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륜사가 나가고도 단태는 연습을 계속했다. 집중해도 물의 막은커녕 물방울도 서너 방울만 손바닥에 묻어서 올라올 뿐이었다.
단태는 여유 시간만 나면 그 지하 창고로 내려가서 연습을 거듭했는데도 륜사가 보여 준 그 멋들어진 물의 막은 만들어 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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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택수는 할 말을 잃었다.
양도출의 말은 사실이었다.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그 망할 새는 마둔수탑 종자의 어깨 위에 앉아 있었다. 개가 끄는 썰매를 타고 얼어붙은 운하 위를 달리는 소년의 어깨에 분명히 용조가 앉아 있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가 어려웠다. 백관조는 소리 마법사의 자존심으로 한 번 주인을 정하면 평생 그 주인을 따라서 산다고 알려져 있었다. 음택수도 변심한 백관조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저 아이는 마둔수탑 유타루체 지부의 종자장일 뿐 아니라 그 유명한 마법사 륜사의 종자입니다. 건드렸다가는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양도출이 물었다.
“저 녀석은 도둑놈이오. 내 새를 훔친 도둑놈.”
“저 아이가 어르신께서 계시는 그 지하로 내려와 새를 훔쳐 가지는 않았습니다만.”
양도출은 단태가 평굉의 저택에서 열린 연회에 반우현과 함께 참석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그저 칠칠맞지 못한 저 음택수가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 날아가 버린 백관조가 새로운 주인으로 단태라는 녀석을 선택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저 녀석을 내 앞에 데려오시오.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내 직접 확인하고 싶으니 말이오.”
“무슨 뜻입니까?”
“내 백관조와 왜 저 녀석 어깨에 앉아 있는지 알아봐야겠소. 산 채로 껍질을 벗겨서라도.”
그 말에 양도출은 등과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음택수라는 작자가 무슨 짓을 할 생각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 미친 새끼는 륜사의 종자를 해부하여 자신의 궁금증을 풀고 싶어 했다.
순간, 양도출은 화가 났다. 대체 물의 도시를 어떻게 보기에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만약 평굉의 지시가 없었다면, 저 소리 마법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면, 양도출은 허리띠 안쪽에 숨겨 둔 침을 빼내어 오만한 마법사의 관자놀이를 찔렀으리라. 단태라는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유타루체를 깔보는 마법사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륜사가 나서면 일이 복잡해집니다. 어르신의 안위도 보장할 수 없구요. 어르신의 새만 불러내는 방법은 없습니까?”
“둘 중 하나니, 선택은 당신 몫이오. 저 녀석을 내게로 데려오거나, 내가 이 도시를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사흘 주겠소.”
음택수는 최후통첩을 했다.
양도출은 그 말을 평굉에게 전했다. 혼자 판단해서 움직일 사안이 아니었다. 상대는 마둔수탑의 종자장인 동시에 륜사가 아끼는 종자였다. 이야기를 들은 평굉은 말이 없었다. 그도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시장님을 뵙고 오겠네.”
평굉은 양도출에게 기다리라고 말한 후에 세관국을 나와 순록 썰매에 올랐다. 뿔이 멋진 순록은 즉시 시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평굉은 뜨거운 숨을 토하며 질주하는 순록들을 쳐다보며 한 마리쯤은 구워서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청에 도착하자 그는 시장과의 독대를 요청했다. 예상대로 그 요청은 즉시 받아들여졌다.
천룡 응접실은 수수하면서도 고급스러웠다. 특별한 손님만 들어올 수 있는 이 응접실은 시청에 마련된 일곱 개의 응접실 중 두 번째로 좋은 방이었다. 기둥, 벽, 천장, 바닥, 심지어 의자 팔걸이까지 용이 그려져 있는 그 방을 보면서 평굉은 자신의 저택에도 이런 방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이 좀 들겠지만 완성하면 흐뭇할 것 같았다.
그때, 시장이 들어왔다.
평굉은 몸을 일으켜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인가? 그 일 때문이겠지?”
“……그렇습니다.”
“본론부터 말하게. 내겐 시간이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평굉은 소리 마법사 음택수의 요구 사항을 시장에게 전달했다. 그 말을 듣자 시장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례하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음택수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그자의 뜻대로 해 주게.”
“……알겠습니다.”
“륜사는 내가 맡겠네. 그러니 자네는 그 단태라는 녀석을 음택수에게 줘 버려. 그리고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그 음택수를 죽여서 자네의 집에서 키우는 악어 먹어로 던지게.”
“네, 시장님.”
“언제쯤 그 마법을 실행할 수 있다던가?”
“정초쯤에는 가능합니다.”
“새해 첫날이 좋겠군. 그 무례한 마법사에게 전하게. 새해 첫날이라고.”
“알겠습니다.”
시장이 나가자 평굉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시장은 완력으로 윽박지르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 앞에 앉으면 어딘지 모르게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 명쾌한 결정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 건방진 마법사의 운명은 이제 결정이 났다. 놈은 새 한 마리 때문에 물의 도시에서 살아 나갈 가능성이 사라졌다.
평굉은 웃으며 시청 밖으로 나가, 세관국에서 대기하던 양도출에게 지시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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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건의 노예 매매 기록을 모조리 확인한 명국영은 엄숭이라는 구매자가 데려간 노예 장융에 대한 기록만 가짜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구매자의 주소도 가짜였고, 거기에는 장융이라는 노예가 온 적도 없었다. 노예등록대장은 엄연히 시청의 공식적인 기록이기 때문에 위조에 대한 처벌은 굉장히 엄했다. 11인위원회조차도 거짓을 기록하는 대신 권력을 빌려 구매자를 공란으로 비워 두는 게 고작이었다.
더 이상의 추적은 불가능했지만 거기서 멈출 명국영이었다면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명국영은 모든 거짓에는 진실이 일부나마 포함된다는 보편적 지혜를 알고 있었다. 거짓말이 입에 붙은 사람이 내뱉은 허풍도 잘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게 명국영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명국영은 엄숭과 장융이라는 이름을 출발점으로 또 다른 추적을 시작했다. 그랬더니 의외로 결과가 쉽게 나왔다.
엄숭은 엄포윤의 사제이자 동생으로 15년 전쯤에 마둔수탑에서 쫓겨난 마법사였다. 알아보니 약재를 외부로 빼돌려 팔아서 이익을 챙기다가 걸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장융은 엄포윤이 한때 데리고 있었던 종자의 이름이었다.
‘우연일 리는 없지.’
심증을 굳힌 명국영은 인구등록대장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담당자에게 접근했다. 돈을 받고 장부를 거짓으로 기록한 그 담당자는 사실이 알려지면 파면뿐 아니라 감옥에 갇힐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명국영이 그 부분을 언급하자 즉시 진실을 털어놓았다. 명국영이 내민 돈에 그 관리는 묻지 않은 것까지도 알려 주었다.
결국 명국영은 진실을 발견해 냈다.
엄포윤은 단태의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엄포윤은 단태를 사들인 구매주였다.
이제 또 다른 문제가 명국영 앞에 남아 있었다. 왜 엄포윤은 단태를 손자라고 말했을까? 명국영은 뒷짐을 지고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척하며 단태가 이 탑에 들어온 이후로 벌어진 모든 일을 조사했다. 그랬더니…… 놀랍고 조금은 웃기는 내용이 드러났다. 단태의 말 한 마디에 엄포윤이 스스로 할아버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말 신의 한 수였다.
단태가 엄포윤의 처지를 알고서 한 행동은 아니겠지만, 그 말 한 마디로 인해 엄포윤은 더 이상 단태를 숨겨둔 채로 실험 대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명국영은 대마법사 하랑의 선언으로 금지된 인체 실험을 엄포윤이 시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절대 가만 두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엄포윤을 처벌하려다가는 그 불똥이 단태에게 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국영은 탑의 규율집을 빌려다가 꼼꼼하게 검토했다. 그 결과, 단태가 노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알 수 있었다.
일단, 탑에서 쫓겨날 터였다.
탑의 규율은 명백히 종자, 수련사, 마법사의 자격을 규정하는데, 노예는 결격사유에 해당되었다. 이 규율에 의하면 단태는……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노예라는 진실이 알려지는 순간, 탑에서 쫓겨나 다시 노예 매매소로 끌려 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