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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해. 냄새가 고약하거든.”
그렇게 말한 철무는 반으로 갈라진 지네의 몸통을 뒤져 조그만 구슬을 찾아 주머니에 넣은 다음, 체액이 흘러나온 몸통을 밟으며 앞으로 향했다. 전사들은 악취를 풍기는 지네의 몸을 밟으며 철무가 얼마나 강한지 새삼 깨달았다.
“……여기다.”
철무가 말했다.
그동안 수십 개의 갈림길을 아무런 말도 없이 선택했던 철무가 갑자기 말하자, 윤강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쪽으로 가면 시청이 나온다는 뜻이고, 가까워질수록 시청을 방어하기 위해 곳곳에 설치된 마법진 때문에 더 위험해진다는 말이었던 것이다.
철무는 윤강을 쳐다봤다.
“내 임무는 여기까지.”
윤강은 그 의미를 즉시 이해했다. 불평을 터트리려는 전사들을 눈짓으로 말린 그는 철무 앞에 섰다.
“고맙다. 나중에 보자.”
“……살아서 돌아온다면, 술 한잔 사지.”
“좋아.”
철무의 입에서 술 마시자는 이야기가 나오다니. 윤강은 새삼 이번 임무가 얼마나 위험한지 직감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철무는 추명의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추명을 돕되 추명을 이루는 사람들과는 거리를 둔 것이다.
그럴 만도 했다.
추명의 배신자로 인해 아내와 딸을 잃었으니.
윤강은 칼을 손에 쥔 채 철무가 가리킨 통로로 접어들었다.
그 뒤를 전사들이 따랐다.
각자 무기를 들고서.
“후퇴!”
윤강이 소리쳤지만, 여기저기서 폭발하는 마뢰의 굉음에 묻히고 말았다. 움직임을 탐지하여 스스로 마법을 실행하는 마뢰는 주먹만 한 크기로 어디든 설치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개당 100마전 이상의 비싼 가격에도 잘 팔리는 마법 물품이었다.
윤강은 마뢰를 다뤄 본 경험이 많았지만 눈앞에서 터지며 추명의 전사들을 날려 버리는 마뢰는 처음이었다. 원래 마뢰는 무게를 탐지하여 터지는데, 여기 시청 지하에 설치된 마뢰는 땅에 매설된 마뢰 위를 밟고 지나갔는데도 터지지 않았다. 시간 장치가 내장된 듯, 일정한 시간 뒤에…… 즉, 폭발 범위 안으로 끌어들인 다음에 한꺼번에 터지게 설정된 모양이었다.
윤강은 추관구를 옆으로 밀어 버리고, 땅에 박힌 마뢰를 발로 차 버렸다. 저 멀리 굴러 간 마뢰는…… 화염을 내뿜으며 통로를 뒤흔들었다. 이 정도 폭음이면 시청 놈들도 눈치챘을 것이다.
“후퇴하라.”
윤강은 사력을 다해 외쳤으나 부하들은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폭발이 잠잠해지자 저 앞쪽에서 요란한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만 들어도 그 수준을 알 수 있었다. 경비대원이 아니라, 당용파의 용병들이었다. 11인위원회의 일원인 당현추가 이끄는 당용파는 상당히 강한 용병들의 조직이었다. 그들이 나섰다면…… 철무의 말대로 이곳은 함정이며, 덫이었다. 추명을 잡기 위한.
윤강은 부하들을 이끌고 물러났다. 일 초라도 빨리 빠져나가야 하는데, 마뢰로 팔을 잃고 신음을 흘리는 군려, 가슴에 파편이 박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춘모, 섬광과 열기로 앞이 안 보여 손을 뻗은 채 헤매는 장여재 등을 보니 앞이 캄캄했다. 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잔인한 시청 놈들에게 부하를 넘겨줄 수도 없었다.
그때, 뒤쪽에서 철무가 나타났다.
철무는 울부짖는 춘모의 명치를 가격해 기절시켰고, 팔을 잃은 군려의 목을 눌러 더 이상 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던 철무가 고개를 돌려 윤강을 쳐다봤다.
그 시선을 보자마자 윤강은 철무의 속내를 알아차렸다. 그래, 한때는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뜻을 알 수 있는 사이였다! 아니, 지금도 그런 사이였다!
윤강도 철무처럼 돌아다니면서 살아남은 부하들을 기절시켜서 입을 막았다. 그런 다음 한곳으로 모았다.
철무가 윤강 앞으로 다가와 섰다.
“한 명도 잃지 마라.”
“……너는?”
“내겐 가족도 없으니, 뭐 상관없다.”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내가 술을 사지.”
“……후후, 알았다.”
철무는 점점 다가오는 그 발소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적당한 위치에서 들고 있던 두루마리를 찢자 섬광과 함께 마법이 펼쳐졌다. 환상 마법 ‘환화교’였다.
환화교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고급 마법인데, 기본적으로 그 마법의 영역 안에 들어선 사람들의 오감을 왜곡시키는 능력을 발휘했다. 돈이 남아도는 부잣집이나 지체 높은 귀족가에서는 이 마법을 교육에 이용하기도 했다. 전투 장면을 마법으로 재현하여 전쟁 관련 지식을 습득하도록 돕는 방식이었다.
물론 수만 명이 치열하게 싸우는 전투를 재현할 정도로 대규모 환화교 마법은 수십 명의 환상 마법사들이 필요했다. 기록에 따르면 용령 제국을 건국한 태조 연마편은 황태자의 교육을 위해 무려 백 명의 환상 마법사들을 동원하여 초대형 환화교를 펼친 적도 있었지만 희귀한 경우였다.
철무가 찢은 두루마리에서 펼쳐진 환화교는 흑야궁에 대한 감각을 왜곡시켰다. 윤강과 추명의 전사들에게로 이어지는 통로를 깨끗이 막아 버린 것이다. 환화교는 보통의 환상 마법과 달리, 감각 자체를 속이기 때문에 거기 걸려든 사람은 실제로는 텅 빈 공간인데도 울퉁불퉁한 동굴의 벽을 실제로 느낄 수가 있었다. 이처럼 강력한 마법이지만, 약점도 있었다. 마법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져, 마법사라면 웬만해서는 잘 속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바로 그 때문에 교육용 마법으로 알려져 있었다.
철무는 이 어둡고 습한 데다 언제 어디서 흑천주, 백오공, 양각서 따위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흑야궁으로 마법사들이 먼저 내려올 리는 없다고 판단했다. 당용파의 용병들은 강력한 전투력을 자랑하지만 그들은 마법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 나중에 마법사가 내려오면 즉시 환화교가 깨지고 말겠지만, 그동안 윤강이 부하들을 데리고 몸을 피할 시간은 벌어 줄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용병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특히 열 명의 부하를 이끄는 ‘소추’들은 노련해서 마뢰가 터진 이곳에 아무도 없으면 당장 환화교 등 가능한 경우를 떠올릴 테고, 그러면 마법사가 즉시 흑야궁으로 내려올 가능성이 높았다.
철무는 그런 점을 감안해 자신이 용병들의 시선을 끄는 역할을 자처했다. 미끼가 되어 그들의 주목을 끄는 동안, 윤강이 부하들을 데리고 피신하도록 만든 것이다.
녀석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철무의 흔적을 읽고 질주를 시작한 것이다. 흔히 마법사는 용병을 노골적으로 무시하지만, 좁고 어두운 곳에서 용병은 마법사를 압도한다. 철무는 잠시 용병 생활을 경험했기에 용병들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잘 알았다.
심호흡을 한 철무는 그 자리에 앉았다.
점점 소리가 커지는 방향을 쳐다보면서.
도망쳐 봐야 소용이 없음을 그는 잘 알았다.
어떤 꼴을 당할까?
가혹한 고문이……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이 시작될 것이다. 순간, 그는 어금니 안쪽에 넣어둔 알약을 씹을까 고민했다. 거기 든 가루가 터지면 비교적 고통 없이 삶을 마감할 텐데. 그동안 서먹서먹했던 윤강과 추명의 전사들을 위해 죽는 것이니, 오히려 만족스러운 죽음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독약을 삼키지 않았다.
아직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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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물의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용이 착륙하기도 전에 마음 급한 륜사는 아래로 뛰어내렸는데, 그 높이가 마둔수탑 꼭대기처럼 높았다. 다행히 추락하던 륜사는 자신이 펼친 마법 ‘감중수’가 만들어 낸 물웅덩이에 풍덩 빠져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감중수의 단점인 젖은 몸을 또 다른 마법 ‘건수정체’로 말려버린 그는 이제 막 착지하는 용의 등에 있는 여화를 보며 소리쳤다.
“탑으로 가서 분위기를 파악해.”
“네, 사부님.”
여화가 대답했다.
륜사는 썰매 따위는 탈 생각이 없었다. 재빨리 ‘족륜수’를 펼쳐 얼어붙은 운하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족륜수는 푸르스름한 물을 발아래에 바퀴 형태로 만들어 평소보다 몇 배나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 주는 마법이었다.
모퉁이에서 몇 번이나 미끄러질 뻔한 륜사는 족륜수로 만든 바퀴의 크기를 조정한 다음, 명국영이 굴러떨어졌던 그 계단을 단숨에 올라갔다.