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78화 (78/293)

<-- 78 회: 2-37 -->

“쯧쯧, 단태 그 아이가 불쌍하구먼.”

순간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저런 개 같은 놈에게 시달린 단태의 마음을 얻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알 것 같았다. 단태는 필시 어머니와 여동생을 찾으려고 애를 쓰고 있을 것이다.

“아! 그래서 종자장이 된 거였어. 종자장은 관공서의 장부를 열람할 수 있으니 말이야. 노예 등록대장을 보면 어디로 팔려 갔는지 알 수 있으니까. 그놈 참 맹랑한데.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품은 뜻을 이뤄 내다니. 아무래도 할아버지로서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어머니와 여동생을 찾아 줘야겠어. 그리고 그들의 후견인이 된다면,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진짜 할아버지가 될 수도 있겠지.”

엄포윤은 단태가 빠르게 종자장이 되고, 륜사와 명국영처럼 뛰어난 인물들과 가까워지는 게 달갑지만은 않았다. 손쉽게 통제할 수 있는 노예 단태가 번데기라면, 요즘의 단태는 점점 그 번데기 밖으로 나오는 화려한 나비 같은 느낌이었다. 이러다가 훨훨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 이유로 불안했는데, 가족을 찾아 준다면…… 그래서 은인이 된다면…… 가짜 할아버지라는 가면을 벗어던져도 여전히 단태 곁에 머물 수 있고, 그러면 언젠가 단태를 이용하여 천린풍탑의 문을 열 수도 있으리라.

엄포윤은 다시 형운세초 연구를 위해 방으로 돌아갔다. 단단한 장벽 앞에 멈춰 버린 연구였는데, 기분이 좋아서인지 왠지 이 문제가 곧 해결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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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습니다!”

평직서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정말인가?”

“그 새를 본 사람이 있답니다.”

“어디서? 어디서 봤다는가?”

“그게, 노예 등록소랍니다.”

“……거기로 가지.”

양도출은 소마선으로 가면서 어쩌면 일이 쉽게 풀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주인의 품에서 벗어난 애완용 새는 그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숲으로 날아가거나,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는데 그 용조라는 녀석은 독특한 새 같았다.

“그런데 그 새가 어떤 꼬마의 어깨에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꼬마?”

“네.”

“누군지는 모르고?”

“그것까지는 아직.”

“잘했네. 노예 등록소에 가 보면 알 수 있겠지.”

양도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일은 굉장히 은밀히 진행되었다. 거액의 돈이 들어간 계획은 성사 직전까지 와 있으나 어떤 경우에도 계획에 대한 정보 공개는 막아야 했다. 만약 그런 위험이 있다고 저 윗선에서 판단을 내린다면…… 이번 계획에 관여한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소문도 없이 사라질지도 몰랐다. 그러면 악어들이 출몰하는 늪지대에 던져지거나, 몸에 돌덩이를 매달고 운하 바닥으로 가라앉거나 어찌 됐든 끝이 좋지 않으리라는 점은 분명했다.

그러니 무조건 그 새를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고, 그래야 이번 공으로 저 위로 올라갈 수 있을 테니까.

그리 먼 곳도 아닌데 노예 등록소까지 걸리는 시간이 꽤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도착하자 양도출은 참지 못하고 먼저 배에서 뛰어내렸다. 노예 등록소로 들어선 그는 목격자를 찾았다. 알고 보니 입구를 지키던 경비대원이었다.

“그 새를 데리고 온 게 누구였나?”

“……음, 기억이 날 듯 말 듯 합니다.”

그 말에 양도출은 10마전을 꺼내어 경비대원에게 건넸다.

“아, 이제 기억이 났습니다. 마둔수탑의 종자장이었습니다.”

“……분명한가?”

“기껏해야 열다섯 살 정도밖에 안 되는 녀석이었지만 마둔수탑의 종자장 인장 반지를 끼고 있었습니다. 분명합니다.”

“알겠네.”

양도출은 용조가 어디 있는지 알아냈지만 결코 기쁘지 않았다. 왜 하필 마둔수탑과 관련이 있을까? 자칫 잘못하면 탑과의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었다. 관리들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조직이 바로 탑이었다. 마둔수탑은 그 탑 중에서도 최고가 아닌가.

평직서가 다가왔다.

“그 어린 종자장이라면 륜사의 종자일 겁니다.”

“륜사? 마둔수탑 최강의 마법사 륜사 말인가?”

“그렇습니다.”

“끙.”

양도출은 자신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일이 잘 풀린다 싶더니.

일반적인 경우라면 직접 륜사를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새를 돌려 달라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그런 식의 해결은 불가능했다. 륜사라면 그 새가 특별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테고, 그러면 소리 마법사가 물의 도시에 들어와 있다는 것도 추리해 낼 터였다. 계획이 점점 틀어지고 있었다.

‘륜사는 알고 있을까? 아니, 그럴 리는 없다. 알았다면 한바탕 피바람이 불었을 테지. 게다가 그 종자가 새를 어깨에 얹고 돌아다닐 리도 없어.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야. 륜사의 종자니만큼 서둘러서 득 될 건 없겠지. 완벽한 기회를 찾아내야 돼.’

양도출은 바로 세부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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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등록소 입구로 들어선 명국영은 벽에 붙어 있던 그림을 보고 멈춰 섰다. 그 그림에는 새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는데, 새가 어디 있는지만 알려 줘도 무려 100마전이라는 거금을 현상금으로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 그림을 보자마자 명국영은 단태의 어깨에 앉아 있던 그 성질 고약한 조그만 새를 떠올렸다.

명국영은 그림을 뜯어 내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입구를 지키는 경비대원에게로 갔다.

“이거, 누가 붙였습니까?”

“음, 그게 기억이 잘…….”

눈치 빠른 명국영은 품에서 돈을 꺼내어 경비대원의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세관국장님의 비서관 양도출이 그림을 붙였고, 몇 시간 전에는 이곳으로 찾아왔었습니다. 그 그림에 있던 새를 누가 데리고 왔냐고 물었는데, 마둔수탑의 종자장이라고 대답해 줬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다들 그 새를 찾는 것 같은데.”

“음, 그게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군요.”

돈 밝히는 경비대원의 흉내를 낸 명국영은 그림을 손에 쥔 채로 발길을 돌렸다. 당장 단태를 찾아가서 그 범상치 않은 새를 어디서 얻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선착장으로 가서 배에 올라타려던 그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를 제외한 사람들이 모두 올라타도록 그는 움직일 줄 몰랐다.

“출발합니다.”

명국영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자, 배는 천천히 노예 등록소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명국영은 손바닥으로 이마를 쳤다.

아직 숨겨진 진실 전부를 알아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일부는 수면 위로 드러났다. 우연의 일치일까? 경험상 이렇게 교묘한 우연의 일치는 존재하지 않거나 거의 없었다.

명국영은 다시 노예 등록소로 향했다. 륜사가 발급한 증명서를 내밀자 담당 관리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 말 않고 서고로 그를 안내했다. 명국영은 단태가 꺼내어 살폈던 장부를 다시 꺼내어 펼쳤다.

“여기 있군.”

위연미라는 노예의 매매 기록을 꼼꼼히 확인한 그는 날짜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단태가 할아버지 엄포윤을 찾아온 날과 거의 일치했다. 엄밀히 말하면 하루 차이였다. 그날 단태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친구라는 위연미는 왜 노예로 팔렸을까?

명국영은 위연미가 팔린 그날 매매된 노예들의 이름과 구매자 명단을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어릴 때부터 연마한 기억술은 이런 순간에 꽤나 유용했다. 집중한다면 책 반 권 정도는 그 자리에서 외울 수 있었던 것이다.

‘구매자 명단이 공란인 매매 기록은…… 세 건이군. 위연미와 설희 그리고 양지란. 이 세 사람이 관련이 있을까? 그건 더 알아보면 되겠지. 아, 이들을 노예 매매소에 돈을 받고 넘긴 노예 상인이 같은 사람이야. 이 녀석부터 찾아야겠어.’

명국영은 ‘도양’이라는 이름의 노예 상인을 만나기 위해 노예 등록소를 서둘러 빠져나왔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도양은 수도 용금탄으로 떠나 버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맥이 빠진 명국영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의외의 정보를 입수했다. 단태가 바로 도양을 찾기 위해 애를 쓴 모양이었다. 한때 도양이 소유했던 건물에 사는 남자로부터 단태와 닮은 아이가 도양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명국영은 즉각 단태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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