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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
이른 한파에 눈이 도시를 덮고, 운하가 얼어붙었다.
정기적으로 도시 전역을 돌아다니던 배의 운행이 멈추자 또 다른 운송수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개들이 이끄는 썰매였다. 상류층은 저 추운 북쪽에서 데려온 순록에 썰매를 매고 달렸지만, 가난한 하층민은 쪼갠 나무를 발에 대고 미끄러지듯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수석 수련사인 당원일의 변화로 수련사와 종자 사이의 관계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안 그래도 코앞으로 다가온 승급 시험 때문에 바쁜 수련사들은 종자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종자들은 그림자처럼 수련사들을 따라다니며 편의를 봐줬는데, 가끔 생기는 사소한 충돌을 제외한다면 전체적으로 잡음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단태는 엄마를 빼내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노예는 값을 치르면 자유인이 될 수 있는데, 문제는 노예의 주인, 즉 구매한 당사자의 승낙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게 노예 매매와 관련된 법의 내용이었다. 단태는 엄마가 어디 있는지는 알지만, 누가 엄마를 구입했는지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섣불리 나설 수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단태는 거리를 돌아다니는 아이에게 돈을 쥐여 주며 엄마에게 쪽지를 전달했다. 곧 찾으러 갈 테니 조금만 견디라는 내용이었다. 눈물을 흘리는 엄마를 보며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단태는 완전한 자유와 편안한 삶을 되찾을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업무 때문에 ‘정본파’에 들른 단태는 용병 조직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 수 있었다. 마법사들이 마른 체형에 낮고 잔잔한 목소리의 소유자라면 용병은 울퉁불퉁한 근육질을 자랑하는, 유형이 다른 사람이었다. 여기저기 소리치는 사람들, 심지어 멱살을 잡고 싸우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게 용인되는 분위기가 신기했다.
용병과 마법사는 체질적으로 섞이기 어렵지만, 어쩔 수 없이 일 년에 두 번은 함께 움직여야 했다. 바로 ‘용마렵’이었다. 용마렵은 마법사, 용병이 함께 서쪽 방책 너머로 나가서 악어와 물뱀을 소탕하는 사냥이자 토벌인데 유타루체에 있는 마법사와 용병 모두가 동원되는 대규모 행사였다. 시장이 직접 챙길 만큼 중요한 행사이기도 했다.
단태는 해가 바뀌면 열릴 그 용마렵 때문에 종자장으로서 정본파에 들렀던 것이다.
“까다로울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다행이야. 그치?”
“맞아.”
창수의 말에 단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꼼꼼하고 깐깐한 마법사보다 더 대화가 잘 통하는 느낌마저 받았다.
그때, 란조가 곱고 시원하게 지저귀었다. 당원일과의 충돌이 마무리된 이후로 단태는 방에만 갇혀 있어서 답답해하는 란조를 데리고 다녔는데, 란조와 함께 있으면 당장 엄마가 있는 누천파의 저택으로 달려가서 엄마를 데려오고 싶은 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란조는 그 존재만으로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단태를 도와주고 있었다.
“어디서 샀어? 나도 한 마리 있으면 좋겠다.”
창수가 부러운 눈으로 란조를 쳐다봤다.
“……떠도는 새였나 봐. 배가 고픈지 날 보고도 날아가지 않기에 먹을 걸 줬더니…… 이렇게 내 어깨에 눌러앉아 버렸어.”
단태는 대충 얼버무렸다. 란조를 어디에서 데려왔는지 말할 수는 없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반우현뿐이었다.
“넌 운이 참 좋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단태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운이라면 없어도 좋으니, 옛날로 돌아가고 싶었다. 엄마가 어디 있는지는 알아냈지만 아직도 설희는 찾지 못했다. 마둔수탑이 팔마탑의 일원이 되는 바람에 11인위원회의 가문 사람들 중에도 용금탄으로 거처를 옮긴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설희는 용금탄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는데, 확신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탑으로 돌아오자 여화가 단태를 불렀다.
“사부님이 널 기다리신다.”
“……무슨 일인데요?”
“종자회가 열리는 그 지하 창고로 내려가 봐.”
“거기로요?”
“어서.”
여화의 재촉에 단태는 서둘러 지하로 내려갔다. 오가는 종자들에게 인사를 받았고, 수련사와 마법사 들에게는 고개를 숙였다. 사람들 대부분이 단태를 알아보았다.
문을 열고 창고로 들어서자 뒷짐을 진 채 창고를 둘러보는 륜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륜사가 몸을 돌렸다.
“여기가 어딘지 기억나느냐?”
“네.”
단태는 수백 명의 종자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배망식에 의해 오물에 빠졌던 아찔한 순간을 떠올렸다. 그러나 또한 바로 여기서 종자장으로 결정되었다. 절망과 환희가 교차되는 장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가 널 왜 여기로 데려왔을까?”
“모르겠습니다.”
“오늘부터 넌 내게 마법을 배운다.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
단태는 정신이 번쩍 뜨였다.
“두 종류의 마법이다. 수계 마법과 풍계 마법. 사실, 종류가 다른 마법을 한꺼번에 배우는 것…… 미친 짓이다. 원래 마법은 본래 가진 성질을 강화시키는 방식이었다. 근육을 단련하면 힘이 커지듯, 마법도 원래 있던 것을 강화시키는 거지. 한데 성질이 다른 마법을 한꺼번에 익히면 몸이 버티질 못해. 그런데도 왜 네게 두 종류의 마법을 한꺼번에 가르치느냐? 네가 바로 풍혈지체라서다. 여기까지 이해하겠느냐?”
“……잘 모르겠는데요.”
단태는 고개를 저었다.
“차차 알게 될 테니 염려할 필요는 없다.”
“네, 사부님.”
하지 않으려 하면 더 쉽게 찾아오는 게 염려, 걱정이다. 그래도 단태는 애를 썼다. 걱정하지 않으려고.
“풍계 마법은 거의 사라졌다. 두루마리 형태의 풍계 마법을 제작하는 방법은 남아 있지만 살아 있는 사람 중에 바람의 마법을 제대로 펼치는 사람은 없어. 극소수에 지나지 않아. 마법은 가르치는 사람 없이는 배우기 매우 어려운 기술이다. 다른 학문은 책을 통해 어느 정도 지식을 터득할 수 있지만, 마법은 아니야. 스승 없이 마법을 익힌 자들은…… 대부분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피를 토하고 죽거나, 몸이 마비되어 인간 이하의 삶을 살거나. 불행히도 네게 풍계 마법을 가르칠 스승은 없다. 제국 전역을 돌아다니면 한둘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찾을 여유가 없다. 그래서 난 네게 수계 마법을 가르쳐 마법이 어떤 원리로 펼쳐지는지,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려 줄 것이다. 그러면 넌 내가 가르쳐 준 것을 바탕으로 스스로 풍계 마법을 익힐 것이다. 물론 내가 옆에서 널 보호할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사부님.”
단태는 솔직하게 말했다.
“차차 알게 될 게다. 오늘은 수계 마법을 배워 보자. 가장 기본적인 마법 중 하나인데 ‘수막’이다. 자, 여기 통에 담긴 물 표면에 손을 올리고 집중하여 물의 막을 만들어 보아라. 이렇게.”
륜사는 물이 담긴 나무통에 손을 넣었다 뺐다. 그러자 물이 손바닥을 따라 끌려 올라왔는데 그 형태가 얇고 기다란 막이었다. 횃불이 반사된 그 막에 무지개 색깔이 알록달록 비쳤는데, 단태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네 차례다.”
“……마법인데, 마력석은 필요 없어요?”
“간단한 마법엔 그저 마음의 힘만 있으면 된다.”
륜사의 눈짓에 단태는 나무통 앞에 섰다.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손을 나무통에 넣었다. 손바닥이 표면에 닿자 살짝 띄운 다음, 물의 막을 떠올렸다. 무언가 느껴지자 즉시 손바닥을 위로 당겼는데…… 물방울 몇 개만 손바닥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울상을 지은 단태.
“처음이니 실망하지 마라. 대마법사도 첫 시도에서 성공하진 못했을 테니까.”
“……네, 사부님.”
“넌 여기서 물의 막을 만들어 낼 때까지 연습해라. 아무도 네 연습을 보지 못하게 조심하고. 이것은 열쇠다. 마법 연습은 항상 여기서 해라. 연습할 때는 문은 잠가 놓고.”
“네, 사부님.”
종자가 이런 식으로 멋대로 마법을 배우는 건 규율 위반이어서 단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격 없는 사람이 마법을 펼치면 주위 사람들까지 다쳐서 금지한 것이다.
종자는 추천을 받아 마교원에 생도로 입학하고, 그 엄격한 교육 과정을 거친 후에 졸업하여 수련사가 되는데, 그때서야 정식으로 마법을 펼칠 수 있었다. 물론 초보적인 마법에 한해서였다. 승급 시험을 통과하여 ‘타마’라는 자격을 얻은 다음에는 자유롭게 마법을 펼칠 권리가 주어졌다. 대신 책임도 본인이 져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