륜사가 일어서며 손짓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단태는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륜사는 손을 뻗어 단태의 손목을 쥐고 마력을 흘려 제압했다. 신음을 흘린 단태는 몸에 힘이 빠져 자신도 모르게 탁자에 엎드렸다. 륜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엄포윤이 옷을 벗겨 등을 드러냈다.
“사부님?”
“그대로 있어라.”
심호흡을 한 륜사가 정확한 지점에 마력을 흘려 넣고 결과를 기다렸다. 제발 아무 변화가 없기를.
영문을 모르는 여화도 무거운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륜사, 엄포윤 옆으로 다가와 섰다.
등이 그대로여서 안도할 무렵, 빛 하나가 등 중앙에서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어서 목덜미 바로 아래에 또 하나의 빛이 나타났고, 마지막은 엉덩이 위쪽에 자리 잡았다. 일직선으로 세 개의 별이 출현한 것이다. 삼성점이었다!
“……풍혈지체가 맞군요.”
륜사가 말했다.
엄포윤이 풀어 주자 옷을 입은 단태는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다 사부와 가짜 할아버지의 무거운 안색을 보고는 여화를 힐끔거렸다. 여화도 이유를 몰라 고개를 저었다.
“제가 말해도 될까요?”
“그렇게 하시게.”
“단태, 여기 앉거라.”
“……사부님, 무슨 일이에요?”
“네가 이 탑에 들어온 그날 어느 정도 직감하고 있었다만, 넌 풍계 마법의 재능을 타고났다. 바람의 마법, 말이다.”
“아, 그래서 제가 바람을 일으킬 수 있…….”
단태는 엄포윤의 눈치를 보며 멈췄다.
영악한 엄포윤은 단태의 말을 통해 무언가 생각했으나 속내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맞다. 그 부분은 엄포윤 어르신께서도 알고 계셨다. 그래서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셨는데, 네 체질이 무엇인지 알아내신 거다. 넌 풍혈지체다. 풍계 마법을 익히기엔 더없이 좋은 체질이지. 거기까지는 좋다.”
“안 좋은 내용도 있겠네요. 말씀하세요. 세상일이라는 게 항상 좋을 수만은 없잖아요.”
아이답지 않은 말에 륜사는 속으로 놀랐다.
“풍혈지체를 타고난 사람은 스무 살을 넘기기 어렵다는구나.”
“…….”
단태는 명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손을 명치에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